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참 무심히도 가고 있다. 정말 무심히도. 올해는 더더욱 무심하게 가는 것 같다. 어쩜 이리 무심할 수가. 무심해서 환장하겠군. 나는 유심한데 세상은 유독 무심해 보인다. 올해는 개인적으로 안좋은 일이 많았다. 요즘 그나마 황우석 교수님을 보면서 위안을 받는다. 정황이야 어찌 되었든 그 동안 일궈온 게 있는데 얼마나 면 팔리고 속상하고 답답할까.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구나. 그 분에겐 참 안됐고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잠깐이나마 그 고통을 빌려 썼다. 쏘리.

2005년 9월 이후로는 온통 아팠던 기억 뿐이다. 분명히 여름방학 때 까지는 나름 운전면허도 따고 해서 발랄하게 지냈던 것 같은데 계절이 초가을로 진입할 무렵, 말하기도 남부끄러운 불의의 안전사고로(출장 다녀오는 길에 버스에서 졸다가 내리면서 떼구르르 길바닥으로 추락) 목발 신세로 전락했다. 약 석달 간 깁스를 하고 목발을 낀 채 내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양 쪽으로 갈라서는 모세의 기적을 목격해야만 했다. 이 몸뚱이로 연구학교 발표 때 공개수업을 했으며 매일 아침 저녁으로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푸욱 쉬어주었어야 하는건데 뭔가 알았을 땐 늦어버린 다음이었다. 매일 밤마다 쑤신 발목을 쳐다보며 스스로 내 자신을 바부팅이라고 구박했다. 주변 사람들은 미안하지만 도움을 못 준다는 표정으로 나를 외면했고 나는 나의 불편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간혹 내 앞에서 더욱 바쁜 척을 할 때는 나도 아파 뒈지겠는데 할 수 없이 앉아서라도 일을 하고 있다는 짜증나는 표정을 지어줬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배려했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과 집단의 체면을 위한답시고 나를 구석으로 몰았다. 대개 멋 모르고 지내며 웃고 까불던 나는 그 이후 사회의 속성을 깔끔하게 인정하기로 한다.   

다리가 채 완치되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또 급성장염에 걸려 주는 센스!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던 저녁, 학교 체육샘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근처 호프집에 원어민 샘과 같이 있으니 얼렁 나오라는 것. 술기운이 헬렐레 돌기 직전인 샘은 교직원 배구대회에서의 승전보를 전하며 우승을 하기까지 크나큰 역할을 해 준 꺽다리 원어민 샘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다고 나보고 중간에서 통역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호프집 이름을 들어보니 중앙 통로 이층에 자리한 무지개라는 곳이었다. 헉... 무지개... 이층. 일층이어도 힘든 판국에. 이러저러하여 곤란하겠다고 둘러댔으나 술이 돌기 시작한 샘은 나를 업고 가네 매고 가네 하시다가는 내가 보다 완강하게 거부하자 그러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전화를 할테니 전화로 통역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나는 그러세요, 그럼~ 하고 전화를 끊었으나 불판에서 삼겹살이 익는 둥 마는 둥 하는 찰나 전화가 오고 저 편에서는 체육샘과 원어민 샘이 수화기를 바꿔가며 자신들의 의견을 과다하게 피력하고 있었다. 아, 네네 서로 사랑하신다구요? Oh, he told you 어쩌구 저쩌구. 나는 삼겹살을 씹다가 물을 마시다가 꺼억꺼억 영어로, 우리말로 정신 없는 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그렇듯 지옥같은 저녁이 지나고 고통은 밤부터 시작되었으니 사포로 뱃속을 사악사악 문지르는 듯한 통증이 장장 새벽까지 꼬박 진행되면서 급기야 실신, 응급실에 누워 수액을 맞으며 아침을 맞게 된다. 아, 인생은 왜 이리 고달픈 것인지. 미련한 것. 다리 때문에 독한 정형외과 약을 지어먹고 있는데다 기름기 많은 삼겹살을 먹었으니 탈이 날만도 했다. 거기다 보태어, 울리는 전화벨에 긴장한 채 혀꼬부라진 말로 무지개와 불판을 왔다갔다 했으니 뱃속에서 얼씨구나 화를 낼만도 했다. 아무튼 이후 물과 죽으로 간신히 연명해 가며 난생 처음으로 체중이 줄어 지방흡입술의 의혹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 나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먹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게 된 사이 나와 남자친구는 서로 간에 딴딴한 벽을 쌓고 있었다. 나는 내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에 부쳤고 남자친구는 나름대로 장래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내가 겉으로는 인상을 쓰고 심술을 부리고 있을지언정 마음으로는 여전히 그를 꼭 붙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손에 쥐면 서서히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나와 멀어져갔다.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던 우리는 그렇게 먼 거리를 둔 채 홀로 지쳐가고 있었고 서로에게 웃음을 주고 위안을 주는 시간보다 다투고 침묵하는 시간들이 더 많아졌다. 나는 내가 없는 곳에서 그가 더욱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주길 바랬으나 그는 나를 아픈 말등에 호되게 채찍만 가하는 가혹한 마부처럼 여겼던 것 같다. 이렇듯 우리의 언어는 점점 더 어긋나기 시작했고 항상 먼저 웃음을 건네고 말을 건네던 나는 기어이 그에게 아무 말도 하기 싫어졌다.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그가 다가와서 말을 걸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민감했던 그는 길어진 나의 침묵을 이별의 의미로 받아들인듯 했고 어느 날 모든 것을 정리하겠다는 글을 남긴 채 멀어져갔다. 헤어짐을 생각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런 식의 헤어짐은 상상하지 못했고 너를 위해 떠나주는 게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배려라는 듯한 그의 글이 당혹스럽고도 거북스러웠다. 하지만 정말로 모든 것은 끝이 났고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동안 복잡한 감정 때문에 힘에 부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잘 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상처가 아니라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마웠던 그에게 여러가지 심한 말들로 상처를 줬다. 그것은 내가 몸이 아팠다고 해서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겨울로 접어들면서 오른쪽 어금니 뒷편에 사랑니가 얼씨구나 드러눕기 시작했고 나의 고통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대학 병원에 수술 예약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요즘 음력으로 날짜를 헤아려봤다. 구래구래, 구정이 지나야 진짜 2006년인 거니까 올해의 액운은 요 사랑니로 마감일꺼샤. 나름의 위안을 해 본다. 두 번째 어금니처럼 튼튼하게 생겨주신 의사샘께서 나의 사랑니를 아작 내고 들어냄과 동시에 모든 아픔의 찌꺼기들도 함께 사라져 버렸음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쉬우면 어디 인생 한 번 살아볼만 하겠다마는. 하지만!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이제는 나도 다시 행복해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나는 다시 건강해졌고 더욱 성숙된 새로운 사랑을 꿈꾸고 있다. 지난날의 고통은 아마 앞으로 다가올 행복을 더욱 달고 맛있게 느끼게 해 줄 당의정이 될 것이다. 아듀- 2005. 그만하면 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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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1-01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엔 좋은 일이 가득하길 빕니다...

깐따삐야 2006-01-01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아프락사스님도 Happy New Yea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