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풍경 1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모범생이었던 '소키치'는 3학년을 올라가자마자 등교거부를 하고 있다. 소키치는 학교를 다니는 것은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을 한다.  소키치의 이런 자신의 생각을 주변의 누군가와 나누지를 않은채 등교 거부를 시작한다. 행동 이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이야기 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 해 본다.

물론 자신의 분명한 생각을 주변의 어른들에게 이야기 했더라면 어떤 논리를 들이대면서도 소키치의 등교 거부를 막으려고 했겠고 그결과 등교 거부를 하지도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어른의 입장에서 봐서 그런가?)

아무튼

부모님이 안 계신 상황에서 소키치 보호자 역할까지 해야 하는 누나는 어느 날부터인지는 소키치의 등교 거부가 당황스럽다. 동생의 돌출 행동에 대한 분명한 이유라도 알면 덜 답답할 텐데 ...... 누나의 답답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소키치의 등교 거부에 대해서 소키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나  책을 읽는 독자나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다.

소키치는 등교 거부를 하는 동안 이웃들을 도와 고기잡이배를 타거나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등교 거부 = 문제아 취급을 받을 것인데 일본 사회의 전체적 분위기는 그런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것 같다. 

소키치를 잘 아는 사람이나 책을 읽는 독자는 소키치의 행동반경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아 소키치가 비록 학교에는 가지 않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지만 어느 부분만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소키치가 술집이나 드나드는 나쁜 학생으로 속단 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다.(학교의 교감 선생님처럼) 소키치가 등교 거부를 하는 동안 소키치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있는 그대로의 소키치를 인정하는 점이 일본 사회와 한국 사회의 다른 점인가 생각해 보다가도 이것은 작가 하이타니 겐지로가 사람들과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어부였던 아버지. 아버지는 훌륭한 어부였고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어부 생활을 접고 전력회사의 기초조사 작업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점차 고기를 잡는 것만 가지고는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훌륭한 어부였고 일에 자부심이 있었던 아버지가 어업이 사양 산업이라고 그렇게 쉽게 어업을 포기 한다는 것은 소키치의 입장에서 납득이 안 되었다. 소키지는 아버지의 행적을 ?으면서 소키치는 아버지를 간절하게 부른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아버지. 아버지 당신의 듯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러니 죽은 자가 속 시원하게 말을 할 수는 없는 법, 결국 소키치는 아버지가 남긴 작은 단서들을 모아 퍼즐을 맞추기 시작한다. 퍼즐 맞추기가 진행됨에 따라 소키치는 개발의 논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 어떻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알게 된다.사람은 환경에 기대에 살수 밖에 없다. 그 환경을 개발의 논리를 앞세워 변화시킨다는 것은 인간의 삶도 변화 시킬 것이다. 당장 드러나는 편리함은 곧 많은 개발을 불러온다. 개발을 하면 할수록 환경은 열악해진다. 불편을 해소하기위한 더 많은 환경의 변화. 그것은 고스란히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드디어 소키치는 전력회사의 송전탑 건설의 기초 작업을 하던 아버지.

"환경은 곧 생명이다. 생명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아버지를 궤적을 따라가면서 소키치는 훌쩍 자란다.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면 농사꾼 밖에 될수 없다"는 교사의 말에 학생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하니 소키치가 등교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소키치를 거론하자 소키치는 학교 밖에 있으면서도 학교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게으름을 피우면 농사꾼 밖에 될 수 없다고 이야기는 게으르기 때문에 농사꾼이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된다며 그것은 농부에 대한 모독"이라는 말을 한다. 날카롭다. 아이들은 요구한다. "그렇게 게을러서 어떻게 훌륭한 농사꾼이 될 수 있느냐"고 채찍 하라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른인 내가 부끄럽다.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에게 원한다. 잘못한 게 있으면 그 잘못한 것에 대하여만 이야기를 하라고, 에둘러 본질을 흐리지 말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이야기 하라고. 아이들의 이런 요구를 어른들은 미처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이 자라나듯 어른들의 사고와 행동양식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풀처럼 나무처럼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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