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중반까지만 해도 덜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은 엄마한테 잔소리를 듣거나 혼나는 일이 썩 언짢다. 부모 눈에 차는 자식이 어디 있으랴마는 나는 특히 더 자주 지청구를 듣는 것 같다. S양이 꼬집은 바에 따르면 “한번 혼나면 다시는 혼날 짓을 안 하면 되는데 언니는 붕어처럼 자꾸 까먹고 또 혼날 짓을 하니까” 구박을 들어도 싸다는데 내가 이 나이에 혼날 짓을 하면 얼마나 한다고 그렇게 뱁새눈을 뜨고 따져대는 것인지 참 알 수가 없다.
언젠가 이와 비슷한 말로 대꾸를 했더니 엄마가 그러시더라. “넌 귀가 팔랑팔랑 얇다가도 엄마가 말할 땐 왜 두툼하게 닫고 앉았니.” 내가 정말 그런가. 일단 사납게 날이 선 말을 들으면 정신부터 움츠러들어서 잠시 갈팡질팡 하는 것인데 그런 오락가락함이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앙칼진 잔소리 말미에 엄마는 꼭 “사람이란 게 원래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니깐 뭐 어쩌겠니. 앞으로는 그러지 마라.”라고 하시면서도 고개를 홱 돌리거나, 눈을 아예 딱 감아버림으로써 으스스한 공포심을 조성한다.
홀로 남겨진 나는 안개 낀 머릿속을 헤집으며 한 차례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엄마가 잘나서가 아니야. 그래도 아빠가 착하니깐 엄마 같은 여자랑 사는 거지.’ 라고 심술궂은 결론을 내려버린다. 실제로 일상생활 속에서 아빠와 나는 엄마 눈치를 많이 보며 지낸다. 엄마는 그런 우리 부녀를 가리켜 “눈치 보는 척만 할 뿐 어차피 자기네들 고집대로 다 하는 사람들 아니냐”며 싸잡아 매도하지만 (그것이 어느만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일지언정) 눈치 보는 척까지 안 하면 더 신랄한 비판의 화살이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에 그나마 ‘척’이라도 하는 거다. 솔직히 그냥 놓고 보면 비교적 성실한 사람들인데 워낙에 엄마란 사람이 빈틈없는 자세로 가정을 사수하고 있기에, 돈커녕 쥐뿔도 안 생기는 뜬구름에 취미가 있는 아빠와 나로서는 그저 낮은 포즈로 힐끔거리는 게 당연지사인지도.
그러고 보니 학생 신분이었을 동안에는 오히려 잔소리를 안 들었던 것 같은데 웬일인지 사회에 나오고부터 귀에 딱지 얹히도록 숱한 지청구를 들었던 것 같다. 사람들과의 사교에 있어서, 연애 문제에 있어서, 직업적인 고민에 있어서, 당최 서툴기 짝이 없었던 나는 끊임없이 어떤 말인가를 들어야 했고, 실제로 엄마의 지혜로운 충고들은 곤란할 때마다 큰 힘이 되었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쓰다고, 이따금 마음을 쓰윽 할퀴고 지나가는 적나라한 비판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그런데 엊그제 엄마로부터 “맨 그냥 실수만 해대고. 넌 깨어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게 낫겠다. 잠을 더 많이 자라.”는 말까지 들었을 땐, 비록 우스갯소리였고 나도 같이 웃어버렸지만 내심으론 내 나이 스물아홉이 차마 아득해지더라는.
엄마가 아니면 누가 또 너한테 그런 쓴 소리를 해주겠냐는 엄마의 주장은 단연 일리가 있다. 그래도 추리닝 바람에 목도리 둘둘 말고 나온 길거리 한가운데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로 따북따북 지청구를 해대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엄마 곁에 서서 맨 얼굴에 눈만 껌벅대고 있는 나는, 나이에 비해 정신연령이 좀 떨어지는, 모자란 여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덜 떨어진 자식새끼 산책시키러 나온 씩씩한 초원이 엄마냐요? 엄마의 기준에 합당한 나잇값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나도 딱할 때가 많지만 허구언날 나 때문에 속 터져 하는 엄마도 참 딱하시다. 이모들이나 주변 분들이 딸내미 착하게 잘 키웠다, 는 말이라도 할라치면 남들은 본래 저런 거라고, 겉만 보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거라고, 차갑게 외면하신다. 앞뒤 정황을 살펴볼 때, 친구들이 “너는 엄마 때문에 시집가기 힘들겠다.”는 말을 하는 게 그냥 하는 말은 아닌 것도 같다. 그만큼 내가 모자라고 멍청해서 엄마가 그 연세 드시도록 안심을 못하고 계시는 거라면 당최 할 말 없고.
그래도 머리 굵어지고 나이 먹었다고 지청구는 또 귀에 걸리나 보다. 예전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어른 구실을 야무지게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젠 부담으로 다가온다. 비록 듣기 싫긴 해도 지금은 엄마가 나서서 견제한다지만 나중엔 어떻게 할 것인가. 학교로 돌아가면 당장 아이들 앞에 서야 하고 언젠가는 부모 노릇도 해야 하련만. 나를 향한 S양의 환호는 반갑고 흐뭇하지만 거기엔 커다란 맹점이 있다. “호홋. 언니는 진짜 만만해!” S양에게야 얼마든지 만만해도 상관없지만 엄마 말씀대로 안하무인격 만만함이 문제시 되는 것이다. 밥 먹고 배는 채우고, 책 읽고 머리는 채우는데, 대체 속은 언제 차는 거냐는 엄마의 말씀에 팔랑팔랑 나부끼던 귀가 쫑긋.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유전이고 타고난 본성은 잘 안 바뀌더라는. 나는 아빠를 닮았다. 그것도 아주 빼다 박았다. 고로, 아빠와 결혼해서 나를 낳은 엄마는 할 말 없어야 맞다? 이런 말을 하면 나를 향한 지청구와 아빠를 향한 그것이 기하급수적 또는 동시다발적으로 날아오겠군. 글줄이나 읽더니 변명만 는다는 도돌이표 잔소리도 지겹다. 자아비판과 더불어 조용히 지내는 게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