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키이라 나이틀리 분)

햇볕 따듯했지만 바람은 찼던 어제. 소심한 청년과 함께 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그 청년을 닮아 있었다.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지만 세심했으며 등장인물은 제각기 귀엽고 매력적이었다. 크고 검은 눈동자 속에 지성과 장난기를 함께 머금은 엘리자베스(키이라 나이틀리 분)는 아름답고 싱그러웠으며, 오만한 남자의 진실, 무뚝뚝한 남자의 로망이 뭔지를 보여주겠다는 듯 영화 시작부터 엔딩까지 진지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다아시(매튜 맥파든 분)는 의젓하고도 어쩐지 귀여웠다. 미스터 다아시처럼 악의가 없는 채로 겉과 속이 영 딴판인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딘지 수줍고 귀여운 데가 있다. 멋진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영화 속 다아시의 표정과 마주친다면 쿡, 하고 웃음이 터질 것만 같다.

부유하고 명망 있는 집안으로 다섯 딸들을 시집 보내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삶고 있는 수선스런 어머니와 딸을 조용하고 너그럽게 사랑하는 아버지. 그리고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닌 자매들과 함께 북적거리며 살고 있는 엘리자베스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믿고 늘 당당하게 자존심을 지키며 사는 낭만적이고도 총명한 아가씨다. 아무런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하고 지루한 시골 마을에 어느 날 '빙리'라는 신사와 그의 친구 '다아시'가 여름 동안 저택에 머물게 되고 댄스파티에서 마주친 빙리와 엘리자베스의 언니는 첫눈에 호감을 갖게 된다. 반면에 다아시로부터 함께 춤을 추자는 제안을 거절당한 엘리자베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되고 그에게 이끌리면서도 그를 멀리하려고 한다. 두 사람의 거리는 좁혀질 듯 좁혀지지 않고 빙리와 언니를 헤어지게 만든 장본인이 다아시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다아시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반감은 더욱 커지기만 한다. 두 집안의 수준 차이 때문에 결혼을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고 솔직히 말하는 다아시를 엘리자베스는 오만에 찬 속물로 여기고 거부하지만, 이후 동생의 결혼을 도와주고 빙리와 언니를 다시 맺어주려고 노력하는 다아시의 모습을 보면서 엘리자베스는 스스로가 다아시에 대해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깨닫게 되고 조금씩 그의 진실을 향해 마음을 연다. 이렇듯 몇 차례의 우여곡절을 거쳐서 결국 극성스런 어머니의 바람대로 빙리는 언니와,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와 맺어지게 된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나왔던 '마크 다아시' 또한 '다아시'였는데 그 다아시 또한 처음에는 브리짓에게 무관심했고 퉁명스러웠다. 마치 처음 보는 여자에게는 무심한 듯 불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진실한 남자의 징표이기라도 한 것처럼. 물론 그들이 지닌 태생적, 본래적 고지식함은 고귀한 것이다. 요즘 세상엔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일부러 고지식한 척 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물론 고지식하고 무뚝뚝한 그들이 그 고지식함과 무뚝뚝함 때문에 사랑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외연에 불과할 뿐, 내포는 역시 진실일테니깐. 게다가 브리짓처럼, 엘리자베스처럼, 처음에 대개는 그런 사람들로부터 상처 받기 십상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 나도 어떤 고지식한 예비역으로부터 빌어먹을(!) 상처를 받은 기억이 있다. 조별로 토론을 거친 다음 결과물을 제출해야 하는 수업이었는데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서로 낯설었던 조원들은 다들 본숭만숭. 결국 성질머리 급한 내가 "서로 이름부터 소개하면 좋지 않을까요?"라고 운을 띄우자 가장 연세 지긋해 뵈는 예비역 어르신이 팔짱을 풀며 하던 말, "계속 모일 것도 아닌데 꼭 이름을 알 필요가 있습니까?" 지금같았으면 어이, 노땅, 너 잘났다 뿡! 해버리면 그만인데 순진무구한(?) 새내기였던 당시의 나는 약간 민망한 분위기인 건 감지했으면서도 여전히 분위기 파악 못하고 고집을 부려대며 그래도 이름을 알아야 어쩌구... 하고 앉아있고 옆에 있던 친구 내 팔뚝을 쿡 찌르며 귓속말로 "야, 저 XX 재수 없다. 고만둬." 결국 그 날의 토론은 흐지부지 그만두게 되었고 교재와 머릿속을 오가며 대충 퍼즐 맞추듯 짜집기한 내용으로 레포트를 내고 했던 것 같다. 그 때의 기억이 오롯하게 기억이 나는 걸 보면 퉁명스런 남자의 매력까진 모르겠고 평균적인 수준보다 좀더 퉁명스런 남자가 뇌리에 확실히 각인되는 것 만큼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결혼을 향한 지점까지 서로 자존심 대결을 벌이며 갖가지 오해와 편견 속에서 아웅다웅 하는 양상은 19세기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진 점이 없어 보인다. 그렇듯 서로 다른 타인이 우연히 만나서 이리저리 부딪치고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헤어지지 않고 평생 같이 살아야 하는 결혼까지 하는 것을 보면 사랑의 에너지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예나 지금이나 사회 안에서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 새삼 재확인하게 된다. 물론 현실의 삶들이 죄다 영화처럼 서로의 진실에 반해 사랑하고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앤딩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건 픽션일 뿐인데."라고 냉소하지 않고 유쾌하고도 따뜻해지는 느낌을 갖게 되는 걸 보면 어떤 현실을 살고 있든, 현실이 진실이든 페인트 모션이든, 역시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삶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진실에 반하고 싶고 진실에 반해 사랑하고 싶고 손톱 끝 발톱 끝까지 그 사람 앞에서 진실하고 싶은 것. 오만과 편견의 긴장과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싶은 그런 것.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기 위해서 이만치 열렬히 싸우는 무리들은 오직 인간밖에 없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보통씨 이 분 사랑에 대해 너무 많이 안다.

그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독자의 무릎을 치게 만드는 연애박사란 감이 오면서 과연 스스로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그의 책을 읽고나서 그에게 다가서는 여인은 등에 식은땀이 졸졸 흐르지 않을까.

내 눈빛 한 조각에서도 심리학적 의제를 발견하고 내가 말하는 모습과 내용을 바탕으로 철학사를 훑어내리며 서너번 정도 만나고 나면 언제쯤 쫑이 날 것인지도 미루어 짐작 가능할지 모르니까.

사랑의 낭만성과 합리성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남자, 이상과 현실을 총체적으로 이해한 후 바람직한 결과까지 도출할 수 있는 남자는 무진장 매력적인데다 존경스럽겠지만 그만큼 드물고도 순간, 공포스럽지 않은가.

이 책의 줄거리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만큼이나 단순하다.

엘리스란 여자가 에릭이란 남자를 만나서 연애를 하다가 헤어지고 필립이란 남자를 새로 만나서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다.

단순한 줄거리에 비해 보통씨 연애소설의 백미는 역시 연애 당사자들의 개성과 그들의 심리구조다.

몽상가인 엘리스는 사회적 의무를 함께 수행하는 동지로써의 남자(제인의 남자친구인 존), 미남인데다 능력있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에 번듯한 애인으로써의 남자(에릭)들에게서는 늘 이건 아니지 싶은 공허감을 느낀다.

엘리스의 눈에 비친 존은 성실하고 믿음직한 동지로써의 배우자이긴 해도 어딘가 로맨틱함과 섹시함이 부족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고등한 의지력에 비해 스스로에 대해서나 타인에 대해서 하등한 이해력을 지닌 에릭 또한 경박하고 답답해 보였을 것이다.

내가 잘 아는 커플이 한 쌍 있는데 남자 쪽이 에릭과 다소 비슷하다.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심심해, 외로워, 우울해'란 세 마디 말을 가장 혐오하는 부류의 남자.

이렇게 시시각각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심심하고 외롭고 거기다 우울하기까지 할 틈이 어디 있냐고 버럭 호통을 치는 남자.  (ㅋㅋ~)

사회적인 관계 내에서는 똑똑하고 사람 좋다는 평을 듣지만 가까운 사람의 속내를 읽어주고 로맨틱한 무드를 잡는 데에는 영 젬병인.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남자는 엘리스같은 여자와 엮이지 않았다.

그 남자의 그녀는 어디서든 등만 대면 코를 골만큼 수더분하며 목표를 하나 정하면 치밀하게 밀고 나가는 남자에게서 한껏 존경을 느끼는 현실감 만땅인 사람이다.

엘리스는 에릭과 헤어지길 잘했고 필립과 잘 어울린다.

그녀에게는 영혼이 있다고 말하는, 그런 이유에서 그녀를 사랑하게 된 사람이라면, 독자 입장에서 얼마나 안심을 하며 책장을 덮을 것인지 영리한 보통씨는 이미 헤아리고 있었던 것일까.

전형적인 케릭터를 가지고 열연을 펼치는 인물들을 보면서 또 다시 무릎을 탁, 치는 유쾌하고도 만족스런 공감을 했지만 여전히 미진한 질문은 남는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도식적이란 말인가. 사랑은 공식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엄마가 애호박과 팽이버섯을 넣고 끓여주신 된장찌개와 흑미밥을 먹고 출근을 해서 아침에 묽게 탄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쉬는 시간에 흰우유 한 팩과 쵸코파이를 먹었으며 점심 급식 메뉴로는 잔새우와 신김치를 넣고 함께 끓인 국, 닭다리 튀김, 오이와 상추 무침, 깍두기가 나왔는데 어쩐지 닭다리에 붙은 살점도 너무 부실해 보이고 밥의 양도 다소 적은듯 해서 남몰래 한탄하며 식사를 마쳤다. 밥이 적더라도 더 달라는 소리는 절대 하지 말라는 엄마의 당부 때문에 섭섭하다고 호소하는 배를 움켜쥐고 짐짓 배부른 표정을 지으며 급식실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결국 퇴근을 하자마자 가자미 구이와 미역나물 등으로 밥 한 공기를 순식간에 뚝딱 해치웠다. 나는 알고 있다. 모양만 한 그릇이지 엄마가 내 밥의 양에 대해 얼마나 인색한지를. 그러면서도 늘 주장하신다. "다른 애들은 네가 하루에 먹는 거 1/3도 안 먹을거다. 무슨 처녀애가 하루 세 끼를 다 고봉밥으로 먹으려고 하냐. 너 하룻동안 먹은 걸 다 쏟아보면 세숫대야로 한 대야는 나올거다." 내가 지금 하룻동안 먹은 음식들을 헤아리며 한창 먹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지금, 바로 이 시간,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저녁에 잠시 외출한 뒤 소쿠리에 담겨 있던 쑥떡을 홀라당 잡숴치웠으며(안 그러면 내가 먹을까봐) 냉장고를 열고 아이스크림을 꺼내려는 나에게 버럭 호통을 치시며 얼른 오이 두 쪽을 내미셨다. "요거 아삭하니 맛있다. 먹어봐. 얼굴에도 붙일래?"  쳇쳇쳇! "엄마, 나 진짜 괜찮은데 한... 2% 부족하지?" "아니, 50%는 부족하지. 넌 남들보다 1세기는 뒤떨어졌어. 정신이나 몸매나." 흥흥흥! 나의 자존감을 가장 심하게 무너뜨리는 장본인은 늘 우리 엄마다. 분명 친어머니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음식 다 필요없다. 난 한식을 좋아하니까 밥과 국과 반찬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는 나라가 있다면 그 곳이 곧 나의 유토피아, 지상천국이리라.

점심식사를 하면서 윤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일과계를 맡은 후로는 얼굴이 새카맣게 반쪽이 되었다. 마주치면 내 어깨를 툭 치거나 뒤에서 허리를 확 안거나 하는 못말리는 애교쟁이인데 오늘은 그녀의 입 밖으로 '공허'니 '허무'니 하는 생뚱맞은 말들이 나왔다. 생활기록부 행동발달상황 평어식으로 말하면 매사 성실근면하며 성품 또한 명랑쾌활한 그녀인데 요즘 들어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과에 지쳐 있는 것 같았다. 본래 성취지향적인 사람이 그 날이 그 날인 일과조정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있으니 그럴만도 했다. 우리가 배웠던 것, 우리가 알고 있었던 지식이 아이들 앞에서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에도 동감했다. 점점 비어가는 심심한 내면과 점점 시스템에 길들어가는 우둔한 몸뚱아리. 혹자는 우리에게 연애를 권해보기도 하지만 '줏대 없지 않으면서 친절하고, 중심을 지키면서 재미있고, 성공의 외적인 지표만 추구하지 않으면서 자기 일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필요함. 잘난 체하지 않으면서 지성적인 사람. 그녀가 주차할 때 아무리 헤매도 윽박지르지 않을 성인군자.(p.386 l 우리는 사랑일까ㅣ알랭 드 보통)'가 나타나더라도 결국엔 다시 스스로의 몫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책을 읽지는 않고 그 책을 읽어본 사람과 친해지는 노력부터 하는 사람을 보는 기분이랄까. 게으른 욕심꾸러기 같으니라구. 학급 아이들에게 동사변화를 특별한 방법 없이 그냥 암기하도록 해도 괜찮겠냐고 눈을 반짝이며 물어오는 그녀가 예뻤다. 날마다 과목별 아침자습을 따로 내어주고 지도하는 담임이라니 훌륭하오. 그러나 구닥다리식의 학습방법을 고수하고 있는 나로써는 안타깝게도 할 말이 '그 미련해 뵈는 방법 뿐이오.' 뿐이었다. 저런! 어쨌거나 매사 의욕적인 윤샘이나 50% 부족한 나나 자기계발에 대한 모색이 필요한 시점인듯 하다. 슬렁슬렁 내려왔으니 다시 힘들여 올라갈 시점.  

온라인 상의 지인이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글을 읽고 문득 마음이 싸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공감, 또 공감했다. 온전한 나만의 공간을 향한 끊임없는 갈망. 세월이 흐를수록 그 느낌은 더해진다. 무수한 책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방음이 잘 되어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만한 나만의 서재. 글 아래에 실어놓은 사진도 인상적이었다. 작지만 오래된 도서관을 연상시키는 서재였다. 아마도 밑줄이 군데군데 쳐져 있고 포스트잇이 여기저기 붙어 있을법한 책상 위의 책들을 보며 왠지 모를 포만감을 느꼈다. 그처럼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의 한 켠에 놓인 넓고 튼튼한 책상 앞에 앉아  한없이 읽고 한없이 쓰고 싶다. 요즘처럼 흐리고 스산한 봄날. 기장을 섞어 지은 밥과 쑥을 넣고 끓인 향긋한 된장국으로 가볍게 아침을 먹고 온종일 서재에 박혀 있다가 허기가 느껴지면 서재를 빠져나와 속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밥과 봄나물들로 식사를 마치고 가볍게 산책을 한 바퀴 하고 돌아와 다시 서재에 파묻힐 수 있다면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배가 고픈 탓인가. 잘 나가다가 왠 음식 타령이란 말인가.) 내게 그런 봄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올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식욕도 성취욕도 중요하지만 역시 자유에 대한 욕망만큼 강렬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나에게.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들에게도 역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BRINY 2006-04-08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침자습, 아침자습~~ 저희 학년도 시작했는데, 영어 단어 10개랑 수학 3문제. 수학을 풀어줄 수 없는 이 문과계 담임 때문에 애들 글씨 연습만 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깐따삐야 2006-04-08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늘 아이들이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소심한 담임입니다. 끙~
 

시간이 참 빨리 간다고 느끼면서도 달력에 촘촘히 박힌 30개의 숫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막막해진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한 달의 기준점이 월급날이 되었다. 달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월급날까지 얼마나 남았나, 주말을 몇 번 보내야 하나, 부터 헤아리게 되곤 한다. 스스로의 안목에 대해 별로 자신이 없는데다 쇼핑을 피곤해 하는 나로써는 지금도 엄마가 사다주는 옷을 입고 다닐 정도로 돈을 쓰는 일에 자신없어 하지만 그래도 월급날은 왠지 기분이 좋고 뿌듯하다. 점점 안정되고 평범한 생활인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까 기대하며 가슴 설레이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 그런 느낌.

올봄부터 문학계간지를 하나 신청해서 보기로 했다. 진작부터 하고 싶었는데 늘 같은 비용으로 다른 책들을 구입하곤 했었다. 근래 들어 책을 고르고 구입하는 데에 있어 너무 대중없다는 느낌이 들고 그에 따라 나의 사고나 감성마저 뒤숭숭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 작은 변화를 주고 싶었다. 문학과 관련된 이슈와 흐름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고 그 때 그 때 발표되는 따끈따끈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방금 택배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빳빳한 종이냄새가 폴폴 올라오는 계간지를 받아드는 늦은 오후에 나는 기쁠 것이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것에 대해 생각 중이다. 무방비 상태로 일단 마음을 열고 나서 상대를 알아갔던 나의 교제 패턴에 자꾸 에러가 발생하는 것을 깨닫고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상대를 천천히, 조금씩 파악해 가면서 그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마음을 열어줄 것인지 결정하곤 한다. 그것은 계산이 아니라 지혜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도 신중함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간혹 너무 좋은 사람이 되어버려서 상대를 너무 나쁜 사람으로 보이게 할 때가 있었다. 어린아이나 바보 옆에 있으면 평범한 어른도 시커멓게 때묻고 마음이 날근날근 닳아버린 사람으로 보이듯이. 짐짓 힘겨운 모션을 취하고 있지만 결국 나의 서투름과 무모함에서 모든 것이 기인했다고 보면 된다. 나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도 가장 현명한 길이다.

아이들이란 때로 천사같이 순진했다가 때로 악마처럼 사악해지곤 한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지어낼 때를 보면 세상에 저런 사악한 것이 있나 싶다가도, 해사한 얼굴로 손까지 떨면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내 얼굴까지 붉어질만큼 예쁘고 감동적이다. 모든 실수가 용서가 되는 나이라서 부럽기도 하고 실수를 하면서 하나씩 배워가야 하니 스스로를 감당하기가 얼마나 버겁고 힘에 부칠까 싶어서 안쓰럽기도 하다. 새삼스럽게 나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올곧고 성실하게만 생활하지 않고 이런저런 실수들을 저지르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게 왠지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까닭은 그만큼 내가 아이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가르치기에는 여전히 나 자신 지나치게 답답하고 고지식한 면이 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으나 내일은 또 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염두해 두는 것은 그렇듯 나 자신이 불완전한 인간이고 더욱이 내가 매일 대하고 있는 아이들은 아직 말랑말랑한 영혼을 가진 미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이 늘 처음처럼 두렵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2006-04-06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04-06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그렇게 받아들여지셨나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안시스템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다지 달가운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낯두꺼운 불법 사용자들이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고 여과 없이 오픈했던 사람들이 도리어 푼수가 되곤 하니까요.

2006-04-06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04-06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저는 요즘들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던 제 자신이 참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 느낌 몹시 쓸쓸해요. 하지만 저는 또 다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까봐 그게 또 걱정이랍니다. 눈치도 없고 눈치도 안 보고. 어디 내놓으면 아슬아슬 불안하기 짝이 없는 존재가 바로 저에요. ㅜ.ㅜ

2006-04-07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기에 걸렸다. 공교롭게도 교육정보실에 거주하는 처녀 셋이 몽땅 감기에 걸렸다. - 정보실을 출입하신 이후에는 반드시 손을 씻기 바랍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감기 바이러스가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아서 푯말이라도 세워놓아야 할 듯 하다. 내일은 병가 중인 선생님 대신으로 한 달 동안 근무했던 허선생님의 송별회가 있다. 그래봤자 우리 정보실 식구들끼리의 단촐한 저녁식사지만. 짧은 기간이었지만 곁에서 지켜본 허선생님은 여리여리해 보이면서도 생각이 깊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꼭 좋은 결과 있길 바라고 남자친구 분과도 만족스런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

이젠 치근덕거린다는 느낌마저 들어서 앞으로 전화하지 말라고 단칼에 잘랐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끄트머리가 참 구질구질하다. 이래서 엄마가 뺨을 맞더라도 똑똑한 사람한테 맞으라고 하시는 건가 보다. 원래 지나간 추억은 한껏 미화시켜서 기억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라서 좋게, 아름답게, 아련하게, 그렇게 가슴 저편에 묻고 싶었다. 그런데 이 사람, 근래에 하는 모양을 보니 평범의 수준에서 한참 뒤떨어진 모자란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버렸다. 그런 사람을 사랑한 나는 오래 미쳤었거나, 많이 모자랐거나. 근사한 남자한테 한 방에 차였다면 오히려 기분은 개운할 것이고 나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긴장하고 노력했겠지. 그런데 이 경우는 찝찝하고 신경질 나는 환멸. 오직 환멸 뿐이다. 나는 나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잠시 잊고 있었다. 앞으로 그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재수 없다는 말을 듣더라도 오히려 그 편이 낫다. 나를 한없이 낮추어서 한없이 모자란 상대에게 맞추어 가다가 이렇게 짜증과 환멸에 휩싸이느니 차라리 욕을 듣고 뻥하고 차이겠다. 부디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누군가를 견디지 말자.

작년까지는 안그랬던 것 같은데 부쩍 주변에서 나를 혼자 냅두지 않으려는 기운이 심심찮게 다가온다. 이러이러한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주문부터 내 나이를 묻곤 슬슬 노력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말씀하시는 주변 어른들. 지인들의 결혼 소식을 전해오며 봄인데 가만히 있으면 되겠느냐고 부추기는 친구들부터 아예 뚜쟁이로 나선듯 적극적인 정보실 아가씨까지. 여러가지 일들로 지쳐 있는 상태라서 한동안 혼자 지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어서 편안하고 든든한 누군가를 만나서 안락한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왠지 그렇게 해야 모든 것이 더 빠르고 분명하게 정리될 것 같은 느낌. 지금으로선 둘 다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 누군가를 만나는 것.

아이들하고는 그럭저럭 잘 지낸다. 나도 이제 3년 차에 접어들었고 아이들도 3학년이 되었고. 마냥 서투르지만은 않은 경지에 이르러서인지 서로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지키며 무탈하게 지내고 있다. 간단한 쪽지 시험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얼굴이 발개지며 답안을 써내려가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는 느낌도 들지만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질 않는다. 그저 그들의 피로하고 빠듯한 일상에 몇 마디 농담과 위로를 건넬 뿐. 교사란 알고보면 무척 무력한 존재다. 간간이 졸업한 아이들에게서도 연락이 온다. 공부가 힘들어서 실업계로 옮겨버리겠다는 녀석부터 무작정 배고프다고 떼쓰는 녀석까지 각양각색이다. 고등학교 시절은 공부에 흥미가 있는 아이거나, 흥미가 없는 아이거나 참 힘든 시기다. 그 시절을 편하게 보내고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힘겹게 보내고 있다면 몸이 편하지 않다. 정말 좋으면 나에게 연락하지 않을텐데. 이 녀석들이 힘들구나. 그나마 중학교 시절이 만만했구나. 그런 느낌이 들면서 지금쯤 아이들이 어깨가 얼마나 아프고, 엉덩이는 또 얼마나 근질거릴까 싶어서 참 안쓰러워진다.

가장 근처에 있는 인간관계부터 잘 다독여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가족, 나의 학생들, 나의 친구들, 나의 동료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나 스스로에게 더욱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 동안 너무 멀리, 너무 힘들게 왔다. 마알간 머리를 한 채 뒤돌아 볼 줄 모르고 주춤거리며 왔다. 이제 매순간 생각하고 돌아보고 짚어보며 또박또박 걸어야 한다. 나는 참 괜찮은 여자고 좋은 사람이다. 스스로를 사랑하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2006-03-24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03-25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조언 고맙습니다. 책 한 권이 선언처럼 들리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