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8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송무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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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는 내가 지금껏 알아 왔던 책 속의 주인공들 중에서 그 맹목성과 단순성에 있어 감히 필적할만한 자가 없는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공부를 더더욱 열심히 하고 몰라보게끔 흠씬 다이어트라도 하면 그가 나를 돌아볼지도 모른다, 고 착각하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혼자 열쒸미 살며 희망을 품던 과거의 어느 시절엔가의 나도 개츠비만큼 끈질기진 못했다.

졸리거나 피곤하다 보면 공부를 소홀히 할 수도 있는 거고 맛있는 음식을 보면 오늘까지만 먹느니 어쩌니 하다가 결심이 무너질 수도 있는 거고 그러다보면 어느샌가 본래의 나로 돌아와 있고 '솔직히 그다지 많이 좋아한 것도 아니었는데 뭐. 난 그냥 내멋대로 살거얌.' 대충 이런 심심한 전철을 밟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한편으로 나 자신을 영낙 없는 로맨티스트의 부류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개츠비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미는 지경으로 추락했다.

그는 제목맞다나 과연 '위대한 개츠비'였다.

돈 없고 무능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개츠비는 어려서부터 야심만만한 꿈을 키우고 제 1차 세계대전 중 미육군 장교가 된 그는 상류 가문의 데이지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는 유럽 전선으로 떠나야 했고 개츠비를 기다리지 못한 데이지는 대부호인 톰뷰캐넌과 결혼하고 만다.

돌아온 개츠비는 데이지에 대한 변치 않는 애정과 그리움으로 고뇌하지만 결국 그녀를 떠나보낸 것은 자신의 가난이었음을 절감하고 주류 밀조업에 손을 대게 된다.

그 이후 사업은 엄청난 부를 가져오고 거부가 된 그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데이지를 따라 뉴욕으로 가서 한 마을에 호화저택을 마련한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바로 이 책의 나레이터인 닉이다.

닉은 개츠비와 자신의 8촌 격인 데이지를 다시 만나게 해주고 개츠비와 데이지는 과거 사랑했던 추억에 잠겨 다시 로맨틱한 꿈을 꾸지만 데이지의 이기주의는 오히려 개츠비에게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씌우게 되고, 결국 개츠비는 그 누명 때문에 살해된다.

개츠비가 살아 있던 시절, 그의 저택에서 파티가 열릴 때마다 불빛을 좇는 나방처럼 찾아들었던 많은 사람들은 단 한 명의 이름 모를 손님과 닉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는다.

데이지를 위해 부자가 되고 부자가 되면 못다한 사랑이 이루어지리라 믿었던 순진한 개츠비는 데이지의 세련된 이기주의 앞에서 또 다시 버려지고 짓밟힌다.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선가, 남편의 사업이 망하자 자신이 먼저 배신하고 돌아섰던 첫사랑에게 목돈을 빌리러 오는 여자가 나왔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저 무뇌충같으니라구, 저 뻔뻔한 여편네 좀 보시게, 그저 만만한 게 첫사랑이라고 어디 낯짝을 들고 나타난담, 별별 푸악질을 다 해가며 역시나 또 쓸데없이 몰입했던 적이 있는데 그 여자 역시 데이지 앞에선 명함도 못 내미는 지경으로 추락했다.

남편의 외도를 묵인하면서까지 안락하고 풍요로운 도회지 생활에 젖어 있던 데이지가 개츠비에게 기대했던 것은 무료한 일상을 위한 자극, 욕구 불만을 채워 줄 애정이었을 뿐 개츠비 그 자신은 아니었던 것이다.

첫사랑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전부를 걸었던 개츠비와는 달리, 데이지는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위해 첫사랑을 거짓과 불행 속으로 통째로 내어준다.

이렇듯 한 편으로 기우는 사랑은 결국 파국을 불러온다.

개츠비는 그 자신이 가진 유일무이한 단순함과 순진성으로 인해 위대할 수는 있겠지만 행복할 수는 없는 사람이다.  

데이지를 포기하지 못하는 개츠비의 사랑은 일종의 병(病)이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야 말할 것도 없지만 이미 물질주의가 만연해 가고 있던 당시의 미국에서 개츠비의 로망은 진귀할만큼이나 바보스런 것이었다.

데이지는 저 혼자 놀러 간 것도 아닌 개츠비를 기다리지 않았다.

개츠비는 전쟁에서 공을 세운 뛰어난 군인이었고 건강하게 살아 있었고 조만간 돌아올 것이었고 그들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애정을 확인했다.

그러나 원할 때 손에 닿지 않는 연인을 믿으며 외로움을 견디기에는 너무 연약한 그녀였고 구체적으로 현실화되는 물질적 부피감을 사랑의 힘으로 뿌리치기에는 허영심이 많은 그녀였다.   

대개 여자들이란 데이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녀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기에는 무리가 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역시 지나쳤다.

오늘날 개츠비의 러브 스토리는 시대착오적이다.

그렇듯 시대착오적이기에 그는 진정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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