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11월에는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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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필요하다. 시럽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아메리카노가 좋겠다. 막 뽑아서 따뜻한 것 말고, 조금 식어버려서 쓴맛보다는 신맛이 비치는 그런 아메리카노가 더 어울릴것 같다. 맑고 청아한 가을하늘 말고, 적절하게 회색빛이 도는... 금방이라도 비를 내릴것만 같은 하늘이 더 어울리겠지. 그리고, 식어버린 커피를 한손에 들고서, 어깨엔 숄을 걸친채,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에 제 몸을 맡기고 한 없이 날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어야만 할 것 같다. 내 방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안절부절 못하며 가슴 떨려하는 내가 그곳에 서 있을런지도...

 

 

 

그렇지만, 현실은?!

아메리카노는 대략 한시간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서 별다방이나 콩다방엘 가야 구경이나 할 수 있을것 같고, 요즘의 날씨는 너무나 맑아 저 하늘은 끝없이 푸르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건너편 아파트뿐. 그리고 여긴 무려 11층.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건 귀신?!

 

 

 

내가 왜 분위기 깨는 소리를 하느냐면, 미안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불쾌했다. 그리고 불편했다. 마리온.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부정한 여자! 베르톨트. 이 정신병자. 그 어떤 변명으로도 난 용납이 안된다. 사랑? 행복? 그딴거 개나 줘버리라고 해라.

 

  

 

남 얘기 굳이 하고 싶진 않지만, 이 책을 보다보니 자꾸만 세 남녀와 진짜 귀여운 꼬맹이 둘이 생각이 나서 얘길 하지 않을 수가 없네... 어느날, 새벽.이라고 하기엔 늦은 시간 6시. 요란하게 울려대는 전화를 짜증스럽게 받았다. 그녀의 남편이다. 너희들 이 시간까지 술마시고 놀고 있냐는 물음이 들려온다. 네? 저희 어제 10시도 안되서 헤어졌는데요~라고 대답하고 아차.싶었다. 이 언니 아직도 집에 안들어갔구나... 언니와 함께 나간 남자는 그녀보다 여섯살이나 어린, 약간 좀 찌질한, 약간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지나치게 자기 주장이 강한, 농으로 던진 한마디에 죽자고 달려드는, 그런... 도대체 무슨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의문이드는 국문학과 학생이었다. 평소에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출장갈 때마다 사람들을 언니네 집에 끌어 모으는것도, 모든 이가 돌아간 뒤에도 그 집에 찌질한 대학생과 둘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그 넓디 넓은 집에 옆방에 애기들을 재워놓고 둘이서 뭘 했을런지...

 

 

 

그 찌질한 대학생도 생각 없는건 마찬가지였다. 둘이 연애한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었고, 그 언니의 남편이 모임에 참석한다는 소리에, 그 형 오는거 불편하다, 그럼 나는 참석하지 않겠다.라는 얘기들로 사람들을 뜨악하게 만들었으며, 더이상 누나를 가슴 아프게 하지말라.는 조언을 남편에게 했고, 더 기막힌건 그 언니는 아무렇지 않게 두 남자를 사이에 두었다는...

 

 



 

나는 끝내 그 언니와 친해지지 못하고 연을 끊었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둘은 아직도 만나고 있단다. 그리고 더 뻔뻔한 이야기는 그 언니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왜 한 남자와만 살아야 하는지,  대한민국은 그런걸 이해 못하는 나라인지. 이혼같은건 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남편에게 마음 떠난지 오래. 그러니까 나는 죽을때까지 연애할꺼야.라는 이야기를 전했다는 사실이다. 애당초 진정으로 사랑했던 이를 버리고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간건 그 언니의 선택이었는데, 한때나마 언니가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물론, 책속 마리안네와 베르톨트의 사랑에 비교하자면 언니는 그냥 즐기는것, 남편 없는 빈자리를 다른 남자로 채우는것 정도로 밖에 보이질 않았고, 그 찌질한 대학생 오빠도 언제나 다정다감하게 엄마처럼 대해주는 언니에게 일종의 모성애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나도 알고 있다. 사랑한다는 마음이라는거 이성만으로는 해결이 안된다는 사실을...

책에 등장한 마리안네와 베르톨트는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운명적 이끌림을 느꼈다. 플라톤이 말했듯 "태어나기전부터 우리는 이미 사랑했다."라는 말이 그들에게 통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남편도 버리고 아이도 버리고 베르톨트를 따라 떠났겠지... 그렇지만 그들의 사랑은 완성이 되었을까?! 함께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그들의 사랑이 숭고하게 완성이 되었냔 말이다.

 

 

 

마리안네와 베르톨트는 죽을 것을 알고도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한쌍의 불나방같았다. 난 그들이 죽을 줄 알았다. 중고 폭스바겐을 타고, 손을 잡고, 그렇게 한날 한시에 떠났지만, 난 그게 아름답지 않았다.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하고, 내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이와 결혼을 하려고 노력할꺼다. 피치 못할 상황에서도 충동적으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났다고 남편 버리고, 자식버리고 떠나는 짓 만큼은 죽어도 하지 않아야겠지. 사랑이라는것, 결혼이라는 것은 사랑도 행복도 중요하지만, 책임과 의무도 뒤따른다. 감성, 감정만을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문득, 김창렬이 떠오른다. 사회면에 가장 많이 등장한 연예인인 그도, 결혼이후 개과천선했던데, 천생연분이란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결국 노력이 필요하단 얘기겠지...
 
 
 
 
 
 
정말이지, 씁쓸하고 시큼한 커피 한잔을 들이켜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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