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고 철저한 척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세상에 완벽하고 철저한 인간이란 없다. 그 사람 참 완벽해, 그 사람 참 철저해, 그건 거짓말이다. 적어도 살아 숨쉬는 인간에게 있어 순도 백퍼센트의 퍼펙트함이란 없다고 믿는다. 타고난 성품이든, 교육받은 자질이든, 콤플렉스로 인해 무기처럼 지니게 된 성향이든, 완벽한 척 할 뿐이지 실제로 완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란 그렇다. 완벽한 척 하는 사람이 실수를 저지르면 다같이 실망하고 함께 비난한다. 반면에 평소 할랑하게 굴던 사람이 한 번쯤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면 새로운 면을 봤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이고 나 역시 그러한 현실 속에 편입한 미약하고 간사한 존재일 뿐이다.  

  같은 학교에 K 선생님이란 분이 있다. 과학을 전공했고 나와는 동학년을 맡고 있고 출퇴근길에 카풀도 한다. 사십대 초중반 정도로 아마 우리 이모뻘 쯤 되겠다. 근처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나서 올해 우리 학교로 오게 되었다. 첫인상은 날카롭고 이지적이었다. 눈매가 차가웠고 호리호리한 몸집에 걸음걸이는 가뿐했다. 이따금 듣게 되는 웃음소리는 시원했고 노래방에서는 양수경의 '사랑은 창밖의 빗물같아요' 같은 촉촉한 노래를 즐겨 불렀다. 동학년 담임들 중 가장 어린데다 엉뚱한 언사로 사람들을 웃겨대는 내게 꾸준히 호기심을 보이셨고 옆 학급 담임으로서 비교적 잘 대해주셨다. 2학기에 들어와 우리집이 이사를 온 뒤로는 함께 카풀도 하게 됐다. 그런데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낼 때에는 몰랐던 단점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서로간에 미묘하게 까슬거리는 면들이 많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K 선생님은 좋은 것이 있으면 남에게까지 권해주려는 타입이고 나는 아무리 좋은 것이 목전에 있어도 남에게 권해주기는 커녕 내가 싫으면 그만인 타입이다. K 선생님이 진공청소기까지 동원해서 사물함 밑, 신발장 밑까지 샅샅이 청소한다면 나는 먼지가 나면 창문을 활짝 열어야지, 정도로만 생각한다. K 선생님이 등교시간 8시 30분과 종례시간 3시 40분을 칼같이 지키는 담임이라면 나는 사람이 가끔 늦잠 좀 잘 수도 있지, 청소 일찍 마친 사람은 좀더 일찍 가야 옳지, 그렇듯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K 선생님에게는 모든 게 대수롭고 나에겐 모든 게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게 트러블의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이런 대화들.

" 교문 앞에 플랭카드 넘 지저분하게 붙였더라. 학교 입장에서 대외적으로 내보이는 거에 그렇게 무신경하면 안되잖아? "

" 플랭카드요? 그 정도면 괜찮던데. 그거 선생님 말고 아무도 신경 안써요. "

" 김** 선생님은 왜 그렇게 밥을 빨리 먹어? 미각이 좀 둔한가봐. "

" 학교 급식에 뭐 그렇게 오래오래 음미할 만한 요리가 있다고 밥을 오래 먹나요. "

" 그 반 애들이 이번에 성적이 많이 떨어졌더라. 딴 소리나 해대고 공부를 통 안해. "

" 원서 다 쓰고 발표까지 났으니 그렇기도 하지요. 시험공부 안하고 정석이랑 성문영어 공부하나..."

  대강 이런 식이다. 써놓고 보니 참 어린 것이 한 마디도 그냥 넘어가는 게 없구나 싶다. 그런데 나는 K 선생님의 지나가는 말로 하는 조언들이 그렇게 거북스러울 수가 없다. 함께 근무하는 보조 아가씨 이름과 나이를 잊어서 세 번이나 되묻고 있는 사람이 누구에게 무슨 조언을 하겠다는 말인가. 나란 사람은 의외로 그렇듯 사소한 면에서 사람을 가르고 판단한다.

  며칠 전에는 K 선생님이 내게 찾아와서 우리반 B의 이름을 대며 B 때문에 K 선생님 반 아이가 피해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이 맞다면 나는 B에게 빤히 속은 것이고 그 결과 K 선생님 반 아이에게까지 피해를 준 게 되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아이 모두를 불러놓고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B는 그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다, B와 관련이 있지 않냐는 K 선생님의 추궁에 못 이겨 K 선생님 반 아이가 B의 이름을 팔아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나는 담임선생님께 솔직히 말씀드리라고 했고 그 아이는 B와 나에게 무척 미안해 하면서 돌아갔다. 그런데 뜻밖에 결과가 좋지 않았다. B는 누명을 벗었지만 그 아이는 날마다 불려가 훈계를 듣고 있고 일주일에 책 한 권씩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야 하는, 숙련된 알라디너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요즘 남자 아이들 입장에선 이보다 더 괴로울 게 없을 듯한 벌을 받고 있다. 용기를 내어 거짓말을 한 사실을 털어놓은 아이는 용서받을 기회를 얻을거라고 생각했고 K 선생님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게 전화로 사과를 전하고 난 후부터 아이를 닦달하기 시작하더니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는 그 자체에만 괘씸해 했다. 아이가 친구를 팔아가면서까지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냉정하게 상황을 몰고 간 스스로에 대해서는 왜 반성하지 않을까. 그렇듯 완벽하고 꼼꼼한 척 하시는 분이 간혹 아이들을 상대로 오기를 부리는 걸 보면 하품이 나온다. 아무튼 B를 위해서든, 그 아이를 위해서든, 그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기 아이만 쏘옥 빼서 구해내고 남의 아이는 시궁창에 빠뜨려버린 사악한 엄마가 된 것 같아 영 찜찜하다.

  그런데 더 우스운 건 그 일 이후로 K 선생님이 아침, 저녁으로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내용이 우리반 아이들의 불손하면서도 불건전한 언행들이란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고 내 눈에 비친 우리반 아이들은 다소 자유분방하긴 해도 크게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입시가 예년에 비해 일찍 끝나서 전체적으로 학습 분위기가 안 잡히고 부산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학년 전체가 그런 것이지 유독 우리반만 그런 것도 아니다. 특히 B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담임으로서 매우 거슬린다. B는 얼마 전 엄마가 돌아가셨고 아빠는 눈이 잘 안 보이신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긴 했어도 사랑은 많이 주셨다는 것을 B를 보면 알 수 있다. 다소 충동적일 때가 있고 외로움도 많이 타지만 염치와 의리를 알고 자존심도 강하다. 어쩌면 날때부터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사랑을 듬뿍 받아오다가 갑자기 그 줄이 끊어졌기에 더 심하게 허전함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B가 다른 평범한 아이들처럼 시간을 잘 지키고, 열심히 공부하고, 선생님께 공손하길 바란다면 무리가 아닐까. 꼬박꼬박 학교에 나오고 태권도장에 다니면서 스트레스 풀고 그래도 만만한 게 담임이라고 발랄하게 어리광이라도 부려주는 게 내 편에서는 참 다행이지 싶다. 물론 이렇듯 뭐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점 때문에 K 선생님과 부딪치는 거겠지만.

  오늘 퇴근길에 교무부장님으로부터 튀지 말라, 는 침착한 조언을 들었고 그 조언은 감사히 새겼다. 두발 문제로 시작된 학생부장 선생님과의 갈등에서부터 K 선생님과의 마찰까지 내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흐름에 맞춰갈 필요도 있는 법이고, 사람 사이에 속내를 빤히 드러내봤자 감정의 골만 깊어진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있던 중이다. 하지만 내가 당신들의 자존심을 추켜세워주지 않고 고분고분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대로 된 확인절차도 없이 뭔가를 덮어씌우려고 한다든지 나이 어린 초짜 교사의 뒷담화나 해대는 지저분한 일은 자제해주면 좋겠다. 학교의 주인은 목소리 크고 성질 있는 교사가 아니라 평범한 학생들일텐데 호응해주고 굽실대지 않으면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 것마냥 뿌르륵거리는 모습들이 보기에 영 불편하다. 모난 돌은 정 맞고 깨지면 그만이지만 혼자서 완벽하게 동그란 척 하는 돌은 정말이지 재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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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8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11-29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학교는 모든 집단들 중 가장 극심한 쓰레기통 모형이라니깐요. 으이구. 힘내자구요. ^^

Mephistopheles 2006-11-29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둥글게 둥굴게~ 짝!
둥글게 둥글게~ 짝!
아 전 왜이렇게 "꼰대"라는 단어가 자꾸 생각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깐따삐야 2006-11-2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결국에는 누워서 침 뱉는 격이지만 학교란 곳이 좀 답답한 건 사실이에요. 어느 집단이든 남/녀, 노/소가 조화롭게 공존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래도 학교는 비교적 평등한 집단이라고는 하는데 워낙에 말로 벌어먹고 사는 직업군이라 그런지 사소한 일로도 늘상 말들이 많고, 의견이 분분하고, 그렇답니다. 저야 투정만 많았지 왠만하면 묻어가고 마는 초보교사지만요. ㅡㅡ;

마태우스 2006-12-02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 다른 걸 존중하고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자기 가는 길로 가야 한다고 우기는 인간이 곁에 있음 겁나 피곤하죠. 깐따삐야님의 미모를 시기해서 그런 건 아닌지 하는 유치한 생각까지 들어요. 어여 다른 학교로 전근가기를.. 그리고, 튀는 게 뭔지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그 학교 인간들이 다들 숙지했음 좋겠구, 튀는 게 왜 나쁜지에 대해서도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줌 좋겠습니다.

깐따삐야 2006-12-02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공감해요. 정말. 사람이 자기 주제파악만 제대로 하고 살아도 주변이 이렇게 시끄럽진 않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친절한 금자씨의 "너나 잘하세요."란 말이 콕콕 와닿곤 합니다.
 



   주말에 시내의 한 식당에서 외사촌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열한살배기 깜찍발랄한 동생 옆에 있으니 늙고 초췌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반면에 서로 정신연령은 비슷한 편이어서 어줍은 어른과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선하고도 유익할 때가 많다. 우리는 영화 '플러쉬'를 보고나서 싸가지 없이 밀치고 들어오는 꼬마에게 마구마구 눈을 흘겨준 다음, 리마리오 롤과 어린이세트를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나는 그녀가 옆에 있어 더욱 용감해졌고 그녀는 내가 있어 하루 종일 심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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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6-11-27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우십니다! 옆에 앉은 외사촌동생은 열한 살치고는 야무지게 보입니다. ^^

blowup 2006-11-27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 사진보다 갸름해지셨는데요. 헤~.

마태우스 2006-11-28 0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깐따삐야님 원래 알았지만, 미녀시네요!!!!!!!

마태우스 2006-11-28 0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르게 추천을....^^

깐따삐야 2006-11-28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일레스님, 네. 야무진 것 맞아요. 엄마가 항상 쟤 반만 닮아라... 하시니까요.

namu님, 얼굴만 좀 그래요. ㅋ

마태우스님, 님도 최근 사진 올려주세요. ^^

Mephistopheles 2006-11-28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털썩...알라딘은 미남..미녀들만 서재를 꾸리는 곳인가...흑흑...
아무래도 전 신비주의로 밀고 가야 겠습니다......
(그런데 리마리오 롤은 뭐죠.?)

깐따삐야 2006-11-28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미녀는 무슨~ 그나저나 언제 얼굴 공개하실 거에욤?? 주니어를 보면 상당히 미남이실 것 같은데. (리마리오 롤은 아보카도와 새우튀김을 가운데에 넣고 슬라이스햄으로 돌돌 말아놓은 아삭바삭+고소느끼한 롤의 한 종류랍니다. ^^)
 
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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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롭고 순진한 여인에 대한 남자의 환상.  

욕심 없이 순수했던 시절에 대한 성공한 사내의 그리움.

문학 내지 예술을 향한 자본과 현실의 끊임없는 구애.

  책을 읽고나서 위의 세 문장으로 감상평을 요약해 보았다. 어쩌면 한 때 내가 꿈꾸던 연애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었다. 한 남자가 내게 반한다, 나는 아무런 직업도 가지지 않고 하루 종일 읽고 쓴다, 남자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 불가해한 면 때문에 나에 대한 그의 환상은 지속된다, 그는 더 많이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고통은 일상의 지루함과 고단함에 비껴서서 색다른 설렘과 열정을 낳는다, 나는 그의 사랑을 받지만 사랑의 대가를 사랑으로 돌려주지는 않는다, 단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어느만치 사실이지 않은가. 스무 살 무렵의 나는 한 때 유행했던 전투적 페미니즘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마치 소설 속 이진처럼, 늙지 않는 소녀같고, 잡을 수 없는 요정같고, 불가해한 귀신같고, 마음 없는 식물같은 여성이 결국 남성을 지배하리라 믿었다. 이진은 가출하지도 않고 가출에의 욕구도 없다. 이현과의 공간에서도 자기만의 자리를 마련할 줄 알고 방해받지 않은 채로 일과 고독에 침잠할 줄 안다. 내편에서 바라본 그녀는 위대한 페미니스트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미덕은 술술 읽히는 맛이 있는 재미있는 소설이란 점이었다. 분량이 적지 않은 장편인데도 책을 받자마자 거의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사이사이 이진의 기록, 이라는 챕터로 구분되어 있는 단편들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문체는 힘들이지 않은 듯 하면서도 유려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내던져진 무력한 인간군상들에 대한 작가의 따듯한 시선 또한 좋았다. 김수현이 쓴 드라마를 보면 끝까지 비난할만한 악인이 하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한 두가지의 인간적 결점으로 인해, 혹은 스스로의 선에서 뒤바꾸기엔 힘겹고 벅찬 운명 때문에 회의하고 방황하다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해가는 모습들을 애정어린 묘사로 잔잔히 그려내고 있었다. 작가로서 문재와 상상력은 꼭 필수적인 항목이겠지만 결국 소설이 사람 사는 이야기란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작가 심윤경이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진정성'이란 미덕은 참 값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상평 하나 더 보탠다.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희극과 촌극의 시대가 뜨겁게 허물어져가는 비극의 시대에 보내는 동경의 메시지.

그리고 이 리뷰를 쓰면서 노래 한 곡이 떠올랐다. 수와진이라는 착하게 생긴 형제 듀엣이 불렀던 노래, 파초. 이진의 죽음을 떠올리다가 이 노래의 노랫말이 생각나서 적어본다.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이진은 파초같은 여자였다.

정열과 욕망 속에 지쳐버린 나그네야.

하늘을 마시는 파초의 꿈을 아오.

가슴으로 노래하는 파초의 뜻을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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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6-12-14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주문했는데요 내일쯤 올 거 같아요. 과연 어떤 연애가 펼쳐질지 궁금하네요.

깐따삐야 2006-12-14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현이고, 이진이고, 흔치 않은 남녀고 흔치 않은 관계인데 황당무개하지 않고 완전 독자를 몰입하게 만듭니다. 님의 리뷰를 기대합니다. ^^
 

  창밖으로 나무들과 전깃줄이 흔들리는 모습이 보인다. 오후 들어 바람이 거세지는듯 하더니 다시 잠잠해졌다. 아침 출근길, 골짜기마다 노란 낙엽송이 장관을 이루던 차창 밖 풍경을 보면서 오늘은 학교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하고 애들같은 생각을 했더랬다. 쓸쓸히 떠다니는 낙엽들도 그렇고 이런 날엔 학교같은 데는 가지 말고 커다란 통유리창이 있는 찻집에서 온종일 잡념에나 빠져있고 싶었다. 언젠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전유성이 나와 그런 말을 했다. 사람이 어떻게 항상 쓸데있는 일만 하고 사나요, 가끔은 쓸데없는 일도 하고 그래야죠. 멋진 사람이다.

  학창시절엔 늘상 이 학교란 곳만 벗어나면 내가 말이지, 하는 꿈을 꾸며 지냈는데 결국 나는 이 자리에 있고 내일 연가를 낸다는 동료를 부러워하고 있다. 나도 연가 내면 되지 뭘, 하다가도 얽혀 있고 매여 있는 인연들과 외출 이후 돌아왔을 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모레면 토요휴무인데 뭐, 하고 소심하게 마음을 접었다. 남자아이들이란 여선생의 센치함을 대충도 이해 못한다. 그냥 오늘은 어제보다는 작게 떠들어줘야 하나보다, 정도를 느껴주면 황송하고. 물론 그 점이 나로썬 편할 때가 더 많지만 아주 가끔씩 서운할 때도 있긴 있다. 내 마음은 이렇게 습습한데 너희들은 어쩜 그렇게 지루하고 까칠한 표정만 하고 있을까. 결국 나의 프로페셔널하지 못함을 탓하게 되긴 하지만 이런 날엔 조그만 손이든, 커다란 손이든 나를 좀 토닥여주면 좋겠다.

  읽다 만 책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내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해줄 사람을 생각해 내야겠다. 얼음장같이 쨍하니 바른 말도 듣고 싶고 고무공처럼 물렁한 사람을 만나 공중에 뭉글거리며 떠다니는 헛소리에 취해 보고도 싶다. 내가 머무르는 정보실에 햄스터 한 마리가 있다. 햄스터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오예스 부스러기나 사과 껍질을 갉아먹고, 목이 마르면 물 마시고, 톱밥 무더기 속에 파묻혀 잠을 자든가, 쳇바퀴를 돌려대는 일 뿐이다. 오늘 동료 E는 자신을 햄스터 우리 안에 넣어달라는 말을 했다. 마침 나도 하고 있던 생각이라서 함께 웃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무엇, 감금. 우리가 원하는 건 5승이 아니라 감금이었다. 햄스터에게는 자유도 없지만 책임도 없다. 가끔은 말 없고 뚱뚱한 햄스터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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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11-23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뚱뚱한 햄스터라... 음, 전 햄스터가 되더라도 날씬했음 좋겠어요...

마태우스 2006-11-23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구 애들이 그만한 눈치라도 있음 다행이죠^^ 우리 애들은 제가 삐진 척을 해야지 조용해진다는..

깐따삐야 2006-11-23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ㅋㅋ 오늘도 어김없이 웃겨주시네요.

2006-11-23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11-23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언제 정말로 술 한 잔 해요. :)

blowup 2006-11-2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전 무책임한 삶을 선택해서 살고 있어요.
다행히 감금도 되지 않고.
그러니 먹이는 제가 구해야 하는 걸까요.
가끔 동료가 구해다 주기도 하고.
더러는 제가 조금 구해오기도 해요.
먹이에 욕심을 부리는 순간. 또 책임의 덫에 걸린다는 걸 아니까.
조금만 먹고 사는 걸로 결정했지요.
이렇게 늘 무심하게 웃겨 주시니. 참.--;

Mephistopheles 2006-11-23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넷상으로나마 토닥토닥....

BRINY 2006-11-23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애들은 꼭 제가 큰 소리를 내야 조용해져요. (이럴 때는 큰 목소리 타고 난게 참 고맙지요--;) 그런데 그 효과가 지속되는 시간도 애들에 따라 천차만별.

깐따삐야 2006-11-23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요즘 저 왜 이럴까요.

메피스토님, 하여간 알라딘의 큰오라버니 되시겠습니다. ^^

BRINY님, 우리 애들은 꼭 제가 큰 소리를 내면 더 큰 소리를 낸다죠. 소리 지르다 삑사리라도 나면 웃고 놀리면서 난리 피우고. 어떨 땐 동물원에 취직한 것 같아요. --;

BRINY 2006-11-23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동물원!! 저도 애들이 종종 동물로 보여요~ 토끼, 참새, 곰, 강아지(강아지는 종류도 다양하죠~), 앵무새, 나무늘보 등등등.
 
조경란의 악어이야기
조경란 지음, 준코 야마쿠사 그림 / 마음산책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작가라면 한 번쯤 이런 책을 써보고 싶지 않을까. 좋아했던 작가들이 할랑한 에세이집을 내면 그 작가도 아니면서 왠지 내 마음이 한가로워진다. 마음이 뻑뻑하고 생활이 촘촘할수록 그런 책들이 반가워지고, 작가가 은유의 형식을 빌려 미처 못다한 이야기가 어딘가에 숨어있지나 않을까 싶어 때론 멈칫거리며 읽기도 한다. 결국 문학이란 건 에두른 자기고백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특히나 에세이를 읽을 때는 작가의 비밀을 들춰보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시답잖은 속내마저 예쁘게 장정된 책으로 나오기도 하니 작가란 얼마나 거품투성이 직업군이냐 싶은 질투 어린 불평을 해보기도 한다.

  조경란은 무척 좋아하거나 관심을 두는 작가는 아니다. <나의 자줏빛 소파>라는 책을 갖고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지만 단지 기억하는 건, 목선이 갸냘프게 드러나는 표지 속의 작가와 적적하고 쓸쓸한 어떤 느낌 뿐이었다. 사실 조경란이 문단에서 두각을 보이던 시기에 나는 김영하를 더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대척점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만큼 서로 다른 경향의 작가니만큼 단지 나의 취향 탓일 것이다. 조경란은 이 책에서도 예의 그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비추고 있듯 오랜 고독과 습작 끝에 작가의 길로 들어선 경우다. 반면에 김영하는 타고난 기지와 발랄함으로 언어와 문단을 상대로 놀이를 벌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만큼 상상력의 파고가 한 마디로 장난 아니다. 조경란이 작가의 운명을 지녔고 작가일 수 밖에 없다면 김영하에게선 펀드매니저나 타짜를 했어도 호의호식하지 않았을까 싶은 짓궃은 느낌을 받게 된다. 하긴, 혹자는 소설가와 사기꾼은 한끝 차이, 도찐개찐이라고 하더라마는.

  <조경란의 악어이야기>는 희망을 주고자 하는 책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유명 작가도 우리와 별다를 바 없이 한 두 가지 감추고 싶은 가정사를 지닌 평범하고 부족한 인간이며, 불행과 고독이 때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는 매우 고전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등대의 불빛 모양 속에서, 나뭇잎 속에서, 수도꼭지 속에서 아무때나 불쑥불쑥 모습을 비치는 악어 제이크는 희망의 상징이다. 사람들이 실의에 빠지거나 우울에 젖을 무렵 빠꼼히 고개를 들고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조경란의 어둡고 쓸쓸한 자전적 에세이 사이사이마다 네 발 달린 녹색 희망, 제이크가 배수진을 치고 있다. 글과 삽화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이 못생기고 작고 무표정하고 튼튼하기만 한 악어가 어쩐지 서먹하고 주춤거리는 듯한 작가의 글을 든든히 받쳐주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래서 하필이면 악어였는지도 모른다. 나무 이야기도, 물고기 이야기도, 고양이 이야기도 아닌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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