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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겉 ㅣ 알베르 카뮈 전집 6
알베르 까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안과 겉'을 다시 읽었다.
옛 말에 구관이 명관이라고 요즘은 예전에 읽었던 책들에 다시금 마음이 간다.
카뮈는 내가 선호하는 작가 중의 하나이며 그와 관련되어 쏟아져 나오는 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은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이 책은 카뮈 생전에 출판된 그의 작품들 중에서 최초로 발표된 처녀작이기에 어딘가 모호하고 어설픈 구석도 엿보이지만, 아직은 어렸다는 그 조건이 작가 카뮈에게 돌려 말하기를 거부하게끔 만들었고 그 솔직함과 간곡함이 읽는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슬며시 웃음을 짓게 한다.
카뮈에게 명성을 안겨다 준 작품은 '이방인'이나 '페스트'같은 보다 완결된 작품이지만 소설과 에세이 중간 정도의 형식을 빌어 쓴 이 짤막한 작품집 속에서 스물두 살의 카뮈는 머뭇머뭇, 그러나 확신에 찬 어조로 그를 예술의 길로 들어서게 했던 창조의 원천과 삶에 대한 긍정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집에는 아이러니, 긍정과 부정의 사이, 영혼 속의 죽음, 삶에의 사랑, 그리고 안과 겉. 이렇게 총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무엇보다도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책 맨 앞에 실려 있는 '서문'이었다.
서문에서 카뮈는 그가 앞으로 작품 속에 표현하고 싶고 담아내고 싶은 모든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에게는 불행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과 영감의 원천이 되어 주었던 가난, 편견과 차별 없이 공평하게 내리쬐던 태양의 고장, 궁핍과 침묵 속에서도 질박한 자부심을 잃지 않았던 가족, 이러한 조건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운명을 긍정하며 정열적으로 예술가의 삶을 살게 된 카뮈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은 그와 다소 멀어진 감이 있지만 한 때 내가 카뮈에게 열광했던 것은 그의 작품마다 발견할 수 있는 카뮈의 인간적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는 내세나 인간으로서의 삶 저 너머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간으로서 주어진 조건과 한계를 인정하고 단순하고 정직하게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 영생의 댓가나 내세에서의 구원을 위해 착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인식하는 가운데 더욱 더 정열에 찬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카뮈의 지론이었다.
이 책에서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희망도 없다, 고 말하고 있듯이 인간사의 부조리함에 눈 뜬 카뮈는 그 부조리한 조건에서 벗어나기 보다는 부조리를 몸소 살라고 역설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찾아 헤매던 중에 발견했던 카뮈는 나에게 아무런 기대도 심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신뢰가 갔다.
평생 폐결핵이라는 지병을 앓았으나 축구 선수로, 지하 운동원으로, 연출가로, 배우로, 소설가로, 에세이스트로, 무궁무진한 삶을 살았던 그는 작품에서 말하던 것을 그대로 삶 속으로 옮긴, 행동하는 인간이었고 그 점에서 나는 그에게 매력을 느꼈다.
'안과 겉'은 그러한 카뮈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열쇠라고 생각한다.
사심 없이 언제나 명철한 의식을 유지하는, 늘 깐깐하지만 자비가 넘치는 눈빛으로 조용히 반항하고 있는, 흔하지 않은 인간 카뮈를 오랜만에 다시 만나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