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걸었다. 그러고보면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걷고 또 걷고... 항상 많이 걸었던 것 같다. 꽤 후텁지근한 평일 한낮이었는데도 어디서부터 쏟아져나온 사람들인지 거리는 인파로 북적였고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아무 불평도 없이 툭툭 밀려났다. 화장품 가게에 들렀다가 사과모양의 사과향기가 나는 핸드크림을 발견하곤 그 단순함과 달콤함의 극치에 대해 지인과 함께 감탄했다. 그는 그것을 샀다. 잠깐 의아했지만, 어쩌면 지금은 그렇게 생긴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늘 내가 부족하단 느낌을 갖는다. 그래서 늘 겸손해야겠단 생각을 하며 살지만 안목이 비루해져선 안 된다는 결의도 다지게 된다. 일상의 소품 한 가지를 고르는 안목과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할 때의 안목은 서로 별개가 아니다. 산 것을 후회하게끔 만드는 묵은 옷가지들을 정리하듯 기억이란 것도 주기적인 정돈과 반성이 필요한 것 같다. 나 편리한대로 생각하느라 명징한 성찰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부디 마음의 여유를 갖고 나란 존재를 낭비하지 말아야겠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부드럽긴 하나, 더 이상의 여지를 허용하지는 않겠다는 교수님의 진지한 미소가 좋았다. 문학을 깊이 공부하다보면 정말 재밌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주 재밌어요... 늘상 그렇듯 수줍지만 단단한 목소리. 천진난만한 소년처럼 눈동자에 반짝이는 별을 띄우며 학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어쩐지 시원한 청량감이 느껴졌다. 지상에 한 가지라도 사랑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죽을 수 없다 했던가. 그러고보면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교수님은 굉장히 장수하실 것 같다. 내가 물리거나 질리지 않고 오래오래 좋아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리고 그것들을 계속, 더 진지하게 사랑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생을 지속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사심없이 몰두할 수 있는 평화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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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5-31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도 장수하실 예정이신가요.? ^^

BRINY 2007-05-31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공부, 공부, 공부...해야하는데 말입니다...

깐따삐야 2007-05-3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글쎄요? 전 굵고 길게 살고 싶습니다!

BRINY님, 해야하는데 말입니다.^^
 

  친구가 죽었다. 다시 한 번 나는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단 생각이 든다.

  내가 추억하기론 지나칠 정도로 밝고 건강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스포츠에 능했고 한시라도 친구들에게 장난을 걸지 않고는 못 배길만큼 씩씩하고 개구진 아이였다. 나와는 교실의 책걸상을 모조리 뒤엎으며 험하게 다툰 적이 있었고, 내가 간간히 뻥을 섞어가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면 순진한 아기곰마냥 멍한 표정으로 귀 기울여 듣곤 하던 그런 친구였다.

  혼자 술 마시기를 즐겼다던 그는 죽은 지 열흘만에 자취방에서 다른 친구의 동생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평소에 연락 끊고 잠적하기가 부지기수라 아무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게 불찰이었다. 각자의 일터에서 바쁘게 생활하던 우리는 갑작스런 비보 앞에서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서로 연락을 취해가며 목소리를 낮춘 채 소곤거렸다.

  모든 게 부질없단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온 마음을 기울여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이 놀아주는 일, 이란 생각만 났다. 네가 웃고 있다고 너를 그냥 지나쳤던 내가 너무 미안하다. 우리 나이 이제 스물여덟. 마음이 아프다. 

  버스 안에서 마치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오래된 유행곡 가사가 흘러나왔다.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멎는 노래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 해 사람아 사람아 우리 모두 타향인걸 외로운 사람끼리 사슴처럼 기대고 살자 노래처럼 생을 긍정하기엔 생이 우리에게 무심코 던져대는 운명의 돌덩이들이 때로 너무 아프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다.  

  내일 나는 누군가를 위로해 주어야 한다. 작고 연약한 내 가슴에 기대고 싶어하는 이가 있다니, 세상은 너무도 쓸쓸하고 각박하단 생각이 들어 마음이 짠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오래 들어주는 일, 난생 처음 들어본 듯한 유머로 마구 웃겨주는 일, 좋아하는 사람들을 당장 몰아오고 싶을만큼 맛있는 먹거리를 사주는 일, 술이 달다고 느껴질 때까지 같이 마셔주는 일, 닭살이 막 일어나도 추운 내색 안 하고 밤거리를 신나게 쏘다니는 일, 근사한 점들만 쏙쏙 골라내서 넋을 놓을만큼 추켜세워주는 일, 친구도 동료도 아닌 식구가 되어 조언하는 일... 무엇이든 해야지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위대한 일이란, 누군가 언손을 내밀 때 히터를 꼽을 콘센트를 찾는 게 아니라 얼른 두 손을 꼭 붙잡고 호호 불어주는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웃으며 지나쳤던 그와 그녀들이 괜시리 걱정되는 밤이다. 명복을 빈다. 잘 가라.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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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9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5-30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음이란 것도 운명 앞에선 참 덧없는 것이군요.
하루하루 생이 연장되는 것에 감사해야겠습니다.
위로 많이 해주시고 깐따삐야님도 너무 상심에 젖진 않으시길요...
 

  나는 지금 사랑하는 남자가 없다.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라는 말도 있듯 가끔 약간의 죄책감 비슷한 감정에 시달릴 때가 있다. 요즘 즐겨듣는 노래가 김연우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라는 노래인데 노랫말에 그런 부분이 나온다. 혼자라는 게 때론 지울 수 없는 낙인같아.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 계속 반복되는 그 부분을 듣고 있다보면 가슴이 짠해지면서 스산한 기운이 화악 몰려온다. 왠 청승에 왠 오버람. 날씨도 푹푹 더워질 기세인데 짜증 지대로구나.

  싸이를 거의 안 하지만 아이들이 워낙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데라서 가끔 방명록에 댓글을 달아주거나 어쩌다 내키면 일기 같은 것을 쓰고 나오거나 그 정도로만 활용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방명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잊고 지냈던 한 남자가 안부를 남기고 간 것이다. 내 이멜 주소를 검색해서 내 싸이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아주 우연히 발견했고 들렀다는 것처럼 덤덤하게 글을 남기고 갔는데, 옛날 그 사람이 내게 품었던 감정은 그렇듯 심심한 종류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로썬 얄팍한 호기심이 작동할 수 밖에. 내내 잘 살길 바랬으면서도 편안하고 행복해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니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무슨 빌어먹을 심보인지. 스스로가 밥맛 없어서 마구 고개를 내둘렀다.

  갑자기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와서 나를 놀래켰던 그는 내가 그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처음엔 슬퍼하는 것 같더니만 얼마 후에 나를 미워하게 된 것 같았다. 나의 인간적 호의를 애정으로 확대해석했던 그의 잘못이라고 탓해 보기도 했지만, 돌아보면 볼수록 충분히 오해하고도 남을 빌미를 제공한 내게도 책임이 전혀 없지 않았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마음이 쏠리지 않는 것을. 그는 그가 내게 선물했던 머플러 같은 사람이었다. 목에 두르면 따듯하고 포근하긴 한데 색깔이며 디자인이며 영 마음에 들지는 않는. 고맙긴 한데 두 번 다시 두르고 싶어지진 않는. 더 이상 친구일 수 없었던 그와 나는 조금씩 멀어져갔고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던 중에 그는 마치 선포라도 하듯 문득, 자신의 결혼 소식을 알려왔다. 그렇게 좋다고 할 땐 언제고 참 후다닥 결혼도 한다, 고 생각하며 담담하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결혼한 이후에 그는 내가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면서 그의 아내가 나를 궁금해한다는 이상한 말로 다시 한 번 나를 놀래켰다. 아직 학생이었고, 야무지게 앞길을 닦아야 한다는 목표의식으로 투철했던 나는 그런 그를 속으로 마구 비웃고 있었다. 그리곤 바쁘다, 행복하시라, 는 냉찬 응대로 그를 지웠다. 사랑한 적이 없으니 그가 아쉽거나 그립지 않았고 결혼까지 한 마당에 나에 대해 지지부진한 감정을 가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얄짤없이 매몰차지는 스스로를 보면서 나는 브라보, 를 외쳤다. 이렇게 당차고 똑똑할 수가! 감탄하면서.

  하지만 간사스럽게도 싸이에 있는 그를 보니 역시 참 좋은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어느새 의젓하고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고 공부하는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성실히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의 나였다면 그를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었을텐데... 라는 아쉬움도 드는 게 솔직한 마음. 그깟 삘 좀 없으면 어때. 저렇게 매사 반듯하고 내 사람에게 한결같이 헌신할 줄 알고. 그럼 되는 거지. 그렇게 한참 뒷북을 치다가 그의 머리숱이 많이 적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위안했다. 그래도 머리숱이 없는 건 좀 그렇잖아... 그러다가는 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사는 데 머리숱이 그렇게 중요하냐! 라고 스스로 면박을 줬다. 아마 그 때 그의 마음을 받아들였다면 사랑은 받았을 것이다. 넘치도록. 그렇듯 사랑 받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인데 나는 왜 아직도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걸까.  

  아이러니한 실토지만 대체로 내 가슴에 단번에 꽂혔던 남자들은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였다. 이상하게 첫눈에 반했다가 나중에 실체를 알고 보면 나쁜 남자였다. 그 중에 한 인간은 멀리서 걸어오는 걸 보고 거의 3초도 안 되는 순간에 반해버렸는데 지금에 와서야 내가 너무 외로웠던 게지... 라고 자체진단을 내려보지만 아직도 그 때 그 순간을 떠올리면 심장에 뽀로록뽀로록 물줄기가 뿜어오르는 것 같다. 나란 인간은 단순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어서 일단 꽂혔으면 게임 오버다. 머리로는 계속 버저가 울려대면서 노노노네버, 인데 가슴은 팔랑팔랑 예스예스예스오케이, 를 외쳐댄다. 그러는 사이, 그의 시시껄렁한 허풍은 어느새 자신감으로 둔갑하고 얍삽한 변명은 부득이한 사연으로 승화되면서 그에 관한 것이라면 모든 걸 이해하고도 남는 종교적 경지에 다다른다. 시의적절하게 화내고 튕겨야 하는 타이밍을 놓쳐버리니 매력은 땅바닥에 곤두박질 치고, 안 그래도 품질이 썩 좋지는 않았던 남자들은 마음놓고 오만방자해지는 지경에 이른다. 거침없이 하이킥, 을 보면 서민정 샘이 이민용 샘한테 어설프게 튕기면서 마구 좋아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딱 나다. 하염없이 잘해주다가 한 번 튕겼는데 그게 먹히면 천군마마라도 얻은 듯 만족해하지만, 만약 안 먹히면 자동인형처럼 바로 거침없이 잘해주는 모드로 전환되는. 나의 측근들은 서민정과 나를 오버랩하며 배꼽 잡고 웃다가는 안쓰럽게 혀를 차고... 가관도 아니다. 내가 어쩐지 이민용 샘한테 끌리더라... 하면 넌 세 번만 만나면 아무하고나 정들거야, 라면서 무시하기 일쑤다. 내가 남자 보는 눈이 좀 낮은 것 같지? 라고 물으니 평소 시니컬한 어떤 녀석은 아니야, 낮은 게 아니라... 아예 없어. 눈이 없어! 라고 말했다. 거의 바보 취급을 당하는 현실. 사실 바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끝까지 바보이면 좋으련만 문득, 정신이 드는 순간이 있다는 게 또 내 안타까운 연애사의 맹점이다. 약속을 밥 먹듯이 깨는 한 인간이 있었다. 시간 약속을 일단 두리뭉실하게 잡아놓고는 아주 늦게 연락을 하던가, 그 다음 날 연락해서 가지가지 변명을 둘러다대는. 이야기를 쭈욱 듣고나서 내가 괜찮다고 하면 왜 화를 안 내는 거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나중에 터뜨릴거냐, 라면서 도리어 버럭대던. 바쁜 사람이니까 몇 번 이해해주면 알아서 잘하겠지, 라고 믿었는데 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기 같은 스타일은 보채지 말고 그냥 그러려니 냅두면 나중에 알아서 잘한다길래 진짜 뒤늦게 뭔가 보여주려나보다... 라고 기대했다. 그리곤 말로 표현을 안하고 꽁하고 있으면 절대 모르니 그 때 그 때 말해달라고 부탁하길래 이제는 불만 있음 화도 내고 표현도 해야지, 라고 마음먹었다. 자기는 사실 무쟈게 단순한 사람이라서 알고보면 다루기 쉽다고, 힌트까지 주었다. 그런데 결과는... 말해도 소용 없다는 거. 말 안해주면 모른다고 말하는 남자들은 정말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 귀찮기 때문에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그저 단순한 게 아니라 머리가 나쁘거나 무신경한 건데, 나는 단순한 남자 하나 센스있게 다루지 못한다며 스스로를 자책했었다. 오직 스스로만 탓하며 기본 매너를 상실한 남자를 오래도 참아줬었다. 당일날은 분명 화가 나는데 그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면 모든 게 이해되고 용서되는. 완전 지병이다. 하지만 몇 차례 그런 불상사들이 반복되면 나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관계를 끝내버린다. 갑자기 정신이 든다. 남자들은 일단 어이가 없단 반응을 보이고 간혹 후회도 했을까, 는 모르겠다. 싸워보지도 않고 끝내는 건 좋은 버릇은 아니란 생각도 들지만 순식간에 식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기운도 없고 더 이상 흥미가 없어진다. 참 무기력한 패턴.

  하도 사태가 이렇다 보니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내 눈에 매력 있는 남자는 내 짝이 아니라는. 엄마는 내게 이모부 같은 남자를 만나라는 뜬금없는 조언을 하셨다. 이모부는 성실한 직장인이고 점잖은 외모에 다소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참을성이 많으신 분이다. 우리 이모는 예쁘고 솔직한 분이긴 하지만 화가 나면 후라이팬을 아파트 창밖으로 집어던질 정도로 다혈질에다가 가족들 위에 제멋대로 군림하는 스타일. 그런데도 이모부는 이만큼 잘 살게 된 건 다 이모 덕이다, 라고 늘 모든 공을 이모에게 돌린다. 이모 얘기로는 꼬집고 쥐어뜯고 해도 곰탱이마냥 아무 반응을 안해서 답답해 미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라고 하던데 엄마는 묘하게도 내게 이모부 같은 사람을 만나랜다. 그러고보면 이모부도 내게 참 잘해주시긴 한다. 언제나 내게 후한 점수를 주시는 분이기도 하고. 솔직히 이모부 같은 사람은 내가 혹해서 반할만한 스타일은 아니다. 저 사람 뭐야, 재미 없고 지루해, 그냥 본척만척 스쳐지나고 말 사람인데 엄마는 이모부 같은 남자라야 널 제대로 알아보고 널 아껴줄 수 있다고, 아마 그런 남자가 네 가치를 알아보곤 열심히 공을 들이게 될거라고, 아리송한 말씀을 하셨다. 뭐... 이모부는 최소한 나쁜 남자는 아닌 것 같다.    

  더 이상 나쁜 남자들에게 휘둘리지 않기로 한다. 누군가 첫눈에 좋아진다면 경고등이 켜졌다고 생각하자. 진실하고 헌신적인 남자를 놓치고 나서 아쉬워하지도 않기로 한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확 끌리지 않더라도 세 번 더 생각하자. 그리고 미천한 연애 경험에다가 수학 정석을 비롯해서 작업 정석까지, 정석에 무지몽매한 나는 당분간 그냥 생긴대로 살기로 한다. 언젠간 장님 눈 뜰 날도 오겠지. 아니면 어느 눈 밝은 사람이 나를 알아보아 주던가. 어쨌든 사랑하는 남자가 없는 지금. 혼자라는 게 무거우면서도 가볍고, 쓸쓸하지만 왠지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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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7-05-14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참 많이 인내하셨네요. 그렇게 인내할 땐 왠지 사랑이 잘 안 되더라고요. 썽내고 팩 토라지고, 흥분해야 사랑이 되더라고요. 참 이상하죠..

Mephistopheles 2007-05-14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은 선수가 될 자질은 없어보이십니다...^^
(그런데 그 머플러는 말입니다..잡아 댕기면 매고 있는 사람에게 심각한
상황을 야기시킨다죠..^^)

깐따삐야 2007-05-14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다예요님, 맞아요. 좀 막 대한다 싶으면 긴장하며 잘해주고 편하게 대해주면 오만불손해지고... 아무래도 남이라서 그런가 봐요. 어차피 남이라서.

메피스토님, 선수는 커녕 선수들한테 놀아나지만 않으면 다행이죠 뭐. 머플러 이야긴 동감입니당. ㅋ

이게다예요 2007-05-15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관계를 한 마디로 대변해 주는 말 같네요. 어차피 남이라서.
왠지 너무 정확한 말 같아서 가슴이 서늘해지네요.

깐따삐야 2007-05-15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다예요님, 저렇게 생각해 버리는 것이 저에게는 자기방어, 자기보호의 한 방법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상처를 안 받는다거나 덜 힘든 것도 아니긴 하지만요.^^
 

레와님께서 넘겨주신 <깐따삐야의 독서문답> 입니다.

 

평안히 지내셨습니까?

- 겉으로는 그래요. 속으로는 살짜쿵 심란하다죠.

 

독서 좋아하시는지요?

- 네. 그럼요.

 

그 이유를 물어보아도 되겠지요?

- 자기, 날 왜 사랑해? 라는 물음처럼 대략 난감한데요. 성의 없이 들릴 수도 있는데 정말이지 좋으니까 좋은 거 있잖아요. 책읽기도 그런 듯. 예전엔 뭔가가 좋아질 때 이유를 못 찾으면 스스로 갑갑했는데 요즘은 안 그런 것 같아요.

 

한 달에 책은 얼마나 읽나요?

-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두 권 정도 읽으니까 한 달에 열 권 쯤 되겠네요.

 

주로 읽는 책은 어떤 것인가요?

- 시, 소설, 수필 같은 문학 관련 도서에 관심이 많구요. 실상은 거의 닥치는대로 읽는 편인데 요즘은 닥쳐오는 책들은 슬쩍 밀어놓고 거의 전공관련 책만 보고 있네요. 전공관련 책 또한 문학관련 도서들이긴 하지만 의무감으로 읽다보면 본래의 재미를 놓치기 십상이라서 아... 마음이 무거워요.

 

당신은 책을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 영원한 동반자?

 

당신은 독서를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 활자와의 산책?

 

한국은 독서율이 상당히 낮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읽는 사람은 많이 읽고, 읽지 않는 사람은 거의 안 읽기 때문에 전체적인 독서율이 낮게 나오는 것 같은데요. 책을 읽지 않고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부러울 따름이죠.

 

책을 하나만 추천하시죠? 무엇이든 상관 없습니다.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사로잡힌 영혼> 추천합니다. 만만찮은 두께이지만 문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는 최고의 책이 되리라 확신해요.

 

그 책을 추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평생을 한 가지에 매혹되어 살아간 사람의 일대기를 읽는 것은 참 흥미롭거든요. 저만 그런가.

 

만화책도 책이라고 여기시나요?

- 네. 삘~ 받은 만화책도 많습니다.

 

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비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 문학을 훨씬 더 많이 읽는 편이에요.

 

판타지와 무협지는 "소비문학"이라는 장르로 분류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하여간 우리나라는 분류에 목숨 거는 분들 참 많아요. 판타지나 무협지는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가끔 빌려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스토리 자체만으로 볼 땐 꽤 재미있는 것도 있었지만 그냥 잊혀지더라구요. 다시 찾게 되지도 않고.

 

당신은 한 번이라도 책의 작가가 되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 쓴 글이 책에 실린 적은 있었어요.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그 때의 기분은 어떻던가요?

- 당연히 좋았죠. 제가 아주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 때는 그 식상한 이름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더랬어요.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 많은데... 알베르 카뮈, 레이먼드 카버, 테네시 윌리엄스, 윤대녕 등등... 아주아주 많아요.

 

좋아하는 작가에게 한 말씀 하시죠?

- 만나서 반가워요. 그나저나 작가로 사시는 동안 얼마나 좋으셨어여?

 

이제 이 문답의 바톤을 넘기실 분들을 선택하세요.

- 에구... 부담드리기 싫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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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5-10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실린 책이 무어랍니까.??

깐따삐야 2007-05-10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중학교 때 소설이 픽션인지 논픽션인지도 지대루 구분 못하던 시기에 단편소설을 하나 썼고 그게 당선이 되었던 적이 있어요. 수상작품집 속에 끼어서 출간이 되었고 지금도 검색사이트에 쳐보면 뜨긴 하는데, 책제목은 비밀입니당. 흐흐~

마법천자문 2007-05-10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문학상 작품집 아닌가요?

깐따삐야 2007-05-10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66억님, 1/66억 같은 말씀만 하시기에요?! ㅋㅋ

비로그인 2007-05-10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한때 저의 가슴을 불살랐던 윤대녕...^^
잘 읽었습니다.

깐따삐야 2007-05-10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2님, 아, 전 님이 윤대녕을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왠지... 왠지 말예요.^^

비로그인 2007-05-10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흣, 왠지 기분 좋은데요 깐따삐야님 :)

레와 2007-05-11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록 실제로 뵌 적은 없지만,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계실 깐따삐야님,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것 같아요!!!

갑작스러워서 놀라셨죠?!...^^;;;;;;;

깐따삐야 2007-05-11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와님, 저기... 공부를... 열심히...(쿨럭)... (두리번두리번)... 하고 싶지요.ㅋㅋ 독서문답, 쓰면서 재미있었어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레와님께 감사해요.^^
 

  중국여행을 같이 갔던 사람들이 모였다. 보쌈을 배터지게 먹고 맥주가 생각나서 라이브카페에 갔는데 술이 어찌나 약해졌는지 원래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이지만 어제는 아주 죽는 줄 알았다. 다른 테이블에 앉았던 어느 빼짝 마른 아저씨는 온몸을 쥐어짜며 찢어질 듯 노래를 불렀고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이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한 나는 한동안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채로 쉬어줘야만 했다. 물 만난 고기처럼 놀고 즐기는 것도 신체 리듬이 맞장구를 쳐줘야지, 할랑한 기분만으로는 무리였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은 모두 반가웠고 다들 출근 안 하는 나를 부러워했지만 술기운 탓인지, 나는 공연히 살짝 센치해지기까지 했다. 함께 3학년을 맡았던 선생님이 졸업앨범에 들어간 스냅사진을 확대해서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 주셨는데 사진 속에서 수줍에 웃고 있는 나를 보니 오, 참 앳되구나,  하는 시건방진 생각이 들었더랬다. 요즘 거울을 볼때마다 눈밑 애교살 부근에 자글자글 잡히는 주름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다. 작년까지만 해도 절대 이런 걱정을 하지를 않았었다. 게다가 나란 인간이 몸이 안 따라줘서 놀지를 못하다니, 넌센스지 넌센스야. 일하면서 쉬어주고 놀면서 체력보강하던 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슬쩍 맛이 간 것 같다. 살이 좀 빠져서 그런가. 이제는 높은 산도 잘 오르고 아무리 걸어도 말짱하니 체력은 더 좋아진 게 분명한데 내 안의 흥이 살들과 함께 우수수 빠져나간 것 같다. 나도 이제 그 아저씨마냥 멸치꽁댕이처럼 온몸을 쥐어짜며 노래를 불러야 할지도 몰라. 보기 숭하던데. 볼 때 다르고 놀 때 다른 반전의 묘미, 가 곧 나의 매력이었다. 기필코 사수해야 한다. 살은 보내고 흥은 추스리자.

  4월은 아마 사랑이 하고싶어지는 달인가 보다. 그래서 잔인한 게야. 평생교육 시간에 한 남학우가 세미나 중간에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불렀다. 그것도 기타를 치고 하모니카를 불면서 아주 지대루. 웃으면 눈이 보이지 않는 귀여운 타입이었는데 목소리가 으찌나 좋던지 노래가 끝나자마자 강의실 내의 여인네들의 표정과 음성이 약 2.3배 정도 상승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그 남정네는 우리과 동기 H의 가슴에 확 꽂혀버렸다. 가까이 앉아 있었기에 더 확실히 목격했다면서 목소리 좋지, 노래 잘하지, 거기다 기타까지 치네, 하모니카를 불던 입술은 또 어찌나 섹시하던지. 아주 난리였다. 밥 먹으면서 내내 그 완소남에 대해 이야기하더니 학생회관 앞에서 완소남과 마주친 그녀. 대담하게도 지나치는 그에게 다가가 먼저 인사를 건넸고 우리의 완소남은 상냥한 말투로 점심은 드셨냐고 대꾸를 해주더니만 큰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총총히 사라졌다. 너 좋아하는 거 너무 표나더라. 그녀는 경상도 억양으로 화들짝 그랬어여?? 하더니 손에 들고 있던 캔커피를 못 줬다면서 또 아쉬워한다. 캔커피를 건네면서 손이 살짝 스칠 수도 있는거고 그건 엄연히 둘 사이를 가깝게 만드는 스킨십일 수도 있다나 모라나. 스물다섯. 그녀의 하얀 블라우스 사이를 파고드는 건 따듯한 햇살, 살랑이는 봄바람, 그리고 찌릿한 연정이었다. 어쩌면 그 때가 가장 좋지 아니한가. 누군가가 막 좋아질락말락할 즈음. 누군가에게 막 다가설락말락할 무렵. 나도 주름이 더 늘기 전에 몇 번 더 들이대야 하는 건 아닐까. 이렇게는 못 늙는다. 억울해서.

  나 시집 잘 가나, 못 가나에 유독 관심이 많은 친구에게 만나는 남자만 무려 세 명이라고 구라를 쳤고, 주말에 도통 바빠서 시간이 안 난다고 허풍을 떨었고, 남자보다는 일단 자기계발에 힘써야 하지 않겠냐고 잘난척을 해가며 반쯤은 진심 섞인 이야길 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미루고 미뤘던 레포트 쓰느라 이렇게 컴퓨터 앞에 노곤한 몸둥이를 쟁여놓고 있다는 거. 교사가 되고나서 심신에 익힌 개김의 미덕 때문에 뭐든 빨리 하는 게 없다. 학교에 있을 땐 업무를 빨리 처리하면 손해였기 때문에 날짜 임박해서 그것도 있는 엄살, 없는 엄살 다 해가며 제출해야 몸이 편했다. 빨리 하면 더 얹어주면 얹어줬지 일찍 하고 쉬라, 는 법이 없으니까. 성질 급한 걸로 따지면 챔피언급인 나도 인정할 정도의 교훈이면 어지간한거다. 아무튼 몇 년을 그래왔더니 이제는 뭐든 데드라인에 임박해서 아둥바둥이다. 대학원 공부나 과제라는 게 그렇듯 번갯불에 콩 튀겨먹듯 되는 게 아닌데 하여간 못된 건 빨리 배워가지고 이게 뭔 곤욕이람. 이토록 청아한 주말. 아리송한 단편 하나를 번역하다보니 타자를 치는 손가락에 힘이 스르르 빠진다. 누가 이렇게 아리까리하게 쓰랬니.

  제목을 4월이 가기 전에, 라고 해놓긴 했는데 4월이 가기 전에 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갈피를 잃었다. 지금 쓰고 있는 레포트 끝내는데 의의를 두어야 할 듯. 숙취를 해결하는 데에도 의의를 두어야 할 것 같다. 왜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가나, 했더니 눈이 뻑뻑하고 머리가 띵한 게 어제 마신 술 탓이지 싶다. 그나저나 그 멸치꽁댕이같던 아저씨는 왜 계속 떠오르고 난리람. 마이크가 사람인지, 사람이 마이크인지. 하여간 보기 숭했다.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노래방으로 가시지 왜 굳이 라이브카페에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시는 건지. 맑고 개운한 머리로 번역을 하고 레포트를 쓰며 자기계발에 힘써야겠다고 다짐을 하며 글을 마쳐야겠다. 한 마디로 잠부터 좀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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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4-2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엔..왜 이리..소녀들이 많은지...거 참.....^^

비로그인 2007-04-22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차장님, 소녀가 나쁜 거에요? -.-...
전 보기 좋기만 한데요!!! :) 나도 구라좀 치고 싶어요 ㅋㅋ~

레와 2007-04-22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쪼록, 내일 아침은 상콤-한 모닝이길...!!

이 빼빠를 오늘 낮, 한낮에 보았더라면
당장 밖으로 나가서 봄 햇살 좀 쬐고 와요!! 라고 했을꺼라는..

모쪼록... 모쪼록... 모쪼록...^^*

깐따삐야 2007-04-23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네... 주름 자글자글한 소녀입니다... ㅠ.ㅠ

체셔고양2님, 보기 좋으시다니 다행이에요. 저 정도 구라는 그냥 애교죠? ㅋ

레와님, 어제도 저녁 늦게 들어왔더니 아직 피곤하네요. 대체 레포트는 언제 끝낼지 갑갑합니다~ 레와님도 쌍콤하게 한 주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