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주야장천 술자리가 많다. 내일까지 마시고 나면 반가운 토요휴무구나. 직원 회식에 과별 모임에 동료샘 집들이까지 어쩌다보니 한 주에 빡빡하게 몰리게 되었다. 마시게 되는 술 종류도 다양해서 소주부터 막걸리, 구기자술에 이르기까지 술에 쪄든 일주일(溢酒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아침마다 누룩내 풀풀 풍기면서 속이 쓰리다는 딸내미 때문에 엄마는 아침마다 술국을 끓이신다. 지 애비랑 어쩜 저리 똑같냐는 말도 이젠 지겹고나.
나는 술을 잘 못 마신다. 사람들은 나의 의욕적인 식성을 보고 술도 잘 마실거라고 지레 짐작하곤 하지만 술은 밥처럼 술술 넘기질 못하겠다. 신입생 환영회 때 과 선배들이 따라준 레몬소주 한 잔을 놓고 장장 세 시간이 넘도록 반 잔을 채 비우지 못했었다. 맛도 없는데다 맛도 몰랐고 누군가 술을 따라주면 얼른 그 잔을 비우고 그 사람에게 다시 술잔을 건네는 게 기본 주도(酒道)라는 것을 전혀 몰랐을 시기였다. 결국 다들 취해서 헤롱헤롱 쓰러져 가는 모습을 눈을 말똥말똥 뜬 채로 지켜보다가 누군가 입을 틀어막고 밖으로 나가면 등이나 툭툭 두드려 주는 것이 내 맡은 바 소관이었다. 술발이 안되면 안주발로, 안주발이 눈치 보이면 말발로 버티다가 이도저도 안되겠다 싶으면 삐삐 음성 들으러 가는 척 하거나 화장실 가는 척 하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 재수 없는 인간이 바로 나였다. 그러나 동아리에 들어가자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아리 선배들과 동기들은 학과 내의 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동아리 괴물들은 열변을 토하고 난 이후엔 꼭 술을 토했다. 그것도 얌전하게 토하지 않고 소주병을 깨고 고성방가도 서슴지 않으면서 무슨 퍼포먼스 치르듯 토하곤 했다. 쐬주와 쌩라면만 있으면 캠퍼스가 불타고 문단이 박살나고 교육계가 아작나고 정치계가 파토나고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 즈음이면 더러운 세상 따위는 군데군데 신발 자국이 찍힌 채로 시궁창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딱딱해진 간을 씹고 입천장을 긁는 생라면을 오도독거리면서 술잔을 비우듯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운 선배들을 멍하니 바라볼 때가 많았다. 청춘을 괴롭히는 이 세상이란 너무나 고달프고 고단한 곳이라는 멋모르는 결론을 내리면서. 선배들은 내게 술을 권하다가 결국 포기했지만 나도 사실은 그들을 보면 왠지 함께 취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넌 안 마셔도 마신 것 같아 다행이다, 라는 알쏭달쏭한 말로 위안을 받긴 했지만.
그처럼 술과 나의 관계는 본숭만숭하고 떨떠름했지만 술과 맞장 뜨다가 딱 한 번 필름이 끊겨본 적이 있다. 아마도 몹시 속상한 일이 있었던가 보다. 수업이 끝나고 자취방으로 돌아오면서 근처 마트에서 맥주 한 병과 소주 한 병, 새우X을 샀다. 맥주와 소주, 양주 등을 섞어서 폭탄주를 만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고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나는 양주까진 차마 못 사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냥 마시자는 생각에 맥주와 소주만을 샀다. 그리고는 술을 마시기 위해(?) 이불을 털고 방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렸다. 세탁기에선 돌돌돌 빨래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맥주 한 병과 소주 한 병을 양손에 들고 번갈아가면서 마시기 시작했다. 소주가 너무 써서 소주 한 모금 마시고 얼른 맥주 세 모금 마시고 하는 식으로 무슨 괴로운 신고식 치르듯이 두 병을 모두 마셨다. 그리고나서 세탁기에서 들리는 삐, 소리를 듣고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던 것까지 기억을 하는데 그 이후의 기억은 없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참으로 신기하게도 맥주병과 소주병은 얌전하게 자취방 현관 앞에 놓여져 있었다. 다만 세탁기 안의 빨래는 쭈글쭈글 말라 있었고 나는 양말을 한 쪽만 벗고 있었다. 그 날의 맥주 한 병과 소주 한 병이 내 생애 최대의 음주량이었고 필름이 끊겨 본 단 한 번의 어설프고 시시한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술을 잘 마실 것 같은데 의외다,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원체 밥을 잘 먹어서 술도 잘 마실거라고 지레 짐작하는 건지, 술 잘 먹게 생긴 관상이라는 게 따로 있는 건지, 아님 그도저도 아니고 괜히 술 먹이려고 설득하는 기술의 하나인지 술자리에서 빼면 꼭 저런 말을 듣곤 했다. 거기다가 아직 가정도 없는 처녀인데다 장롱면허만을 소지하고 있는 처지이다 보니 베테랑 주객들의 마수에 걸려들 확률이 높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한편, 어디서 그런 그럴싸한 근거들을 주섬주섬 주워 모아오는지 내가 꼭 이 술잔을 받아서 원샷을 해야 하는 당위성을 세뇌 당하는 일이 간혹 발생하곤 했다. 게다가 대개 술 권하는 분들은 아버지뻘이나 어머니뻘 혹은 이모뻘이라도 되시는 어른들이 아닌가. 물론 옛날의 선배들이나 지금의 어른들이나 내게 하는 말은 똑같다. 대개는 허물없애고 솔직해지기 위해서 마시는데 난 그럴 필요가 없다고. 칭찬같기도 하고 욕 같기도 하다. 어쨌든 소주 한 잔 놓고도 술 취한 사람보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떠드니 더 먹이면 집에 들어가지 말고 계속 놀자고 할까봐 그러는 건지 나랑 조금 지내본 사람들은 술을 줄기차게 권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요 며칠은 너무 과음을 했다. 구기자술의 경우는 맛도 좋고 뒤끝도 깔끔하다 해서 어지간히 마셨고 어제 마신 소주가 사실은 가장 치명적이었는데 능이니 싸리니 목이니 송이니 온갖 버섯이 교자상을 장식하고 있어서 뿌듯함이 샘솟는 찰나, 권해오는 술을 사양하며 실랑이를 벌이며 먹기엔 너무 시간을 빼앗기는 것 같아서 그 술잔을 홀짝홀짝 받아마시면서 먹다보니 배 부른데다 술까지 취해서 혼미하고 알딸딸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교자상 두 개를 싹쓸이하고도 모자라서 원래 버섯이나 산나물은 막걸리와 먹어야 제격인데, 라고 웅얼거리면서.
결국 오늘은 하도 머리가 띵하고 몸이 늘어져서 정보실 쇼파에 앉았다 눕다 하면서 휴식을 청했다. 매일 아이들 앞에 서야 하는 선생이 되어가지고 참 잘하는 짓이다. 물론 교실에서는 해사하고 말짱한 얼굴로 잘난 척을 하다 나오지만 아이들의 눈은 정확한 법이고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앞으로는 좀 자중해야겠다. 엄마는 요즘 날 보면서 지 애비를 쏘옥 빼닮았다고 하시지만 난 아빠와 같은 술의 프로이자 명주객이 되기엔 아직 턱 없이 부족하다. 안주 없이도 술잔을 기울일 줄 알고 술 마신 다음날 다시 술로 해장을 하는 의연함 앞에서 나는 무릎을 꿇으리라. 술과 나와의 거리는 딱 이 정도였으면 좋겠다. 가끔만 만나고 기분 좋을만큼 같이 있고 언젠가 또 만나겠지만 안 만나도 아쉽지 않은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