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갖지 마. 왜 부담을 갖니."

그런가. 난 도무지 쿨한 것과는 거리가 먼 여자인가보다.

"네가 부담스러워하니깐 내가 이상한 사람같아 보이잖아."

그럴 수도 있겠다. 난 아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정도 되나보다.

오늘 그와 통화를 했다. 이번엔 걸려온 전화는 피하지 않았다. 피하는 것만이 대수는 아닐테니깐. 그런데 부담없이 시도한 연락을 나는 부담을 갖고 피해온 셈이었고 결국 이상한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내가 되어버렸다. 오늘 저녁의 그는 예전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일과가 끝나고 약속이 잡혀 술을 마시러 왔다는 그의 말투는, 담담했고 침착했고 어른스러웠다. 그냥 오래전 알고 지냈던 친구나 선배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면 안될 것 같아서 그 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내 말에 그는 의아스럽고도 실망스럽다는 말을 하며 위와 같은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그리고는 배터리가 다 되어간다며 통화를 맺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잠시 내가 착각하거나 오해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혹은 그 순간 머리가 어떻게 되어서 그의 말뜻을 곡해했나 생각해 보았다. 나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그에게 나는 미안했고 그의 그런 마음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그는 그 후로도 나에게 계속 연락을 시도했고 나는 일부러 전화를 피해왔었다. 그가 진작에 나에게 그냥 좋은 친구로 지내자고 했다면 그것이 어차피 나중엔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일단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원한 것은 분명히 그게 아니었고 그의 그런 감정이 나는 불편했고 버거웠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갖지 않아도 될 부담을 가지는 바람에 그를 이상한 남자로 만들어 버린 셈이 되었다. 그는 편안하고 괜찮은데 나는 불편하고 안 괜찮다. 결국 나 혼자 오버한 건가보다. 우리 두 사람 만날 때는 참 솔직하고 선명했는데 헤어진 지금은 왜 이렇게 모호하게 어긋나는 건지. 서로 부담없이 연락을 하며 지내는 헤어진 연인 사이라니. 고루한 나로써는 이해와 허용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그냥 멋부리기 정도로만 보였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친구를 원하면 옛친구를 만나거나 새로 사귀면 되지. 내 생각이 너무 촌스럽고 답답한 걸까. 안정되고 어른스런 그의 음성은 어쩐지 나를 닦달하고 있는듯 했다. 나는 아마 그의 얘기를 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도 내 근황을 묻고 내 얘기를 들어주겠지. 그냥 가끔 그렇게 지내면 되는걸까. 그의 말처럼 부담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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