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한 소녀의 아주 특별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책을 읽다보면 장애인이란 이름으로 불리우는 이 아이의 일상에 소리없이 동화되어가는 느낌을 받습니다.친구들과 신나게 뛰고 구르면 마냥 즐겁고,기쁜 일이 있으면 큰 소리로 웃을 줄 알고,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를 이해하지 못할 때는 마음이 아주 아픈 그런 평범함들을 또 다른 느낌으로 이해하게 되는 거지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동생과의 일상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언니의 시선이 봄날의 나른한 햇살같아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군요.평범한 아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줄 아는 이 소녀와의 특별한 만남은 아이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적실 것 같군요.
모래알 고금은 모래알의 어제와 오늘로 해석하면 될까요? 반짝반짝 빛나는 모래알이 새로운 주인 돼지 을성이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되지요.그러니깐 모래알 고금이 본 을성이의 이야기예요.돼지는 아버지가 을성이더러 공부도 못하고 미련하다고 붙여준 별명이구요.형 갑성이는 공부도 잘하고 빼빼 마르고 약삭빠르다해서 토끼라 불리는군요.이처럼 별명에서 벌써 짐작할 수 있듯이 부모의 자식에 대한 그릇된 편애와 비교로 인해서 상처받게 되는 한 아이의 이야기입니다.그리고 자라는 아이 곁에는 그 아이가 흔들리고 상처받을 때 지켜주고 이끌어주는 정신적인 지주가 얼마나 절실한지도 느끼게 해 주는 이야기지요.을성이가 아버지의 부정적인 말과 학대,또 그로 인해서 가지게되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어머니에 대한 서운함등으로부터 끝까지 을성이를 지켜주고 붙들어 준 것은 을성이를 이해해주고 사랑해 주는 큰어머니와 한방에서 같이 생활하는 식모 아주머니의 힘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식모 아주머니는 을성이에겐 어머니를 대신한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존재입니다.이렇게 재미있게 흘러가는 전반부의 이야기에선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아마 을성이의 구체적이고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투영해보며 심정적으로 동의와 동정을 함께 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데 후반부의 갑작스런 이야기의 비약이 전체 이야기의 재미를 다소 산만하게 만드는 부분 때문에 집에 불이 나는 대목쯤에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또 전반부에서 앞으로의 사건에 대한 암시로 등장하는 이상한 신사가 후반부에서 초점없이 흔들리는 것 같아 좀 불만스럽기도 하구요.1958년도에 씌여졌다는 이 동화는그 때 당시로서는 아주 획기적인 작품이였고 아동문학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이땅에서 이 정도의 동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는 게 대단한 일이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을 살고 있는 독자로선 욕심이 나는 게 사실입니다.우리 아이들이 을성이를 만나면 을성이를 참 좋아할 것 같아서요.앞부분을 조금 읽어 주었더니 아버지의 성격이나 대사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거던요.^^
이 책의 주인공 아이들은 생활 속에서 늘 만나는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이지요.그것이 저희 세대에 더 익숙하다는 점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좀 낯설다는 의미이기도 해 안타까운 점이 없진 않지만 요즘 아이들도 책 속의 주인공 노마 똘똘이 기동이 영이에게 쉽게 동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답니다.돈도 없고 장난감도 없는데 신나게 놀잇감을 찾아내고 만들며 놀 줄 아는 주인공 아이들을 보곤 옛날 아이들이 더 똑똑하네요라는 말하는 요즘 아이들에겐 노마나 그 친구들이 참 신기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그래서 공부나 학원에 쫒기지않고 자기도 그렇게 놀아봤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나봐요.그러고 보면 현덕 선생님은 두 가지의 선물을 이 책에서 하셨네요.어른들에겐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해 주고 아이들에겐 잃어버린 놀이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해 주니까요.그리고 전체적인 글의 흐름이 반복적인 요소가 많아 아이들에게 더 많은 재미를 주는 것 같아 좋습니다. 방정환,마해송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심어주고싶은 세상을 동화로 그렸다면 현덕 선생님은 아이들의 눈으로 본 세상을 아이들이 정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그려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군요.
지나가는 이야기로 이 이야기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소작을 부치는 아버지가 주인 아들때문에 힘들어하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나비를 잡게 되는 이야기로..난 이 이야기를 흘려들으며 아이에게 아비의 사랑에 대해 어떤 형태로던 감동을 전해 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아버지의 나비를 잡는 행위가 좀 다르게 와 닿았다.아들을 위해서가 아닌 살기 위한 아버지의 처절한 몸부림으로..바우와 경환이는 소학교에서 서로 경쟁적인 관계이다.마름집 아들 경환은 소작농의 아들 바우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하지만 이 열등감은 자신만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여전히 가난하기만 하고 그래서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배움의 길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바우의 현실에 대한 멸시로 이어진다.경환은 방학때만 되면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와 나비를 잡으러 동네 친구들을 몰고 다니며 바우에게 보란듯이 으스대며 행세를 한다.바우는 늘 그게 고깝고 눈에 거슬리는데 마침 경환이 쫒는 나비가 바우에게로 날아든다.바우는 별 어려울 것도 없다는 듯 나비를 잡고는 그만 경환이와 시비가 붙는다. 바우에게 말에서 힘에서 된통 당한 경환은 그 분풀이로 바우네가 소작을 못 부치게 자신의 어머니에게 낮에 일을 이른다.대신 바우가 나비를 잡아와 싹싹 빌면 용서해 주겠노라 하면서.. 바우네 부모는 그만 앞일이 깜깜해져 어서 바우에게 나비를 잡아 빌러 가라고 다그치지만 바우는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만 더 크다.혼자 고학이라도 할 요량으로 언덕에 누워 이생각 저 생각에 잠긴 바우는 그만 나비를 잡느라 모밀밭 두렁에서 혼자 엎드렸다 일어섰다하며 그 똑똑치 못한 걸음으로 밭두렁을 지척지척 돌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만다.바우는 그 순간 지금까지의 어두운 마음에서 벗어나 아버지가 무척 불쌍했고 정답고,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은 감격에 울음이 복받친다.아들을 위해 늙은 몸을 내던지는 아버지의 모습이 고마워서가 아니라 저렇게밖에 살 수 없는 아버지의 그 현실이 바우에겐 너무 가슴 아팠던 게 아닐까.그래서 그 끈끈한 혈연의 사뭇침이 어린 바우에게 늙고 삶에 지친 아버지의 그 가련함을 가슴 깊이 품게 만든 것이리라..가끔 그럴 때가 있다.맘은 꿀떡같은데 현실로는 어쩔 수 없을 때. 바우 아버지도 그랬으리라.맘은 그깟 농사 때려치우고 아들 자식 남의 집에 가서 머리 조아리는 꼴 안 보고 살고싶지만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하고 바꾸려해도 바뀌지 않을 자신의 현실에 대한 화가 되려 바우를 채근하게 만들었을 거다. 그리고 바우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비의 그 타는 속을 좀 헤아려 주었으면 하는 안타까움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가족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이라는 그 짐이 얼마나 아버지의 어깨를 무겁게 내리눌렸을까. 바우가 본 것은 자식 앞에서 부모로서 가져야 할 당위성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가 아니였을까.그래서 이 동화는 더 가슴 아프다.동시에 바우는 잘해 나갈 수 있을 거다는 믿음과 희망을 갖게 하는 동화이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오는 동화들은 암울했던 일제 시대를 그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그래서인지 서글픈 현실과 함께 가난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담겨져 있습니다.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이 다 재미있지도 탄탄한 구성력을 자랑하지도 않지만 이 시대에 이런 동화들을 쓸려고 노력했던 여러 선생님들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50년대 전과 지금의 말이 많은 변화를 겪어 온 것을 느낄 수 있어 새로웠습니다.언어들이 좀 촌스럽게도 느껴지고 거칠게도 느껴지지만 이오덕선생님의 오염되지 않은 우리말이라는 데는 공감을 할 것 같습니다.말 속에 순박함이 베여있다고나 할까요.세련되지않아 더 정감있게 다가오는 부분들도 많았으니깐요. 외국 동화가 많이 쏟아져 들어와 이젠 더 들여올 것이 없다고 그러죠.물론 외국의 많은 동화들 중 좋은 동화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것은 그네들 자신의 문화와 아이들과 그리고 그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사랑한 결과라는 생각이 드는군요.우리에게 교육열이 높은 반면 책을 읽지않는 민족,자신의 것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민족이라는 딱지가 붙을까 겁이 나네요.그래서 우리 정서를 아이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라도 이 책은 꼭 읽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도 아니 흔들린다 하잖아요. 제가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는 방정환 선생님의 나의 어릴 때 이야기와 만년 샤쓰입니다.그리고 이익상 선생님의 새끼 잃은 검둥이,이 태준 선생님의 엄마 마중이 있습니다.만년 샤쓰는 요즘 새롭게 그림책으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꼭 사서 아이와 함께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창남이란 아이가 가지는 이미지가 참 매력적이였어요.그리고 방정환 선생님의 나의 어릴 때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너무나 구성져 지어낸 이야기들보다 더 재미있었습니다. 어릴 적 모습이 그대로 눈에 밣히듯 선한 것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을 아이들이 없을 것 같더군요.책 제목이 엄마마중이라 그 이야기가 꽤 무게가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단 두 페이지의 짧은 글이였습니다.하지만 전차 정류장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간절함이 찡하게 다가오더군요.새끼 잃은 검둥이도 아이의 여리고 예쁜 마음이 가슴에 남는 글이였습니다. 우리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야 아이들에게 좋은 동화를 소개할 수 있겠죠.엄마들이 꼭 먼저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