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오렐리 발로뉴 지음, 유정애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페르디낭은 혼자다. 아내 루이즈는 우편배달부와 바람이 나서 떠났고, 딸 마리옹은 지구 반대편 싱가포르에서 일하며 전화도 잘 받지 않는다. 이웃의 노파들은 그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미워하고, 특히 그 중 관리인인 쉬아레 부인은 그를 내쫓지 못해 안달이다. 아흔을 목전에 둔 페르디낭의 삶에서 의미 있는 존재는 늘 그의 곁을 지키는 독일 개 데이지 뿐이다. 오직 데이지에게만 마음을 연 채 온 세상 사람들에게 불만을 표출하며 틈만 나면 심술궂게 구는 이웃집 할아버지, 그게 바로 페르디낭이다.

   그런 그의 인생에 연이어 불행이 닥친다. 그가 사랑하던 유일한 존재인 데이지가 어느날 사라지더니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온다. 그로 인해 삶의 의욕을 잃은 페르디낭은 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로 끝나고 만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그 순간, 딸 마리옹은 청천벽력같이 아빠가 아빠 인생을 망가뜨리는 걸 두고 볼 수가 없다며 자신을 돌보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요양원으로 보내드릴거라고 선언한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스스로를 잘 돌보는지 확인하고 딸에게 보고하는 임무를 맡은 건 쉬아레 부인이다. 누구와 같이 사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페르디낭인데, 요양원에 가느니 죽는 게 차라리 낫다. 그렇게 절망과, 분노와, 세상에 대한 증오가 교차하는 순간에 누군가 그의 집 대문을 두드린다.

   윗집에 이사 온 줄리엣은 학교에서 '똑똑이'라며 친구들의 비아냥 섞인 놀림을 받는다. 누구보다 어른스럽고, 용감하며, 깊이 있는 시선을 지닌 이 꼬맹이는 페르디낭의 독설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 천연덕스럽게 자리를 차지하여 점심을 먹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더니, 과일젤리 한 박스를 남긴 채 내일도 밥을 먹으러 오겠다 선언하고 가버린다. 페르디낭은 이 모든 게 못마땅한다. 겨우 저런 버릇없는 꼬마애에게 휘둘리려고 이제껏 살아온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그의 의지와 달리, 줄리엣은 조금씩 페르디낭의 닫힌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리고 줄리엣을 통해, 페르디낭은 이웃과 친구가 되는 법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는 방법을,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베푸는 법을 배워나간다.

   페르디낭의 괴팍함은 이 책이 프랑스 소설임을 끝내 숨기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렐리 발로뉴는 페르디낭 할아버지를 통해 모든 게 끝났다고 느껴지는 순간, 더 이상 삶에 어떤 즐거움도 남아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희망은 있고 노력만 한다면 변화는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페르디낭은 좋은 남편도, 좋은 아버지도, 좋은 이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그는 좋은 할아버지, 좋은 이웃, 좋은 친구, 그리고 어쩌면 좋은 남자친구가 될 것이다. 여든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있는 페르디낭보다 젊은 독자들 역시, 지금 무엇이든 시작해도 좋지 않을까.


이웃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어릴 때의 나는 연립주택의 모든 집 벨을 눌러보는 아이였다. 그저 이웃에 누가 사는지 궁금해서, 내 이웃에게 인사를 하고 싶어서.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면 아무 집이나 초인종을 누르곤 했다. 그 당시 그 연립주택에는 온통 독일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살았다. 당시 내 기준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였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중 대다수는 지금의 내 부모님 또래였지 싶다. 아무튼 그들은 문을 열어주었고, 현관 앞에 서서 1층 오른쪽 집에 사는 누구예요, 인사하는 나를 다정히 굽어보았고, 집에 들어오게 하여 과자를 내주고 책을 빌려주었다. 나는 4층 오른쪽 집 할머니의 카나리아와 놀았고, 2층 오른쪽 집 노부부와 함께 잼을 만들었으며, 4층 왼쪽 집에서 독일식 커틀렛 요리법을 배웠다. 그 당시에는 그 건물에 사는 모든 사람이 내 가족이었고, 내 보호자였다. 나는 그들의 품에서 내가 모르는 세상을 배웠다. 그리고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한국에 돌아오고, 조금씩 철이 들면서 그런 습관은 사라졌다. 나는 이유 없이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는 건 실례라는 것을 배웠다. 나아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웃사람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는 건 위험한 일이라는 걸 알아갔다. 좀 더 나이를 먹고 보니 이웃의 아이에게 함부로 친절을 베푸는 것도 그 부모에게 불쾌한 일일 수 있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의 줄리엣을 보며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그 당시 누군가에게는 나도 줄리엣 같은 존재였을까 생각했다. 독일은 한국과 달리 가족의 유대가 강하지 않아서, 자식이 반드시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성인이 된 자식은 부모와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크리스마스와 새해에 한번씩 인사만 건네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때 내 이웃들의 대부분도 그랬다. 그래서 그들은, 어느 날 그들 인생 속으로 들어온 나를 스스럼없이 가족으로 받아주고 사랑해주었다. 갑자기 그 때가 무척이나 그리워졌다.


잘 자란 아이는 고집 센 노인도 바꿔놓는다

 

   이 아기는 페르디낭에게 재난 중 가장 큰 재난이다. 브룅 씨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젖먹이들을 싫어한다. 그에게 젖먹이들은 구속일 뿐 아니라 배은망덕 그 자체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울며 언제나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결코 조용히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웃을 때는 부모나 마찬가지로 모르는 낯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잘 웃는다. 배은망덕한 것 같으니! 이분만 아니다. 예쁘다는 둥 천재라는 둥 하겠지만 아이는 침을 흘리고 세 단어도 열거하지 못하고 파킨슨병 환자처럼 걷는 인간 존재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페르디낭은 가식적일 수가 없다!


- 페르디낭의 성격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대목. 자기 딸 마리옹이 태어났을 때조차 병원으로 보러 가지 않았다던 이 고집쟁이 할아버지 때문에 부인인 루이즈는 얼마나 고생했을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갓난아기를 '파킨슨병 환자처럼 걷는 인간 존재'라고 표현하는 건 정말로 프랑스 소설밖에 없을 것이다.


   7) 예기치 못한 것에 여지 남겨주기

   좋은 소식들에나 좋지 않은 소식들에나 마찬가지로 여지를 주기. 변화를 받아들이고 더 이상 저항하지 않기.


   8) 묘비명 바꾸기

   모든 걸 심사숙고해볼 때, '마침내 찾은 평온'은 약간 과장인 것 같다. 약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가족과 이웃에게 마음을 열게 된 페르디낭의 변화가 드러나는 다짐들. 습관과 익숙함에 갇혀 무엇에도 마음을 열지 않던 그가 우연이 가져오는 삶의 굴곡을 수용하고, 죽음이 아닌 살아있음의 가치를 직시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누가 뭐래도 줄리엣 덕분이다. 이웃 모두가 연쇄살인범이라 부르며 두려워하던, 괴팍한 이웃집 할아버지의 문을 두드렸던 용감한 아이가 없었다면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북폴리오 2016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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