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있어줘
마거릿 마찬티니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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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하루종일 겨울비가 내린다. 이불밑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10원짜리 만큼도 없다. 매달 찾아오는 그분은 한치의 오차없이 찾아오시어 더욱 일어나기 싫게 만든다. 다친 발목을 겨우겨우 고쳐놨더니 이젠 무릎이 아프다. 며칠전 걸린 감기는 나아질 생각이 없나보다. 머리가 아파온다. 손발이 시리다. 정말이지 일어나기가 싫다. 과감하게 일어나지 않기로 하고 귤 까먹으면서 이 책을 읽는데, 하나도 안 행복하다. 입안이 까끌하고 짜증이 난다. 내 마음에도 구멍이 뻥 뚤린것만 같다.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티모테오, 이탈리아. 엘사 그리고 안젤라까지도 너무 불쌍하다. 외적으로 보기엔 모든걸 다 가진 티모테오는 자신의 마음을 채워줄 따뜻한 사랑 하나 가지지 못했다. 아무것도 가진것 없는 이탈리아는 겨우 사랑을 찾았지만, 사랑에 버려지고 끝내 그 사랑때문에 죽음을 맞이한다. 기자로써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엘사는 아름다운 외모에, 완벽해 보이는 남편을 곁에 두었지만, 그의 마음을 얻어내지 못했다. 사랑하는척, 행복해하는 척하면서 다른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겠지. 안젤라. 오- 안젤라. 가장 불쌍한 너. 어른들의 사랑놀음에서 태어난 너는 무슨 죄가 있어 사경을 헤매이는 순간에 아빠로부터 아빠의 바람피운 역사를 듣고 있어야만 했던거니. 아빠의 얘기 때문에 깨어난거라면, 아빠를 따뜻하게 한번 안아줬으면 좋겠다.

 

 

 

 

 

 

 

살아가는데 마음 하나 채운다는게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사랑이 뭔데?! 그게 뭐라고... 

















그래도, 그냥 그대로 거기 있어줄 사람 하나 있으면 구멍난 마음을 조금은 채울 수 있겠지...

 

 

 

 

 

 

 

 

 

돌처럼 차디차게 얼어붙은 그녀의 손이 내 볼에 닿았을 때, 나는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하는 내 딸아, 나는 이탈리아를 사랑했다. 마치 그 누구도 사랑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그녀를 사랑했다. 걸인처럼, 굶주린 늑대처럼 그리고 수풀의 가지처럼 그녀를 사랑했다. 유리에 찔린 상처처럼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것이기에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의 육체와 비참한 체취를 사랑했다. 세찬 빗줄기도 결코 내게서 그녀를 데려갈 수 없었다. 나는 텅빈 거리에 휘몰아치는 빗속에서 소리치고 싶었다.

- 영원히 네 곁에 있고 싶어. (2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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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을 샀어
조경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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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하다. 세수를 하고 나와 스킨로션을 바르지 않았을때 보다 더 건조하고, 아주 바삭하게 말라버린 나뭇잎처럼 건조하다. 눈도, 비도 잘 오지 않는 북경의 날씨처럼 건조하고 또 건조하다. 

 

갈라진 거북이 등껍질에서도, 끝도 없는 가뭄에 쩍- 갈라져버린 땅에서도, 새살이 돋고, 새싹이 나듯. 갈라져 버린 내 마음에서도 어떤 희망을 볼 수는 있는걸까?! 풍선을 후후.하고 불어보면 정말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혼자서 풍선을 후후.하고 불어보기보다는 닥터 현 같은 사람을 만나 내 마음속에 있는 모든 이야기들을 다 털어놓고 싶다. 가령, 토끼얘기.같은... 그리고 닥터 현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도 싶다. 누구나 저마다 이야기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또, 가끔은 돌아가는 세탁기 위에서 소리나지 않게 울어도 좋을것 같다. 친구들과 어울려 마작을 해도 좋겠지.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보이지 않는 어느 경계선 즈음에서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이 남자든, 여자든 모두들 너무나 비슷비슷하게 여겨진다. 어쩌면 문체때문에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이 주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동유럽의 겨울같은 느낌이다. 각 단편속의 주인공들은 모두들 어딘지 모르게 건조한 맛이 있고, 어딘지 모르게 세상과 융합되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활기나 열정같은건 찾을 수 없다. 남편을 찾아다니는 여자에게도, 고모를 떠나보낸 총각에게도, 풍선을 후후 불어보는 J에게도. 그렇지만 달팽이의 산란처럼 아주 미세하게나마 어떤 새로운 시작. 여기가 끝이 아님. 이제는 희망. 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 미세한 희망의 빛이 내게로 조금씩 다가오길 바래본다.

 

 

 


 

"자루를 짊어지고 있다면, 홀가분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죠, 선생님."

"무슨 말이에요, 이작가?"

"왜 이일을 그만두시려고 하는데요?"

"뭐, 설명하기가 쉽진 않군요."

"저는 삼 개월 동안이나 그 설명하기 쉽지 않은 얘기들을 했어요."

이제 선생님 차례예요.

"권태스러운가요?"

"조금은."

"불안하기도 하죠?"

"뭐, 조금은."

"위기에 빠진 느낌이 들 때가 있죠?"

"상담자로서 내가 적절한 사람인가, 생각하고 있다고 할까. 꽤 오랫동안."

"버려야 할 패. 제가 이런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면요?"

"글쎄, 난 마작 같은 건 못 둔다니까."

"토끼 말예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버려야 할 패가 있는 거라구요."

"이젠 더 이상 토끼 핑계는 안 댈 것 같군."

"제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

"제가 왜 여기 다시 오게 된 줄 아세요 선생님?"

"변덕스러우니까 그렇지."

"제가 위기에 빠졌다고 생각했었잖아요."

"벌써 오래된 일처럼 말하는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말이에요."

"그랬죠."

"그런데 위기에 빠졌다고 느낀 순간, 무력감과 권태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걸 느꼈어요."

"흠, 어째서요?"

"저 자신한테 질문을 했죠."

"어떤?"

"그렇다면 나의 무력감과 권태는 목적의식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온 것일까?"

"아무튼 작가들이란."

"아이러니컬하게도 위기에 빠지자 나를 보존하고 나를 지켜야겠다는 절박함을 다시 느끼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이 작가의 새로운 목적의식이 됐다는 말이로군."

"그렇죠."

"......"

"선생님이 가진 무력감과 권태는,"

"목적이 사라졌기 때문인가?"

"그게 사라졌다면 이젠 자신에게 위기 같은 거 느끼시겠네요?"

"좀 쉴까 해서. 이작가 치료도 거의 끝난 것 같고."

"그렇다면 이제 위기에 빠진 자신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겠네요?"

"글쎄."

"그런 걸 우리가 시장 같은 데 가서 살 수는 없는 거겠죠?"

"그거 내가 이작가한테 한 말 같은데."

"잘 기억하고 계시면서."

 

- 마흔에 대한 추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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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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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삼월]을 굳이 구분한다면 미스터리이고, 미스터리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지만,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밤의 피크닉]으로 온다 리쿠를 처음 만난 독자는 이 책이 사뭇 낯설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그려내는 '이야기'속 세계의 본질은 같은 것임을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가 선사하는 행복한 시간을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나도 이 아줌마를 알게된 것이 [밤의 피크닉]이였고, 그랬기 때문에, 사실 이 [삼월]이가 낯설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밤의 피크닉]에서는 전혀 이런 삘~이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나갔는데, 정말이지 한번이라도 탐욕스럽게 책을 읽어본 자라면 충분히 좋아할만하다. 1편에서, 고이치가 담을 넘어 대저택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이 책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어떤 책 한권을 덮고 나면 머릿속에 일종의 그래프 같은 것이 그려진다. 1차 방정식 그래프 같은...x축을 책을 읽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y축을 재미 혹은 집중도쯤으로 둔다면 직선 그래프일때도 있고, 우상향, 우하향 같은 그래프가 나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요 책은 어땠을까?! 내 머릿속에는 사인곡선이 딱! 떠올랐다. 이 책이 총 4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네 편이 저마다의 재미가 달랐다. 1편이 최고로 집중하게끔 만들었고, 2편에서 약간 허무해졌다. 2편이 허무하게 끝나버렸기 때문인지, 3편은 집중이 잘 되질 않았고, 머릿속에 잘 입력이 되지 않는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일본 이름들 덕분에 살짝 정신이 사나웠다. 그리고 마지막<회전목마>에서는 다시 1편에서 느꼈던 그 재!미!를 느꼈다.

 

 

 

묘하게 서로 얽혀 있는 이야기들이 꽤나 흥미로웠고, 책속에 등장하는 몇가지 이야기들은 실제로 출간이 되었다고 하니, 이 책은 온다 리쿠의 다음 책에 대한 일종의 안내서가 될 수도 있겠다. 좀 특이하긴 하지만, 이런 발상을 했다는 자체가 내겐 좀 신선하게 다가왔다구. 이 아줌마, 뭐, 계획표라도 짜놓고, '일단 [삼월은~]을 세상에 내 놓은 다음 , 책속에 들어 있는 책 이야기로 다음번 책을 내야겠어.'라는 생각을 애당초 했었을까?! 아니면, [삼월은~]을 쓰다가 대충 생각나는대로 책속에 책 이야기를 만들어놨는데, 다음엔 뭘쓸까 고민하다가 쓰게 된걸까?!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 작가중에는 이런식의 글쓰기를 하는 이를 들어보지 못한것 같기도 하고, 또 있다해도 온다 리쿠처럼 많은 작품을 내뱉어 놓는 작가도 드물지 싶다. 몰랐는데, 이 아줌마 검색해보니까 책이 엄청나게 많던데, 야마다 에이미가 교정을 보지 않고 글을 쓰는 천재라면, 이 아줌마는 순식간에 글을 써내는 재주라도 있는건지...

 

 

여하튼, 좀 신선하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언젠가 내가 욕심을 부리며 손에 넣으려 했던 책이 그저 소문만 무성한것이더라, 그까짓거 읽어봐야 달라지는것도 없더라.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올때까지 탐욕스럽게 읽어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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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도 11월에는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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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필요하다. 시럽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아메리카노가 좋겠다. 막 뽑아서 따뜻한 것 말고, 조금 식어버려서 쓴맛보다는 신맛이 비치는 그런 아메리카노가 더 어울릴것 같다. 맑고 청아한 가을하늘 말고, 적절하게 회색빛이 도는... 금방이라도 비를 내릴것만 같은 하늘이 더 어울리겠지. 그리고, 식어버린 커피를 한손에 들고서, 어깨엔 숄을 걸친채,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에 제 몸을 맡기고 한 없이 날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어야만 할 것 같다. 내 방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안절부절 못하며 가슴 떨려하는 내가 그곳에 서 있을런지도...

 

 

 

그렇지만, 현실은?!

아메리카노는 대략 한시간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서 별다방이나 콩다방엘 가야 구경이나 할 수 있을것 같고, 요즘의 날씨는 너무나 맑아 저 하늘은 끝없이 푸르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건너편 아파트뿐. 그리고 여긴 무려 11층.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건 귀신?!

 

 

 

내가 왜 분위기 깨는 소리를 하느냐면, 미안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불쾌했다. 그리고 불편했다. 마리온.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부정한 여자! 베르톨트. 이 정신병자. 그 어떤 변명으로도 난 용납이 안된다. 사랑? 행복? 그딴거 개나 줘버리라고 해라.

 

  

 

남 얘기 굳이 하고 싶진 않지만, 이 책을 보다보니 자꾸만 세 남녀와 진짜 귀여운 꼬맹이 둘이 생각이 나서 얘길 하지 않을 수가 없네... 어느날, 새벽.이라고 하기엔 늦은 시간 6시. 요란하게 울려대는 전화를 짜증스럽게 받았다. 그녀의 남편이다. 너희들 이 시간까지 술마시고 놀고 있냐는 물음이 들려온다. 네? 저희 어제 10시도 안되서 헤어졌는데요~라고 대답하고 아차.싶었다. 이 언니 아직도 집에 안들어갔구나... 언니와 함께 나간 남자는 그녀보다 여섯살이나 어린, 약간 좀 찌질한, 약간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지나치게 자기 주장이 강한, 농으로 던진 한마디에 죽자고 달려드는, 그런... 도대체 무슨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의문이드는 국문학과 학생이었다. 평소에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출장갈 때마다 사람들을 언니네 집에 끌어 모으는것도, 모든 이가 돌아간 뒤에도 그 집에 찌질한 대학생과 둘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그 넓디 넓은 집에 옆방에 애기들을 재워놓고 둘이서 뭘 했을런지...

 

 

 

그 찌질한 대학생도 생각 없는건 마찬가지였다. 둘이 연애한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었고, 그 언니의 남편이 모임에 참석한다는 소리에, 그 형 오는거 불편하다, 그럼 나는 참석하지 않겠다.라는 얘기들로 사람들을 뜨악하게 만들었으며, 더이상 누나를 가슴 아프게 하지말라.는 조언을 남편에게 했고, 더 기막힌건 그 언니는 아무렇지 않게 두 남자를 사이에 두었다는...

 

 



 

나는 끝내 그 언니와 친해지지 못하고 연을 끊었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둘은 아직도 만나고 있단다. 그리고 더 뻔뻔한 이야기는 그 언니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왜 한 남자와만 살아야 하는지,  대한민국은 그런걸 이해 못하는 나라인지. 이혼같은건 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남편에게 마음 떠난지 오래. 그러니까 나는 죽을때까지 연애할꺼야.라는 이야기를 전했다는 사실이다. 애당초 진정으로 사랑했던 이를 버리고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간건 그 언니의 선택이었는데, 한때나마 언니가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물론, 책속 마리안네와 베르톨트의 사랑에 비교하자면 언니는 그냥 즐기는것, 남편 없는 빈자리를 다른 남자로 채우는것 정도로 밖에 보이질 않았고, 그 찌질한 대학생 오빠도 언제나 다정다감하게 엄마처럼 대해주는 언니에게 일종의 모성애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나도 알고 있다. 사랑한다는 마음이라는거 이성만으로는 해결이 안된다는 사실을...

책에 등장한 마리안네와 베르톨트는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운명적 이끌림을 느꼈다. 플라톤이 말했듯 "태어나기전부터 우리는 이미 사랑했다."라는 말이 그들에게 통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남편도 버리고 아이도 버리고 베르톨트를 따라 떠났겠지... 그렇지만 그들의 사랑은 완성이 되었을까?! 함께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그들의 사랑이 숭고하게 완성이 되었냔 말이다.

 

 

 

마리안네와 베르톨트는 죽을 것을 알고도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한쌍의 불나방같았다. 난 그들이 죽을 줄 알았다. 중고 폭스바겐을 타고, 손을 잡고, 그렇게 한날 한시에 떠났지만, 난 그게 아름답지 않았다.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하고, 내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이와 결혼을 하려고 노력할꺼다. 피치 못할 상황에서도 충동적으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났다고 남편 버리고, 자식버리고 떠나는 짓 만큼은 죽어도 하지 않아야겠지. 사랑이라는것, 결혼이라는 것은 사랑도 행복도 중요하지만, 책임과 의무도 뒤따른다. 감성, 감정만을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문득, 김창렬이 떠오른다. 사회면에 가장 많이 등장한 연예인인 그도, 결혼이후 개과천선했던데, 천생연분이란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결국 노력이 필요하단 얘기겠지...
 
 
 
 
 
 
정말이지, 씁쓸하고 시큼한 커피 한잔을 들이켜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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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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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그러니까 내가 그를 알게 된건 고2 즈음인것 같다. 그의 책 제목만을 보고서 호기심에 바로 책을 샀었고, 스무페이지정도 읽었을까.... 곱게 책을 덮으면서 내가 좀 더 크면 이 책을 읽도록 하겠어!라는 다짐을 했었다. 그때 그 책이 <꾿바이, 이상>이었다.

 

중학교때 처음으로 접한 이상의 시 <거울>을 보고서 나는 심한 문화적 충격에 빠졌었다. 말과 글이라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너무나 일상적으로 접하는 것으로 저런 묘한 재주를 부린다는게 신기해서 그 시를 줄줄 외웠고, 나는 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었다. 그런 李箱이었기에, 내게 <꾿바이, 이상>이라는 소설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으나, 지나치게 어렵게 느껴졌었다. '아, 어렵다. 이건 해박한 어른들이 읽는 책이다.' 라는 인식때문에 아직도 책장에 곱게 꽂혀있다.

 

 

 

그런 김연수의 책을 읽었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물론, 여전히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들도 있었다. 지금 내가 무슨 글을 읽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들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고, 대충 슥슥- 읽고 와~ 다 봤다~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책들 속에서 마음에 여운을 진하게 남기는 기행은 드문데, 이 책은 가벼우면서도 진지하고,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편안하다.

 

 




중국, 일본, 미국, 독일 등등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써내려간 글들 중에서 특히, 좋았던 글들을 뽑아보자면, <빅 웬즈데이를 만나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 >, <내 피를 물만큼이나 묽게 만들지 않으면>, <당신들은 천당과 지옥의 접경으로 여행을 하고>정도를 뽑을 수 있겠다. 특히, Don't Loiter라는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가 않는다. 

 

 

 

책속엔, 조선족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차례 등장을 하는데, 북경에 있을때 일이 생각이 났다.

 

你是韩国人还是朝鲜人还是朝鲜族?(당신은 한국인입니까 아니면 북한사람입니까 아니면 조선족입니까?)

그때, 같이 살던 친구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해서 작은 팬시점을 종종 들렀는데 대체로 일본에서 수입해온 펜이나 노트 등등 소녀들이 좋아할만한 물건들을 파는 곳이었다. 물론 한국에서 들여온 제품들도 있었는데, 거기 주인이 우리를 보더니 기다렸다는 듯 저 질문을 했다. 当然韩国人~(당연히 한국인이지. 이 병신아, 눈이 있으면 차림새를 좀 봐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_-) 이라고 했더니 이게 뭔지 몰라서 못 팔고 있는데 이게 어디에 쓰는건지 가르쳐 달라고 하더라. 거기엔 한글로 "폼클렌징"이라고 써있었다. 과연, 朝鲜人이나, 朝鲜族은 못 알아먹을만한 한국말이었다. 얼굴 씻는데 쓰는거라고 알려주고 나니,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시팡런(西方人xifangren서양인)이 동팡런(东方人dongfannren동양인)에게 너는 한국인이냐, 일본이이냐, 중국인이냐 라는 것을 묻는 것보다 천만배쯤은 충격적이었다. 난 너무나 당연하게 그냥 한국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해외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국인, 북한사람, 조선족.이라는 분류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서글퍼지기도 하면서 여지껏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아주 妙한 기분이 들었던 거다.

 

뭐, 중국에서 북한사람은 만나보지 못했지만, 다양한 종류의 조선족을 만나봤다. 한민족이라고 하기엔 우리 사이의 괴리감이 너무나 컸고, 그들이 한국인들을 대할때의 적대감이 대단했다. 뭐, 우리는 한민족이니 어쩌느니 하는것 자체에 나는 거부반응을 느끼고 있긴한데... 갑자기 이 생각을 하니까 머리가 좀 아파오려고 한다;; 삼천포로 빠진 이야기는 그냥 대충 여기서 마무리하고;;

 


 

 

 

 

 

김연수는 내게 여전히 어렵게 느껴진다. 이건 그저 여행을 하고서 쓴 산문일 뿐인데도 어렵다. 그 사실을 본인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슬쩍 미소를 지었지만, 소설가의 기행이라는 것이 남들과 똑같이 여기는 좋았고, 저기는 어땠으며, 난 여기서도 사진을 찍었고. 라는 것만을 보여준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의 글에는 여행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작가가 가질 수 있는 다방면적 사유의 흐름을 이 책에서는 엿볼 수 있다.












소설가 선생, 당신은 참으로 총명하오!!!

니 슬 헌 총밍!

유 아 인텔리전트 데쓰!!!

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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