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강은 넓으니 독극물을 방류하라고 하는 미군을 보면서 아, 반미 영화겠구나. 항상 마지막 한 발을 쏘지 못하는 양궁선수로 등장하는 배두나를 보면서 아, 저 활로 결정적 한 발을 쏘겠구나. 다소 모자란 듯 어리버리하지만 딸이라면 사족을 못 서는 송강호를 보면서 마지막에 괴물을 처치하는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겠구나. 괴물이 나온다는 것, 딸이 그 괴물에게 잡혀간다는 것 이외에는 줄거리를 전혀 모르고 극장에 갔지만 영화 서두만 보더라도 영화의 굵직한 줄기들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그만큼 영화의 스토리와 메시지는 지극히 단순했다. 마치 <죠스>와 <엘리게이터>를 적당히 버무려 놓은 듯 하나도 특별할 것이 없는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방식 또한 에둘러 은유하기 보다는 영상을 통해 직접 눈 앞에 보여주고 대사를 통해 귀로 들려준다. 반면에 디테일은 훌륭했다. 돌연변이 도롱뇽같던 괴물은 그 세세한 생김새에 있어서 괴물 영화 중 전무후무한 이미지가 될 것이라 느꼈고 적절한 타이밍에 관객을 놀래켜대는 솜씨 또한 여간 아니었다. 특별한 사유를 필요로 하지 않고 단순하고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완벽하게 몰입하여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오락 영화였다.
<괴물>의 흥행을 바라보며 한국의 관객 수준과 영화의 수준이 잘 맞아떨어진 경우라고 말한 김기덕은 옳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세계 시장에 진출해서도 성공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 때 가서도 김기덕 감독이 세계의 관객 수준과 영화의 수준이 잘 맞아떨어진 경우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물론 나는 그 동안 몇 편 안되긴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게 보아왔고 영화 속 독특한 은유의 미학에 대해서 감탄과 함께 존경을 느껴왔던 참이다. 그의 이번 발언은 실망스럽다. 대개의 평균적인 관객들은 해석이 아니라 오락을 위해 극장을 찾는다. 그런 영화를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지만 내키지 않아 안 만드는 것이라면 그 고집대로 영화계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개척해 나가면 되는 것이고, 소수의 평론가나 매니아층의 공감과 응원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면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읽어내고 어느만치 배려할 줄 아는 것도 감독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왜 이해를 못하느냐, 고 윽박질러봤자 슬퍼지기만 할 뿐. 이 영화는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졌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소시민이고 괴물을 무찌르는 데 일조하는 건 경찰이나 군인이 아니라 노숙자, 여자 양궁 선수, 소시민 아버지다. 국제 깡패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미국에 대해 전 세계가 반감을 가지고 있는 상태고 계절은 아이들의 방학이 끼어 있는 무더운 여름. 영화의 배경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한강이며 괴물은 물 속을 유유히 헤엄치다가 시원한 물살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줄곧 장대비가 내린다. 이만하면 시원하고 통쾌하게 즐긴 다음,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사회적 메시지까지 한 번 더 확인하고 오는 유의미한 경험이 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두 번이나 봤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몽땅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하는 배우들이라 그런지도. 변희봉이야 원체 말할 것도 없고 송강호는 완전 물이 올랐지 싶다.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게 소설이라고 한다면, 소시민보다 더 소시민스러운 사람이 송강호였다. 배우 설경구가 아무리 눈에 힘을 풀고 연기해도 어딘지 배어나오는 독기 때문에 다소 부담스럽다면, 송강호는 언제나 그 모습 자체로 편하고 좋다. 박해일은 무슨 역할을 해도 귀엽다. 뺀질거리는 외모에 쌍시옷을 뱉어대며 악을 써대는 모습을 보면 또 까분다, 는 즐거운 느낌이 들면서 하나도 밉지가 않다. 괴물을 향해 화염병을 던져대는 모습은 다소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웠지만 박해일이니까 그만한 그림이 나오는 것이지, 장동건이 하거나 양동근이 했다면 더 어색해질 것이었다. 배두나는 양궁선수라기엔 너무 바짝 마른 모습에 실감이 덜했지만 어둠 속에서 튀어나올 듯 커다란 눈망울이나 야무지게 꼭 다문 입술은 축축하고 캄캄한 괴물 영화와 잘 어울렸다. 예쁘게 보이려고 하거나 폼 잡지 않고 얼굴에 온통 검은 칠을 한 채 연기에 몰두하는 모습이 좋았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너무 직접적으로 들이대는 것만 빼면(생각할 거리를 주지 않아 그만큼 편하기도 했지만)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너무 직접적으로 들이대는 그 방식 자체도 나쁘지 않았다. 감독의 성향이자 열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알고보면, 가장 평범한 소시민들이 말하는 방식 또한 그렇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