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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 하나의 탈출 ㅣ 범우 세계 문예 신서 25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 범우사 / 1998년 3월
평점 :
품절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전혀 몰랐던 작가다.
그 동안 꾸준히 관심을 두었던 독문학 계열의 작가라면 헤르만 헤세나 카프카 정도였다.
B급 좌파 김규항 님의 소갯말을 읽고 마음이 동했는데 막상 책을 구하려니 품절된 것들도 많은데다 인터넷에 도는 소개 자료들조차 다른 작가들에 비해 매우 부족한 편이었다.
하지만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행갈이 없이 한 문단, 혹은 두 문단으로만 글을 쓴다는 데에서 적어도 비양심적인 작가는 아니겠구나 싶어 이 책을 구입했다.
김나지움에 다니던 지적인 학생이 어느날 빈민촌의 한 식료품상의 견습사원으로 들어가면서 겪게 되는 경험과 심경의 변화들을 촘촘하고도 둔중한 문장들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었다.
김나지움의 교육 방식에 대해서 환멸을 느낀 '나'는 자살을 택할 것이냐, 전혀 반대 방향의 삶으로 나아갈 것이냐 고민하다가 결국 자신이 지금껏 살아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빈민촌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 곳에서 고립이 아니라 조화를 배우게 되며 가식 없고 위선 없는 순수한 인간들과의 교제를 통해 참다운 인간의 삶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하여 느끼고 성찰한다.
치밀하면서도 생각에 잠기게 하는 여백이 많고 우울하면서도 강렬한 의지가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마치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상처 받은 짐승이 인간의 언어를 배워서 힘겹게 토해내고 있다는 인상도 받았다.
오직 그럴듯한 포즈만이 난무할 뿐 진실은 부재하는 인간사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하여 던지는 질문과 성찰들은 대부분의 예민한 인간들이 겪게 되는 고민을 대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작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작가의 자전소설 5부작 중 한 권이라는 이 책을 읽고 나머지 책들도 구해 읽고 싶어졌다.
확고하고 통일된 자의식을 지닌 새로운 작가를 발견한 것 같아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