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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이었던 사나이’를 봤다. 교훈적인, 너무나 교훈적인 영화. 황정민은 슈퍼맨을 닮았고 노메이크업의 전지현은 역시나 예뻤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려다 보니 황정민의 연기력이 아까울 지경이었고 전지현은 엽기적인 그녀이긴 해도 엽기적인 피디 역할을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종종 웃음이 터지는 장면들이 있었고 감독이 전하려는 선한 의도까지는 잘 알겠는데 전달 방식이 문제였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의도와 방식이 모두 ‘착한’ 한국영화를 만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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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을 사러 슈퍼에 갔었다. 이것저것 골라서 계산대 위에 올려놓자 어떤 아저씨가 함께 온 아줌마에게 “아이스크림 사줄까?” 했다. 아줌마는 “아휴~ 날도 추운데.”하면서 거절했다. 그들이 가고 나자 오토바이 안전모를 쓴 아저씨가 계산대 위에 소주를 세 병 올려놓았다. 치킨 봉지도 들고 있었다. 아저씨는 내가 올려놓은 아이스크림들을 보며 “아이스크림 보니까 더 추운 것 같네.”라고 얘기했는데 나는 줄곧 소주병들을 흘끔거렸다. “소주하고 치킨 보니까 먹고 싶네.”라고 말할 뻔 했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지만 다음으로 미뤘다. 오늘처럼 몹시 추운 날, 춥다고 연신 말하면서도 아이스크림을 베어 무는 건 나의 오래된 악취미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 오늘은 소주가 당겨요. 치킨도 좋지만 꼬치어묵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어요.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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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번호가 떠서 누군가 했더니 대학 동기 J였다. H로부터 바뀐 내 연락처를 알아낸 모양이었다. J의 귀한 피를 제물삼아 놀이공원에 갔던 적이 있는 바, 옛 생각이 나서 쿡쿡거렸다. 전보다 많이 유들유들해진 것 같았다. 농담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우리를 웃겨주던 녀석이었는데 그간의 사회생활이 성격에 기름칠이라도 한 건지 예전과 느낌이 달랐다. 세월이 흐를수록 남자 친구들은 점점 느끼해지고 여자 친구들은 점점 까칠해진다. 결혼을 한 친구들은 성별과 무관하게 느긋해진다. 나는? 조금 멍청해진 것 같다. 예전엔 뭐든지 선명하고 뚜렷한 걸 좋아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모이면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그냥 다들 목소리 높이지 않고 오순도순 얘기 했으면 좋겠다는 노인네 같은 생각만 한다. 16년 학교 교육보다 4년 남짓의 사회생활이 우리를 더 크게 변화시켰다는 실감. 조만간 J를 만나게 될 텐데 온몸에서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긍~ 더욱 소주가 그립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