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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생중계 - 김상미 소설집
김상미 지음 / 궁리 / 2021년 1월
평점 :
코로나 시대를 보내며 일상 공간이 축소되고, 온라인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안부를 묻는 소통의 시대
너무 공감되고, 울림이 있는 반전 스토리와 판타지 소설을 만났다. 짧은 10편의 단편소설을 수록한
이 책 속 이야기들을 읽으며 감탄과 공감의 연속이었다. 일상의 조각 시간을 모으고 저축해서 글을 쓴다는
작가의 직업은 수학선생님이자 캘리그래피 작가이다. 꼬박 1년을 채우고 여전히 진행 중인 코로나 환경
에서 탄생한 그녀의 날카로운 상상과 일상 속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만한 주제들을 담았다.
판타지 소설이지만 일상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지금의 시대를 참 예리하게 표현했다.
수록된 작품들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정보 과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는 여러 상황들에서 좀 더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정보 통조림 가게>를 만들어내고, <책 복원가>에서는 욕심
껏 쌓아놓은 우리 집 책장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책들이 책 거미 현상이라는 바이
러스에 전염되고 읽지 않은 책들의 활자가 살아나는 방법이 눈으로 읽으며 교감해야 살아나는 상상.
오랜 시간 손길 한번 안 가고 책꽂이를 지키게 했던 책들이 떠올라서 가장 뜨끔했던 작품이다.
이 외에도 각각의 작품들은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 관계에 대해, 나도 모르는 순간에도 온라인이나
SNS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사생활이 노출되고 공개되는 상황들, 통화나 대화보다 문자가 더 편안해진
요즘의 세태, 그리고 타인의 말에 담긴 진심에 대해, 먼지를 흡입하는 공기청정기처럼 안 좋은 소리를
흡입하는 설정 등, 소통 방식과 만남의 방식에 관한 날카로운 관찰들을 작품 속에 담았다.
사람과의 만남이 자유롭지 않은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대부분의 만남을 온라인으로 실행하고,
통화보다는 카톡이나 문자를 활용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자연스러워졌다. 사람에 대한 이해보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더 집중하는 순간도 많아졌다. 인연을 좋게 만들어 가는 과정엔 예측하지 못한 불편함
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고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이야기한다. 인상적이었던 구절 중 부모와 자식의 관
계에 대한 정의를 뫼비우스의 띠에 비유한 부분이다.
부모와 자식은 다른 방향에서 교차해서 걷다가 서로의 역할이 바뀔 때 다시 만나는 관계.
부모는 자식의 시작을 기억하고, 자식은 부모의 끝을 기억한다는 문장은 어딘지 쓸쓸하기도 하다.
"갈등 없이 매끄러운 방식만이 진실된 관계를 만들지는 않아요. 서먹하고 어색하고, 때로는 실수가 있는
대화 속에서 타인과의 말길을 찾을 수 있어요."
요즘은 하루 24시간이 세상과 연결된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가고 있지만 불특정 다수와의 관계 속에서
오히려 공허함을 느끼는 순간이 더 많아지기도 했다. 그나마 제한된 만남도 얼굴의 반을 가린 채 마스크
를 쓴 채로 소통해야 하는 시대라니 문득문득 현실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하루아침에 시작된 바이러스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숙제는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하고 생활이 편리해진다고 해도 사람과의 소통은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인류가 살아가는 가장 원초적이며 중요한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유쾌하고 날카롭게 다가왔던
이 책.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