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시간에 사회 공부하기 지식의 사슬 시리즈 2
강은천 기획, 손향구.강윤재 글 / 웅진주니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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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부에서는 물리, 화학시간에 사회공부하기를 다룬다. 원자론에 대한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논쟁, 뉴턴의 사과가 떨어지면서 왕권도 떨어진다는 적나라한 표현이 된 그림, 뉴턴의 과학에 반한 볼테르의 계몽사상으로의 발전, 증기기관으로 인한 산업혁명의 기상을 통해 발견되는 만남들이 있다. 전기의 발전으로 가족의 생활방식과 사회의 생활양식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된다. 전신과 짝을 같이하는 제국주의의 등장등을 볼수가 있다. 전신기술 발전은 영국이 식민지를 연결하려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역동적으로 맺어주고 있다.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과 함께 편리함과 효휼성이라는 빛의 이면에는 지나친 기술 의존과 감시 사회화라는 부작용이 숨어 있다. 일일이 손으로 하던 모든 기록들이 컴퓨터 안에 모두 내장되어 있으니 혹여라도 컴퓨터가 안되는 상황이 되면 아주 막막해진다. 휴대폰에도 전화번호를 입력해 놓게 되면서 전화 번호를 거의 외우지 않게 되다보니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하기 짝이없다. 휴대폰이 싫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중에는 휴대폰이 자기를 감시하고 있는듯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설가 조지오웰이 [1984]년에서 텔레스크린을 통해 모든 시민을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하는 전체주의 사회의 도래를 경고한 적이 있으며 영화[에너미 오브 더 스테이트]에서는 미국 정보국이 위성항법 장치와 감시 카메라를 비롯한 다양한 기술을 활용하여 실시간으로 요주 인물을 감시하는 등의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인류문명의 발달사를 크게 3단계로 나누고, 제1의 물결인 농업사회, 제2의 물결인 산업사회에 이어 제3의 물결인 정보사회가 왔다고 말한다. 정보사회로서 인터넷상의 소통의 다양화를 들수가 있다. 거대 자본에 의해서 장악되어 있어서 겉으로는 누리꾼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공간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거대 자본이 자신의 이익을 창출하는 쪽으로 정교한 틀을 짜 놓았다고 한다.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정보 제공을 하면서 동시에 이윤, 특정한 목적을 원하는 사람들이 개입하고 통제하는 정보가 알게모르게 인터넷상을 점령하고 있다. 시민들이 청와대나 권력기관에 가서 시민들이 감시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인터넷상의 모든 것들이 조합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서 과학기술이 '사회에 주어진 것'또는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한다. 과학 기술의 사회적 통제는 '과학 기술의 민주화'라고도 표현할수 있다. 과학 기술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시민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2부에서는 지구과학 시간에 사회 공부하기를 다루고 있다. 옛날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태양을 비롯한 여러 행성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고 천동설을 주장했다. 세월이 흐르고 관측 데이터가 쌓이고 천문학 지식이 깊어지면서 지동설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에서 태양으로 바뀐 것이다. 그 무렵 유럽은 '르네상스'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자연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에 있는 규칙성을 찾고자 노력했던 르네상스인들에게 프톨레마이오스보다는 코페르니쿠스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과학이론이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사람은 20세기의 과학사학자 토마스쿤이다. 과학적인 연구는 사회적인 가치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환경 예를들면 지진으로 인해서 사람의 성격도 바뀐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워낙에 지진이 잦으므로 인해서 건물을 지을때 항상 지진을 대비하고 우리나라같은 경우는 지진이 자주 일어나지 않음으로 지진에 대한 대책이 그만큼 미약한 것이다. 이것을 두고 한국인에 비해 일본인들이 준비의식이 철저하고 한국인은 문제가 터지고 나면 그제서야 행동하고 단결의식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며 심지어는 열등하다는 결론으로 까지 치닫게 되는데 학자들은 이런 연유를 환경결정론이라고 부르며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환경결정론이란 지리적 환경이 국민성이나 문화를 결정하는데 어느 정도의 몫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회의 문화와 삶을 이해하려면 문화를 둘러싼 지리적 요인을 반드시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3부에서는 생물시간에 사회공부하기를 다루고 있다. 진화론의 등장, 유전자지도 완성, 줄기세포 치료의 가능성등의 생물학의 성과들은 현대사회를 바꾸어 놓았다. 유전자의 정체가 밝혀지고 사람들은 모든 질병을 치료할수 잇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생물학 발전으로 인한 사회적인 부작용도 무시할수 없는 것이다. 얼마전에 어떤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는데 GMO등으로 인한 환경파괴, 생태계 파괴에 대해서 심각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었다. 생태계가 교란이 되고 그야말로 괴물아닌 괴물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유전자조작을 한 음식등을 먹은 동물이나 사람의 몸에서 이상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모든 과학의 발전에는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사회가 더 발전하기도 하고 사회가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다. 문득 불노초를 찾아헤메이던 옛날이야기들에 나오는 왕의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한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멜라민파동이라등가 광우병사태등을 보면서 이젠 그만 무한질주를 멈추고 우리의 상태를 되돌아보며 침착하게 움직여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외식을 한다는 것이 참 부러운 일이었지만 요즘같이 과학의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진 끔찍한 일들이 우리의 외식을 더이상 권하지 않고 있다. 과학과 사회는 떨어질래야 떨어질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1부에서는 물리, 화학시간에 사회공부하기를 다룬다. 원자론에 대한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논쟁, 뉴턴의 사과가 떨어지면서 왕권도 떨어진다는 적나라한 표현이 된 그림, 뉴턴의 과학에 반한 볼테르의 계몽사상으로의 발전, 증기기관으로 인한 산업혁명의 기상을 통해 발견되는 만남들이 있다. 전기의 발전으로 가족의 생활방식과 사회의 생활양식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된다. 전신과 짝을 같이하는 제국주의의 등장등을 볼수가 있다. 전신기술 발전은 영국이 식민지를 연결하려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역동적으로 맺어주고 있다.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과 함께 편리함과 효휼성이라는 빛의 이면에는 지나친 기술 의존과 감시 사회화라는 부작용이 숨어 있다. 일일이 손으로 하던 모든 기록들이 컴퓨터 안에 모두 내장되어 있으니 혹여라도 컴퓨터가 안되는 상황이 되면 아주 막막해진다. 휴대폰에도 전화번호를 입력해 놓게 되면서 전화 번호를 거의 외우지 않게 되다보니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하기 짝이없다. 휴대폰이 싫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중에는 휴대폰이 자기를 감시하고 있는듯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설가 조지오웰이 [1984]년에서 텔레스크린을 통해 모든 시민을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하는 전체주의 사회의 도래를 경고한 적이 있으며 영화[에너미 오브 더 스테이트]에서는 미국 정보국이 위성항법 장치와 감시 카메라를 비롯한 다양한 기술을 활용하여 실시간으로 요주 인물을 감시하는 등의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인류문명의 발달사를 크게 3단계로 나누고, 제1의 물결인 농업사회, 제2의 물결인 산업사회에 이어 제3의 물결인 정보사회가 왔다고 말한다. 정보사회로서 인터넷상의 소통의 다양화를 들수가 있다. 거대 자본에 의해서 장악되어 있어서 겉으로는 누리꾼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공간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거대 자본이 자신의 이익을 창출하는 쪽으로 정교한 틀을 짜 놓았다고 한다.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정보 제공을 하면서 동시에 이윤, 특정한 목적을 원하는 사람들이 개입하고 통제하는 정보가 알게모르게 인터넷상을 점령하고 있다. 시민들이 청와대나 권력기관에 가서 시민들이 감시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인터넷상의 모든 것들이 조합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서 과학기술이 '사회에 주어진 것'또는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한다. 과학 기술의 사회적 통제는 '과학 기술의 민주화'라고도 표현할수 있다. 과학 기술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시민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2부에서는 지구과학 시간에 사회 공부하기를 다루고 있다. 옛날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태양을 비롯한 여러 행성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고 천동설을 주장했다. 세월이 흐르고 관측 데이터가 쌓이고 천문학 지식이 깊어지면서 지동설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에서 태양으로 바뀐 것이다. 그 무렵 유럽은 '르네상스'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자연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에 있는 규칙성을 찾고자 노력했던 르네상스인들에게 프톨레마이오스보다는 코페르니쿠스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과학이론이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사람은 20세기의 과학사학자 토마스쿤이다. 과학적인 연구는 사회적인 가치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환경 예를들면 지진으로 인해서 사람의 성격도 바뀐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워낙에 지진이 잦으므로 인해서 건물을 지을때 항상 지진을 대비하고 우리나라같은 경우는 지진이 자주 일어나지 않음으로 지진에 대한 대책이 그만큼 미약한 것이다. 이것을 두고 한국인에 비해 일본인들이 준비의식이 철저하고 한국인은 문제가 터지고 나면 그제서야 행동하고 단결의식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며 심지어는 열등하다는 결론으로 까지 치닫게 되는데 학자들은 이런 연유를 환경결정론이라고 부르며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환경결정론이란 지리적 환경이 국민성이나 문화를 결정하는데 어느 정도의 몫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회의 문화와 삶을 이해하려면 문화를 둘러싼 지리적 요인을 반드시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3부에서는 생물시간에 사회공부하기를 다루고 있다. 진화론의 등장, 유전자지도 완성, 줄기세포 치료의 가능성등의 생물학의 성과들은 현대사회를 바꾸어 놓았다. 유전자의 정체가 밝혀지고 사람들은 모든 질병을 치료할수 잇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생물학 발전으로 인한 사회적인 부작용도 무시할수 없는 것이다. 얼마전에 어떤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는데 GMO등으로 인한 환경파괴, 생태계 파괴에 대해서 심각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었다. 생태계가 교란이 되고 그야말로 괴물아닌 괴물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유전자조작을 한 음식등을 먹은 동물이나 사람의 몸에서 이상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모든 과학의 발전에는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사회가 더 발전하기도 하고 사회가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다. 문득 불노초를 찾아헤메이던 옛날이야기들에 나오는 왕의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한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멜라민파동이라등가 광우병사태등을 보면서 이젠 그만 무한질주를 멈추고 우리의 상태를 되돌아보며 침착하게 움직여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외식을 한다는 것이 참 부러운 일이었지만 요즘같이 과학의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진 끔찍한 일들이 우리의 외식을 더이상 권하지 않고 있다. 과학과 사회는 떨어질래야 떨어질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1부에서는 물리, 화학시간에 사회공부하기를 다룬다. 원자론에 대한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논쟁, 뉴턴의 사과가 떨어지면서 왕권도 떨어진다는 적나라한 표현이 된 그림, 뉴턴의 과학에 반한 볼테르의 계몽사상으로의 발전, 증기기관으로 인한 산업혁명의 기상을 통해 발견되는 만남들이 있다. 전기의 발전으로 가족의 생활방식과 사회의 생활양식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된다. 전신과 짝을 같이하는 제국주의의 등장등을 볼수가 있다. 전신기술 발전은 영국이 식민지를 연결하려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역동적으로 맺어주고 있다.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과 함께 편리함과 효휼성이라는 빛의 이면에는 지나친 기술 의존과 감시 사회화라는 부작용이 숨어 있다. 일일이 손으로 하던 모든 기록들이 컴퓨터 안에 모두 내장되어 있으니 혹여라도 컴퓨터가 안되는 상황이 되면 아주 막막해진다. 휴대폰에도 전화번호를 입력해 놓게 되면서 전화 번호를 거의 외우지 않게 되다보니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하기 짝이없다. 휴대폰이 싫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중에는 휴대폰이 자기를 감시하고 있는듯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설가 조지오웰이 [1984]년에서 텔레스크린을 통해 모든 시민을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하는 전체주의 사회의 도래를 경고한 적이 있으며 영화[에너미 오브 더 스테이트]에서는 미국 정보국이 위성항법 장치와 감시 카메라를 비롯한 다양한 기술을 활용하여 실시간으로 요주 인물을 감시하는 등의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인류문명의 발달사를 크게 3단계로 나누고, 제1의 물결인 농업사회, 제2의 물결인 산업사회에 이어 제3의 물결인 정보사회가 왔다고 말한다. 정보사회로서 인터넷상의 소통의 다양화를 들수가 있다. 거대 자본에 의해서 장악되어 있어서 겉으로는 누리꾼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공간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거대 자본이 자신의 이익을 창출하는 쪽으로 정교한 틀을 짜 놓았다고 한다.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정보 제공을 하면서 동시에 이윤, 특정한 목적을 원하는 사람들이 개입하고 통제하는 정보가 알게모르게 인터넷상을 점령하고 있다. 시민들이 청와대나 권력기관에 가서 시민들이 감시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인터넷상의 모든 것들이 조합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서 과학기술이 '사회에 주어진 것'또는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한다. 과학 기술의 사회적 통제는 '과학 기술의 민주화'라고도 표현할수 있다. 과학 기술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시민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2부에서는 지구과학 시간에 사회 공부하기를 다루고 있다. 옛날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태양을 비롯한 여러 행성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고 천동설을 주장했다. 세월이 흐르고 관측 데이터가 쌓이고 천문학 지식이 깊어지면서 지동설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에서 태양으로 바뀐 것이다. 그 무렵 유럽은 '르네상스'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자연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에 있는 규칙성을 찾고자 노력했던 르네상스인들에게 프톨레마이오스보다는 코페르니쿠스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과학이론이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사람은 20세기의 과학사학자 토마스쿤이다. 과학적인 연구는 사회적인 가치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환경 예를들면 지진으로 인해서 사람의 성격도 바뀐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워낙에 지진이 잦으므로 인해서 건물을 지을때 항상 지진을 대비하고 우리나라같은 경우는 지진이 자주 일어나지 않음으로 지진에 대한 대책이 그만큼 미약한 것이다. 이것을 두고 한국인에 비해 일본인들이 준비의식이 철저하고 한국인은 문제가 터지고 나면 그제서야 행동하고 단결의식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며 심지어는 열등하다는 결론으로 까지 치닫게 되는데 학자들은 이런 연유를 환경결정론이라고 부르며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환경결정론이란 지리적 환경이 국민성이나 문화를 결정하는데 어느 정도의 몫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회의 문화와 삶을 이해하려면 문화를 둘러싼 지리적 요인을 반드시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3부에서는 생물시간에 사회공부하기를 다루고 있다. 진화론의 등장, 유전자지도 완성, 줄기세포 치료의 가능성등의 생물학의 성과들은 현대사회를 바꾸어 놓았다. 유전자의 정체가 밝혀지고 사람들은 모든 질병을 치료할수 잇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생물학 발전으로 인한 사회적인 부작용도 무시할수 없는 것이다. 얼마전에 어떤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는데 GMO등으로 인한 환경파괴, 생태계 파괴에 대해서 심각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었다. 생태계가 교란이 되고 그야말로 괴물아닌 괴물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유전자조작을 한 음식등을 먹은 동물이나 사람의 몸에서 이상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모든 과학의 발전에는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사회가 더 발전하기도 하고 사회가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다. 문득 불노초를 찾아헤메이던 옛날이야기들에 나오는 왕의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한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멜라민파동이라등가 광우병사태등을 보면서 이젠 그만 무한질주를 멈추고 우리의 상태를 되돌아보며 침착하게 움직여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외식을 한다는 것이 참 부러운 일이었지만 요즘같이 과학의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진 끔찍한 일들이 우리의 외식을 더이상 권하지 않고 있다. 과학과 사회는 떨어질래야 떨어질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1부에서는 물리, 화학시간에 사회공부하기를 다룬다. 원자론에 대한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논쟁, 뉴턴의 사과가 떨어지면서 왕권도 떨어진다는 적나라한 표현이 된 그림, 뉴턴의 과학에 반한 볼테르의 계몽사상으로의 발전, 증기기관으로 인한 산업혁명의 기상을 통해 발견되는 만남들이 있다. 전기의 발전으로 가족의 생활방식과 사회의 생활양식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된다. 전신과 짝을 같이하는 제국주의의 등장등을 볼수가 있다. 전신기술 발전은 영국이 식민지를 연결하려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역동적으로 맺어주고 있다.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과 함께 편리함과 효휼성이라는 빛의 이면에는 지나친 기술 의존과 감시 사회화라는 부작용이 숨어 있다. 일일이 손으로 하던 모든 기록들이 컴퓨터 안에 모두 내장되어 있으니 혹여라도 컴퓨터가 안되는 상황이 되면 아주 막막해진다. 휴대폰에도 전화번호를 입력해 놓게 되면서 전화 번호를 거의 외우지 않게 되다보니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하기 짝이없다. 휴대폰이 싫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중에는 휴대폰이 자기를 감시하고 있는듯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설가 조지오웰이 [1984]년에서 텔레스크린을 통해 모든 시민을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하는 전체주의 사회의 도래를 경고한 적이 있으며 영화[에너미 오브 더 스테이트]에서는 미국 정보국이 위성항법 장치와 감시 카메라를 비롯한 다양한 기술을 활용하여 실시간으로 요주 인물을 감시하는 등의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인류문명의 발달사를 크게 3단계로 나누고, 제1의 물결인 농업사회, 제2의 물결인 산업사회에 이어 제3의 물결인 정보사회가 왔다고 말한다. 정보사회로서 인터넷상의 소통의 다양화를 들수가 있다. 거대 자본에 의해서 장악되어 있어서 겉으로는 누리꾼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공간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거대 자본이 자신의 이익을 창출하는 쪽으로 정교한 틀을 짜 놓았다고 한다.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정보 제공을 하면서 동시에 이윤, 특정한 목적을 원하는 사람들이 개입하고 통제하는 정보가 알게모르게 인터넷상을 점령하고 있다. 시민들이 청와대나 권력기관에 가서 시민들이 감시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인터넷상의 모든 것들이 조합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서 과학기술이 '사회에 주어진 것'또는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한다. 과학 기술의 사회적 통제는 '과학 기술의 민주화'라고도 표현할수 있다. 과학 기술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시민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2부에서는 지구과학 시간에 사회 공부하기를 다루고 있다. 옛날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태양을 비롯한 여러 행성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고 천동설을 주장했다. 세월이 흐르고 관측 데이터가 쌓이고 천문학 지식이 깊어지면서 지동설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에서 태양으로 바뀐 것이다. 그 무렵 유럽은 '르네상스'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자연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 거기에 있는 규칙성을 찾고자 노력했던 르네상스인들에게 프톨레마이오스보다는 코페르니쿠스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과학이론이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사람은 20세기의 과학사학자 토마스쿤이다. 과학적인 연구는 사회적인 가치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환경 예를들면 지진으로 인해서 사람의 성격도 바뀐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워낙에 지진이 잦으므로 인해서 건물을 지을때 항상 지진을 대비하고 우리나라같은 경우는 지진이 자주 일어나지 않음으로 지진에 대한 대책이 그만큼 미약한 것이다. 이것을 두고 한국인에 비해 일본인들이 준비의식이 철저하고 한국인은 문제가 터지고 나면 그제서야 행동하고 단결의식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며 심지어는 열등하다는 결론으로 까지 치닫게 되는데 학자들은 이런 연유를 환경결정론이라고 부르며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환경결정론이란 지리적 환경이 국민성이나 문화를 결정하는데 어느 정도의 몫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회의 문화와 삶을 이해하려면 문화를 둘러싼 지리적 요인을 반드시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3부에서는 생물시간에 사회공부하기를 다루고 있다. 진화론의 등장, 유전자지도 완성, 줄기세포 치료의 가능성등의 생물학의 성과들은 현대사회를 바꾸어 놓았다. 유전자의 정체가 밝혀지고 사람들은 모든 질병을 치료할수 잇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생물학 발전으로 인한 사회적인 부작용도 무시할수 없는 것이다. 얼마전에 어떤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는데 GMO등으로 인한 환경파괴, 생태계 파괴에 대해서 심각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었다. 생태계가 교란이 되고 그야말로 괴물아닌 괴물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유전자조작을 한 음식등을 먹은 동물이나 사람의 몸에서 이상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모든 과학의 발전에는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사회가 더 발전하기도 하고 사회가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다. 문득 불노초를 찾아헤메이던 옛날이야기들에 나오는 왕의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한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멜라민파동이라등가 광우병사태등을 보면서 이젠 그만 무한질주를 멈추고 우리의 상태를 되돌아보며 침착하게 움직여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외식을 한다는 것이 참 부러운 일이었지만 요즘같이 과학의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진 끔찍한 일들이 우리의 외식을 더이상 권하지 않고 있다. 과학과 사회는 떨어질래야 떨어질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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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만드는 소년 - 바람개비가 전하는 치유의 메시지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폴 플라이쉬만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인상깊은 구절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바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좀 봐.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강력해. 우리들 생각처럼 말이야. 한 번의 생각은 쓸데없는 생각 같지. 다시 한 번 생각하면 인생에 소망이 생기는 법이야. 그리고 마음 속의 생각들을 밖으로 드러낼수록 좋아. 내가 대수 시험 때문에 바로 이 자리에서 상상요법을 해 봤는데 효과 만점이었어. 저 바람개비 덕분인 게 확실해. 저 바람개비가 모든 보이지 않는 힘을 상징하는 거야. 

....................40쪽에서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은- 선하든, 악하든, 무심하든 - 보이지 않는 곳으로 물결치듯 퍼져나간다. 후세에,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문득 궁금해졌다.   .................103쪽에서










누구에게나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있다. 나에게도 역시나 생각도 못했던 일들로 갑자기 모든 상황이 달리 보일수도 있었던 적이 있다. 브렌트처럼 말이다. 오늘아침만 해도 갑자기 무슨 얘기끝에 평화로운 분위기가 깨졌다. 간만에 일찍 일어나서 온 가족이 부지런한 하루를 보내다가 느닫없이 평화가 깨졌다. 물론 없던 일이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전초전이 있다. 그렇지만 그 전초전이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한경우가 있다. 정말 당황스러운 경우다. 아무생각없이 하는 말에 상대방은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아무생각없이는 아니고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말이다. 바람개비가 바람이 있어서 돌아가고 하나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전체가 돌아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예전에 우리 남편이 부정적인 말을 가끔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남편의 말을 긍정의 언어로 바꾸기를 항상 말했었다.  지금은 내가 더 그렇다. 요즘 우리 남편은 상상요법을 많이 사용한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나도 상상요법을 사용할때가 된듯하다. 이 책의 브렌트도 갑자기 벌어진 일에 당황하게 된 것이다. 자신이 전혀 예기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지면 일순간 모든 일들이 정적과 함께 다른 장면으로 순간 바뀌어 버린다. 브렌트는 좋아하는 여자친구를 만날 욕심으로 친구와 함께 초대받지 못한 파티를 간다. 그 파티의 주체자는 자신의 의지대로 모든것들이 움직이길 바라는 학교에서도 그야말로 군림하는 그러한 친구이다. 그곳에서 브렌트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말을 걸었다가 더이상 자기에게 말도 걸지 말라며 큰소리로 화를 내게내게 되고 마침 파티의 주체자인 친구가 그 것을 보고 있다가 브렌트를 조롱하며 놀리게 된다. 순간적인 모욕에 브렌트는 돌아서서 차를 끌고 나온다. 화가나서 이성을 잃은 브렌트는 술을 마신 상태라 더더욱 격한상태에서 자살을 하려고 눈을 감고 차를 몰다가 자기 또래의 리라는 또래의 여자아이를 치어서 죽이게된다.

그러자 리의 엄마는 사죄하는 의미에서 브렌트에게 바람개비 네개를 만들어서 나라의 네끝에 걸어놓고 오라는 부탁을 하게된다.  리는 가고 없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리를 통해 사람들이 기쁨을 누리게 하고 싶다며 딸인 리의 미소를 닮은 바람개비를 만들어달라고 한다. 리의 할아버지가 예전에 목수였고 리에게 많은 나무로 된 장난감들을 만들어 주었는데 리를 닮은 여자아이를 그린 바람개비를 리는 제일 좋아했다고 한다. 그 바람개비를 지금까지 집 마당에 막대에 매달아 걸어두고 있는데 수년 동안 수백명의 사람들이 그걸 보고 발길을 멈추고 미소를 짓는다며 사람들에게 미소를 주던 리의 미소를 대신하여 그런 바람개비를 만들어달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게 된 바람개비는 바람개비를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미소를 주게된다. 마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바람은 불고 바람개비는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할때 그 행동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돌고 돌아서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바람개비를 불게하듯이 말이다. 오늘 아침 우리집에서 깨어진 평화도 잠시후 진정이 되었다. 상대방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부분을 서로가 이야기를 하고 풀었다. 한바탕 전쟁이 나긴 했지만 말이다. 바람에 의해 부는 바람개비처럼 아이들도 ㅇ우리로 인해 마음이 안좋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하여튼 아이들보다 어른이 더 문제인 우리집이다.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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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마음산책 - 청소년, 교사, 학부모가 꼭 읽어야 할 10대를 위한 인생 지침 43
이충호 지음 / 하늘아래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인상깊은 구절

진정한 용기란 올바른 마음으로 올바르게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정정당당한 용기이다. 진정한 용기란 도덕적 인격이 함양된 사람이 옳다고 판단하여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11쪽에서









키도 크고 털 빗깔도 좋은 휼륭한 명마일지라도 길들여지지 않으면 아주 광폭하다. 그렇다면 그렇게 길들여지지 않은 말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무모한 용기란 아무런 대책이 없이 어떻게 되겠지 나는 잘할수 있어라는 계산도 없이 타려고 하다가 떨어지는 것이다. 진정한 용기란 말이 왜 날뛰는지를 파악하고 지혜롭게 타는 것이다.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말 잘 표현한 구절들이다. 그가 바로 그 세계를 제패했던 알렉산더의 어린시절 이야기라고 한다. 용기 있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어야 하고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백인 우월주위의 억압과 폭력에 대항해 간디의 비폭력을 계승받아 두려움없이 흑인 인권운동에 앞장선 킹목사가 있다. 얼마전에 보았던 [그레이트 디베이터스]라는 영화가 생각이 난다. 흑인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어떻게 대항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으로 교육으로 승리하는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교수와 그리고 월등한 실력으로 승리를 거듭하던 용기있는 주인공들이 생각이 난다. 정말 용기란 무모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 인격이 함양된 사람의 옳다고 판단하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1972년 안데스 산맥의 험준한 산중에 비행기가 추락한적이 있다. 그로 인해 승객45명중 29명이 죽고 16명이 살아남아 기적적으로 72일만에 생환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하얀눈이 덮인 산맥에서 혹독한 추위와 식량부족으로 못먹을것까지 먹으며 생존하던 그들은 라디오를 어렵게 고쳐 듣게 되었는데 정부는 사고 비행기 수색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생존자들은 순간 절망에 빠졌지만 한 사람이 일어나 이왕 죽을 바에는 앉아서 죽음을 맞이하느니 내려가다가 죽자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기적적으로 생환하였다고 한다. 일말의 희망이 그들을 살린 것이다. 이 실화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극단적인 상황속에서도 희망을 붙잡아야만 살수 있다는 것이다. 이 희망이라는 끈을 부여잡고 성공한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해도 부지기수로 떠오를 것이다.

 

초등학교 다닐때 복도에 99%의 노력과 1%의 천재성이던가?라는 에디슨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지칠때마다 복도를 지나다닐때마다 그 구절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어려서 학교에서 둔재라고 쫓겨나고 열에 대한 궁금증으로 급기야는 창고에 불을 지르고 1,237번의 실패를 겪은 것이 아니라 1,237번의 방법으로 완성할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에드슨의 어린시절과 노력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우리에게 커다란 에너지를 준다. 나는 왜이렇게  부족하게 태어났을까가 아니라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을 처음볼때는 이 책 너무 고루한거 아니야? 이런거 누가 모르나? 뻔할뻔자지 또 교훈적인 이야기들만 가득들어있겠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책을 들고 들추어보면서 참으로 나에게 크나큰 에너지를 줄수 있는 책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몰랐던것, 알지만 잊어버렸던 것들 그러한 것들을 차분하게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마음속에 용솟음치는 삶의 열정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자라나는 10대들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좀 해라~~너는 커서 뭐가 될래?가 아니라 힘들지? 힘들고 지칠때 이 책을 봐~~라고 손에 쥐어 준다면 내가 그렇게 잘 살지는 않았을지라도 그래도 조금이라도 보탬은 되주는군~~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거 같다. 학교 갔다오면 울 딸 손에 쥐어주어야지.


키도 크고 털 빗깔도 좋은 휼륭한 명마일지라도 길들여지지 않으면 아주 광폭하다. 그렇다면 그렇게 길들여지지 않은 말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무모한 용기란 아무런 대책이 없이 어떻게 되겠지 나는 잘할수 있어라는 계산도 없이 타려고 하다가 떨어지는 것이다. 진정한 용기란 말이 왜 날뛰는지를 파악하고 지혜롭게 타는 것이다.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말 잘 표현한 구절들이다. 그가 바로 그 세계를 제패했던 알렉산더의 어린시절 이야기라고 한다. 용기 있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어야 하고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백인 우월주위의 억압과 폭력에 대항해 간디의 비폭력을 계승받아 두려움없이 흑인 인권운동에 앞장선 킹목사가 있다. 얼마전에 보았던 [그레이트 디베이터스]라는 영화가 생각이 난다. 흑인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어떻게 대항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으로 교육으로 승리하는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교수와 그리고 월등한 실력으로 승리를 거듭하던 용기있는 주인공들이 생각이 난다. 정말 용기란 무모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 인격이 함양된 사람의 옳다고 판단하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1972년 안데스 산맥의 험준한 산중에 비행기가 추락한적이 있다. 그로 인해 승객45명중 29명이 죽고 16명이 살아남아 기적적으로 72일만에 생환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하얀눈이 덮인 산맥에서 혹독한 추위와 식량부족으로 못먹을것까지 먹으며 생존하던 그들은 라디오를 어렵게 고쳐 듣게 되었는데 정부는 사고 비행기 수색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생존자들은 순간 절망에 빠졌지만 한 사람이 일어나 이왕 죽을 바에는 앉아서 죽음을 맞이하느니 내려가다가 죽자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기적적으로 생환하였다고 한다. 일말의 희망이 그들을 살린 것이다. 이 실화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극단적인 상황속에서도 희망을 붙잡아야만 살수 있다는 것이다. 이 희망이라는 끈을 부여잡고 성공한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해도 부지기수로 떠오를 것이다.

 

초등학교 다닐때 복도에 99%의 노력과 1%의 천재성이던가?라는 에디슨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지칠때마다 복도를 지나다닐때마다 그 구절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어려서 학교에서 둔재라고 쫓겨나고 열에 대한 궁금증으로 급기야는 창고에 불을 지르고 1,237번의 실패를 겪은 것이 아니라 1,237번의 방법으로 완성할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에드슨의 어린시절과 노력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우리에게 커다란 에너지를 준다. 나는 왜이렇게  부족하게 태어났을까가 아니라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을 처음볼때는 이 책 너무 고루한거 아니야? 이런거 누가 모르나? 뻔할뻔자지 또 교훈적인 이야기들만 가득들어있겠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책을 들고 들추어보면서 참으로 나에게 크나큰 에너지를 줄수 있는 책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몰랐던것, 알지만 잊어버렸던 것들 그러한 것들을 차분하게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마음속에 용솟음치는 삶의 열정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자라나는 10대들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좀 해라~~너는 커서 뭐가 될래?가 아니라 힘들지? 힘들고 지칠때 이 책을 봐~~라고 손에 쥐어 준다면 내가 그렇게 잘 살지는 않았을지라도 그래도 조금이라도 보탬은 되주는군~~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거 같다. 학교 갔다오면 울 딸 손에 쥐어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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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의 판타스틱 사생활 보름달문고 29
요안나 올레흐 지음, 이지원 옮김, 윤지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인상깊은 구절

11월 14일 금요일

......도대체 어른들의 위선의 끝은 어디인지! 어디까지가 예의이고 어디까지가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인지! 나 같으면 아무리 잔혹하다 할지라도 진실만을 고집할 텐데.

     ...........167쪽에서










10월 22일 수요일

저녁에 엄마 아빠는 영화관에 갔다. 나 혼자 괴물들과 남아 있는게 처음은 아니다......하지만 오늘은 막내 괴물이 중간에 깨어서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괴물을 내 침대에 눕히고 [유아 건강 백과사전]을 찾으러 뛰어갔다. '수면' 항목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기를 침대에 눕히고 잘 자라고 인사를 하고 불을 끄고 나간다.' 괴물을 눕히고 잘 자라고 인사하고 불을 끄고 나갔다. 괴물은 소리치며 울기 시작했다. 이번엔 물을 먹이고 다시 한 번 시도했다. 눕히고, 인사하고, 불 끄고 나가기....... 또 소리를 지른다. 사전에 나와 있는 방법을 죄다 시도해 보았다. 아무것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위성방송을 틀어 놓고 엄마 아빠가 올 때가지 같이 공포 영화를 봤다. 괴물은 아주 생기발랄하고 기분이 좋았다. 나는 좀 피곤했다.

..................150쪽에서

 

11월 4일 화요일

..........

아빠와 나는 운동화에 맬 빨간 끈을 샀다. 그런데 없어져 버렸다! 한 시간이나 찾은 끝에 카샤 괴물(여동생)이 치마에 리본으로 묶어 놓은 것을 발견했다! 바보!

       .....159쪽에서

 

 

아래는 내가 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구절이다. 이런 사람이 너무 부럽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계속 치우고 싶을까?그렇게 계속 치우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하다. 나도 잘 치우는 사람이고 싶다.

 

루시아 고모는 프워츠크에 사는데 항상 깨끗이 청소를 하고, 청소를 하다 하다 끝이 나면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218쪽에서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든다. 자유롭고 아주 재미있으며 재미있는 일들이 계속 일어날것만 같은 그러한 그림이다. 엄마, 아빠, 아이들 모두가 우리 일상에서 그대로 나온 사람들이다. 어떤면에서는 정말 생각이상의 기상천외한 일들도 벌어지고 말이다. 온 가족의 모습들이 거의 낯설지가 않다. 우리 아이들의 모습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엄마는 거의 나와 다르지가 않음을 느낄수가 있다. 아니 나랑 참 많이도 비슷하다. 사실 부모들도 그렇게 도덕적이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도덕적이기를 천재이기를 아니 우등생이기를 바란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도덕적이기를 백점 맞기를 바란다.

 

사실 나의 어린시절에 비하면 우리 아이들이 훨씬 낳다. 훨씬 잘한다. 지금도 사회 공부를 왜 않하냐구 하면서 닥달을 했더니 낼 시험 보는거 시험보더니 하나 틀렸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나는 어렸을때 훨씬 못했지...지금 아이들이 상상도 못하는 빵점도 맞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이 빵점을 맞는다면? 나는 삶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기절을 하고 말 것이다. 얼마전에는 우리 딸이 20점을 맞은 적이 있다. 헉? 20점? 그게 도대체 무슨일이니? 하지만 나의 과거를 생각하면 그건 너무나도 빈번했던 일일뿐이다. 아니 일상이었다.

 

이러한 우리들의 솔직한 일상을 열두살 소년을 통해서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남편을 다른 예쁜 여인들로부터 방어하는 아내의 모습. 그것이 아이들 눈에도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이 책의 작가가 어른이라 아이의 시각이라도 보이는 것처럼 쓴것일까? 나 역시 우리 남편이 다른 여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친절하면 바로 경계 태세에 들어간다. 얼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공감이 간다. 어린 동생들로 인해서 빼앗기는 자유와 자신의 공간을 공유하기 너무 힘든 여동생들로 인해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황당하고 재미있는 일들, 그리고 친구들과의 즐거운 일상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등이 재미있고도 너무 자연스럽게 그려져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써놓은 일기를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이 책처럼 재미있고 솔직한 그리고 아이이기에 무한한 자유를 지닌 일기를 말이다. '야! 너 일기 안써? 어서 써!!' 하고는 아이가 다 써놓고 나면 열심히 즐겁게 재미있게 본다. 요즘은 공부때문에 일기쓸 시간도 없다. 휴~~~아이들과의 삶이란 도대체가 집중을 할수가 없다. 지금도 역시 나의 아들은 엄마가 뭘하든 말든...마구마구 나의 삶에 끼어들어 휘저어놓는다.

 

이러한 나의 자질구래한 일상들을 적나라하게 아이들의 숨겨진 모험과 일상들을 그리고 마음속에 담아놓고 꺼내면 안될것 같은 솔직 담백 시원한 폭탄선언과 이야기들이 줄줄이 일기장속에 쓰여있다. 너무나 도덕적인 삶을 꿈꾸는 옳을 길로만 가길 바라는 어른들 등살에 힘겨워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즐거운 선물이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이 책을 보더니 당근 너무 좋아한다. 간만에 책을 보면서 웃으며 즐겁게 이야기한 책이다. 


아래는 내가 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구절이다. 이런 사람이 너무 부럽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계속 치우고 싶을까?그렇게 계속 치우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하다. 나도 잘 치우는 사람이고 싶다. 

루시아 고모는 프워츠크에 사는데 항상 깨끗이 청소를 하고, 청소를 하다 하다 끝이 나면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218쪽에서

이 책은 미지오웩이라는 아이가 쓴 일기와 편지를 써놓은 이야기이다. 막내 괴물은 바보 같다. 남의 물건을 훔쳐서 아무데나 쑤셔박아 놓고 숨기기 때문이다.

미지오웩이라는 아이는 정말 웃기다. 아빠랑 스크러블이란 단어 맞추기 게임을 했었는데 즐거움을 위해서 맞춤법을 맞치지 않았는데 엄마가 와서 기겁을 하고는 스크래블을 옷장에다 넣어놓고 자녀 교육에 개념이 없다고 아빠에게 잔소리를 했는데 일기장에서 엄마도 없다고 써놓기 때문이다. 

아빠도 웃기다. 일부러 용의주도하게 크리스마스 전부터 관절이 아프다고 해서 왁스칠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클락손은 나쁘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관심을 끌려고 다른 친구들까지 속이기 때문이다. 괴물들은 정말 용의주도하다. 자기들의 아빠가 침대에 갇혀있는 것을 이용하여서 아빠의 컴퓨터에다가 요기 곰 스티커를 붙여놓기 때문이다.

 피로만은 정말 불쌍하다. 집에 문화재급 피아노가 있다고 피아노를 배우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미지오웩의 가족은 정말 웃기다. 가족끼리 프라이팬을 던지면서 싸우고 아들이 엄마가 개념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재미있다. 이런 책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4학년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든다. 자유롭고 아주 재미있으며 재미있는 일들이 계속 일어날것만 같은 그러한 그림이다. 엄마, 아빠, 아이들 모두가 우리 일상에서 그대로 나온 사람들이다. 어떤면에서는 정말 생각이상의 기상천외한 일들도 벌어지고 말이다. 온 가족의 모습들이 거의 낯설지가 않다. 우리 아이들의 모습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엄마는 거의 나와 다르지가 않음을 느낄수가 있다. 아니 나랑 참 많이도 비슷하다. 사실 부모들도 그렇게 도덕적이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도덕적이기를 천재이기를 아니 우등생이기를 바란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도덕적이기를 백점 맞기를 바란다. 

 사실 나의 어린시절에 비하면 우리 아이들이 훨씬 낳다. 훨씬 잘한다. 지금도 사회 공부를 왜 않하냐구 하면서 닥달을 했더니 낼 시험 보는거 시험보더니 하나 틀렸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나는 어렸을때 훨씬 못했지...지금 아이들이 상상도 못하는 빵점도 맞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이 빵점을 맞는다면? 나는 삶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기절을 하고 말 것이다. 얼마전에는 우리 딸이 20점을 맞은 적이 있다. 헉? 20점? 그게 도대체 무슨일이니? 하지만 나의 과거를 생각하면 그건 너무나도 빈번했던 일일뿐이다. 아니 일상이었다.

 이러한 우리들의 솔직한 일상을 열두살 소년을 통해서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남편을 다른 예쁜 여인들로부터 방어하는 아내의 모습. 그것이 아이들 눈에도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이 책의 작가가 어른이라 아이의 시각이라도 보이는 것처럼 쓴것일까? 나 역시 우리 남편이 다른 여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친절하면 바로 경계 태세에 들어간다. 얼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공감이 간다. 어린 동생들로 인해서 빼앗기는 자유와 자신의 공간을 공유하기 너무 힘든 여동생들로 인해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황당하고 재미있는 일들, 그리고 친구들과의 즐거운 일상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등이 재미있고도 너무 자연스럽게 그려져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써놓은 일기를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이 책처럼 재미있고 솔직한 그리고 아이이기에 무한한 자유를 지닌 일기를 말이다. '야! 너 일기 안써? 어서 써!!' 하고는 아이가 다 써놓고 나면 열심히 즐겁게 재미있게 본다. 요즘은 공부때문에 일기쓸 시간도 없다. 휴~~~아이들과의 삶이란 도대체가 집중을 할수가 없다. 지금도 역시 나의 아들은 엄마가 뭘하든 말든...마구마구 나의 삶에 끼어들어 휘저어놓는다. 

 이러한 나의 자질구래한 일상들을 적나라하게 아이들의 숨겨진 모험과 일상들을 그리고 마음속에 담아놓고 꺼내면 안될것 같은 솔직 담백 시원한 폭탄선언과 이야기들이 줄줄이 일기장속에 쓰여있다. 너무나 도덕적인 삶을 꿈꾸는 옳을 길로만 가길 바라는 어른들 등살에 힘겨워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즐거운 선물이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이 책을 보더니 당근 너무 좋아한다. 간만에 책을 보면서 웃으며 즐겁게 이야기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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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축복 침상 기도문 - 남편을 거인으로 우뚝 세우는
이대희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약 5:15-18)

 

내가 아는 사람중에도 남편과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아서 열심히 기도했더니 남편과의 관계가 많이 좋아졌다는 지인이 있다. 남편과 관계가 안좋을때는 그저 그냥 힘들게 원망하며 살았는데 어느날 본인이 너무 힘들어서 기도하고 본인이 믿음이 자라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도 편해지고 남편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까지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더니 지금은 세째까지 낳고 잘 살고 있다.

 

대부분 아내들이 하나님을 먼저 만나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러한 경우에 아내들은 남편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를 해준다. 남편들은 처음에는 어색해하다가도 자신은 교회를 다니지 않고 아무생각없이 지내다가도 자신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생길때는 자신의 힘들고 어려운 부분들을 위해서 진심으로 애통하며 기도해주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더욱더 많은 애통하는 뜨거운 기도를 하기를 바라는 경우를 볼수가 있다.

 

우리 남편도 나를 만나기 전에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언니가 나랑 결혼을 하려면 교회를 다니면 밀어주겠다는 말을 듣고 교회를 다니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나서 남편은 결혼과 함께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교회가기를 아주 힘겨워했다. 그래서 오직 내가 한 기도는 남편만을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다. 바로 옆에 있는 남편이 매일 예배드릴때마다 졸고 가기 싫어하고 하니 어찌나 화고 나고 가슴이 아픈지 모른다. 그래서 눈만 뜨면 기도만 했다하면 열심히 오직 남편을 위해서 기도했더니 어느날부터인가 서서히 변하는 남편을 발견하게 되었다. 남편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나의 믿음 역시 자라게 되었다. 지금은 남편이 더 믿음이 좋은듯하다. 저번 주일날도 어찌나 울면서 기도를 하던지 ....

 

어떤 것들을 기도할 것인가? 네가 차원의 균형 잡힌 기도를 해야한다고 한다. 남편이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려면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 첫째로는 영적인 부분을 위해서 기도해야한다. 영이 살아야 육이 살기 때문이다. 둘째는 감성적인 부분을 위한 기도를 해야한다. 영과 함께 감성적인 부분을 일깨워야하는 것이다. 여자와 달리 남편들은 감정적인 부분에서 약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셋째는 육체적인 부분을 위한 기도를 해야한다. 영육간에 강건함을 허락하옵시며 라는 구절이 있듯이 건강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넷째로는 사회적인 부분을 위한 기도를 해아한다. 인간이란 혼자 살수가 없기에 관계를 잘할수 있도록 성숙한 인간관계, 따뜻한 인간관계를 통해서 모든 일들이 잘 풀려나갈수 있도록 사회적인 부분을 위해서 기도해야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기준으로 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에 대해서 자세히 기도문들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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