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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올레마운 ㅣ 산하작은아이들 38
크리스티 조단-펜톤·마가렛 포키악-펜톤 지음, 가브리엘르 그리마드 그림, 김선희 옮김 / 산하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지은이가 시어머니와 며느리사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도대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어떻게 같이 글을 썼을까? 책을 보니 비로서 이해가 된다. 그리고 아주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이었겠구나 싶고 며느리가 아주 사랑스럽다. 시어머니의 아팠던 기억을 꺼내서 이렇게 멋진 책으로 만들었다니 얼마나 멋진 며느리인가?
이누이트 소녀 올레마운은 아주 야무진 소녀다. 여덟살인 올레마운은 언니처럼 글을 배워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아빠는 올레마운이 수녀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에 보내기를 그닥 탐탁치 않아 한다. 그럼에도 올레마운은 글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 아빠를 조르고 아빠는 할수없이 올레마운을 학교에 보낸다.
학교에 간 올레마운은 그곳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글을 배우러 간 올레마운에게 글을 가르치기 보다는 온갖 잡일을 시킨다. 이름도 마가렛이라 부르며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벽을 닦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한다. 올레마운은 글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아주 강렬하지만 그러든 말든 수녀선생님은 오직 일만 시킨다.
그런 올레마운이 글을 배우고 싶은 열망에 선생님에게 강하게 대응하자 수녀는 어두운 지하실에 올레마운을 가두기도 한다. 하지만 올레마운은 그런 안좋은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혼자서라도 글을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드디어 글을 모두 터득하게 된다. 그런 올레마운의 힘들지만 온갖 역경을 이겨내는 모습이 그려진다. 책을 읽으며 정말 이런일이 있을까? 도대체 수녀 선생님은 왜 올레마운과 아이들을 이렇게 일만 시키는 걸까? 올레마운이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다.
책의 말미를 보니 왜 올레마은의 이야기가 왜 이런 상황이었는지 이해 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의 배경이 1940년대였고 그 당시 이누이트 소녀들이 글을 배우는 상황이 얼마나 고달펐는지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누이트 사람들을 문명인으로 교육시킨다는 구실로 기숙학교를 세워놓고 어린아이들을 함부로 다뤘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2008년 정말 오랜시간이 흐른후 캐나다 수상은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지만 그런 시절을 겪었던 소녀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수 없다. 실화를 이렇게 멋진 그림책으로 담아낸 시어머니와 며느리 작가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