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나무들과 전깃줄이 흔들리는 모습이 보인다. 오후 들어 바람이 거세지는듯 하더니 다시 잠잠해졌다. 아침 출근길, 골짜기마다 노란 낙엽송이 장관을 이루던 차창 밖 풍경을 보면서 오늘은 학교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하고 애들같은 생각을 했더랬다. 쓸쓸히 떠다니는 낙엽들도 그렇고 이런 날엔 학교같은 데는 가지 말고 커다란 통유리창이 있는 찻집에서 온종일 잡념에나 빠져있고 싶었다. 언젠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전유성이 나와 그런 말을 했다. 사람이 어떻게 항상 쓸데있는 일만 하고 사나요, 가끔은 쓸데없는 일도 하고 그래야죠. 멋진 사람이다.
학창시절엔 늘상 이 학교란 곳만 벗어나면 내가 말이지, 하는 꿈을 꾸며 지냈는데 결국 나는 이 자리에 있고 내일 연가를 낸다는 동료를 부러워하고 있다. 나도 연가 내면 되지 뭘, 하다가도 얽혀 있고 매여 있는 인연들과 외출 이후 돌아왔을 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모레면 토요휴무인데 뭐, 하고 소심하게 마음을 접었다. 남자아이들이란 여선생의 센치함을 대충도 이해 못한다. 그냥 오늘은 어제보다는 작게 떠들어줘야 하나보다, 정도를 느껴주면 황송하고. 물론 그 점이 나로썬 편할 때가 더 많지만 아주 가끔씩 서운할 때도 있긴 있다. 내 마음은 이렇게 습습한데 너희들은 어쩜 그렇게 지루하고 까칠한 표정만 하고 있을까. 결국 나의 프로페셔널하지 못함을 탓하게 되긴 하지만 이런 날엔 조그만 손이든, 커다란 손이든 나를 좀 토닥여주면 좋겠다.
읽다 만 책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내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해줄 사람을 생각해 내야겠다. 얼음장같이 쨍하니 바른 말도 듣고 싶고 고무공처럼 물렁한 사람을 만나 공중에 뭉글거리며 떠다니는 헛소리에 취해 보고도 싶다. 내가 머무르는 정보실에 햄스터 한 마리가 있다. 햄스터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오예스 부스러기나 사과 껍질을 갉아먹고, 목이 마르면 물 마시고, 톱밥 무더기 속에 파묻혀 잠을 자든가, 쳇바퀴를 돌려대는 일 뿐이다. 오늘 동료 E는 자신을 햄스터 우리 안에 넣어달라는 말을 했다. 마침 나도 하고 있던 생각이라서 함께 웃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무엇, 감금. 우리가 원하는 건 5승이 아니라 감금이었다. 햄스터에게는 자유도 없지만 책임도 없다. 가끔은 말 없고 뚱뚱한 햄스터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