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버트 드니로(예비장인)와 벤 스틸러(예비사위)
토요명화로 이 영화를 보았다. 예전에 보려다가 그만 둔 영화였는데 왠지 가끔 미국식 유머 코드를 맛볼 수 있는 코메디 영화가 당길 때가 있다. 영화는 기대보다는 덜, 하지만 재미있었다. 로버트 드니로에 대해서야 말할 것도 없고 예비 사위로 나오는 벤 스틸러란 배우는 웨딩 싱어의 아담 샌들러만큼이나 순수하고 소심하고 엉뚱한 젊은 남자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다른 나라나 우리나라나 착하고 반듯한 남자는 어딘지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남자 간호사 그렉(벤 스틸러 분)은 애인인 팜(테리 폴로 분)에게 청혼하기 전에 그녀의 아버지인 잭 바이런(로버트 드니로 분)의 승낙부터 받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CIA 심리분석가 출신인 잭은 의심이 많고 비판적인 성품으로 그렉이 그의 마음에 들기란 쉽지가 않다. 결국 예비 장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거짓말까지 하게 되는 그렉. 팜의 여동생의 결혼식을 앞두고 일은 자꾸만 그렉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꼬이고 그렉은 예비 장인의 견디기 힘든 심술과 훼방에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잭은 딸 팜이 진심으로 그렉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렉을 잡으러 공항으로 달려가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영화를 보면서 공감했던 건 반드시 CIA 심리분석가 출신이 아니더라도 결혼 적령기의 자식을 두고 있는 부모님들은 대개 타고난 능력을 넘어서 뛰어난 독심술가로, 관상학자로, 예언자로 삼단변신까지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잭에게 팜만큼 아름답고 똑똑하고 괜찮은 여자란 없는 것처럼 보이고 딸이 사귀는 남자친구들은 어딘가 죄다 부족해 보이기만 한다.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물증을 확보해 확인하기 전까지는 몽땅 거짓말같고 순진한 딸이 음흉한 놈한테 홀리고 만 것이라는 의심을 끝까지 떨쳐내지 못한다. 남자의 속성을 잘 아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딸이 데려온 남자가 더욱 못마땅하고 의심스러운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예비 장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예비 사위의 모습도 재밌었지만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딸과 떨어뜨려 놓으려는 아버지의 모습도 참 귀여웠다. 나는 아직 부모가 되어보진 못했지만 그 마음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집은 그렇다. 본래 무대책이 상대책이라고 생각하며 사시는 아빠는 앞으로 사위와 함께 마시겠다며 이런저런 술을 모으고 계신다. 오래 묵은 양주부터 관광지에서 사온 토속주까지, 아빠는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면 만사 오케이를 하실 기세다. 사위의 조건 1 - 술을 좋아할 것. 사위의 조건 2 - 술을 잘 마실 것. 아빠답다. 반면에 엄마는 다르다. 남자 보는 취향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두상이 잘생긴 남자를 찾아오라는 것이다. 두상이 잘생긴 남자라니 토끼 잡듯 활 매고 사냥을 나갈 수도 없고 대략 난감하다. 엄마가 말씀하시는 잘생긴 두상이란 옆에서 보면 마치 물음표처럼 뒤통수가 봉긋하게 올라온 형새를 가리킨다. 천재형 두상이기 때문에 잘만 보좌하면 뭐든지 해낼 수 있는 타입이란 것이다. 천재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친오라버님께서 바로 그 두상을 가지고 계신다. 평균에 비해 사이즈가 좀 크고 뒤통수가 뽈록하고 딴딴하다. 간혹 내 허벅지라도 베고 누우면 무슨 바윗덩어리 올려놓은 것처럼 묵직하니 고통스러웠던. 두상이 그렇지 못하면 아예 MC몽처럼 생겼던가, 적어도 김용만처럼은 생겨줘야 한다나. 요즘 트렌드인 호리호리하고 야들야들한 꽃미남을 싫어하시는 엄마의 취향은 참 독특하달 수 밖에. 나의 취향과는 별도로 우리 부모님은 좀 이상하신 것 같다. 어떻게 딸과 평생을 살 사람을 보는데 술을 잘 마시는지의 여부와 머리통 모양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인지. 그저 머리만 크고 술만 잘 마시면 장땡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쯤은 나도 알지만 그래도 좀 뭔가 미심쩍고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 얼굴 좀 작고 술 못 마시는 남자도 괜찮다고 생각해오던 나였지만 부모님이 다년간 저런 주장을 하고 계시니 이젠 길을 가다가도 두상 좋은 남자 보면 괜히 끌리고 술자리에서 주저주저하는 남자들 보면 저걸 어디다 써, 라는 망할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게다가 나처럼 단순한 애한테 저런 단순한 생각을 주입시키다니, 우리 부모님 살짝 경솔하셨던 것 같다.
아무튼 영화를 보면서 대외적으로는 결혼 적령기에 이른 나한테도 머지 않은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내 마음에 들어야 하겠지만 기왕이면 부모님의 마음에도 쏙 드는 사람이면 좋겠다. 뭔가가 잘 안 맞아서 서로 힘을 소진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지난 연애에 너무 지쳐서 이젠 좀 편하게 가고 싶다. 아슬아슬 마음 졸이는 외줄타기 같은 것 말고 양편으로 넓게 잔디가 펼쳐지고 그 사이로 난 평평하고 가뿐한 길. 그런 길로 갔으면 좋겠다. 살고 사랑하는 게 모험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고 여행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는데 요즘 나는 살고 사랑하는 건 생활이라는 생각을 한다. 낭만이 아니라 생활에의 용기를 가진 사람, 그런 사람 둘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