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윤대녕 지음 / 중앙일보사 / 1997년 3월
품절


요 몇 년 사이에 나는 극도의 소심증에 사로잡혀 살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와서 나는 내 처지에 대해서 별 불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산다는 것이 하나의 견딤, 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무엇에 대해서건 불만을 갖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고 어리석은 일이란 걸 알게 마련이다. 인생이란 애초부터 바둑판의 돌멩이처럼 제 행로를 따라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아무리 기를 써고 덤벼도 좁디좁은 제 위치의 소극적인 영역, 그러니까 그 한계의 부동성을 깨닫게 되고 만다. 설혹 용케 바둑판을 벗어난다 해도 떨어지게 되는 곳은 저 신호등조차 없는 고속도로 한복판 같은 곳이다. 어쨌든 사람이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견뎌야 한다. -26쪽

"저 한결 좋아진 것 같아요, 그치 않아요? 피돌기도 제법 느슨해지고 어제 막 결혼한 여자처럼 안정감이 느껴진다구요."
"그러니까 서둘러 결혼하라니까. 혼자서 마음을 조율하며 살기엔 이미 나이가 차버린 거야. 평형 감각을 잃지 않고 살려면 우선 정해진 코스를 따라가야 해."
"아무튼 괜찮은 밤였어요. 오늘부턴 가계부를 써야지 싶어요."
"가계부?"
"왜 그렇게 놀래요? 규모있게, 빈틈없이 살고 싶단 얘기에요. 충동 구매 따윈 하지 않구요."
"충동 구맨 또 뭐야."
"그쪽에 관한 한은 충동 구매에 의한 것일수도 있다는 얘기에요."
"난 노예시장 출신이 아닌데."
"실은 방문 판매였어요."-161쪽

불행한 자와 함께 있으면 불행해지게 마련이다. 살아오면서 뼈저리게 느낀 또 하나의 깨달음이다. 불행한 자는 행복한 자를 그냥 두지 못하는 법이다. 상대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에 몰두하지 않으면 한시도 자기 불행을 견디지 못하는 까닭이다. 아내, 승미에게서 나는 여태껏 그걸 보아왔다. 나 또한 그러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사랑하는 일이 두려운 게 아니라 이제는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는 일이 두려운 것이다. 상처란, 어쩌면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욱 고통받게 마련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 자신도 고통받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모양이다. -168쪽

"이기심이란 것도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란 거예요. 이쪽을 얼마간 희생하면서 어설프게 상대를 생각해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기심이 나아요. 우선 상대를 위해서 말예요. 무슨 말인지 알기나 해요?"-184쪽

"왜 사람만이 시간을 상대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걸까."
"절대 시간을 잃어버린 탓이야. 물고기나 새들은 저마다 몸 속에 시계를 가지고 있어. 지구의 공전 주기에 따른 시계 말이야. 그 시계는 틀리는 법이 없잖아. 일정 주기가 되면 정확하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찾아오곤 하잖아. 이쪽에서 새들이 날아가면 지구 저편에서는 새들이 날아오고, 강에서 물고기들이 떠나가면 바다에서는 물고기들이 돌아오듯이 말이야. 그런데 유독 사람만이 상대적으로 시간을 느껴." -197쪽

"시간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나는 문득문득 무한이란 말을 생각해.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그 무한의 전면이 보여. 벌레 구멍을 발견하게 되면 저기 은하수를 지나 무한의 후면으로 날아가 보고 싶어."
유진이 이런 말을 할 때는 섬뜩하기조차 했다.
"세계는 너무 단조롭고 우리가 쓸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적어. 우리는 좁은 성냥갑 속에서 단 한 번 불이 붙기를 기다리는 성냥개비와도 같은 존재들이야. 어쩌면 죽음이 앞당겨질수록 그만큼 오래 살게 되는 것인지도 몰라. 누군가의 말처럼 죽은 아이보다 오래 산 자는 없어."
"황도십이궁. 하늘을 일주하는 열두 개의 성좌. 태양이 이 십이궁을 도는 데 꼭 일 년이 걸린다고 해. 태양계는 하나의 거대한 시계판이야. 시계판을 벗어나야만 무한의 후면으로 날아갈 수 있어."
"밤하늘은 죽음을 불러들이는 화사한 함정이야."-200쪽

"학생도 차츰 알게 될 거예요. 어른이 된다는 게 뭔지. 나이를 먹어간다는 게 뭔지. 그게 점점 쓸쓸해져 가는 과정이란 것도 말예요. 학생 나이 때는 모든 게 명암처럼 뚜렷하고 좀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나이가 들다보면 자꾸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겨 거기 휩쓸리게 돼요. 그러다 보면 내가 아주 작은 존재라는 사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그걸 깨달아 가는 게 또한 살아가는 일이란 것도 말예요. 하지만 그애는 영영 어른이 되지 않을 것 같아요. 누가 가지고 놀다 얼결에 놓쳐버린 풍선 같은 애란 말이죠." -204쪽

내가 바라보는 것은 늘 전면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과거에 의해, 과거에 의지하여, 과거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삶에 있어서 뒤가 없는 앞이란 있을 수가 없다. 과거가 없는 인간은 늘 실종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란 가끔 과거라는 보금자리에 들어가 앉아 있어야만 할 때가 있다. 그리하여 나는 늘 시간의 줄에 매달려 살아왔다. 과거 없이 산다고 해서 뭐 큰 지장은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살다보면 때로 음주 운전도 하게 된다. 그리하여 불심검문을 받게 될 때 내가 무면허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는 심정 이해하실는지. 과거란 그렇듯 자신에 관한 일종의 면허증과도 같은 것이리라. 많은 사람들은 과거는 다만 시간의 쓰레기일 뿐이라고 말들 한다. 그렇게 외면해버리곤 한다. 그러나 문제는 외면할 과거가 나에겐 없다는 것이다. 현재에 속해 있으려면 그래서 나는 남들보다 두 배의 속도를 내야 한다. 때로는 가속도가 필요하다. 무면허니까. 캄캄한 뒷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 꿈속에서도 미친 듯이 질주해야 한다. -240쪽

우리가 무엇을 하든 간에 시간은 끊임없이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간다. 아무리 무덤 속에 앉아 있다 하더라도 시간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나 기쁨, 혹은 슬픔이나 괴로움처럼 어쩌다 끊어지고 이어지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 완전히 동일한 나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차별없이 적용되고 똑같은 속도를 우리에게 부여한다.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순간순간을 깊이 사색하며 살아가는 거다. 시간은 모든 것에 평등하다. 나는 오늘 이 절대적 평등을 믿기로 한다. 이제부터는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련다. 살아가며 느끼게 마련인 견딜 수 없는 고통, 용서되지 않은 시간, 이 추운 겨울의 막막함, 혼자라는 두려움, 혹은 서툰 사랑 하나하나까지도, 이 모든 것을 뜨겁게 가슴에 끌어안고 살아가야지. -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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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시절에 동아리 사람들과 어울려 자주 가던 순대집에 다녀왔다. 거의 3년만이었다. 신기하리만치 모든 것이 그대로였고 손으로 직접 돌려서 채널을 바꿔야만 했던 텔레비전만이 리모콘으로 조종하는 평면 텔레비전으로 바뀌어 있었다. 손님이 온 줄도 모르고 할머니는 모로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여긴 번쩍이는 실내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종업원들로 북적거리는 식당이 아니니까. 앉아서 테레비를 보자니 허리가 아파 누워서 보셨다는 할머니 대신 차지하고 앉은 자리가 왠지 죄송스러웠다. 실내는 더웠고 우리를 향한 선풍기는 한 대 뿐이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할머니는 나를 기억 못하시겠지만 나는 오랜만에 외갓집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괜히 반가웠다. 아는 척을 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지금도 동아리 후배들은 이 곳을 자주 찾고 있으니 운을 띄우면 금방 아실 것도 같았지만 나중에 후배들에게 술을 살 때나 그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할아버지는 어디에 가셨을까. 설마 돌아가신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순대와 곱창이 푸짐하게 들어간 찌개나 볶음의 육수가 졸아드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할아버지는 큼지막한 플라스틱 밥공기에 금방 해서 김이 폴폴 올라오는 쌀밥을 꾹꾹 눌러담으며 우리를 향해 웃어보이곤 하셨다. 밤이 늦도록 우리의 술자리가 쉬이 파하지 않을 것 같으면 말없이 다가오셔서 육수도 더 부어주시고 곱창도 더 넣어주시곤 했다. 공기밥을 추가할 때마다 천 원씩 똑부러지게 추가하는 일반 음식점들과는 달리 밥을 더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더 먹으라는 말씀도 하셨다. 비좁고 꾀죄죄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입을 타고 유명해지기까진 음식의 맛도 맛이었지만, 대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욕심을 부리지 않으셨던 노부부의 넉넉한 인품도 큰 몫을 했다. 이제는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할아버지의 안부가 궁금하다.

순대찌개와 머릿고기를 시킨 다음 느릿느릿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을 쏘이며 옛날을 회상했다. 모임을 대충 마무리하고 캠퍼스를 빠져나오면 밖은 캄캄했고 대개는 이야기가 고프고 술이 고플 시간이었다. 정말로 중요한 사정이었든, 과모임이나 소개팅을 위한 핑계였든 빠져나가는 멤버들의 자리만큼이나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은 쓸쓸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런 허전함을 달래주었던 건 순대찌개의 뜨끈한 국물과 구수하고 쫄깃하게 씹히는 곱창과 쌉싸름한 소주 한 잔. 불콰해진 얼굴을 마주하며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심각하게 나누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장 나이가 많았던 선배조차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던 그 때에는 자신을 알고 세상을 느끼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렇듯 쑥스럽고 촌스러운 포즈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곧잘 울며불며 선배와 싸우던 동기 H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둘이나 낳았고 극성스러운 여자친구 때문에 항상 피곤해하던 S는 어느 포털사이트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지랄맞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던 M 선배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공무원이 되었다. 내가 남몰래 흠모했던 D 선배는 얼마전 아빠가 되었다. 그 때 그 사람들은 거의 캠퍼스를 떠났고 몇몇은 남아 있고 새로운 얼굴들이 들어왔다. 그렇듯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집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순대찌개의 맛도 여전했다. 큼지막하게 썰어넣은 순대와 곱창하며 꼬들꼬들 맛있는 머릿고기에 시금시금한 깍두기와 배추김치까지, 할머니 구수한 손맛은 변함없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데려가고 싶은 맛집이다. 추억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미래에도 너와 함께였으면 한다는 바람까지 포함한 것일테니까. 비좁은 골목 구석구석을 찾아들어가 맛있는 꽁치구이나 콩나물무침을 발견하고는 그 집의 단골이 된다거나, 옛날 그대로의 맛을 살려 짜장면을 만드는 허름한 중국집을 알고 있다거나 하는 사람이라면 이 집을 분명 좋아하게 될 것이다.  

돈을 주고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식당은 흔하지만 추억이란 별미까지 함께 맛볼 수 있는 식당은 흔치 않다. 대개는 잊혀지기 마련이고 어떤 기억이 비록 세련된 외양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내용물에 있어서는 빤하거나 초라하기 마련이니까. 할머니와 순대집이 사진처럼 언제까지나 늘 그대로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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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8-28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향에 온 기분이 들더라구요 간만에 찾아간 옛 단골장소에 가면요..^^
거기다가 음식맛도 예전 그대로라면 정말 황송한 기분까지 든다는...^^

깐따삐야 2006-08-28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그 느낌을 잘 아시는군요. ^^

마태우스 2006-08-28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멋진 글입니다. 순대를 땡기게 만드는 데 이 글보다 더 강한 포스를 발휘하는 글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찌개나 볶음의 육수가 졸아드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이 대목이 가장 맘에 들었습니다. 멋진 표현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깐따삐야 2006-08-28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자화자찬격이 되겠지만 어젯밤 이 글을 쓰면서 저도 침을 꼴깍꼴깍 삼켰답니다. 흐흐흐.

2006-08-29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08-30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을까요?

2006-08-30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08-31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예리하시네요. 다니셨거나 가보신 적이 있다면 어쩌면 저와 스치고 지나갔을 지도 모르겠네요. ^^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강은 넓으니 독극물을 방류하라고 하는 미군을 보면서 아, 반미 영화겠구나. 항상 마지막 한 발을 쏘지 못하는 양궁선수로 등장하는 배두나를 보면서 아, 저 활로 결정적 한 발을 쏘겠구나. 다소 모자란 듯 어리버리하지만 딸이라면 사족을 못 서는 송강호를 보면서 마지막에 괴물을 처치하는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겠구나. 괴물이 나온다는 것, 딸이 그 괴물에게 잡혀간다는 것 이외에는 줄거리를 전혀 모르고 극장에 갔지만 영화 서두만 보더라도 영화의 굵직한 줄기들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그만큼 영화의 스토리와 메시지는 지극히 단순했다. 마치 <죠스>와 <엘리게이터>를 적당히 버무려 놓은 듯 하나도 특별할 것이 없는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방식 또한 에둘러 은유하기 보다는 영상을 통해 직접 눈 앞에 보여주고 대사를 통해 귀로 들려준다. 반면에 디테일은 훌륭했다. 돌연변이 도롱뇽같던 괴물은 그 세세한 생김새에 있어서 괴물 영화 중 전무후무한 이미지가 될 것이라 느꼈고 적절한 타이밍에 관객을 놀래켜대는 솜씨 또한 여간 아니었다. 특별한 사유를 필요로 하지 않고 단순하고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완벽하게 몰입하여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오락 영화였다.    

<괴물>의 흥행을 바라보며 한국의 관객 수준과 영화의 수준이 잘 맞아떨어진 경우라고 말한 김기덕은 옳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세계 시장에 진출해서도 성공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 때 가서도 김기덕 감독이 세계의 관객 수준과 영화의 수준이 잘 맞아떨어진 경우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물론 나는 그 동안 몇 편 안되긴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게 보아왔고 영화 속 독특한 은유의 미학에 대해서 감탄과 함께 존경을 느껴왔던 참이다. 그의 이번 발언은 실망스럽다. 대개의 평균적인 관객들은 해석이 아니라 오락을 위해 극장을 찾는다. 그런 영화를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지만 내키지 않아 안 만드는 것이라면 그 고집대로 영화계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개척해 나가면 되는 것이고, 소수의 평론가나 매니아층의 공감과 응원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면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읽어내고 어느만치 배려할 줄 아는 것도 감독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왜 이해를 못하느냐, 고 윽박질러봤자 슬퍼지기만 할 뿐. 이 영화는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졌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소시민이고 괴물을 무찌르는 데 일조하는 건 경찰이나 군인이 아니라 노숙자, 여자 양궁 선수, 소시민 아버지다. 국제 깡패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미국에 대해 전 세계가 반감을 가지고 있는 상태고 계절은 아이들의 방학이 끼어 있는 무더운 여름. 영화의 배경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한강이며 괴물은 물 속을 유유히 헤엄치다가 시원한 물살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줄곧 장대비가 내린다. 이만하면 시원하고 통쾌하게 즐긴 다음,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사회적 메시지까지 한 번 더 확인하고 오는 유의미한 경험이 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두 번이나 봤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몽땅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하는 배우들이라 그런지도. 변희봉이야 원체 말할 것도 없고 송강호는 완전 물이 올랐지 싶다.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게 소설이라고 한다면, 소시민보다 더 소시민스러운 사람이 송강호였다. 배우 설경구가 아무리 눈에 힘을 풀고 연기해도 어딘지 배어나오는 독기 때문에 다소 부담스럽다면, 송강호는 언제나 그 모습 자체로 편하고 좋다. 박해일은 무슨 역할을 해도 귀엽다. 뺀질거리는 외모에 쌍시옷을 뱉어대며 악을 써대는 모습을 보면 또 까분다, 는 즐거운 느낌이 들면서 하나도 밉지가 않다. 괴물을 향해 화염병을 던져대는 모습은 다소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웠지만 박해일이니까 그만한 그림이 나오는 것이지, 장동건이 하거나 양동근이 했다면 더 어색해질 것이었다. 배두나는 양궁선수라기엔 너무 바짝 마른 모습에 실감이 덜했지만 어둠 속에서 튀어나올 듯 커다란 눈망울이나 야무지게 꼭 다문 입술은 축축하고 캄캄한 괴물 영화와 잘 어울렸다. 예쁘게 보이려고 하거나 폼 잡지 않고 얼굴에 온통 검은 칠을 한 채 연기에 몰두하는 모습이 좋았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너무 직접적으로 들이대는 것만 빼면(생각할 거리를 주지 않아 그만큼 편하기도 했지만)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너무 직접적으로 들이대는 그 방식 자체도 나쁘지 않았다. 감독의 성향이자 열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알고보면, 가장 평범한 소시민들이 말하는 방식 또한 그렇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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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8-18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기덕 감독이 그런 말을 했군요. 수준이라... 쩝.
아무튼 님의 평에는 동감입니다.

blowup 2006-08-18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아성 이야기도 해주셔야죠. <떨리는 가슴>에 나왔을 때부터 참 맘에 들었는데. 배두나와 한번은 이모, 조카 사이로. 한번은 고모, 조카 사이로. 그런 경우도 드물듯.
느낌이 닮지 않았나요?

깐따삐야 2006-08-18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urblue님, 처음 뵙지요? 반갑습니다. 김기덕 감독은 그 발언 때문에 어젯밤 100분 토론에까지 출연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에 대해선 방송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뭐라고 했을지 궁금해서 지금 뉴스를 찾아보는 중이랍니다. ^^

namu님, <떨리는 가슴>은 못 보았구요. 처음에 예고편에서 얼핏 고아성을 보았을 땐 임수정인 줄 알았어요. namu님 말씀을 듣고 보니, 똘망똘망하면서도 수수하고 발랄한 모습이 배두나와 사뭇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영리해 보이는 예쁜 배우였어요. ^^
 
원인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김영옥 옮김 / 범우사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내가 읽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두 번째 작품이다.

<원인>은 먼저 읽었던 <지하실, 하나의 탈출>의 전편이라고 보면 되겠다.

작가의 자전소설 5부작 중 하나인 이 책도 여전히 분위기는 어둡고, 주인공은 우울하며, 특별한 스토리로 진행되기 보다는 불만과 불신에 찬 어조의 독백으로 그득하다.

실제로 책 속에서 만난 작가는 행복한 유년기를 보낸 것 같지는 않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일찍이 사생아로 태어나 부모의 정상적인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고 어릴적부터 외조부의 엄격한 교육 아래 성장했다.

물론 외조부는 남다른 선견지명으로 어린 베른하르트에게 예술적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고는 그를 인문계 고등학교인 김나지움에 보내고 개인 교습으로 영어와 피아노를 배우게 하는 등, 외손자를 예술가로 키우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예술가란 타고난 영혼을 기반으로 해서 스스로 창의적인 힘을 발휘하는 인간이지, 타인의 요구나 특별한 교육에 의해 제조되거나 길러질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던가.

베른하르트는 자신을 거두어 준 외할아버지에 대해 늘 고마워하고 있었지만 '네 할아버지가 피아노 교습비를 대주는 것은 창밖으로 돈을 던져버리는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피아노 강사의 독설이 맞다고 생각할 정도로 외할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고 실제로 자유로운 분위기만 조성된다면 곧잘 놀라운 연주 솜씨를 발휘하곤 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악보대로는 그 어떤 곡도 온전히 연주해내지 못하는 기이한 천재였던 것이다.

코가 비뚤어질 정도로 술을 진탕 마셔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영화 <술고래>의 미키 루크처럼.

나치즘에 이어 카톨릭이 장악해버린 오스트리아의 파시즘적 교육 아래서 베른하르트는 끝없이 자살에의 충동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인간의 정신을 파멸시키는 중고등교육 단계를 없애고 대중을 위한 초등학교와 개별 인간들을 위한 대학교만 있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나 자신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지만, 어쩌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크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 즉 상식은 초등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하기 전까지의 그 기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것에 맞게끔 진로를 결정하는 탐색의 기간, 유예의 기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도덕이나 윤리 교과서에는 청소년기는 자아탐색과 진로결정의 시기라고 버젓이 나와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심사숙고하는 시간보다는 부모님의 뜨거운 기대와 가차없이 등수를 매겨대는 시험성적에 목을 매며 영어 문장을 외우거나 수학 문제를 푸는 시간이 훨씬 더 많고 정말로 배짱이 두둑하거나 본래 독하게 타고난 인간이 아닌 한, 사회와 학교와 부모가 강요하는 이러한 룰에서 비껴나 뚜벅뚜벅 자기 길을 걷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중고등학생들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란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다.

방학 때 아무 생각 없이 실컷 놀다보면 문득 공부가 하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그 순간에 책을 펴면 그것이 소설책이었든 새학기 교과서였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술술 읽히곤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스스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기까지 가만히 놔두고 지켜볼 수 있는 부모란 결코 흔치 않다.

베른하르트는 계몽이 되지 않은 부모가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어른이 되어 또 다시 계몽이 안된 채로 자식을 낳고, 결국 그런 식으로 반복되는 사이클 안에서는 사회가 결코 변화하거나 발전할 수 없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똑똑한 목소리들은 자꾸만 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이들은 갈수록 더 힘이 든다 한다.  

사회 구성원들의 교육 수준과 의식 수준이 항상 상응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부모와 교사와 사회와 국가는 베른하르트라는 예민하고 내향적인 천재가 힘들게 맞서야 했던 지독한 적(敵)들이었다.

거대하고 굳건한 체제에 쉽게 적응할 수도, 그것을 하루 아침에 전복시킬 수도 없는 어린 영혼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절망에 찬 독백밖에 더 있겠는가.

그가 그 현실 자체로 만족했거나, 비인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에 대해 비판의 눈을 뜨지 않았다면 행복한 피아니스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른하르트는 세상에 대해 절망한만큼 세상을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그의 독백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어두운 분노로 차 있지만 글을 써서 그것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이미 대사회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고 세상을 정말로 미워하는 사람이라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읽기에 쉽거나 즐거운 책은 아니다.

그러나 베른하르트를 만난다는 것은 깨끗하게 닦아놓은 거울로 더러운 세상을 비춰보며 나 자신까지 돌아볼 수 있는, 바닥까지 내려가 진실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그의 또 다른 책을 어서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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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매며

  - 장 석 남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을 떠 있다

 

뜨겁고 끈적한 여름. 어디선가 서걱이는 눈 냄새가 나는 듯 했던, 충분한 여백마다 쓸쓸함이 배어있던 이 영화를 다시 보고싶었다. 잎이 무성한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정원(한석규 분)과 다림(심은하 분)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스크림을 먹던 장면, 서로의 어깨가 비에 다 젖는 줄도 모르고 가까이 몸을 붙이지 못한 채 쑥스러운 폼으로 우산을 나눠쓰고 걷던 모습, 놀이공원에서 다림이 내미는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양손에 받아들고는 멋쩍은 듯한 미소를 짓던 정원, 불이 켜지지 않는 초원사진관에 돌을 던지며 정원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던 다림. 활자로 된 기록물과는 달리 영화는 그렇듯 띄엄띄엄, 대사도 없는 몇 장의 이미지들로 기억 속에 남곤 한다.

혼자 동네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정원은 곧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한부 인생이다. 첫사랑을 떠나보낸 후 결혼도 하지 않고 삶의 많은 부분을 체념한 채 보내고 있는 정원의 일상은 그다지 새로울 일도 없고 즐거울 일도 없다. 그런 정원 앞에 어느 날 주차단속요원인 다림이 나타나고 두 사람은 점점 사진사와 손님이라는 밋밋한 관계를 벗어나 서로에게 친절을 넘어선 호감을 갖게 된다.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피곤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다림은 자신을 바라보며 사람 좋은 웃음을 한가득 웃어주고 어떤 말을 해도 담담히 받아주는 정원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정원 또한 솔직과 내숭의 경계를 넘나들며 종종 깜찍한 말을 건네오며 자신의 잔잔한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다림이 신선하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정원이 입원한 사이, 다림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게 되고 다림은 문이 열리지 않는 사진관을 바라보며 정원에 대한 호감이 그리움으로, 그리움이 원망으로, 원망이 다시 그리움으로 바뀌는 과정을 겪게 된다. 마지막 정리를 위해 사진관에 들른 정원은 다림의 편지를 보게 되고 다림이 새롭게 일하게 된 구역의 커피숍에서 다림을 바라보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으로서 이제 갓 피어오르듯 싱싱하고 건강한 그녀에게 다가갈 수는 없다. 계절은 바뀌어 겨울이 오고 다시 사진관을 찾은 다림, 사진관 진열대에서 자신의 사진을 발견하곤 정원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모른 채, 활짝 미소 짓는다.

처음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제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의 멜로 영화는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 싶을만큼 좋았더랬다. 같은 감독의 작품이었지만 이후 <봄날은 간다>에서도 이만큼의 진한 여운을 느끼진 못했고 한창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외출>은 배용준과 손예진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너무나 주관적이고도 편협한 이유로 영화를 보지 않았다. 기대만큼의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미 허진호 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최고 정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제는 내려오는 것 뿐인가, 하는 주제넘은 생각까지 했더랬다. 그만큼 이 영화는 내게 최고였다. 세심하고도 강한 내면을 수수한 듯 편안한 웃음으로 감추고 있는 정원과 새카만 생머리를 쓸어올리며 귀엽고 새침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다림 또한 내가 만난 멜로의 주인공들 중에는 단연 최고였다. 정원이 한석규가 아닌 다른 남자배우였다면, 다림이 심은하가 아닌 다른 여배우였다면, 을 상상할 수 없을만큼 적재적소의 캐스팅이었다고 밖에는, 혹은 배우가 가진 이미지를 제대로 끌어내어 활용할 줄 아는 감독의 타고난 감각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길이 없다. 이제 심은하는 결혼과 동시에 배우 생활을 접었고 한석규는 근래 들어 새롭게 연기변신을 시도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향방과는 무관하게 그들의 가장 아름다웠던 청춘은 <8월의 크리스마스>, 이 영화 속에서가 아닌가 싶다. 

날씨 탓인지, 세월 탓인지는 몰라도 요즘은 '삼가는 사랑'에 대해서 이것이야말로 진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머릿수만큼이나 다양한 게 사랑의 정의이며 방식인데다 특정한 하나를 두고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일 또한 무용한 일이겠지만 역시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진짜야말로 진짜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예전에는 산을 끝까지 오르든, 바로 하산을 준비해야 하든, 나는 저 산을 좋아해, 라고 외쳐야만 다인 줄 알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으면 입 밖으로 사랑의 언어들이 폭발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 자존심이라든가, 상대에 대한 배려 따윈 안중에 없었다. 가슴이 시켜서 그랬다, 는 말처럼 솔직한 듯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을까. 물론 그처럼 무모하고도 이기적인 과정을 겪어내며 엇비슷한 상처와 후회를 반복하고 나야만 비로서 성숙해지는 게 인간이라지만. 너를 정말 내것으로 만들고 싶다, 라는 불가능한 소유욕에서 파생하는 줄다리기가 아니라 너를 위한 끊임없는 배려로서의 조심성, 그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의 속성은 아닐까. 내가 완력과 재치로 사랑을 쟁취하고는 막상 스칼렛이 곁에 있어달라고 할 때 냉정하게 등을 보이는 레트 버틀러보다 스칼렛을 사랑했음에도 그 마음을 숨긴 채 끝까지 부인과의 의리를 지켜낸 에슐리 윌크스에게 찬사를 보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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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8-10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림이 정원의 사진관 유리창을 돌로 박살내는 장면이 생각나네요..^^
극중 인물들이 눈물 질질 짜고 슬퍼하는 것보다 더 절절한 이별이 아니였나
생각되어집니다..^^

깐따삐야 2006-08-10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허진호 감독은 절제의 미학에 능통하지요. 스스로 오버하지 않는 대신 관객으로 하여금 오버 해석을 이끌어내게 하는. 어서 이 영화처럼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서 보여주면 좋겠어요. ^^

비연 2006-08-11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환, 볼 때마다 가슴이 아립니다.
우리나라 영화 중 가장 잘 만들어진 영화 중 하나라는 생각.

깐따삐야 2006-08-11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반갑습니다. 참 좋은 영화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