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의 손을 놓기 위해 편지를 썼던 그는 이제 나의 손을 다시 한 번 더, 정말로 놓기 위해 마지막이 될, 부디 마지막이길 바라는 편지를 썼다. 어쩌다보니 그의 첫사랑이 된 나는 그보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웃고 사랑에 울며 그 죽일 놈의 사랑이 뭔지 고통스럽게 알아가는 그를, 그의 입장에 서서 배려해야 했다. 나를 놓아버리고 나서 헤어짐을 홀로 감당할 수 없었던 그는 나와 나의 이야기를 필요로 했고, 나는 그의 커다란 고통에 가려진 내 고통 따위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내가 그 사람 앞에서 끝내 이기적일 수가 없고 그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건, 내가 그를 사랑했던 사람이라서 그가 무엇을 얼마만큼 느끼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한 사람을 사랑하다가 그 사랑을 떠나보내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에 나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한숨도 잘 수 없는 상황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고통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 사람으로부터 멀리 와 있는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고통의 시간이 너무 길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 뿐. 

언젠가도 썼을 것이다. 처음보다는 두번째가 덜 아프고 두번째보다는 세번째가 훨씬 덜 아플거라고. 이루지 못한 사랑은 모두 아픔으로 남겠지만 아마도. 누군가를 놓아본 적이 있는 나는 한 번도 누군가와 헤어져 본 일이 없는 그가 지금 나보다 훨씬 더 힘들어 할 것을 잘 안다. 나를 위한 변명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나와 헤어진 건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직접 말한 적이 없지만 그를 만나면서 나는 이미 느꼈었다. 사랑을 한다는 명목 하에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만 자꾸자꾸 시간을 흘려보내는 그를 보면서 내가 분명히 당신의 짝은 아닐텐데 과연 우리의 인연은 언제까지일까, 당신은 내가 가장 힘들 때 내 곁에 있어줬는데 미안하게도, 내가 당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아. 하지만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런 예감 때문에 사랑을 멈출 수는 없었고 노력하면서 시간과 운명에 모든 걸 걸어보리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결국 그 예감처럼 우리는 헤어졌지만 쉽게 헤어지지 못하고, 이별을 말한 뒤 계절이 두 번 바뀌고 나서야 이렇게 서로를 아프게 놓아주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감하지 못했다. 어쨌든 지금처럼 많이 아파한 후에 틀림없이 사랑은 다시 온다. 그리고 그는 그 사랑을 절대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고 놓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그 땐 이미 터득하고 있을 것이다. 또 비록 인연이 아니라서 그 사랑마저 놓쳐버린다 하더라도 분명히 지금보다는 덜 아프고 덜 힘들 것이다. 이것은 나를 향한 말, 나를 위한 위로이기도 하다.

그는 야다의 '이미 슬픈 사랑'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썼다. 그래. 울지 말고 슬퍼 말고 당신과 나에게 삶의 축복을. 많이 아파했으니 이제 행복할 순서를 기다리자.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사랑은 다시 온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6-03-05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