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 악어이야기
조경란 지음, 준코 야마쿠사 그림 / 마음산책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작가라면 한 번쯤 이런 책을 써보고 싶지 않을까. 좋아했던 작가들이 할랑한 에세이집을 내면 그 작가도 아니면서 왠지 내 마음이 한가로워진다. 마음이 뻑뻑하고 생활이 촘촘할수록 그런 책들이 반가워지고, 작가가 은유의 형식을 빌려 미처 못다한 이야기가 어딘가에 숨어있지나 않을까 싶어 때론 멈칫거리며 읽기도 한다. 결국 문학이란 건 에두른 자기고백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특히나 에세이를 읽을 때는 작가의 비밀을 들춰보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시답잖은 속내마저 예쁘게 장정된 책으로 나오기도 하니 작가란 얼마나 거품투성이 직업군이냐 싶은 질투 어린 불평을 해보기도 한다.

  조경란은 무척 좋아하거나 관심을 두는 작가는 아니다. <나의 자줏빛 소파>라는 책을 갖고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지만 단지 기억하는 건, 목선이 갸냘프게 드러나는 표지 속의 작가와 적적하고 쓸쓸한 어떤 느낌 뿐이었다. 사실 조경란이 문단에서 두각을 보이던 시기에 나는 김영하를 더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대척점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만큼 서로 다른 경향의 작가니만큼 단지 나의 취향 탓일 것이다. 조경란은 이 책에서도 예의 그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비추고 있듯 오랜 고독과 습작 끝에 작가의 길로 들어선 경우다. 반면에 김영하는 타고난 기지와 발랄함으로 언어와 문단을 상대로 놀이를 벌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만큼 상상력의 파고가 한 마디로 장난 아니다. 조경란이 작가의 운명을 지녔고 작가일 수 밖에 없다면 김영하에게선 펀드매니저나 타짜를 했어도 호의호식하지 않았을까 싶은 짓궃은 느낌을 받게 된다. 하긴, 혹자는 소설가와 사기꾼은 한끝 차이, 도찐개찐이라고 하더라마는.

  <조경란의 악어이야기>는 희망을 주고자 하는 책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유명 작가도 우리와 별다를 바 없이 한 두 가지 감추고 싶은 가정사를 지닌 평범하고 부족한 인간이며, 불행과 고독이 때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는 매우 고전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등대의 불빛 모양 속에서, 나뭇잎 속에서, 수도꼭지 속에서 아무때나 불쑥불쑥 모습을 비치는 악어 제이크는 희망의 상징이다. 사람들이 실의에 빠지거나 우울에 젖을 무렵 빠꼼히 고개를 들고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조경란의 어둡고 쓸쓸한 자전적 에세이 사이사이마다 네 발 달린 녹색 희망, 제이크가 배수진을 치고 있다. 글과 삽화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이 못생기고 작고 무표정하고 튼튼하기만 한 악어가 어쩐지 서먹하고 주춤거리는 듯한 작가의 글을 든든히 받쳐주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래서 하필이면 악어였는지도 모른다. 나무 이야기도, 물고기 이야기도, 고양이 이야기도 아닌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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