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시간을 가져야겠단 생각이 든다.

많이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바에 가려져서 그저 대강의 이해 선에서 끝나버린 것이 사실이다.

win-win으로 갈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을 위해서 목소리를 낮추고 자중할 시간인 것 같다.

이만큼 온 것도 성과라면 성과일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 더욱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 어느 때 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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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참 좋다. 오랜만에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점심 식사를 마쳤다. 봄바람 향기가 난다. 즐겁고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 엄습한다. 오늘도 평소처럼 사람들과 농담을 하면서 밥을 맛있게 먹었다. 사람은 힘든 일이 있어도 밥을 먹어야 하고, 오히려 힘든 일이 있으면 밥을 더 많이 먹어야 하고, 그리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죽지는 않는다.   

아침에 엄마와 언쟁이 있었다. 언쟁이라기보단 무차별 공습 즈음 되었다. 커피잔의 손잡이를 꼭 쥔 채로 나는 거의 아무 말도 못하고 잠자코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 반복되고 있었다. 다시는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또 이렇게 되고 말았다. 항상 무한히 자유롭기를 갈망해 왔는데 막상 무한한 자유를 주겠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심장 한 켠이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머릿속은 백지가 되어버렸고 가슴은 허했다. 자유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는 건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시험문제로도 종종 나왔던 것이다. 책임 없는 자유는 방종이란 것도. 하지만 대개 그렇듯 머리로 이해하는 정답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은 다를 때가 많다.

돌아보면 지금껏 나는 상당히 순종적이면서 고분고분한 딸이고 동생이었다. 겉으로는 고집을 부리고 반항을 했지만 그건 그저 결정 이전의 하찮은 모션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는 인생의 고비마다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한 번도 내 뜻에 따라 결정해 본 적이 없었다. 크게는 학교 진학 문제부터 시작해서 작게는 쉬는 날 누군가를 만나는 일까지 일일이 가족과 의논을 거쳤고 허락을 받은 이후에 실행에 옮겼다. 나는 오래도록 그런 과정에 매우 익숙해 있어서 불편한 줄을 모르고 살았다. 엄마는 네 마음대로 했다가 일이 틀어졌을 경우 책임은 고스란히 너 혼자 져야 한다고 어릴적부터 누누히 강조하셨고 나는 혼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왠지 막막하고 두려워서 혼자 버텨보던 과정 중에도 종종 엄마의 품으로, 가족들의 품으로 컴백하곤 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했다. 링 위로 수건을 던지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뭔가 잘못되어가는 것 같아,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것 같아, 도와줘요. 

그 이후 가족들은 상처 입은 나를 보듬고 내가 벌여놓은 일들을 수습해 주면서 나에게 다짐을 받곤 했다. 이제 앞으로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내 마음대로 혼자서 결정하지 않기를. 나는 엄마가 골라준 옷을 입고 엄마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엄마가 일러주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승낙을 하고 거절을 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편하고 순조로왔다. 실수는 드물었고 실수를 하고나서도 멋지게 넘기는 방법을 익혔으며 꼼꼼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다. 간혹 엄마가 싫어할만한 일을 했다는 자책감이 들면 엄마가 물어오기도 전에 늘 먼저 무릎을 꿇고 참회를 했다. 누구와도 상관 없이 이건 정말 아니다, 라는 스스로의 판단이나 느낌보다는 나를 향한 가족들의 표정이나 염려에 더 많이 흔들리곤 했다. 어떤 일에 마주했을 때 할 수 있을거야, 라는 확신은 잠깐 뿐이었고 너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은 못한다, 너는 똑똑하고 튼튼한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라는 주술과도 같은 엄마 말씀이 머릿속과 마음속을 빙빙 맴돌곤 했다. 그런데도 참으로 모순인 것은 나는 늘 범상치 않은 상황, 넘기 힘든 산에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간다는 그 점이다. 나 자신 여리고 무른 사람이라고 스스로도 인정하고 주변 사람들도 귀가 닳도록 이야기 하는데도 나는 언제나 강한 사람도 피해가고 싶어하는 평범하지 않은 길, 어려운 길을 자초할 때가 많다.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냥 그런 길, 그런 상황, 그런 사람에게 더 애정을 가지게 되고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가족들 품으로 돌아와 한동안 조용히 고분고분 지내다가도 어느 정도 회복했다 싶으면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나 곤란한 상황에 심신을 내맡긴다. 그리고는 오늘 아침같은 풍경이 또 다시 지겹게 반복되는 것이다.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 자신이 어떤 잘못된 결정을 내려서 불행해지는 것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족들이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살아오질 않았다. 언제나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보듬었고 운명공동체처럼 똘똘 뭉쳐 지냈다. 이미 결혼을 해서 독립을 한 오빠도 중요한 사항을 의논할 때는 아내 이전에 여전히 부모님부터 찾는다. 실제로 우리 엄마는 자타가 인정할만큼 현명한 분이고 피로와 긴장으로 쓰러지는 한이 있을지언정, 자식에 관한 일이라면 절대 허투루 판단을 내리실 분이 아니다. 오빠와 내가 능력 이상을 발휘하며 살 수 있었던 것도 엄마의 공헌이 크다. 나는 지금껏 그런 엄마에게 모든 것을 의논하며 푹신 기대어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내가 원하는 결정을 밀고 나가려면 엄마로부터의 독립 이외엔 방법이 없게 되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뚜벅뚜벅 걸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어릴 때처럼 혼자 책임을 져야 하는 막막함이나 두려움 때문에만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니다. 나를 정말로 힘들게 하는 것은 나와 분리됨으로써 엄마가 느끼게 될 상실감 내지 배신감, 그리고 비록 떨어져 지낼지언정 마음 속으로는 더 간절하게 나를 향해 마음을 쓰고 염려하실 게 분명한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당신 걱정은 말라고, 당신도 당신의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내가 독립한 이후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말씀하시지만 여전히 내가 내 결정을 접고 지금처럼 지내길 바라고 계실 것이 분명하다. 이미 훌쩍 커버린 딸에게 회초리를 들 수도, 자존심 다치는 심한 말을 할 수도 없게 되어버린 상황에서 엄마도 무척 괴로우실 것이다. 오로지 결정은 나에게 달렸다.

내 뜻대로 밀고 나가서 행복해질 자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거의 한 몸처럼 똘똘 뭉쳐 지냈던 가족의 품을 떠나서 과연 독하게 마음을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해지든 불행해지든 뒷감당을 충실히 해내며 씩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마 내 삶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내가 정말로 엄마의 품을 떠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면. 혼자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기 위해 독립도 서슴지 않는 최초의 선택이 될 것이다. 엄마한테 나 혼자서도 정말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도 싶고 이제 연세가 드셔서 예전과는 달리 골똘하게 무언가에 신경 쓰다보면 금방 지쳐버리는 엄마에게 이 무슨 못되먹은 짓거린가 싶기도 하다. 아무리 내 인생은 내꺼라지만 지금껏 수혜받은 것은 싸그리 무시하고 이제부터 내 인생이니 내멋대로 하겠다니 과연 그래도 되나 싶다. 나는 정말 나의 미래는 두렵지 않다. 멋모르고 철모르는 나는 이 길이 내 길인가 보다 하고 미련하게 그 길을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은 힘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다만 가족들이 나로 인해 마음을 다치는 일이 가슴 아프고 두려울 뿐이다. 그리고 과연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감행할만한 선택인가, 지금 고민에 빠져있다. 정말로 어찌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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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저녁엔 이번에 졸업한 아이들과 고기를 먹었다. 어찌나 잘들 먹어대는지 나중에 아들 삼형제만 낳으면 단번에 집안 거덜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맛있게 잘 먹는 자식들을 보는 부모 마음이 그런 것일까. 더 이상 고기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오늘만큼은 마음껏 먹여서 보내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고작 2년차 샘이지만 올해 만났던 아이들에겐 미안함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병가 이후에 돌아간 교실은 그야말로 폭격 맞은 이후의 전쟁터 같았지만 나는 내 몸 돌보기에도 급급해 교실이나 반 분위기의 재정비에 제대로 힘쓸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뭔가 미진한 상태로 어영부영 졸업을 맞게 되었는데 사내 아이들이라 그런가, 나에 대해 분명히 서운한 감정이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밝게 웃으며 헤어졌다. 우리 때문에 힘드셨죠? 라는 T의 말에 나 때문에 힘들었지? 라고 답할 수 밖에 없었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사실 너희들 보다는 나의 건강과 나의 연애에 훨씬 더 애를 쓰고 공을 들였단다. 그리고 미안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발령 첫해 아이들과의 만남을 '운명'으로 규정짓고 열정을 쏟았던 것에 비해 작년엔 아이들과의 만남을 단지 '스치는 인연'이나 '하나의 과정' 정도로 밖엔 여기지 않았다. 나로써는 덜 상처 받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이었지만 매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오히려 상처보다도 더 깊게 오래 남을 것 같다.

어제 정오부터는 다른 학교로 전근가시는 샘들과의 송별회가 있었다. 학교란 곳은 매년 이런 풍경에 익숙하다. 누군가 떠나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는. 웃으면서 담담하게 헤어질 수 있는 것은 같은 지역 내에서 또 다시 만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돌고 도는 인연인 셈이다. 하지만 어제 저녁에 만났던 박 선생님은 도관 신청을 내셔서 고향인 경북으로 가게 되셨다. 나와는 발령 동기인데 비슷한 시간에 교육청에 도착, 서로 뻘쭘하니 쇼파에 앉아 학교에서 픽업해 가기를 기다렸던 그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04년 발령동기들은 다들 타향살이를 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쉽게 뭉쳤고 결국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을 하나 결성해 꾸준히 만나기 시작했다. 박 선생님이 고향으로 가게 되신 것은 정말 잘된 일이지만 늘 먼저 연락을 해서 모임을 이끌고 부담 없는 성품으로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셨던 좋은 선생님 한 분이 일부러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마주치기 어려운 곳으로 멀리 가신다니 참 아쉬웠다. 아마 같은 아파트 한 동에 살았던 최 선생님은 보내는 마음이 더욱 남다를 것이다. 최샘과 나는 조만간 불시에 박샘을 찾아가기로 공모했다. 언제나 몰래카메라 같은 충격을 갈망한다는 박샘. 어디 한 번 놀라 보시라. 흐흐. 아마 우리의 박 선생님은 특유의 어설픔과 귀여움으로 무지막지한 여고생들의 마음을 확 사로잡을 것이다.

밤새 싸댕기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을 보내다 보니 편도선이 다 부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이 너무 아프고 따가워 병원에 갔더니 세상에 이렇에 아픈 주사도 있나 싶은 주사를 한 방 놔주고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을 먹고 나서 술을 마시러 나가고 술을 마시고 들어와 약을 한 봉지 더 먹는 미친짓을 하다가 거의 혼수상태로 잠이 들었다. 오늘은 목은 많이 좋아졌는데 마음이 휑하니 좀 그렇다. 업무 마무리를 하려고 학교에 나와 있는 지금 옆자리가 썰렁하다. 박 선생님도 지금쯤 짐을 싸서 떠나셨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가 헤어지는 일이 문득 쓸쓸하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진다. 목에 걸리고 마음에 걸리는 느낌, 그런 느낌으로 헤어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목이 아직도 따끔하다. 그만 가서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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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졸업이란걸 시켜봤다. 어제 3학년 아이들이 졸업을 했다. 공교롭게도 3학년 담임들이 지금 휴가 중이신 한 분을 빼곤 모두 처녀샘들이라서 마음껏 퍼지고 마음껏 풀린 마음으로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아쉬움 반, 후련함 반이라는 심정에 공감했다. 나를 제외한 두 명의 처녀샘들이 졸업식장과 교실에서 눈물을 쏟았고 오늘 점심을 같이 한 학부모님 한 분이 갑자기 눈시울이 빨개지면서 눈물을 보였다. 연한 배마냥 사근사근하고 순수한 분이셨는데 한참 어린 나는 무척 당황했고 그저 고마웠다는 말 밖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누군가와 이별을 할 때마다 나는 늘 그랬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혹은 이유가 있든 없든, 헤어지고 나면 무척 힘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이별의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 너무나 무감해 보인다. 나도 가슴이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거나 눈물이 나거나 했으면 좋겠다. 내게 헤어지는 일 자체는 그닥 어렵거나 슬프지 않았다. 문제는 늘 그 다음이었다. 나를 오래 보아왔고 잘 아는 사람들은 괜찮다. 그런데 헤어지는 당시에 아쉬워하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대개 사람들은 내가 이별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정도로 냉정하거나, 지난날 그들에 대한 감정이 별로였거나, 혹은 그들을 누구보다도 더 빨리 잊을거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단지 예의 상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도 헤어질 때 뭔가 좀 할 말이 있거나 눈물이 났으면 좋겠다. 어제와 오늘에 거쳐 내가 참 못되먹고 차가운 인간처럼 보였다. 나 스스로만 모르고 있을 뿐, 원래 그렇고 그런 사람일지도.

아까 그 어머님이 눈물을 보이시다가 인사를 하고 나가셨을 때도 담임이었던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데 다른 테이블에 앉아 계셨던 다른 반 선생님이 어머님을 따라 뛰어 나갔더랬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지만 이미 타이밍도 놓쳤으니 같이 뛰어나가기도 뭣해서 그냥 계속 고기만 먹었더랬다. 다리를 다쳐 학교도 제대로 못 나가고 아이들에게 별로 좋은 담임 노릇을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그에 비해 넘치는 대접을 받고 있단 느낌이 들어 마냥 불편하고 미안하기만 했다. 그런데 남들 보기엔 고기 먹는 일에만 혈안이 된, 보기 드물게 식욕 왕성한 처녀샘으로 밖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줘야 하는 타이밍이 있다는 걸, 이제 혼자서 공부만 해도 좋은 학생이 아닌 이상 때때로 그런 모션도 필요하다는 걸, 종종 느낀다. 나같은 인간은 하여간 차암 세상 살기 힘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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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6-02-18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같으면 아직 경험은 안해봤지만, 그냥 담담할 거 같아요. 제가 그런거 별로 내색하는 스따일이 아니라서. 흠.

깐따삐야 2006-02-18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늘 뭐든지 한 박자씩 늦는 것 같아요. ^^
 


호랑이를 보러 간 조제와 츠네오

바쁜 가운데 딴짓을 하게 되는 건 학창시절부터의 오래된 습관이다. 그런데 막상 알고보면 나같은 사람들이 어지간히 있는 것 같다. 시험 전 날 소설을 읽거나 편지를 쓰거나 서랍 정리를 하는 사람들. 정신 상태가 그다지 쌈빡하지 못한 사람들. 내 주변은 오늘도 겁나 바빠 보인다. 그런데 나는 하나도 안 바쁘다.

안 바쁘다고 해서 벌 받았나 보다. 위의 글 써놓고 한 시간 정도 들입다 바빴더랬다. 음료수까지 사 나르며 단순 노동에 시달렸다.

어젯밤 늦은 시간에 이 영화를 혼자 보았다. 방 안에 서랍처럼 생겼다 싶은 것들은 모조리 활짝 열어놓고 버릴 것, 안 버릴 것까지 몽땅 모아서 한 켠에 쌓아둔 채 컴퓨터 앞에 앉아 곰플레이어를 클릭, 이 별스런 제목의 일본 영화를 보았다. 문득 생뚱맞게도 사이보그가 나오는 SF영화를 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으나 마땅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아 선택한 영화였다. 너도 나도 좋았다는 말이 많아서 전부터 한 번 보고 싶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영화는 제법 쿨하고 재미있었다. 츠네오(스마부키 사토시)는 너무나도 솔직하고 귀여웠으며 조제(이케와키 치즈루)는 독특하고 사랑스러웠다. 된장국과 달걀말이, 생선구이를 올린 그들의 아침 밥상은 코끝에 담백한 향기를 폴폴 풍기며 얼마전 일본에서의 아침 식사를 떠올리게끔 하기도 했다.

심야 마작 게임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츠네오는 어느 날 새벽 언덕길을 달려 내려오는 유모차와 마주치고 유모차 안에서 다리가 불편한 소녀, 조제를 발견한다. 조제는 프랑소와즈 사강의 소설에서 따온 이름. 지금까지 그녀는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고 할머니가 주워온 잡다한 책들을 읽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자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이미 기막힌 미인을 여자친구로 두고 있던 츠네오는 헝클어진 단발머리에 시큰둥하고 독특한 조제에게 점점 이끌리게 되고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조제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그녀와 동거 생활에 들어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호랑이를 보러 가고 싶었다는 조제와 함께 츠네오는 호랑이를 보러 가기도 하고,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치는 영상이 어른거리는 방 안에서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바다를 보러 가기도 한다. 그렇듯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며 알콩달콩 즐거운 연애를 하던 그들에게도 이별의 시간은 오고 츠네오는 스스로 그녀로부터 도망쳤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조제는 혼자 먹을 분량의 생선을 구우며, 의자에서 내려오기 위해 철퍼떡 다이빙을 하며, 츠네오가 없는 그녀만의 일상을 담담히 꾸려간다.

츠네오의 여자친구가 조제를 찾아와 다리가 없다는 너의 무기가 솔직히 부럽다고 말하자 조제가 하는 말,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 너도 네 다리를 잘라." 난 푸핫, 웃으며 참 조제답다고 생각했다. 조제는 가란다고 해서 정말 가버릴 사람이면 가버리라고, 그렇지만 내곁에 남아달라고 진심을 다해 츠네오를 붙잡았지만 츠네오에게 집착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츠네오와 함께 하는 동안 늘 생각했을 것이다. "너도 나를 만나 즐거우면서 뭘 그래." 츠네오가 떠날 때 조제가 그에게 선물한 책. SM 킹. 다시 푸핫, 웃으며 참 조제스럽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서 이어서 쓰자. 앗싸, 퇴근 시간!)        

사람을 만나고, 만나서 사랑하고, 사랑하다 헤어지는 과정이 이렇듯 상큼하고 담백할 수 있을까. 물론 뜨겁고 끈적한 느낌이 드는 사랑이라고 해서 더 진실되다거나 더 아름답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만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맑고 차가운 도랑물이 졸졸 흐르는 것처럼, 흐르는 물을 사이에 두고 물빛에 반사되어 하얗게 빛나는 얼굴을 마주하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처럼, 정겹고 슬프고 사랑스러웠다. 츠네오는 조제를 업고서, 유모차와 렌트카에 태워서, 하늘의 구름처럼, 바다의 물고기처럼 멀리멀리 떠다니며 자유롭고 싶었던 그녀에게 집 밖의 세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츠네오 스스로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가도 가도 내가 있을만한 적당한 자리는 없어 보이는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새롭게 배워나가며 더욱 성숙해지는 계기를 맞는다. 조제와 헤어지고 난 후 옛 여자친구와 길을 걸으며 내내 찌푸리고 있던 츠네오가 갑자기 펑펑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에서 나는 공감했다. 사랑을 하고 나이를 먹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훌쩍 어른으로 커버린 소년의 마음 속에 문득 북받쳐오르는 슬픔같은 것.

예전의 나도 그런 기억이 있다. 누군가를 잃어버렸을 무렵이었다. 그렇지만 뭔가를 잃어버리고도 그게 뭔지를 잘 몰랐을 그런 나이였을 것이다. 오후 수업이 없던 그 날. 그저 여느날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고 시간은 정오 무렵이었다. 차창 밖은 한창 봄이었고 나는 조그만 모자가 달린 귀엽고 화사한 감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서 새학기 강의에 대한 수다를 떨었고 얼굴이 하얘서 점퍼가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들었고 자목련은 흰목련보다 어쩐지 덜 예쁘다는 말들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더없이 평범한 하루였다. 그런데 버스에 자리가 나서 앉자마자부터였나, 갑자기 울컥하더니 쉴 새 없이 눈물이 쏟아지는 거였다. 마침 손수건도 가진 게 없어 휴대용 화장지를 꺼내서 남들 모르게 눈물을 닦아내고 속으로 꺽꺽거리면서 나는 대체 이 눈물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했었다. 성이 차지 않게 나와주었던 지난 학기의 학점이라든가, 평소 나를 서운하게 대했던 사람들, 엄마와의 사사로운 언쟁 등을 계속 떠올렸지만 이렇다할 대답은 나와주지 않았고 이러다가 탈수증으로 쓰러지겠다 싶을만큼 많은 눈물이 솟아오르고 또 솟아올랐다. 아무튼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그 지경이었고 뒤도 안 돌아보고 후다닥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길, 눈물은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후련했고 배가 고팠고 막 눈물이 솟을 때보다 마음은 어쩐지 더 슬픈 것도 같았다.

나는 지금도 그 때 내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 잘 모른다. 누군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정말? 아무튼 영화 속 츠네오를 보면서 그 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냥 이해가 되었다. 그냥 이해가 되어버리는 상황. 자잘한 설명을 듣지 않고도 저절로, 마음으로 이해가 되어버리는 순간. 어깨를 토닥여주며 너도 이제서야 조금 어른이 되었구나. 그런 말을 건네고 싶은 순간. 그랬다.

츠네오는 옛 여자친구와 분명 더욱 성숙하고 멋진 연애를 할 것이다. 조제는 시장을 봐서 따듯한 된장국을 끓이고 부드러운 계란말이를 만들고 고소하게 생선을 구우며 스스로를 위한 밥상을 차릴 것이다. 집으로 가져가고 싶은 구름, 손 안에 가두고 싶은 물고기들, 하지만 그들이 바람 속에 물결 속에 미끄러져 가듯 사랑도 마찬가지다. 파란 하늘을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는 그 순간, 찬 물 속에 손을 집어넣고 물고기의 미끈한 등을 살짝 스치는 그 순간, 주어진 그 시간을 열렬히 느끼면 되는 것이다. 아쉽지만, 아쉬워 하다가는 그 시간마저 영영 놓칠지도 모르니까.  

그 모든 아쉬움을 떠나서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 내 곁에 있다면, 그의 든든한 팔목을 꼬옥 붙잡고 있을 수만 있다면, 호랑이처럼 두려운 이 세상과 마주하는 일도 한 번 쯤 즐길만한 모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섭고 막막한 세상 앞에서 츠네오가 조제에게 홀로 서는 용기를, 조제가 츠네오에게 둘이 하는 사랑을 가르쳤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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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8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03-08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그럼~요. 감사합니다. ^^

이게다예요 2006-11-14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와 닿네요. 재미있었고 또 울컥하기도 했던 영화였어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깐따삐야 2006-11-14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다예요 님, 반갑습니다. 서재에 종종 놀러갈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