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를 앞두고 출근을 했다. 사진은 새학기 선물로 학교에서 준비해 준 USB와 A클럽 회장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책 한 권. 하나는 필요해서 사려고 했던 것. 다른 하나는 내심 기대는 했지만 그래도 뜻밖의 것.

일하는 장소가 바뀌었다. 책상이 두 개 뿐인 정말 한적한 곳으로. 쓰레기를 치우고 청소를 하고 오전 내내 바쁘게 돌아다니며 일 년 동안 머무를 곳을 정돈했다. 음악을 켜놓고 커피를 마시며 북적대는 공간에서 벗어났다는 뿌듯함, 도통 모르겠는 업무 때문에 한동안 헤매겠다는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다. 청소를 마친 뒤에는 다른 샘들과 함께 간짜장을 시켜 먹었다. 아주아주 맛있었다. 역시 이사하는 날은 짜장면을 먹어줘야 해.  

집에 돌아와보니 06학번 새내기, 집안의 애물단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출연 요망 중인 터프하고 표독스런 이종사촌 동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능 이후 열심히 때 빼고 광 내더니만 승질머리답게 포로족족했던 피부도 많이 고와지고 말꼬랑지 달랑거리며 까불대더니 매직스트레이트로 찰랑거리는 생머리하며, 어느새 상큼한 숙녀가 다 되어 있었다. 사실 요즘 그녀는 재수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고 이모와 이모부는 재수는 불허한다는 방향에서 설득 중이시다. 나는 등록했으니 그냥 한 번 다녀봐, 란 입장. 다니다보면 재미있어서 계속 다니고 싶어질 수도 있고 만약 별로 재미 없으면 그 때 가서 재수를 해도 늦지 않을거라고 꼬득였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부모에게 기댈 수 밖에 없는 무일푼 신세라는 처지, 서울대에 응시했다가 낙방한 것이 아니라는 비정한 현실, 만약에 대학생활이 재밌으면 어쩌나 하는 애매모호한 기대 등으로 우리의 설득을 할 수 없이 접수했다. 사실 우리는 그녀가 비록 버릇 없고 까탈스런 면이 있다 하더라도 무척 솔직하고 양심 바르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그 두분의 아들을 뺀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그녀의 문제다.

배정받은 아이들의 명단을 보니 역시 예년과 다름없이 쉽지 않은 한 해가 되리란 생각이 든다. 신규 때 갖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힘겹게 일 년을 함께 보냈던 아이들과 재회하게 된 것이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서로 못 볼 꼴을 하도 많이 봐서 다시는 서로 보지 말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건만. 그 사이 각자 쪼매라도 성장을 했으면 좋으련만. 1학년인 그들과 샘으로서 역시 1학년이었던 나는 서로 잘했네, 못했네 해가며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하고 싸워서 이기고 싶었고( ! ) 아이들은 싸워서 이기고 싶어하는 샘을 당최 이해하지 못한 채 더 극성맞게, 더 터프하게 굴었다. 돌아보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만큼 부끄러운 한 해였다. 문제는, 지금도 나 자신 별다르게 나아진 것이 없다는 바로 그 점. 그래도 잘해보자고 다짐한다. 늘 그래놓고 늘 도로묵이 되곤 하지만 그래두. 흐흐.

몇 페이지 안 읽었는데 <<영원한 이방인>> 이 책 주인공도 독특하고 속도감 있게 잘 읽히는 맛이 있다. 회장님께 고맙다. 떼를 쓰니 통하는구나. 간만에 독서삼매경에 푹 빠져볼까나. 올해는 한적한 공간에서 책도 많이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쪼매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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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2-28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출근하고 싶습니다. ㅠ-ㅠ 흙.

깐따삐야 2006-02-28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기회가 올겁니다. 힘내세요. 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