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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를 습격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카트 멘쉬크 그림 / 문학사상사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아무튼 우리는 배가 고팠다. 아니, 그냥 배가 고픈 정도가 아니었다. 우주의 공백을 고스란히 삼켜버린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도넛 구멍만 한 정말 조그만 공백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몸 안에서 점점 크기가 커지더니 끝내는 그 깊이를 모를 허무가 되고 말았다.
공복감은 왜 생기는가? 그것은 물론 먹을거리가 없기 때문에 생긴다. 먹을거리는 왜 없는가? 같은 값어치를 지닌 교환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왜 같은 값어치를 지닌 교환물이 없는가? 아마도 우리에게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공복감은 그저 상상력의 부족에서 곧바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11쪽)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공복감이 극에 달한 이들은 빵집을 습격한다. 살다보니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일까? 예전엔 무슨일이 일어나면 뭔가 이유가 있을거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의 이유를 알게될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고보니 가끔은 아니 자주 이유없이 무슨 일이 일어나곤 하고 우리는 그런 상황에 그저 맥없이 습격당하듯이 처하곤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듯 문득 배가 아주 심하게 고픈 둘은 빵집을 칼을 들고 습격한다. 하지만 빵집 주인은 아주 독특한 사람이다. 아주 여유가있는 마치 서쪽에 가면 행복을 주는 선지자가 있을거야...라는 이야기속 인물처럼 선지자적인 냄새를 풍긴다. 클래식을 같이 듣는다면 원하는 만큼 빵을 먹어도 좋다고 말한다. 그말에 둘은 정말 음악을 들으며 원없이 빵을 먹는다. 그리고 어느새 둘은 허기가 가시고 허기가 가심과 함께 상상력이 되돌아옴을 느낀다.
살아간다는게 매사 이렇게 여유있게 불행을 잘 조절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이란게 그렇게 만만치만은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당혹스럽고 감당하기 힘든 시절이 다가오고 어떤 사람은 감당하고 나서도 열정이 남아 늘어져 있기도 한다. 그 늘어짐을 빵집주인처럼 나누어 가며 살면 좋겠지만 또 그만큼 현명하지는 못한경우가 허다하다. 나역시 그렇게 현명하지 못함에 답답해하면서도 그게 또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숙제같은 느낌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첫번째 이야기 [빵가게 습격] 사건의 이야기는 이렇고 두번째 이야기 [빵가게 재습격]은 또 다른 뉘앙스를 남긴다. 아내와 살아가는 빵집을 습격했던 남자. 허망하게 살아가던 허기가 달래지고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는 남자에게 아내가 생겼다. 둘은 어느날 새벽녁 불시에 들이닥친 허기를 만나게 되고 그 허기에 어찌할바를 몰라한다. 그러다가 아내와 남자는 예전 빵가게 습격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아내는 남편의 말을 듣고 빵가게를 습격하자는 제안을 하고 둘은 빵가게 습격에 나선다. 그런데 열린 빵가게가 없자 그들은 대안으로 맥도날드였던가? 를 습격한다. 그리고 우스쾅스러운 이해할수 없는 주문을 한다. 돈을 준다는 말도 마다하고 햄버거 30개를 만들어달라고 한다. 그리고 콜라값은 지불한다. 빵만 훔치기로 했다면서. 요상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다. 하루키가 두 번의 빵가게 습격 사건을 썼듯이 그의 글은 여러번 읽어야 한단다. 사실 하루키의 책은 처음 한번은 뭐지? 싶다가 두번째는 이런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 두 번 읽었으니 세번째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