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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신이 내게 왔다
백승남 지음 / 예담 / 2007년 2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면서, 아니 이 책에 대한 소개 글을 보면서 일본 만화 <데스노트>를 연상 했었다. 때문에 좀 더 일찍 살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지 않고 있다가 세 군데나 서점을 돈 끝에 샀다. 읽어보니 <데스노트>와 도입부분은 같은데 이야기가 전개 되는 면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현재 중학교 2학년인 주인공은 걸핏하면 생활지도부장에게 불려가 꼴통 취급을 받는다. 꼴통 취급을 받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 나가는 가운데 자신에게 일어 난 일-수첩을 주우면서 흑문도령을 만나고 그날 이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는 자신-을 이야기함으로 작품은 시작된다.
주인공 나는 자기세계(게임과 무협지의 세게)에서 몰입한 아이이다.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아버지는 잦은 출장과 새 여자가 있는 상황이고 엄마는 알콜중독이다. 자기를 돌보아 줄 사람이 없고 이해하려들려 하지 않는 선생님과 감옥과도 같은 학교...... 주인공이 처한 현실이다.
수첩을 주운 후 주인공의 내부에는 무언가(여기서는 덩어리로 표현된다) 들어 와 이야기를 한다.-이건 일본 만화 <기생수> 같은 느낌이 든다. <기생수>에서는 어쩔 수 없는 외계생물과 인간과의 기막힌 동거를 하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라는 것이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며 폭력성을 부추기는 이야기다. 폭력성을 부추기면서 덩어리는 자신들의 행위를 '선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선을 위한 폭력이라고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지만 사람들은 '선을 위한 폭력'이란 말을 믿지도 생각지도 않는다. 아니 선을 보다는 먼저 폭력이 눈에 들어 올 뿐이다. 자신이 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고맙다는 말 대신 두려움을 먼저 느낀다. 자신이 베푼 선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주인공은 선을 지키기 위한 폭력이라는 부분에 대하여 끊임없이 의심을 한다. 폭력이 난무를 할 때 마다 주인공 내부에서 덩어리의 기운은 커가는 듯하다. 시시때때로 덩어리에 휘둘리는 주인공. 덩어리의 힘은 주인공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마구잡이로 폭력성은 드러나더니 결국은 칼부림 끝에 주인공을 정신과 치료를 받게 만든다.
정신병동에서 주인공은 완수라는 형을 만나게 된다. 주인공은 완수 형이 하는 이야기를 온전하게 이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완수 형 또한 자신처럼 수첩을 주웠고 자기 안에 자기가 받아들인 덩어리와 비슷한 기운을 받아들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자기 만이 완수를 도울 수 있다고 주인공은 생각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퇴원 할 무렵 인사라도 나눌 겸해서 완수를 찾았을 때 서류상 어디에도 완수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은 완수에 관한 모든 것이 환상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던 주인공이 병원에서 나와서의 생활은 이전의 생활과 많이 다르다. 다시는 검은 수첩과 흑문 도령에 의지 않고 살려는 주인공의 몸짓, 자신의 나약함을 틈타 덩어리에게 휘둘릴까 노심초사하는 모습.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자 하는 모습에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갈까 아슬아슬함을 느끼게 된다. 불안하긴 해도 누군가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판단으로 살아가려는 모습은 아름답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가 한국적 이미지의 신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지만 한국적 이미지의 신들을 끌어 들인다면 흑문도령을 훨씬 구체화 해야지 엄마를 원천강이니 뭐니 묘사하는 부분은 많이 생뚱맞다. 작가가 의도 했던 한국적 이미지가 무엇이며 어디를 그렇게 표현하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엄마를 묘사하는 부분이 작가의 의도와 맞닿은 부분이라면 자신의 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보여 진다.
주인공(작품에 주인공의 이름은 없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나약함을 볼 수 있었고 본인이 의도한 바가 무엇이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느냐는 더 중요하다는 것도 동시에 느낀다. 본인은 선을 위한 응징차원에서 폭력을 사용 했지만 사람들은 주인공의 의도(선)보다 먼저 폭력을 보게 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주인공을 두려워하고 피하는 것을 볼 때 본뜻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뜻을 펼치는 수단, 과정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본뜻은 아무 의미가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