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 웡카씨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무렵엔 내가 다리를 다쳤을 때였다. 목발을 짚은 채로 영화를 보러 갈 수 없었던 나는 시공사에서 나온 '찰리와 초콜릿 공장', '찰리와 거대한 유리 엘리베이터'를 샀고 그 책들이 너무나 재미있어 원서로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Puffin에서 나온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를 샀다. 쉽고 재치 있는 영어로 되어 있는 그 책은 흥미 면에서나 학습 면에서나 매우 추천할만 하다. 그리고 작가 로알드 달은 익히 듣던 바대로 이야기의 고수이며 귀재였다.

동화적인 상상력을 실현시키는 데는 역시 활자보다는 비쥬얼이 낫다는 것을 영화를 보며 느꼈다. 조니 뎁은 마치 미국판 노홍철 버전을 보듯 엉뚱하고 산만한 모션들로 나를 웃겨주었고 영화 사이사이에 원색의 쫄티와 쫄바지를 갖춰 입고 등장하여 흥겨운 뮤지컬을 보여주는 움파룸파 사람들도 책에서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네 명의 문제아들을 제치고 가난하지만 정직한 소년 찰리가 결국 초콜릿 공장을 물려받게 되고 고립된 채로 오직 성공만을 위해 살았던 웡카씨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결론은 다소 진부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미덕은 권선징악류의 뻔한 결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꽃미남 배우 조니 뎁의 변신, 오감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품과 세트, 그리고 그 동안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원주민들의 화려한 뮤지컬 쇼, 그러한 엉뚱하고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효과적으로 비쥬얼화 시켰던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와 이 영화를 같이 봤던 외사촌 꼬마는 영화를 보는 내내 흥분했으며 (비록 오래 산 것은 아니나) 자기 생애 최고의 영화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더랬다.

현실을 온전하고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를 보고 싶어질 때도 있지만 가끔은 일탈이라도 하듯 '찰리와 초콜릿 공장'같은 영화가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둔해진 오감을 마구 자극시켜 줄 감각적인 비쥬얼과 나이를 먹을수록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상상력을 보충해 줄 경이로운 세계를 보고 싶어질 때가 있듯 말이다. 한편으론 꼴 보기 싫은 욕심꾸러기들이 쓰레기통으로 처박히는 것은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서 그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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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1-06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영화 참 많이 보세요. 아니면 전에 보신거를 쓰시는중??

깐따삐야 2006-01-07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보았던 영화를 상기하면서 쓰기도 하고, 보았던 영화를 요즘 다시 보고나서 쓰기도 합니다. 어째 기억력이 자꾸 나빠져서 이렇게 리뷰로라도 남겨놓지 않으면 다 잊혀질 것 같아서 말이죠. ^^

마늘빵 2006-01-0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꾸준히 많이 빨리 올리셔서 궁금했어요. ^^ 저도 기록해놓지 않으면 다 까먹습니다. 전 원래 기억력이 별로 안좋은듯.
 
지하실 하나의 탈출 범우 세계 문예 신서 25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 범우사 / 1998년 3월
평점 :
품절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전혀 몰랐던 작가다.

그 동안 꾸준히 관심을 두었던 독문학 계열의 작가라면 헤르만 헤세나 카프카 정도였다.

B급 좌파 김규항 님의 소갯말을 읽고 마음이 동했는데 막상 책을 구하려니 품절된 것들도 많은데다 인터넷에 도는 소개 자료들조차 다른 작가들에 비해 매우 부족한 편이었다.

하지만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행갈이 없이 한 문단, 혹은 두 문단으로만 글을 쓴다는 데에서 적어도 비양심적인 작가는 아니겠구나 싶어 이 책을 구입했다.

김나지움에 다니던 지적인 학생이 어느날 빈민촌의 한 식료품상의 견습사원으로 들어가면서 겪게 되는 경험과 심경의 변화들을 촘촘하고도 둔중한 문장들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었다.

김나지움의 교육 방식에 대해서 환멸을 느낀 '나'는 자살을 택할 것이냐, 전혀 반대 방향의 삶으로 나아갈 것이냐 고민하다가 결국 자신이 지금껏 살아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빈민촌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 곳에서 고립이 아니라 조화를 배우게 되며 가식 없고 위선 없는 순수한 인간들과의 교제를 통해 참다운 인간의 삶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하여 느끼고 성찰한다.

치밀하면서도 생각에 잠기게 하는 여백이 많고 우울하면서도 강렬한 의지가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마치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상처 받은 짐승이 인간의 언어를 배워서 힘겹게 토해내고 있다는 인상도 받았다.

오직 그럴듯한 포즈만이 난무할 뿐 진실은 부재하는 인간사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하여 던지는 질문과 성찰들은 대부분의 예민한 인간들이 겪게 되는 고민을 대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작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작가의 자전소설 5부작 중 한 권이라는 이 책을 읽고 나머지 책들도 구해 읽고 싶어졌다.

확고하고 통일된 자의식을 지닌 새로운 작가를 발견한 것 같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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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주, 태희, 지영

"내가 너를 떠난다고 해서 너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냐." 영화 속에서 태희(배두나 분)가 봉사활동에서 만났던 뇌성마비 시인에게 건네는 말이다. 나는 이 영화를 떠올일 때마다 가장 먼저 배두나의 그 대사가 생각난다. 스무살은 어쩐지 막막하고 부담스럽다. 하지만 스무살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고 해서 그 시절을 좋아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이 영화는 그런 '스무살'에 관한 영화이다.

여상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된 다섯 명의 친구들. 혜주(이요원 분), 태희(배두나 분), 지영(서지영 분), 비류+온조. 증권회사에 입사한 깍쟁이 혜주, 미술 디자인을 꿈꾸는 차분한 지영, 뇌성마비 시인을 도와주며 봉사활동을 하는 무던한 태희, 악세서리를 만들어 팔며 그들의 우정에 즐거운 감미료가 되어주는 비류+온조. 아직 완전한 어른이랄수도, 그렇다고 아이랄수도 없는 어정쩡한 나이의 경계에 서서 이렇듯 각자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다섯명의 친구들 앞에 어느 날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등장하고 그들은 이 처치 곤란의 고양이를 돌려가면서 맡게 된다. 아직 자기 스스로를 감당하기에도 벅찬 그녀들은 맡겨진 고양이를 어쩔 줄 몰라한다.

스무살은 그렇다. 갑작스레 덜컥 맡겨진 고양이 같기도 하고 속을 내보이지 않으려고 잔뜩 웅크린 채 조심조심 집안을 기웃거리는 불안한 고양이 같기도 하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19세 미만의 모든 금칙어가 사라지며 일견 굉장한 자유가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빗나간 내 인생'의 주인공 발퇴르가 지적하듯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일 뿐이다. 일정한 룰과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는 사회 속에서 진실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이미 출발선부터 공평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사정을 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공을 위해 자존심은 접어둔 채 더욱 싹싹하게 굴고 코끝을 좀 세웠으면 하고 바라는 혜주나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점점 더 폐쇄적으로 자신의 내면 속으로 파고드는 지영이나 외양의 차이일 뿐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힘겨운 스무살을 '버티고' 있는 것이다.

정말 학창 시절엔 스무살만 되면 무엇이든지 가능할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막상 스무살이 되고 보면 현실의 견고한 벽에 부딪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현실에 부딪쳐 이리저리 나가 떨어지다가는 소박함의 미덕을 떠올리며 현재에 만족하면서 겸손하게 살길 바랬지만 기대와 꿈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고, 그 기대와 꿈을 충족시키기엔 완벽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어리고 볼품 없는 나 자신 때문에 화가 나고 속상했다.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현실을 피하거나 현실에 천착하거나 어차피 비겁해지기는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이는 자꾸 먹어가고 삶에서 중요한 결단의 순간이 왔을 때 나는 조금씩 현실과 타협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한 때는 이런 나 자신을 비롯한 인간 전반에 대해 절망한 적도 있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세상사의 '대단치 않음'을 자연스레 인정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다들 조금씩 어리석고 다들 조금씩 불만에 차 있고 다들 조금씩 불행하다.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우스꽝스런 헤프닝 천지인 세상은 어쨌거나 잘만 돌아간다. 나만 몰랐지 원래 이런 것이었다. 

스무살 무렵엔 세상이 아주 희극적으로 보이거나 또는 아주 비극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무엇을 보든 극단에 극단을 내달리던 시기였다. 그만큼 사는 데 눈물이나 과장이 많았다는 얘기다. 삶을 묘사하거나 비유하는 데만 치중했지 실제로 살아 볼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던 그런 시기. 이제 나는 이십대 중반의 경계를 조금 벗어나 있다. 과거에 비해 훨씬 편안해졌고 나를 사로잡았던 수많은 형이상학적 의제들로부터 멀어져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봉급과 아침 밥상 위에 뽀글거리는 달래 된장찌개에 행복해하는 단순한 사람이 되어 있다. 그런 반면에 방안에만 틀어박히면 또 다시 스무살 적의 나로 돌아가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스무살로부터 벗어났다고 해서 스무살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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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1-05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수건 위에 꼼꼼하게 수놓은 자수 같은 리뷰예요. 사랑스러워요.

깐따삐야 2006-01-05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리뷰에 대한 namu님의 리뷰가 더 사랑스럽네요. 감사합니다. ^^
 
선생님의 가방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읽은 일본식 순애보였다.

차고 적적한 겨울에 읽기 안성맞춤인 소설이랄까.

부드러운 달걀 지단을 고명으로 얹은 어묵국이나 상큼한 쑥갓을 살짝 얹은 대구탕, 산버섯으로 국물을 낸 향기로운 샤브샤브, 그런 따듯하고 담백한 음식들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었다.

우연히 선술집에서 학창 시절의 국어 선생님과 재회하게 된 쓰키코.

서로에 대해 그다지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았던 두 사람은 그저 물처럼 담담한 데이트를 즐긴다.

떠나버린 아내의 무덤을 찾아 돌보며 말년을 보내고 있는 선생님과 서른이 훨씬 넘도록 변변한 애인 하나 없이 인생을 물 흐르듯 살아왔던 쓰키코는 이러한 심심한듯 담백한 만남들 속에서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여전히 자신을 어린아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쓰키코는 자기 또래의 남자들이 지닌 평범한 매력들 보다는 선생님이라는 존재 곁에서 느낄 수 있는 따듯함과 공평함에 한없이 편안해 한다.  

그리고 연애를 했던 두 사람. 선생님은 떠나고 선생님의 가방은 쓰키코에게 전해진다.

마지막에 쓰키코가 텅 빈 가방을 열어보는 대목에서는 소설을 읽는 내내 적당히 덥힌 정종이라도 한 잔 한 것처럼 따끈하게 달아올랐던 가슴 한 켠이 찡하고 싸해지는 느낌이었다.

불같이 타오르는 사랑, 언제 끝나버릴까 불안해 마지 않는 연애 말고 선생님과 쓰키코처럼, 마치 샤브샤브를 먹는 일같은 사랑. 차분차분 은근하고 향기롭게 즐길 수 있는 담백한 연애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스하고 조용한 가운데 남다른 깊이를 갖춘 격조 높은 순애보라고 생각한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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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1-04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근사한 제목이군요. 샤브샤브 순애보.
카와카미 히로미의 순애보라니, 참 궁금해요.
이 사람의 서사는 현실로부터 붕 떠올라 있어서 말이죠.
초면에 댓글부터 달아봅니다. 인사드려요.
namu라고 합니다.

깐따삐야 2006-01-04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namu님.
이 사람 책은 처음 읽어보는 건데 전 좋았답니다.
아직 초짜 알라디너에요. 첫인사 고맙습니다. ^^

알맹이 2007-02-25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근사한 리뷰네요~ 딱이에요.
 

번쩍이는 칼날들을 보고 있으려니 선생님이 보고 싶어졌다. 살이 닿았다 하면 스윽 베어져 시뻘건 피가 스며 나올 것 같은 날카로운 날들을 보고 있자니까,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졌다. 칼날의 빛이 어째서 그런 기분이 들게 했는지 그 까닭은 분명치 않다. 하지만 어쨌든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었다.  - p. 43

"학교에서는 진짜로 중요한 건 별로 안 가르치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다. 선생님은 자세를 바로 하고 도오루 상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다가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어떤 곳에서나 많은 것을 배우게 마련이죠" 하고 조용히 말했다.  - p. 60

아내는 좀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 역시 별로 다를 게 없었지요. '깨진 냄비에 얽은 뚜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내에게 있어 저는 얽은 뚜껑조차 될 수 없었던 걸까요?  - p. 73

거울 속의, 필요 이상으로 중력에 대해 솔직한 자신의 벗은 몸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보이는 자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신, 방을 떠다니는 자잘한 자신의 기척 같은 것과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다.  - p. 94

다카시의 턱 아래 부분은 고등학생이었던 그 무렵에 비하면 상당히 두툼해져 있었다. 쌓이는 세월. 하지만 그 두께는 결코 혐오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두께를 좋아한다. 동시에 나는 선생님의 턱 선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나 다카시와 같은 나이일 무렵에는 선생님의 아래턱도 나름의 두께를 지니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시간이 쌓이는 만큼 거꾸로 선생님의 아래턱의 두께는 깎여 나갔을 것이다.  - p. 131

어째서 선생님이랑 이야기를 하면 나는 금세 뾰로통해지거나 분개하거나 괜스리 눈물이 헤퍼지는 것일까? 원래 나는 감정을 드러내는 편도 아니건만.  - p. 141

나? 나는 아마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어른'이 되지 못했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제법 어른스러웠다.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시간이 흘러가면서 거꾸로 어른스럽지 못하게 되어 갔다. 더욱더 시간이 흐르면서 완전히 어린애같은 인간이 되어 버렸다. 시간과 사이좋게 갈 수 없는 체질인지도 모른다.  - p. 151

해변에도 길에도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쓸쓸하다. 개똥 같은 선생님이 내 뒤를 안 좇아오니 얄밉다. ... 어차피 인생이란 것이 이런 거지. 이렇게 낯선 섬에서,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저 선생님과 어긋나서 낯선 길을 혼자서 터벅터벅 걸어간다.  - p. 176

소중한 사람이라면 나무와 마찬가지로 퇴비를 주고 가지를 치고 손질할 것을 명심. ... 그렇지 않은 연애라면 적당히 내버려 두어 그대로 말라죽게 만들면 안심. ... 큰 숙모는 말장난이라도 하듯 그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오래 안 만나다 보면 선생님을 향한 감정도 말라죽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 p. 209

그건 그렇고 정말로 지금까지 혼자서 '즐겁게' 살아온 것일까? 즐겁다. 괴롭다. 편하다. 달콤하다. 씁쓸하다. 짜다. 간지럽다. 가렵다. 춥다. 덥다. 미지근하다. ... 대관절 나는 어떤 식으로 살아온 걸까?  - p. 211

선생님의 경우, 상냥함이란 것은 공평하고자 하는 정신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나에게 상냥하게 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견에도 선입견 없이 귀를 기울이겠다는 교사다운 태도에서 상냥함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냥 상냥한 것보다 이쪽이 몇배나 더 기분 좋았다. ... 꽤나 큰 발견이었다. 이유 없이 상냥하게 대해주는 것은 편치가 않다. 하지만 공평한 대우를 받는 것은 기분이 좋다.  - p. 239

우리는 언제나 진지했다. 장난을 치고 있을 때조차 진지했다. 그러고 보면 다랑어도 진지하다. 가다랭이도 진지하고, 살아 있는 것들은 대부분 진지한 것이다.  - p. 246

나그네 길 멀리 헤매다 보니 / 헤어진 옷에 한기 스미고 / 오늘 저녁 맑은 하늘 탓인지 / 하염없이 마음만 아파오누나  - p. 250

 

가와카미 히로미 / 선생님의 가방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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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1-04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셨다는 줄 알았어요

깐따삐야 2006-01-04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 소설 다 읽자마자 코 끝에서부터 떠오른 음식이 버섯향기 은근한 샤브샤브였거든요.
정말... 따땃한 국물같은 소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