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고 철저한 척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세상에 완벽하고 철저한 인간이란 없다. 그 사람 참 완벽해, 그 사람 참 철저해, 그건 거짓말이다. 적어도 살아 숨쉬는 인간에게 있어 순도 백퍼센트의 퍼펙트함이란 없다고 믿는다. 타고난 성품이든, 교육받은 자질이든, 콤플렉스로 인해 무기처럼 지니게 된 성향이든, 완벽한 척 할 뿐이지 실제로 완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란 그렇다. 완벽한 척 하는 사람이 실수를 저지르면 다같이 실망하고 함께 비난한다. 반면에 평소 할랑하게 굴던 사람이 한 번쯤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면 새로운 면을 봤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이고 나 역시 그러한 현실 속에 편입한 미약하고 간사한 존재일 뿐이다.
같은 학교에 K 선생님이란 분이 있다. 과학을 전공했고 나와는 동학년을 맡고 있고 출퇴근길에 카풀도 한다. 사십대 초중반 정도로 아마 우리 이모뻘 쯤 되겠다. 근처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나서 올해 우리 학교로 오게 되었다. 첫인상은 날카롭고 이지적이었다. 눈매가 차가웠고 호리호리한 몸집에 걸음걸이는 가뿐했다. 이따금 듣게 되는 웃음소리는 시원했고 노래방에서는 양수경의 '사랑은 창밖의 빗물같아요' 같은 촉촉한 노래를 즐겨 불렀다. 동학년 담임들 중 가장 어린데다 엉뚱한 언사로 사람들을 웃겨대는 내게 꾸준히 호기심을 보이셨고 옆 학급 담임으로서 비교적 잘 대해주셨다. 2학기에 들어와 우리집이 이사를 온 뒤로는 함께 카풀도 하게 됐다. 그런데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낼 때에는 몰랐던 단점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서로간에 미묘하게 까슬거리는 면들이 많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K 선생님은 좋은 것이 있으면 남에게까지 권해주려는 타입이고 나는 아무리 좋은 것이 목전에 있어도 남에게 권해주기는 커녕 내가 싫으면 그만인 타입이다. K 선생님이 진공청소기까지 동원해서 사물함 밑, 신발장 밑까지 샅샅이 청소한다면 나는 먼지가 나면 창문을 활짝 열어야지, 정도로만 생각한다. K 선생님이 등교시간 8시 30분과 종례시간 3시 40분을 칼같이 지키는 담임이라면 나는 사람이 가끔 늦잠 좀 잘 수도 있지, 청소 일찍 마친 사람은 좀더 일찍 가야 옳지, 그렇듯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K 선생님에게는 모든 게 대수롭고 나에겐 모든 게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게 트러블의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이런 대화들.
" 교문 앞에 플랭카드 넘 지저분하게 붙였더라. 학교 입장에서 대외적으로 내보이는 거에 그렇게 무신경하면 안되잖아? "
" 플랭카드요? 그 정도면 괜찮던데. 그거 선생님 말고 아무도 신경 안써요. "
" 김** 선생님은 왜 그렇게 밥을 빨리 먹어? 미각이 좀 둔한가봐. "
" 학교 급식에 뭐 그렇게 오래오래 음미할 만한 요리가 있다고 밥을 오래 먹나요. "
" 그 반 애들이 이번에 성적이 많이 떨어졌더라. 딴 소리나 해대고 공부를 통 안해. "
" 원서 다 쓰고 발표까지 났으니 그렇기도 하지요. 시험공부 안하고 정석이랑 성문영어 공부하나..."
대강 이런 식이다. 써놓고 보니 참 어린 것이 한 마디도 그냥 넘어가는 게 없구나 싶다. 그런데 나는 K 선생님의 지나가는 말로 하는 조언들이 그렇게 거북스러울 수가 없다. 함께 근무하는 보조 아가씨 이름과 나이를 잊어서 세 번이나 되묻고 있는 사람이 누구에게 무슨 조언을 하겠다는 말인가. 나란 사람은 의외로 그렇듯 사소한 면에서 사람을 가르고 판단한다.
며칠 전에는 K 선생님이 내게 찾아와서 우리반 B의 이름을 대며 B 때문에 K 선생님 반 아이가 피해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이 맞다면 나는 B에게 빤히 속은 것이고 그 결과 K 선생님 반 아이에게까지 피해를 준 게 되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아이 모두를 불러놓고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B는 그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다, B와 관련이 있지 않냐는 K 선생님의 추궁에 못 이겨 K 선생님 반 아이가 B의 이름을 팔아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나는 담임선생님께 솔직히 말씀드리라고 했고 그 아이는 B와 나에게 무척 미안해 하면서 돌아갔다. 그런데 뜻밖에 결과가 좋지 않았다. B는 누명을 벗었지만 그 아이는 날마다 불려가 훈계를 듣고 있고 일주일에 책 한 권씩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야 하는, 숙련된 알라디너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요즘 남자 아이들 입장에선 이보다 더 괴로울 게 없을 듯한 벌을 받고 있다. 용기를 내어 거짓말을 한 사실을 털어놓은 아이는 용서받을 기회를 얻을거라고 생각했고 K 선생님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게 전화로 사과를 전하고 난 후부터 아이를 닦달하기 시작하더니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는 그 자체에만 괘씸해 했다. 아이가 친구를 팔아가면서까지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냉정하게 상황을 몰고 간 스스로에 대해서는 왜 반성하지 않을까. 그렇듯 완벽하고 꼼꼼한 척 하시는 분이 간혹 아이들을 상대로 오기를 부리는 걸 보면 하품이 나온다. 아무튼 B를 위해서든, 그 아이를 위해서든, 그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기 아이만 쏘옥 빼서 구해내고 남의 아이는 시궁창에 빠뜨려버린 사악한 엄마가 된 것 같아 영 찜찜하다.
그런데 더 우스운 건 그 일 이후로 K 선생님이 아침, 저녁으로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내용이 우리반 아이들의 불손하면서도 불건전한 언행들이란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고 내 눈에 비친 우리반 아이들은 다소 자유분방하긴 해도 크게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입시가 예년에 비해 일찍 끝나서 전체적으로 학습 분위기가 안 잡히고 부산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학년 전체가 그런 것이지 유독 우리반만 그런 것도 아니다. 특히 B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담임으로서 매우 거슬린다. B는 얼마 전 엄마가 돌아가셨고 아빠는 눈이 잘 안 보이신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긴 했어도 사랑은 많이 주셨다는 것을 B를 보면 알 수 있다. 다소 충동적일 때가 있고 외로움도 많이 타지만 염치와 의리를 알고 자존심도 강하다. 어쩌면 날때부터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사랑을 듬뿍 받아오다가 갑자기 그 줄이 끊어졌기에 더 심하게 허전함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B가 다른 평범한 아이들처럼 시간을 잘 지키고, 열심히 공부하고, 선생님께 공손하길 바란다면 무리가 아닐까. 꼬박꼬박 학교에 나오고 태권도장에 다니면서 스트레스 풀고 그래도 만만한 게 담임이라고 발랄하게 어리광이라도 부려주는 게 내 편에서는 참 다행이지 싶다. 물론 이렇듯 뭐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점 때문에 K 선생님과 부딪치는 거겠지만.
오늘 퇴근길에 교무부장님으로부터 튀지 말라, 는 침착한 조언을 들었고 그 조언은 감사히 새겼다. 두발 문제로 시작된 학생부장 선생님과의 갈등에서부터 K 선생님과의 마찰까지 내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흐름에 맞춰갈 필요도 있는 법이고, 사람 사이에 속내를 빤히 드러내봤자 감정의 골만 깊어진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있던 중이다. 하지만 내가 당신들의 자존심을 추켜세워주지 않고 고분고분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대로 된 확인절차도 없이 뭔가를 덮어씌우려고 한다든지 나이 어린 초짜 교사의 뒷담화나 해대는 지저분한 일은 자제해주면 좋겠다. 학교의 주인은 목소리 크고 성질 있는 교사가 아니라 평범한 학생들일텐데 호응해주고 굽실대지 않으면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 것마냥 뿌르륵거리는 모습들이 보기에 영 불편하다. 모난 돌은 정 맞고 깨지면 그만이지만 혼자서 완벽하게 동그란 척 하는 돌은 정말이지 재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