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엄마 생신을 잊은 줄 알고 문자를 두 번이나 날렸다. 일주일 전에 보낸 문자. 오빠... 다음주 일요일이 엄마 생신인 거 알지? 그리고 어젯밤에 보낸 문자. 오빠... 내일이 엄마 생신인데 전화라도 하지. 오빠는 내가 처음 문자를 보냈을 때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는 여행을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가 단칼에 거절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그러자 오빠는 용돈을 보낸드린다고 했고 생일이 오늘인데 보낸다는 용돈은 일주일이 넘도록 깜깜 무소식이었다. 남매 지간에 치사스럽게 돈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니었다. 돈은 나도 벌고 있고, 나도 자식인데 저 멀리 달나라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구상의 어느 곳이라도 구경시켜 드릴 수 있다. 다만 그 심보가 고약했을 뿐. 엄마는 내가 주말 내내 투덜거리자 제발 좀 가만히 있으라고 타이르셨고, 그런 엄마를 대하고 있자니 어쩐지 더 화가 났다. 오빠는 바쁘니까 그렇다 쳐. 언니는 대체 뭐래. 며느리가 되어가지고. 엄마는 내가 시집 가서 내일이 시어머니 생신인데 넋놓고 띵가띵가 하고 있으면 아이구, 우리 딸... 참 이쁘다, 잘한다, 그럴거야? 엄마는 네가 고렇게 시누이 노릇을 하려고 들면 중간에서 너희 오빠만 힘들어지고, 그런 모습을 보는 엄마는 안 힘들겠냐며 나를 열심히 달래셨다. 그 마음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참을성 제로인 나는 급기야 토요일 저녁, 내딴엔 화를 누르고 또 누르며 조심스럽게 문자를 보냈다. 오빠... 내일이 엄마 생신인데 전화라도 하지... 휴대폰은 한참 동안 반응이 없었고 거의 포기한 채 잠을 자려고 하는데 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는 바쁜데 대체 왜 자꾸 문자를 보내냐며 버럭 화부터 냈다. 기가 막히다 못해 말문이 막힌 나는 잠깐 버벅대다가 이건 좀 너무하는 거 아니냐며 더 크게 화를 냈다. 오빠는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이렇게 반응하는 나를 이해 못하겠다고 했고 나는 어떻게 엄마 생일이 별 게 아닐 수가 있냐고, 대체 내일이 생일인데 전화는 언제 하려는 거였으며, 언니는 옆에서 뭐하고 있는 거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오빠는 한 술 더 떠서 언제부터 그렇게 우리가 생일을 열심히 챙겼느냐고, 그거 말고도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느냐고, 짜증까지 냈다. 열이 머리 꼭대기까지 뻗친 나는 느그들끼리 잘 먹고 잘 살라는 투로 쌀쌀맞게 전화를 끊었다. 밖에서 깜짝 놀라 들어오신 엄마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채 나를 꾸중하셨다. 오빠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하자 엄마는 오빠가 엄마를 믿어서 그러는 거라며 그렇게 화를 내는 애가 아닌데 요즘 무슨 일이 있나, 힘이 드는가 보다, 오히려 오빠를 염려하셨다. 문자를 보냈던 것을 후회했다. 엄마 근심걱정만 하나 더 보탰구나. 내가 벌려놓는 일이란 게 늘 이렇지 뭐.

  오빠는 나와 통화를 끝내마자마 곧 집전화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오빠와 언니의 안부부터 들입다 물으시더니 나는 걱정 말고 너희들이나 잘 있어라, 딸 입장에선 그런 서운한 감정 가질 수 있다, 네가 오빠니까 이해해라, 등등... 참으로 인자한 말씀만 하셨다. 또 나만 못되먹은 여동생이자 속알머리 없는 딸년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전해듣자니 내가 문자를 보냈을 무렵, 오빠는 중요한 모임이 있어서 식사 중이었는데 똑같은 문자를 두 번이나 받으니 얘가 지금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건가 싶어서 짜증이 났단다. 내딴엔 언니한테 보내고 싶은 걸 오빠한테 보낸 것이고, 그것도 오빠가 바쁠까봐 전화 대신 문자로 보냈던 건데 어따 대고 승질이야 승질은. 즈그들이 뭘 그렇게 잘했다고. 암만 바빠도 손가락이 부러졌냐, 전화도 못하게. 그리고 은행에서 일하면서 돈도 못 부치냐. 점심 먹고 이 한 번 쑤실 시간에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바로 입금되는 걸. 나는 밤이 깊도록 계속 씩씩거렸고 엄마와 아빠는 이런 나를 향해 한숨을 쉬시며, 너나 나중에 시부모한테 잘하라고, 오빠하고 언니는 다른 식구다, 따로 떨어뜨려 놓고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거기서 그만 해도 될 것을 나는 쉼 없이 재잘거렸다. 그러엄, 난 나중에 잘할거야. 언니처럼 안해. 엄마는 내가 시어머니 생신날 아침에 전화해서는 생일상은 잘 차려 드셨어용? 이 따위로 묻기나 하면 어이구, 우리 딸, 고생도 안하고 참 잘한다, 이럴거야? 엄마는 지금도 그렇고 나중에도 그렇고 너 하나 때문에 집안에 분란 일어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돌아누우셨고, 아빠는 조용히 바둑에 다시 집중하셨다. 분란의 불씨였던 나는 제 분을 제가 못 이겨 찔끔거리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침을 먹고 나니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뭐가 그렇게 안쓰럽고, 미안하고, 사랑스러운지 생전 안 내던 목소리까지 내며 다정스럽게 통화하셨다. 설거지를 하고 있던 나는 여전히 마음이 풀려있지 않은 상태였고 언니한테 미역국은 커녕 생일케익 하나 얻어먹지 못하고서도 어디서 저런 상냥함이 용솟음치는지,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통화 내용을 들어보니 언니는 감기에 걸린 모양이었다. 하여간 집안 어른 생신이나 제사 때만 되면 갑자기 몸저 눕는 것들이 있다더니 남의 집 일이 아니구만. 엄마는 요즘 딸기가 많이 나오니 딸기도 사다 먹고 아무 일 하지 말고 푹 쉬면서 몸조리 잘하라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셨다. 엄마야말로 김치냉장고에 꽁꽁 묻어놓은 한라봉 좀 마구마구 꺼내드시고 아무 일 좀 하지 말고 푹 쉬면서 몸조리나 잘하시지. 언니는 오빠를 바꿔 주었고 엄마는 또 한바탕 염려와 애정이 고루 섞인 목소리로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셨다. 전화를 끊고 엄마는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느이 오빠가 하여간 오나가나 선생들 징징거리는 것 때문에 짜증난단다. 언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남들은 교사 며느리면 좋은 줄 알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네들의 오만에 가린 무능력과 게으름에 대해서. 물론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빠와 언니는 3년을 사귀다가 결혼했고 그 누구도 그들의 결혼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선남선녀란 칭송이 자자했고 나는 결혼식장에서 내내 눈물을 훔쳐댔지만 그건 슬픔 때문이 아니라 오빠가 어느새 저만큼 성장했구나, 하는 감동 때문이었다. 언니는 훤칠하면서도 다소곳한 미인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초등학교 교사라는 타이틀에 점수를 듬뿍 얹어 주었다. 하지만 팔이란 게 안으로만 굽어서 그런가. 나는 두고두고 우리 오빠가 아까웠다. 나도 교사인데 내가 만났던 남자들은 죄다 오빠보다 못한 인간들이었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언니보다 무지 못났냐 하면 그것도 아니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훤칠하지도 않은데다 다소곳과는 더더군다나 거리가 멀기에 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네가 못난 거 맞네, 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뭔가 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항시 조용조용하고 차분차분한 언니를 볼 때면, 저렇게 생겨먹은 여자애들 때문에 학교 다닐 때 둘이 같이 떠들어도 꼭 나만 혼나곤 했는데, 하는 억울했던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언니가 쌈빡한 선물을 챙겨줄 때나 부모님께 잘할 때면 그런 마음이 싹 가실 때도 있었지만, 설거지를 하고나서 매번 수저를 거꾸로 꼽아놓을 때는 아직 멀었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말만 이렇게 할 뿐, 오빠 내외가 한 번 집에 다녀가면 엄마와 나는 곧바로 몸살을 앓을 만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챙겨먹이고 바리바리 싸 보내느라 일심전력을 다한다. 시집살이란 건 정말 옛말이다. 요즘 시어머니나 시누이들은 며느리와 올케 때문에 보약이라도 지어먹으며 노동을 해야 할 지경이다. 공들여 아들 키워놓고 나서는 다시 며느리 수발하느라 요즘 시어머니들 참 힘들다. 그 뿐인가. 아이라도 낳아서 데려오면 시아버지는 허리 아프단 말도 못하고 반짝 일어나 목마 태워줘야지, 시어머니는 한 편에서 유기농 채소로 이유식 끓여줘야지, 그야말로 네버앤딩서비스다. 그것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처럼 싫은 내색 하지 말고 해야지, 싫은 내색 했다 하면 바로 며느리 눈총 아들에게 가서 박히고, 엄마 말처럼 집안에 분란 일으키지 않으려면 그저 하고 싶은 말도 참고 마음에 안 들더라도 패스, 하며 생글거려야 한다. 나도 사실 모든 걸 떠나서 오로지 오빠를 위해 입을 다물고 눈가에 잔주름을 만들며 웃곤 한다. 친자매 같은 올케, 딸 같은 며느리, 나는 냉정한 인간이라 그런지 그런 말 하는 사람들 보면 닭살만 와르르 돋는다.

  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확실히 오빠는 순한 남자다. 삐졌냐고 해서 아니라고 했다. 혹시 잊었을까봐 그랬고, 오빠보다 언니한테 좀 섭섭했다고 했다. 오빠는 언니 이름을 대며 00가 너 정도만 되어도 뭐가 걱정이겠냐고 괜히 나를 부추겨줬다. 어제는 언니가 옆에 있어서 더 화를 냈던 거라고. 그런 말들을 주욱 듣고 있다보니 오빠가 참 안쓰럽고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보니 영리해졌구나. 그 마음씀에 가슴이 쓰렸다. 오늘은 가봐야 할 결혼식이 두 개고 오후에는 회사에도 들러야 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심하게 잠겨 있었다. 아픈 데 있냐고 물으니 이가 아파서 병원엘 가야 할 것 같다고. 제발 아프지 말고 건강 잘 챙겨... 병원에도 가고... 나의 학교 생활을 묻고 나중에 식구들끼리 장어 먹으러 가자며 밝게 이야기했다. 엄마하고 호박꼬지 말린 것으로 찰떡을 해서 이모들과 나눠 먹을 거라고 했더니 내가 떡 좀 보내줄까, 한다. 나한테 화를 내놓고 미안했던 모양이다. 나는 아니라고, 오빠하고 언니나 건강하게 잘 있으라고, 언니도 감기 걸렸다던데 옆에서 잘 챙겨주라고, 갑자기 착한 말이 술술 나왔다. 오빠는 오후에 출근하자마자 돈은 부치겠다고 말했다. 에휴... 단순하기는. 서울이라는 괴물 같은 도시에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고 있는 오빠를 내가 너무 괴롭혔구나, 반성을 했다. 엄마 생신을 앞두고 나는 최악의 선물을 한 셈. 엄마가 종종 네가 아무리 살갑게 굴어도 결정적인 순간에 엄마한테 힘이 되는 건 그래도 오빠다, 라고 말씀하시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란 인간은 본의 아니게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일을 너무 자주 저지르곤 한다. 사랑하지만 말고, 좀 아껴주면 안되겠니. 이제부터라도 분란의 불씨가 마음 한 귀퉁이에서 깜빡거리면 지체하지 말고 찬물을 끼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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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7-03-18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고맙습니다.^^ 근데 이제부터는 어설프게 시누이 노릇 하려고 들지 말고 그냥 제 나름대로 부모님께 잘하려고 노력해야겠어요. 오빠만 더 힘들어지고, 그건 원하는 바도 아니고. 저도 별로 잘하는 거 없으면서 괜히 시끄럽게만 만들고... 후회스러워요.

이게다예요 2007-03-18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빠들은 대부분 기질면으론 착하지만, 결혼하면 여자를 따르게 마련인 거 같아요.
님의 새언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조용하고 차분면서 센스없는 사람을 매우 못마땅해하는 편이에요. 부모님 생일이나 챙겨야 할 날에 딱딱 맞춰 용돈을 보내지 못하는 건 대부분 여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인 거 같아요. 대체로 돈은 여자들이 관리하니까요. 그런데서 센스와 경우와 성의가 보이는 거 같아요.
아, 여기서 왠 흥분이죠?ㅋ

Mephistopheles 2007-03-18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까지 초절정 미녀이신 깐따삐야님의 넋두리셨습니다..^^
아버지가 선생님이셨다 보니...여교사에 대해 말씀하시는 걸 자주 듣게 되었지요..
장점과 더불어 장점을 말입니다..^^

마태우스 2007-03-19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생신이라고 가르쳐주는 동생에게 대뜸 화부터 내다니, 이해가 잘 안갑니다. 그나저나 제가 깐따삐야님 사진을 안봤으면 모를까, 언니가 더 미녀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깐따삐야 2007-03-19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다예요님, 척 보기엔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데 순간순간 센스꽝이라서 사람 속 터지게 하는 부류가 있지요. 그렇지만 그런 사람한테 뭐라고 해도, 뭐라고 한 사람만 욕 먹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저도 참하고 다소곳한 처자가 되고 싶어요. ㅡㅜ

메피스토님, 결국 누워서 침 뱉는 격이라도 할 수 없어요. 사람들은 교사라고 하면 자녀교육 잘 시키고, 어르신한테 깍듯하고, 그런 좋은 면들을 주로 생각하지만 저 자신을 비롯해서 주변의 현실들을 봤을 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거. 직업을 떠나서 그저 인간 나름, 이에요.

마태우스님, 오빠가 결혼하고 나서 이상하게 성격이 급해졌어요. 답답한 언니 때문이라고 또 언니 핑계를 대야만 속이 시원해지는 못된 시누이가 저라죠. 그리고 언니는 다들 미스코리아니 탤런트니 하지만, 외모라는 건 옥동자든, 조지 클루니든 자꾸 보면 익숙해지는 거고 결국 중요한 건 그 역할을 잘 하는가, 못 하는가, 아니겠어요. 그래도... 오빠를 괴롭힌 격이 되어서 제 행동에 대해선 후회하고 있어요.

봄봄 2007-03-22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삐야님..거의 울집 풍경을 보는 것 같습니다. ㅋㅋ 저도 맨날 온 가족의 생일을 다이어리에 적고 가족들에게 미리미리 통보하곤 합니다. 어느덧 형제들의 생일 때마다 모여서 저녁먹고 촛불끄고 선물전달하고 그랬는데 언젠가 큰올케언니가 그러더라구요. 한번에 몰아서 하면 안되겠느냐고. ㅠㅠ 지금은 조카들까정 생겨서 만남이 더 잦아지긴 했죠.

그런데 저도 바쁜 큰 오라버니한테 자정을 넘어서 전화해서는 지금까지 오빠가 체크하지 못했던 부분과 앞으로 체크해야 할 집안의 대소사들에 대해 1시간씩 잔소리를 해대기도 했지만, 이제는 마음을 좀 비웠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딸과 결혼을 한 아들과 시집온 며느리와 며느리를 둔 시어머니는 그 입장부터가 다르더라구요. 그리고 가족안에서 각자의 역할이 있더라구요. 님이나 저 같은 경우는 의사소통의 창구라고라 할까? ㅋㅋ

하지만 사람이 순식간에 바뀐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저 서로를 이해해가면서 조금씩 그 간격을 좁혀가는 것 뿐이더라구요. 큰오라버니가 내 잔소리를 다 듣고 나서 그러더라구요. 미안하다고, 앞으로 노력하겠다고, 고맙다고, 그런데 자기는 한번에 여러 가지를 신경쓰는 것(챙김)을 잘 못한다고 그러더라구요. ㅋㅋ

깐따삐야 2007-03-22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봄님, 다들 살아가는 모양새가 비슷한 모양이에요. ㅋㅋ 마지막 말씀에 공감해요. 저희 오빠도 한 번에 여러가지 챙기는 걸 잘 못하는 편인데, 남자들은 대개 그렇지 않나요? 그래서 함께 사는 여자가 잘 챙겨야 하는건데 말이죠. 근데 저도 결혼하면 나중에 나 몰라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이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