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말

- 마 종 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마종기 시전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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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8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03-08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제가 좋아하는 시가 님의 마음에 드신다니 저도 기쁩니다. 얼마든지 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