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8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송무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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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는 내가 지금껏 알아 왔던 책 속의 주인공들 중에서 그 맹목성과 단순성에 있어 감히 필적할만한 자가 없는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공부를 더더욱 열심히 하고 몰라보게끔 흠씬 다이어트라도 하면 그가 나를 돌아볼지도 모른다, 고 착각하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혼자 열쒸미 살며 희망을 품던 과거의 어느 시절엔가의 나도 개츠비만큼 끈질기진 못했다.

졸리거나 피곤하다 보면 공부를 소홀히 할 수도 있는 거고 맛있는 음식을 보면 오늘까지만 먹느니 어쩌니 하다가 결심이 무너질 수도 있는 거고 그러다보면 어느샌가 본래의 나로 돌아와 있고 '솔직히 그다지 많이 좋아한 것도 아니었는데 뭐. 난 그냥 내멋대로 살거얌.' 대충 이런 심심한 전철을 밟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한편으로 나 자신을 영낙 없는 로맨티스트의 부류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개츠비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미는 지경으로 추락했다.

그는 제목맞다나 과연 '위대한 개츠비'였다.

돈 없고 무능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개츠비는 어려서부터 야심만만한 꿈을 키우고 제 1차 세계대전 중 미육군 장교가 된 그는 상류 가문의 데이지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는 유럽 전선으로 떠나야 했고 개츠비를 기다리지 못한 데이지는 대부호인 톰뷰캐넌과 결혼하고 만다.

돌아온 개츠비는 데이지에 대한 변치 않는 애정과 그리움으로 고뇌하지만 결국 그녀를 떠나보낸 것은 자신의 가난이었음을 절감하고 주류 밀조업에 손을 대게 된다.

그 이후 사업은 엄청난 부를 가져오고 거부가 된 그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데이지를 따라 뉴욕으로 가서 한 마을에 호화저택을 마련한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바로 이 책의 나레이터인 닉이다.

닉은 개츠비와 자신의 8촌 격인 데이지를 다시 만나게 해주고 개츠비와 데이지는 과거 사랑했던 추억에 잠겨 다시 로맨틱한 꿈을 꾸지만 데이지의 이기주의는 오히려 개츠비에게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씌우게 되고, 결국 개츠비는 그 누명 때문에 살해된다.

개츠비가 살아 있던 시절, 그의 저택에서 파티가 열릴 때마다 불빛을 좇는 나방처럼 찾아들었던 많은 사람들은 단 한 명의 이름 모를 손님과 닉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는다.

데이지를 위해 부자가 되고 부자가 되면 못다한 사랑이 이루어지리라 믿었던 순진한 개츠비는 데이지의 세련된 이기주의 앞에서 또 다시 버려지고 짓밟힌다.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선가, 남편의 사업이 망하자 자신이 먼저 배신하고 돌아섰던 첫사랑에게 목돈을 빌리러 오는 여자가 나왔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저 무뇌충같으니라구, 저 뻔뻔한 여편네 좀 보시게, 그저 만만한 게 첫사랑이라고 어디 낯짝을 들고 나타난담, 별별 푸악질을 다 해가며 역시나 또 쓸데없이 몰입했던 적이 있는데 그 여자 역시 데이지 앞에선 명함도 못 내미는 지경으로 추락했다.

남편의 외도를 묵인하면서까지 안락하고 풍요로운 도회지 생활에 젖어 있던 데이지가 개츠비에게 기대했던 것은 무료한 일상을 위한 자극, 욕구 불만을 채워 줄 애정이었을 뿐 개츠비 그 자신은 아니었던 것이다.

첫사랑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전부를 걸었던 개츠비와는 달리, 데이지는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위해 첫사랑을 거짓과 불행 속으로 통째로 내어준다.

이렇듯 한 편으로 기우는 사랑은 결국 파국을 불러온다.

개츠비는 그 자신이 가진 유일무이한 단순함과 순진성으로 인해 위대할 수는 있겠지만 행복할 수는 없는 사람이다.  

데이지를 포기하지 못하는 개츠비의 사랑은 일종의 병(病)이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야 말할 것도 없지만 이미 물질주의가 만연해 가고 있던 당시의 미국에서 개츠비의 로망은 진귀할만큼이나 바보스런 것이었다.

데이지는 저 혼자 놀러 간 것도 아닌 개츠비를 기다리지 않았다.

개츠비는 전쟁에서 공을 세운 뛰어난 군인이었고 건강하게 살아 있었고 조만간 돌아올 것이었고 그들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애정을 확인했다.

그러나 원할 때 손에 닿지 않는 연인을 믿으며 외로움을 견디기에는 너무 연약한 그녀였고 구체적으로 현실화되는 물질적 부피감을 사랑의 힘으로 뿌리치기에는 허영심이 많은 그녀였다.   

대개 여자들이란 데이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녀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기에는 무리가 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역시 지나쳤다.

오늘날 개츠비의 러브 스토리는 시대착오적이다.

그렇듯 시대착오적이기에 그는 진정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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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새해의 첫 번째 출근 도장을 내가 찍게 되었다. 이번주부터 영어 캠프가 시작되면서 근무조로 편성되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행정실에서는 케익과 촛불, 샴페인, 폭죽과 함께한 조촐한 시무식도 있었다. 작년, 아니 재작년 이맘 때엔 그 해의 마지막 근무자로 종무식에 참여했던 기억이 났다. 오늘 날짜로 주사님 한 분이 새로 오셨는데 그 분이 새로 오신 분인 줄도 모르고 뻘쭘하니 슬쩍 눈빛만 마주쳤다가 나중에 소개 받고 민망해서리 일부러 냐하핫, 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방학 이후로 너무 오래 은둔했나 보다. 

업무 처리로 학교에 나오신 몇몇 선생님들과 새해 인사를 교환하고 캠프에 참여하는 아이들을 챙기고 배치고사 때문에 일부러 나를 보러 온 C와 함께 독해 문제를 풀었다. 방학인데 어디 놀러가지도 못하고 다시 시험 준비에 매달리고 있는 C를 보니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은 대개 여러가지로 안쓰럽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든, 그렇지 않은 아이든 다들 나름대로 피곤하고 고달픈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

원어민 샘은 캠프가 끝나면 곧 고향인 호주에 다녀올 예정이라면서 관사로 도착할 우편물들과 신문 때문에 걱정이라는 말을 했다. 관사가 비어 있는 사실을 알면 우체국 직원들이 알아서 학교로 가져오니 걱정하지 말라고, 신문은 신문보급소에 전화 한 통 넣어주면 되니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켰지만 그는 여전히 안심을 못한 눈치였다. 지난번에는 인터넷 카드 결재에 대한 의심으로 일주일 넘게 나를 괴롭히더니만 이번엔 또 우편물이다. 예전에 있던 캐나다 출신의 원어민 샘과는 사뭇 다르다. 호주 사람들이 본래 의심이 많은 건지, 아니면 한국 사람과 접촉할 기회가 적어서 그만큼 믿지 못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우리나라에 오기 전에 인도에 가서 지갑을 조심하라는 주의사항과 같은 충고를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들은 건지 아무튼 알 수가 없다. 나에게서 빌려간 물품들이나 내가 계산한 점심값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으면서 하여간 자기 것은 되게 챙긴다. 들고갈 사람도 물론 없겠지만 매일매일 오는 영자신문 쯤 누가 나 대신 보면 좀 어때.

출석부 정리도 하고 서류철도 정리하면서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없어서 학교가 평화롭고(?) 조용한 것만 빼면 말이다. 집에서는 입에 거미줄 치도록 침묵하고 들어앉아 있다가 이따금씩 노홍철마냥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며 식구들에게 허튼 소리나 하던 나인데, 오늘은 간만에 일상으로 복귀하여 공개 방송용 화법을 구사했다. 제주도엔 잘 다녀오셨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방학 잘 보내세요...  점심 맛있게 드세요... 얘들아, 교실은 이 쪽이란다... 흐흐. 왠지 재미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란 사람이 이러한 일상에 대해 남몰래 애정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나날의 시간, 그 시간이 주는 공백을 채워 줄 너무나 당연한 일상 같은 것 말이다. 방학 내내 너무 많이 놀다보면 갑자기 방학 숙제가 하고 싶고 공부가 하고 싶어지는 것 같은 기분. 그러나 역시 너무 많이 일하고 너무 오래 지쳐 있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띵가띵가 잠적하고 싶은 기분이 들겠지? 간사하고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 나란 인간.

오랜만에 각 층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수고했더니 노곤하고나. 캠프 때문에 주말에 한 번 더 나가야 하는데 원어민 샘이 다음 번엔 또 뭘 가지고 칭얼거릴지. 자신이 남의 것을 안 가져가면 다른 사람도 안 가져갈 것이라고 믿어보면 안되나? 여기 사람들이 얼마나 순박하고 정직한데 말야. 제발 너나 잘하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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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 소은

개봉에 맞추어 영화를 보게 되면 대개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나 '아일랜드'와 같은 흥미나 오락 위주의 액션물을 고르게 된다. 실제로 가끔 그런 영화들을 보고 싶어질 때도 있긴 하지만 지인들과 함께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고르다 보면 관람 도중에 마음을 징하게 건드릴 법한 내용의 영화는 부러 피하게 된다. 영화가 끝난 후 왠지 멋쩍어짐과 동시에 내 눈빛 속에서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내가 추억을 되짚는 모습이나 흔들리는 마음의 결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도 신나는 오후를 꿀꿀하게 망쳐버릴 흔해빠진 러브 스토리가 아니라 안젤리나 졸리의 미모라든가 이완 맥그리거의 건재함에 대한 약간 오버 섞인 감탄, 그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보고 싶었던 대부분의 영화를 개봉이 한참 지난 이후에 혼자 DVD로 빌려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허진호 감독의 영화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가 그랬고 이 영화 '동감'이 그랬다. 비록 따끈따끈한 맛은 떨어지지만 가슴 속에 차곡차곡 묵혀 두었던 영화들을 하나 둘 씩 꺼내어서 다시 이야기하는 기쁨이 또 새롭다는 것을 요즘 느끼고 있다.

1979년에 살고 있는 여대생 소은(김하늘 분)은 선배(박용우 분)와의 닿을듯 말듯한 짝사랑의 설레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고물 무선기 하나를 얻게 되고 개기월식이 진행되던 날 밤, 무선기로부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에게 교신해 온 사람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인(유지태 분)이라는 남학생. 그들은 시계탑 앞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지만 사실 2000년의 서울에 살고 있는 인과 과거 속에 살고 있는 소은은 어긋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들은 서로가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는 믿기 힘든 현실을 받아들인 후 무선기를 통해 사랑에 대해, 우정에 대해, 세상에 대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그처럼 그들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소통하며 공감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또 다시 믿기 힘든 인연의 줄로 자신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똑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딱 한 번 서로와 마주친 채 스쳐 지나간다.

나 개인적으로는 배우 김하늘을 좋아한다. 한국 영화계엔 종횡무진 폭 넓은 연기력을 선보이는 전도연이나 닳지 않는 진주처럼 빛나는 자태를 드러내는 이영애가 있고 귀여운 마스크로 긴 생머리를 흩날리며 뭇 남성팬을 사로잡는 시원시원한 미모의 전지현도 있지만 나는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순진하기 짝이 없는 복길이같은 말투로 권상우를 혼냈다 다독였다 하는 그녀,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 귀엽고 깜찍한 내숭으로 한 가족을 사로잡던 그녀, 그리고 '바이 준'이나 '동감'에서의 솔직한 눈매를 지닌 청순한 모습의 그녀를 아주 좋아한다. 그것은 김하늘 그녀이기에 가능했던 역할과 이미지였다. 배우 나름으로 노력해서 바뀌는 이미지도 있으나 타고난 이미지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것 또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배우 김하늘이 무리한 연기 변신을 시도하지 않고 찬찬히 자신의 색깔에 맞는 역할과 연기를 해내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역시 이 영화 '동감'에서도 그녀는 촌스러움과 청순함의 경계에 서서 70년대 여대생의 이미지를 잘 소화해 내고 있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역시나 사랑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2000년대에 사는 남학생과 70년대에 사는 여대생이 서로 공감할 수는 있으나 이어질 수는 없는 것처럼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서 헤어지는 일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실제의 삶 속에서 굳이 긴 시간차를 설정해 놓지 않더라도 지금 이 사람을 좀더 늦게 만났더라면, 지금 이 사람을 좀더 일찍 만났더라면, 그런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한 교수님은 당신의 첫사랑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녀는 나를 무척 따르며 좋아했고 나도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공부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고 아무 것도 준비된 것이 없어서 약속같은 걸 할 수가 없었다."고. 잠시 회상에 잠기셨던 교수님은 바로 웃으시면서 "사랑의 문제를 떠나서 결혼 적령기에 만난 사람이 확률적으로 내 운명의 상대가 되고 마는거지. 운명은 타이밍이야." 라고 말씀하셨다. 강의실에 있던 CC들을 보시면서 "그래도 너희 나이 때에는 쟤들처럼 연애도 열심히 해보긴 해봐야 하는거다."라고 하셨던 기억도 난다. 그 때 아리송하게나마 타이밍이란 말을 이해했고 공감했다. 그 때 나는 무엇에든지 열정적으로 빠져들만한 나이였기에 도리어 산다는 게 힘이 부치기만 했고 자꾸 나이를 먹고 빨리 늙어서 모든 것에 초연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 자신의 어설픔과 성급함 때문에 주변의 많은 것을 놓쳐버리고 소중한 인연들을 싹둑싹둑 잘라내곤 했던 시절이었다. 당최 뭐가 뭔지 분간이 안되던 시절, 다 때가 되면 운명의 그 상대가 나타난다는 말에만 귀가 반짝하던 귀여운 나이였다. 운명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의 유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채로 말이다.

앞으로의 일은 모르고 사는 편이 낫다.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몰라야 한다. 영화 속에서 소은은 인을 통해 우연히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되게 됨으로써, 그녀를 설레이게 하고 행복하게 했던 짝사랑의 환희는 일순간 물거품이 되고 그녀를 웃게 해주었던 우정에 대해서도 더 이상 정직할 수가 없게 된다. 소은이 결과에 상관 없이 미래의 인연의 향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면 기대와 가능성 속에서 그녀는 훨씬 더 행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삶의 행복이 하루하루의 만족과 미래에 거는 희망에 있는 거라면 그녀는 행복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다. 더불어 놓쳐버린 인연에 매달린 그녀는 언젠가 한 번 쯤은 나타났을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타이밍까지 놓쳐 버린 셈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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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1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01-01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othing special~ 여느 때와 다름 없었습니다. 님이 어떻게 보내셨는지는 방금 페이퍼를 읽고 와서 대충 알겠네요. 저도 그와 비슷했어요.
밥 많이 드세요. ^^
 

한 해가 참 무심히도 가고 있다. 정말 무심히도. 올해는 더더욱 무심하게 가는 것 같다. 어쩜 이리 무심할 수가. 무심해서 환장하겠군. 나는 유심한데 세상은 유독 무심해 보인다. 올해는 개인적으로 안좋은 일이 많았다. 요즘 그나마 황우석 교수님을 보면서 위안을 받는다. 정황이야 어찌 되었든 그 동안 일궈온 게 있는데 얼마나 면 팔리고 속상하고 답답할까.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구나. 그 분에겐 참 안됐고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잠깐이나마 그 고통을 빌려 썼다. 쏘리.

2005년 9월 이후로는 온통 아팠던 기억 뿐이다. 분명히 여름방학 때 까지는 나름 운전면허도 따고 해서 발랄하게 지냈던 것 같은데 계절이 초가을로 진입할 무렵, 말하기도 남부끄러운 불의의 안전사고로(출장 다녀오는 길에 버스에서 졸다가 내리면서 떼구르르 길바닥으로 추락) 목발 신세로 전락했다. 약 석달 간 깁스를 하고 목발을 낀 채 내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양 쪽으로 갈라서는 모세의 기적을 목격해야만 했다. 이 몸뚱이로 연구학교 발표 때 공개수업을 했으며 매일 아침 저녁으로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푸욱 쉬어주었어야 하는건데 뭔가 알았을 땐 늦어버린 다음이었다. 매일 밤마다 쑤신 발목을 쳐다보며 스스로 내 자신을 바부팅이라고 구박했다. 주변 사람들은 미안하지만 도움을 못 준다는 표정으로 나를 외면했고 나는 나의 불편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간혹 내 앞에서 더욱 바쁜 척을 할 때는 나도 아파 뒈지겠는데 할 수 없이 앉아서라도 일을 하고 있다는 짜증나는 표정을 지어줬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배려했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과 집단의 체면을 위한답시고 나를 구석으로 몰았다. 대개 멋 모르고 지내며 웃고 까불던 나는 그 이후 사회의 속성을 깔끔하게 인정하기로 한다.   

다리가 채 완치되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또 급성장염에 걸려 주는 센스!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던 저녁, 학교 체육샘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근처 호프집에 원어민 샘과 같이 있으니 얼렁 나오라는 것. 술기운이 헬렐레 돌기 직전인 샘은 교직원 배구대회에서의 승전보를 전하며 우승을 하기까지 크나큰 역할을 해 준 꺽다리 원어민 샘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다고 나보고 중간에서 통역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호프집 이름을 들어보니 중앙 통로 이층에 자리한 무지개라는 곳이었다. 헉... 무지개... 이층. 일층이어도 힘든 판국에. 이러저러하여 곤란하겠다고 둘러댔으나 술이 돌기 시작한 샘은 나를 업고 가네 매고 가네 하시다가는 내가 보다 완강하게 거부하자 그러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전화를 할테니 전화로 통역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나는 그러세요, 그럼~ 하고 전화를 끊었으나 불판에서 삼겹살이 익는 둥 마는 둥 하는 찰나 전화가 오고 저 편에서는 체육샘과 원어민 샘이 수화기를 바꿔가며 자신들의 의견을 과다하게 피력하고 있었다. 아, 네네 서로 사랑하신다구요? Oh, he told you 어쩌구 저쩌구. 나는 삼겹살을 씹다가 물을 마시다가 꺼억꺼억 영어로, 우리말로 정신 없는 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그렇듯 지옥같은 저녁이 지나고 고통은 밤부터 시작되었으니 사포로 뱃속을 사악사악 문지르는 듯한 통증이 장장 새벽까지 꼬박 진행되면서 급기야 실신, 응급실에 누워 수액을 맞으며 아침을 맞게 된다. 아, 인생은 왜 이리 고달픈 것인지. 미련한 것. 다리 때문에 독한 정형외과 약을 지어먹고 있는데다 기름기 많은 삼겹살을 먹었으니 탈이 날만도 했다. 거기다 보태어, 울리는 전화벨에 긴장한 채 혀꼬부라진 말로 무지개와 불판을 왔다갔다 했으니 뱃속에서 얼씨구나 화를 낼만도 했다. 아무튼 이후 물과 죽으로 간신히 연명해 가며 난생 처음으로 체중이 줄어 지방흡입술의 의혹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 나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먹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게 된 사이 나와 남자친구는 서로 간에 딴딴한 벽을 쌓고 있었다. 나는 내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에 부쳤고 남자친구는 나름대로 장래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내가 겉으로는 인상을 쓰고 심술을 부리고 있을지언정 마음으로는 여전히 그를 꼭 붙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손에 쥐면 서서히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나와 멀어져갔다.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던 우리는 그렇게 먼 거리를 둔 채 홀로 지쳐가고 있었고 서로에게 웃음을 주고 위안을 주는 시간보다 다투고 침묵하는 시간들이 더 많아졌다. 나는 내가 없는 곳에서 그가 더욱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주길 바랬으나 그는 나를 아픈 말등에 호되게 채찍만 가하는 가혹한 마부처럼 여겼던 것 같다. 이렇듯 우리의 언어는 점점 더 어긋나기 시작했고 항상 먼저 웃음을 건네고 말을 건네던 나는 기어이 그에게 아무 말도 하기 싫어졌다.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그가 다가와서 말을 걸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민감했던 그는 길어진 나의 침묵을 이별의 의미로 받아들인듯 했고 어느 날 모든 것을 정리하겠다는 글을 남긴 채 멀어져갔다. 헤어짐을 생각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런 식의 헤어짐은 상상하지 못했고 너를 위해 떠나주는 게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배려라는 듯한 그의 글이 당혹스럽고도 거북스러웠다. 하지만 정말로 모든 것은 끝이 났고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동안 복잡한 감정 때문에 힘에 부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잘 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상처가 아니라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마웠던 그에게 여러가지 심한 말들로 상처를 줬다. 그것은 내가 몸이 아팠다고 해서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겨울로 접어들면서 오른쪽 어금니 뒷편에 사랑니가 얼씨구나 드러눕기 시작했고 나의 고통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대학 병원에 수술 예약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요즘 음력으로 날짜를 헤아려봤다. 구래구래, 구정이 지나야 진짜 2006년인 거니까 올해의 액운은 요 사랑니로 마감일꺼샤. 나름의 위안을 해 본다. 두 번째 어금니처럼 튼튼하게 생겨주신 의사샘께서 나의 사랑니를 아작 내고 들어냄과 동시에 모든 아픔의 찌꺼기들도 함께 사라져 버렸음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쉬우면 어디 인생 한 번 살아볼만 하겠다마는. 하지만!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이제는 나도 다시 행복해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나는 다시 건강해졌고 더욱 성숙된 새로운 사랑을 꿈꾸고 있다. 지난날의 고통은 아마 앞으로 다가올 행복을 더욱 달고 맛있게 느끼게 해 줄 당의정이 될 것이다. 아듀- 2005. 그만하면 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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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1-01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엔 좋은 일이 가득하길 빕니다...

깐따삐야 2006-01-01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아프락사스님도 Happy New Year~ ^^
 
안과 겉 알베르 카뮈 전집 6
알베르 까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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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안과 겉'을 다시 읽었다.

옛 말에 구관이 명관이라고 요즘은 예전에 읽었던 책들에 다시금 마음이 간다.

카뮈는 내가 선호하는 작가 중의 하나이며 그와 관련되어 쏟아져 나오는 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은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이 책은 카뮈 생전에 출판된 그의 작품들 중에서 최초로 발표된 처녀작이기에 어딘가 모호하고 어설픈 구석도 엿보이지만, 아직은 어렸다는 그 조건이 작가 카뮈에게 돌려 말하기를 거부하게끔 만들었고 그 솔직함과 간곡함이 읽는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슬며시 웃음을 짓게 한다.

카뮈에게 명성을 안겨다 준 작품은 '이방인'이나 '페스트'같은 보다 완결된 작품이지만 소설과 에세이 중간 정도의 형식을 빌어 쓴 이 짤막한 작품집 속에서 스물두 살의 카뮈는 머뭇머뭇, 그러나 확신에 찬 어조로 그를 예술의 길로 들어서게 했던 창조의 원천과 삶에 대한 긍정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집에는 아이러니, 긍정과 부정의 사이, 영혼 속의 죽음, 삶에의 사랑, 그리고 안과 겉. 이렇게 총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무엇보다도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책 맨 앞에 실려 있는 '서문'이었다.

서문에서 카뮈는 그가 앞으로 작품 속에 표현하고 싶고 담아내고 싶은 모든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에게는 불행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과 영감의 원천이 되어 주었던 가난, 편견과 차별 없이 공평하게 내리쬐던 태양의 고장, 궁핍과 침묵 속에서도 질박한 자부심을 잃지 않았던 가족, 이러한 조건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운명을 긍정하며 정열적으로 예술가의 삶을 살게 된 카뮈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은 그와 다소 멀어진 감이 있지만 한 때 내가 카뮈에게 열광했던 것은 그의 작품마다 발견할 수 있는 카뮈의 인간적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는 내세나 인간으로서의 삶 저 너머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간으로서 주어진 조건과 한계를 인정하고 단순하고 정직하게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 영생의 댓가나 내세에서의 구원을 위해 착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인식하는 가운데 더욱 더 정열에 찬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카뮈의 지론이었다.

이 책에서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희망도 없다, 고 말하고 있듯이 인간사의 부조리함에 눈 뜬 카뮈는 그 부조리한 조건에서 벗어나기 보다는 부조리를 몸소 살라고 역설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찾아 헤매던 중에 발견했던 카뮈는 나에게 아무런 기대도 심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신뢰가 갔다.

평생 폐결핵이라는 지병을 앓았으나 축구 선수로, 지하 운동원으로, 연출가로, 배우로, 소설가로, 에세이스트로, 무궁무진한 삶을 살았던 그는 작품에서 말하던 것을 그대로 삶 속으로 옮긴, 행동하는 인간이었고 그 점에서 나는 그에게 매력을 느꼈다.

'안과 겉'은 그러한 카뮈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열쇠라고 생각한다.

사심 없이 언제나 명철한 의식을 유지하는, 늘 깐깐하지만 자비가 넘치는 눈빛으로 조용히 반항하고 있는, 흔하지 않은 인간 카뮈를 오랜만에 다시 만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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