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시절에 동아리 사람들과 어울려 자주 가던 순대집에 다녀왔다. 거의 3년만이었다. 신기하리만치 모든 것이 그대로였고 손으로 직접 돌려서 채널을 바꿔야만 했던 텔레비전만이 리모콘으로 조종하는 평면 텔레비전으로 바뀌어 있었다. 손님이 온 줄도 모르고 할머니는 모로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여긴 번쩍이는 실내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종업원들로 북적거리는 식당이 아니니까. 앉아서 테레비를 보자니 허리가 아파 누워서 보셨다는 할머니 대신 차지하고 앉은 자리가 왠지 죄송스러웠다. 실내는 더웠고 우리를 향한 선풍기는 한 대 뿐이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할머니는 나를 기억 못하시겠지만 나는 오랜만에 외갓집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괜히 반가웠다. 아는 척을 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지금도 동아리 후배들은 이 곳을 자주 찾고 있으니 운을 띄우면 금방 아실 것도 같았지만 나중에 후배들에게 술을 살 때나 그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할아버지는 어디에 가셨을까. 설마 돌아가신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순대와 곱창이 푸짐하게 들어간 찌개나 볶음의 육수가 졸아드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할아버지는 큼지막한 플라스틱 밥공기에 금방 해서 김이 폴폴 올라오는 쌀밥을 꾹꾹 눌러담으며 우리를 향해 웃어보이곤 하셨다. 밤이 늦도록 우리의 술자리가 쉬이 파하지 않을 것 같으면 말없이 다가오셔서 육수도 더 부어주시고 곱창도 더 넣어주시곤 했다. 공기밥을 추가할 때마다 천 원씩 똑부러지게 추가하는 일반 음식점들과는 달리 밥을 더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더 먹으라는 말씀도 하셨다. 비좁고 꾀죄죄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입을 타고 유명해지기까진 음식의 맛도 맛이었지만, 대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욕심을 부리지 않으셨던 노부부의 넉넉한 인품도 큰 몫을 했다. 이제는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할아버지의 안부가 궁금하다.
순대찌개와 머릿고기를 시킨 다음 느릿느릿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을 쏘이며 옛날을 회상했다. 모임을 대충 마무리하고 캠퍼스를 빠져나오면 밖은 캄캄했고 대개는 이야기가 고프고 술이 고플 시간이었다. 정말로 중요한 사정이었든, 과모임이나 소개팅을 위한 핑계였든 빠져나가는 멤버들의 자리만큼이나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은 쓸쓸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런 허전함을 달래주었던 건 순대찌개의 뜨끈한 국물과 구수하고 쫄깃하게 씹히는 곱창과 쌉싸름한 소주 한 잔. 불콰해진 얼굴을 마주하며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심각하게 나누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장 나이가 많았던 선배조차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던 그 때에는 자신을 알고 세상을 느끼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렇듯 쑥스럽고 촌스러운 포즈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곧잘 울며불며 선배와 싸우던 동기 H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둘이나 낳았고 극성스러운 여자친구 때문에 항상 피곤해하던 S는 어느 포털사이트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지랄맞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던 M 선배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공무원이 되었다. 내가 남몰래 흠모했던 D 선배는 얼마전 아빠가 되었다. 그 때 그 사람들은 거의 캠퍼스를 떠났고 몇몇은 남아 있고 새로운 얼굴들이 들어왔다. 그렇듯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집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순대찌개의 맛도 여전했다. 큼지막하게 썰어넣은 순대와 곱창하며 꼬들꼬들 맛있는 머릿고기에 시금시금한 깍두기와 배추김치까지, 할머니 구수한 손맛은 변함없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데려가고 싶은 맛집이다. 추억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미래에도 너와 함께였으면 한다는 바람까지 포함한 것일테니까. 비좁은 골목 구석구석을 찾아들어가 맛있는 꽁치구이나 콩나물무침을 발견하고는 그 집의 단골이 된다거나, 옛날 그대로의 맛을 살려 짜장면을 만드는 허름한 중국집을 알고 있다거나 하는 사람이라면 이 집을 분명 좋아하게 될 것이다.
돈을 주고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식당은 흔하지만 추억이란 별미까지 함께 맛볼 수 있는 식당은 흔치 않다. 대개는 잊혀지기 마련이고 어떤 기억이 비록 세련된 외양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내용물에 있어서는 빤하거나 초라하기 마련이니까. 할머니와 순대집이 사진처럼 언제까지나 늘 그대로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