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애인 데카르트

 

 

그이가 말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대답했다.

집어쳐요, 그딴 말

생각하지 않고 사랑할 순 없어요?

그러자 그는 심각해졌다.

방금 그 말, 생각해 볼 문제야!

 

 

<주목을 받다>

장정일 / 김영사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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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저널리스트 작가'고종석의 꿈

이번주 한겨레의 '한국의 글쟁이들'은 저널리스트 작가 고종석을 다루고 있다. 출판칼럼니스트 최성일씨가 글을 썼는데, 반가운 마음에 옮겨놓는다. 나름대로 많이 읽고 잘 안다고 생각한 이 '글쟁이'의 특이한 면모도 읽을 수 있다. 가령 남의 소설을 안 읽는 기벽 같은 거. '방주'에 넣어두려다가 아끼는 마음에 '곁다리텍스트'로 분류하고 그에 걸맞게 후미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책 <감염된 언어>의 서문에서 일부를 옮겨놓도록 하겠다.

한겨레(07. 01. 26) 한국의 글쟁이들/(17) ‘저널리스트 작가’ 고종석

고종석(48)에게는 열성독자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가 있다. 2004년 문을 열어 270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고종석 팬 카페(cafe.daum.net/kjsfreedom)’는 인문서 저자로서 그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인문서 저자의 팬 카페는 손으로 꼽을 수 있다. 16권에 이르는 그의 책의 평균 판매부수는 5천부 안팎, 신간을 무조건 구입하는 고정 독자는 3천 명 정도로 추산된다. 요즘 같아선 인문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 진입이 무난한 ‘엄청난’ 숫자다.

인문서 저자=지금까진 <코드 훔치기>(마음산책·2000)가 제일 많이 팔렸다. 고종석은 책을 곱게 만들어준 편집자와 이 책을 논술교재로 활용한 논술학원 강사에게 그 공을 돌린다(*나 또한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논술을 가르치던 시절 가장 많이 복사해서 나눠준 자료이기도 하다. 하니 '그 공'은 내게도 있다). 하지만 그가 글을 쓰고 책을 엮는 것이 단지 ‘연줄’ 덕분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겸손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의 글과 책에 대한 독자의 호응을 ‘시장성’의 잣대로만 판단하고 싶진 않다. 그에겐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고종석은 출판계에서 “아주 정확한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로 통한다. 아름다움보다 정확함을 특징으로 한다고 볼 수도 있으나, 고도의 정확성은 아름다움을 낳는다. 한 학생 독자는 “고종석의 책을 읽으면 똑똑해지는 느낌, 시야가 넓어진다는 느낌”을 전한다. 고종석의 절친한 벗인 강금실 전법무장관은 그의 시집비평집 <모국어의 속살>(마음산책·2006)에 대해 “고종석의 평론은 매우 균형잡힌 시각에서 정확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논평한다. 고종석의 글은 어느 대학 논술시험의 지문으로 나오기도 했다.

기자=고종석은 기자다. <코리아타임스> 기자로 언론계에 들어와 초창기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한겨레> 재직시절, 기사문답지 않은 기사가 논란을 빚기도 하였으나, 기자의 문체가 살아있는 기사문의 이정표를 세운다. 1990년대 중반 프랑스 주재기자 때는 철학자 질 들뢰즈의 죽음을 색다르게 해석해 전달한다. “고갈된 일흔 살 삶을 스스로 끝장냄으로써, 그 자신이 곧잘 ‘철학적 일화’로써 거론하던 엠페도클레스의 전설적 자살이 있은 뒤 2천5백년 뒤에, 서양 철학사에 또 하나의 일화를 보탰다.” 그 후 ‘친정’인 한국일보사에 복귀하였고,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지금은 객원 논설위원으로 있다.

“모르겠어요. 기자가 되겠다는 특별한 생각이 있어 된 것도 아니고, 우연히 모집공고 보고 시험 봐서 잡은 직장이거든요. 글쎄요.” 기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의 부족한 부분은 그의 장편소설 <기자들>(민음사·1993)에 나오는 ‘기자숙명론’으로 채운다. “기자는 기록하는 자이지만 그 기록은 자신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남에 대한 기록이다. 남의 삶을 엿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 자기가 엿본 것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광고충동, 그런 것들이 기자의 운명이 아닐까.”

소설가 장편 <기자들> 말고도 고종석은 단편소설집 <제망매>(문학동네·1997)와 <엘리아의 제야>(문학과지성사·2003)를 펴낸 바 있다. 소설은 왜 쓰게 됐나요? “기사가 사람 이야기를 그리긴 하지만 기사문의 언어는 그물코가 성긴 거죠. 빠져 나가는 부분이 굉장히 많아요. 사실일 수는 있어도 진실이 아닌 부분이 많이 있어요. 기사에서 새나가는 부분, 사회가 옳다 그르다 결정해주는 그런 선악·미추에 잡히지 않는 어떤 개인적인 선악과 미추, 개인적인 가치와 진실들은 기사가 잡아낼 수 없어요. 소설의 언어는 좀 달라요. 기사의 언어보다는 소설의 언어가 촘촘하지 않겠나, 덜 빠져나가지 않겠나 싶어 시작했어요.” ‘내 소설의 근간은 현실’이라는 고종석의 지론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기벽이라고 하긴 어려워도 고종석은 남의 소설을 잘 안 읽는다. 어느 출판사 사장의 목격담이다. 어떤 소설가의 출판기념 모임에서 소설가가 자신이 펴낸 책을 고종석에게 주자, 그는 이를 정중하게 사양하더란다. “고맙지만 나는 소설을 안 읽는다. 귀한 책 아끼기 위해서라도 다른 분께 주는 게 좋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소설집 두 권에 수록된 작품들이 더 낫다는 나의 독후감을 밝혔다. “소설이라는 장르에 계속 몸담을 생각이면 장편을 써야겠죠.”

언어학자=이글을 쓰기 위한 인터뷰를 하면서 해묵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고종석이 말한 “영어공용화의 반대가 지닌 계급적 함의”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계층간 영어능력의 격차를 줄이고, 언어가 의사소통의 도구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었다. 한동안 나를 헛갈리게 한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라는 글의 한 구절이다. 이글은 <감염된 언어>(개마고원·1999)에서 볼 수 있다.

“영어가 공용어가 되든 안 되든,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은 자기 자식들에게 영어를 열심히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영어에 익숙해진 그들의 자식들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된 일반대중의 자식들 위에 다시 군림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특정집단에 의한 그런 식의 지식의 독점을 당연시하지 않는다.”

정확한 한국어 사용자 아무튼 영어공용화의 긍정적 측면을 헤아리는 사람이 누구보다 분명하고 정확한 한국어 사용자라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명료한 개념 정의와 개념의 결을 세심하게 구분한 사례는 근간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개마고원·2006)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종석은 반미 친북 좌파가 고스란히 겹치는 것인지, 그 하나하나가 비난받을 일인지, 무엇보다 이런 딱지가 붙여진 이들이 정말로 반미 친북 좌파인지 되묻는다. “좌파는 친북보다도 훨씬 더 여러 겹의 뜻을 지니고 있지만, 그 핵심은 흔히 ‘복지’라는 말로 표현되는 사회연대를 조직하는 데 정부가 일정한 구실을 해야 한다고 믿는 세계관과 관련돼 있다.”

몇 해 전, 그가 엿본 출판사 편집자의 우직한 원칙주의가 빚어낸 엽기적 풍경에 그저 웃을 수만은 없다. 그가 읽던 고려시대 번역문집 문장 한가운데서 ‘미얀마제비’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사마귀란 뜻의 당랑(螳螂)을 옮긴 ‘버마재비’를, ‘버마제비’의 오자로 예단한 교열자는 버마의 바뀐 나라이름에 맞춰 ‘미얀마제비’로 바로잡았던 것. 편집자가 ‘버마재비’의 어원이 ‘범(호랑이)의 아재비(아저씨)’라는 걸 알았더라도 수난을 겪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는 그의 판단에도 공감하지만, 이글의 결론은 더 공감한다. “무릇 글쟁이는, 제 글이 고스란히 활자화될 땐, 그 글이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번역자=고종석이 우리말로 옮긴 책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마지막 작품 <이게 다예요>(문학동네·1996)가 전부다(*내가 읽은 고종석의 책들 가운데 유일하게 돈 아까운 책이었다). “번역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에요. 문장 하나를 우리말로 만족스럽게 옮기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번역이야말로 제대로 한다면 뼈를 깎는 작업일 것 같습니다. 영어나 스페인말이나 프랑스말이나 어설프게 읽을 줄은 아니까 주변에서 ‘너, 왜 번역 안 하느냐?’ 하는데, 저는 책 한 권 번역하려면 평생 해야 할 것 같아요. 또 번역은 일종의 평론인데 그렇게 하긴 정말 어렵죠.”

정치평론인=고종석은 정치현상을 보는 눈이 밝다. 시평집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머리말의 한마디는 그런 눈이 흐려지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들게 한다. 그마저 “은근히 기대를 걸었”다니. 2003년 1월 중순 발행된 <인물과사상 25>(개마고원)에 실린 글을 통해 내가 서둘러 은근한 기대조차 접는데 일조한 그가 아니던가. “우선 그의 지지자들부터, 대통령이 된 것 이상의 업적을 그가 자신의 임기 중에 세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순순히 인정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 그의 집권이 우리 사회의 멘탈리티에 줄 긍정적 충격을 생각하면, 그 집권 자체만으로도 눈부신 업적, 그의 지지자들이 그와 더불어 자랑스러워할 만한 업적이다.” 다시 돌아온 정치의 계절에 정치를 바라보는 그의 혜안과 안목을 접할 수 있을까?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긴 줄었죠.”

대표작 네 권을 꼽는다면= “<기자들>은 첫 책이라서, <제망매>는 내가 소설가가 됐구나, <자유의 무늬>(개마고원, 2002)는 내가 저널리스트구나, <감염된 언어>는 내가 약간은 언어학도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 했지요. 이 세 개가 제 정체성인데, 셋 다 얼치기이긴 하지만 이 책들에 기자로서, 소설가로서, 언어학도로서 정체성이 있는 같아요.” 그럼, 이 셋을 합치면 뭐가 될까요? 문화전달자가 어떨까요? “모르겠어요, 제가 뭔지는.”(최성일/ 출판칼럼니스트)

07. 01. 26. 

 

 

 

 

P.S. 그의 첫소설 <기자들>은 절판이라서 알라딘에는 아예 뜨지도 않는다(나는 책을 갖고 있지만 그의 책들 가운데 드물게도 읽지 않았다). 대신에 가장 많이 팔렸다는 <코드 훔치기>(마음산책, 2000)를 '네 권' 안에 채워넣도록 한다. 나머지는 나도 모두 읽은 책들이다. 그 중 <감염된 언어>(개마고원, 1999)에서 그가 (서문을 대신하여) 길게 쓴  서문 '서툰 사랑의 고백' 중 한 대목. 

사전 편찬자의 꿈을 접은 뒤, 나는 한때 외국어로 글을 쓰는 직업적인 글쟁이가 돼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몽상으로 그치고 말았다. 간단한 편지글 말고 내가 앞으로 외국어로 글을 쓸 것 같지는 않다. 또 내가 외국어로 기다란 글을 쓴다고 해도 이미륵이나 김은국만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지적 작업을 프랑스어로 수행한 뤼시앵 골드만이나 줄리아 크리스테바 같은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야 프랑스 땅을 밟았지만, 그 사람들은 동유럽의 조국에서 보낸 어린시절부터 프랑스어에 익숙했던 사람들이다. 반면에 내 유년기를 둘러싹 있던 언어는 오직 한국어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건 내 운명이다.(...)

이런 모든 꿈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버린 지금, 나는 정확하고 아름다운 한국어로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 정확성과 아름다움으로 한국어의 가능성을 넓혔다고 평가받을 만한 글 말이다. 아직은 그것이 몽상에 불과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한국어로 글을 쓸 작정이므로, 이 꿈은 언젠가는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읽을 만한 한국어로 글을 써보겠다는 것은 10대 이래 내가 지녔던 몽상들 가운데 실현 가능성이 남아 있는 유일한 목표다.

실상, 정확하고 아름다운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얼른 떠오르는 이름만 해도 최인훈, 조세희, 김원우, 복거일, 이인성, 최윤 등 여럿이다. 그들이 대체로 번역 문투를 사용한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20세기 말에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를 19세기 말의 한국어와 견주어보면,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어가 얼마나 변했는지 실감할 수 있다. 그 변화의 과정은 곧 감염의 과정이었다. 외국어와 외국 문화의 감염 말이다.

문화사는 곧 감염의 역사고, 그 문화를 실어나르는 언어의 역사도 감염의 역사다. 인공 언어가 아닌 한 감염되지 않은 언어는 없다. 최인훈에서 최윤에 이르기까지 외국어에 된통 감염된 한국문학은 세련과 풍요를 향한 한국어의 행진을 선도하고 있다. 내가 언젠가 그들만큼 볼품있게 한국어로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는 애써볼 작정이다.(18-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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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조정래와 '약소국'의 슬픔

조정래 선생의 신작 <오, 하느님>이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에 발표되었다. 이미 지난주 한겨레의 북리뷰에서 이 작품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를 읽을 수 있었는데, 언젠가 TV에서 본 '노르망디의 한국인 포로'를 소재로 한 소설. 한 전쟁사가가 발굴한 사진 속의 이 '한국인'은 일본군에 징집되어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2차대전시 동부전선에서 다시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노르망디 전선에 배치되었다가 또다시 연합군의 포로가 된 기구하고도 파란만장한 삶을 산 것으로 추정된다. 20세기 한 약소국의 국민이 겪어야 했던 신산한 삶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데, TV프로에서는 끝내 그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공동체적 삶과 그 운명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옅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최근의 문학경향을 거스르고 있는 이 경장편 분량의 소설은 이번에 전재된 것이 아니어서 내년 봄호에 나머지 절반 분량이 마저 게재된다. 아직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관련기사와 사진들을 옮겨놓는다. 이 참에 2차 세계대전에 관한 책들을 훑어보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적은 책들이 나와 있다(최근에야 나온 책들도 많다). 하긴, 악마들조차도 '전쟁'보다는 '프라다'에 더 관심이 있는 게 우리 시대이니까... 

경향신문(06. 11. 17) '오 하느님’ 조정래 “강대국 만행 알리고 싶었다”

소설가 조정래씨(64)가 지난 6월 장편소설 ‘인간연습’(실천문학사)을 출간한 지 5개월 만에 다시 경장편 ‘오 하느님’(원고지 630장 분량)의 전반부를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에 발표했다. 하루 8시간씩 원고지 30장 분량의 소설을 쓰는 것이 평생 몸에 밴 까닭이다. 강제전향을 당한 장기수의 희망찾기를 소재로 한 ‘인간연습’을 내면서 “이제 분단문제를 끝내고 인간문제를 탐구하겠다”고 했던 그는 새 작품에서 무대를 전세계로 넓혔다.

이번 작품은 지난해 SBS TV를 통해 방영된 한국 젊은이들의 인생이 소재가 됐다. 미국의 역사학자 스티븐 엠브로스의 저서 ‘1944년 6월6월 디데이’에 따르면 1944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유타해안에서 나치 군복을 입은 채 미 공수부대에 체포된 4명의 젊은이는 바로 한국인이었다. 이들은 일본군으로 징집됐다가 1939년 만주국경분쟁시 소련군에 붙잡혀 적군에 편입됐다. 그러나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대서양 방어선을 건설하는 데 강제투입됐다. 노르망디 상륙작전때 이들은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됐다.

조씨의 소설 속 인물들은 미군 포로가 된 것까지는 실화와 비슷한데 미국에서 소련으로 송환된 이후 총살당한다. 스탈린이 1천만명을 숙청할 당시 5백만명이 돌아온 포로였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그린 것이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라면 무조건 선한 존재로 믿고 있지요. 그러나 돌아온 포로를 죽인 그들이 옥쇄를 강요한 일본군과 무엇이 다릅니까. 이 소설에서는 강대국이 약소국에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국사람이라는 의식을 갖고 소설을 읽어나가면 마음이 아플 것”이라며 “주인공의 삶이 기가 막히고 통렬해 소설을 쓰면서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고 했다.

“강대국이 인류 공동의 선으로 자유와 평등을 내세우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이상일 뿐 실현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약소국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비극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하는 고민을 작가로서 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는 한국이 아직도 ‘당연히’ 약소국이라고 한다. 우리의 운명이 주변 4강에 휘둘리는 형편이므로 통일이 될 때만 거기서 조금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이런 상황에 대처할 방법은 열린 민족주의밖에 없다. “요즘은 민족주의하면 무조건 배척하는 경향이 있는데 소련이나 일본의 침략적 민족주의와 우리 같은 약소국의 수세적 민족주의는 다르다”고 말한다. “북한은 핵을 폐기해야 하고 남한은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특히 북한과 미국·일본이 대화하는 동안 우리는 중간자로서 양쪽 입장을 견제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구요.”

그의 작품계획은 통일 이후를 내다보고 있다. 남북 양쪽에서 자신의 이익에 따라 우상화 또는 폄하해온 여운형, 이현상, 홍명희, 김일성 등 해방공간 인물들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밝힌 글을 쓰겠다고 한다. 발표는 유고 형식을 빌리더라도 통일 이후로 미룰 계획이다. 또 내년부터 2년동안 손자 세대를 위한 50권짜리 전기·전래동화 전집을 낼 계획이다.(한윤정·기자)

한겨레(06. 11. 17) ‘오, 하느님’ 또하나의 인간에 대한 탐구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1944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유타 해안에서 찍었다는 흑백사진이다. 독일(?) 군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아시아인이 미군에게 포로로 잡혀 조사를 받는 듯한 모습이다. 사진에 딸린 영문 설명은 이러하다: “이 사람은 일본군으로 징집됐다. 1939년 만주 국경 분쟁시 소련군에 붙잡혀 적군에 편입됐다. 그는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대서양 방어선을 건설하는 데 강제 투입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됐다. 붙잡혔을 당시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으며 미 정보부대에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터넷에 떠 있는 이 사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어떤 사이트에는 그가 신의주 출신의 ‘양경종’이라는 인물이며 전쟁이 끝난 뒤 영국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어 미국으로 이민했고 미국에서 평탄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소개되어 있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 미국의 역사학자 스티븐 엠브로스의 저서 <1944년 6월 6일 D-DAY>에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미군의 포로가 된 네 명의 한국 출신 독일 병사들이 언급되어 있다. 지난해 한 방송사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추적해 보았으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지는 못했다(*스티븐 엠브로스의 책으론 공저한 <만약에1>(세종연구원, 2003)이 유일한 듯싶다).

소설가 조정래(63)씨가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에 전반부를 발표한 경장편 ‘오, 하느님’은 바로 이 사진 속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신길만은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징집되어 관동군 고바야시 부대의 일원으로서 국경 전투에 투입된다. 그는 다른 조선인 동료들과 함께 포로가 되어 소련으로 끌려가며, 그곳에서 소련군에 편입되어 모스크바 사수를 위한 대독 전선에 투입된다. 거기서 다시 독일군의 포로가 된 신길만은 노르망디 해안에서 미군의 포로가 되며, 다시 소련 땅으로 후송되었다가 결국 총살당하고 만다.

‘오, 하느님’은 전체가 원고지 630여 장쯤 되는 소설이며 <문학동네> 겨울호에는 우선 앞부분 절반 정도가 실렸다. 소설은 이 잡지 봄호에 뒷부분이 마저 발표된 다음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겨울호 분재분은 신길만이 소련군에 편입되어 독일군에 맞서 전투를 벌이다가 포로로 잡히는 부분까지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조씨의 대하소설 삼부작 가운데 일제 강점기를 다룬 <아리랑>의 뒷부분과 겹친다. 작가는 “<아리랑>을 쓰기 위한 취재가 이번 소설 집필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오, 하느님’은 적은 분량임에도 스케일은 큰 소설이다. 무대부터가 몽골과 소련, 프랑스 등으로 다국적이다. 대초원의 전투 장면과 다국적 군대의 묘사는 이전의 한국 소설에서 보기 힘들었던 규모를 자랑한다. 자연 묘사 역시 웅장하다. 가령 이러하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보라와 땅에서 솟는 눈보라가 뒤엉킬 때면 그 광경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혼몽스러웠다. 그 어지럽고 숨가쁜 뒤엉킴은 마치 소련군과 독일군의 살기가 뒤엉켜 사생결단 난투극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하얗게 눈 덮인 대지는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 위에 다시 눈이 내려 덮였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눈은 또 붉게 물들었다. 마치 하늘과 인간이 거대한 화폭의 추상화를 그리고 지우는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작가 조씨는 “소수의 강대국이 다수의 약소국민들을 괴롭힌 것이 지난 역사였다”면서 “그런 부당한 역사가 21세기에도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 삼부작 이후 한동안 침묵하던 조씨는 지난 6월 현실사회주의 몰락의 원인을 탐색한 한 권짜리 소설 <인간 연습>을 내놓았다. ‘오, 하느님’을 연재하며 쓴 ‘작가의 말’에서 그는 “언제 어느 때나 문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다”라고 밝혔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6. 11. 22.

 

 

 

 

P.S. N님이 귀뜀해주신바, 엠브로스/앰브로스의 책으론 <만약에> 외에도 <대륙횡단철도>, <밴드 오브 브라더스> 등이 더 번역/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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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인문학의 위기? - 한국일보 2006/09/27

인문학의 위기? - 한국일보 2006/09/27

또 다시 인문학의 위기가 왔다고 한다.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이 '인문학 위기' 담론은 많은 논점을 생략한 채 자족적으로 선포되는 일이 예사다.

그 누락된 논점들 가운데 몇 개만 엿보자. 우선, 흔히 '문사철'(문학 역사학 철학)로 압축되는 인문학은 다른 분과학문들보다 내재적으로 더 가치 있는 학문인가? 6세기 한반도의 세 나라 국경을 획정하는 일이 DNA 분자구조를 해명하는 일보다 더 가치 있다고는 누구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을 테다.

인문학이라는 것의 개념과 경계도 흐릿하다. 손쉽게, 인문학을 인간 자체를 탐색하는 학문이라 정의해보자. 그럴 경우 인간의 DNA 분자구조를 해명하는 일이야말로 인문학의 일감이다. 그렇다면 다시, 인문학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탐색하는 학문이라 정의해보자. 그 경우에도, 철학이나 문학 연구보다는 뇌신경학이나 인공지능 연구 쪽이 인문학의 목표에 더 적합하다.

● 학문의 위기냐, 교수들의 위기냐

소위 자연과학의 인간 탐구 방식은 소위 인문학의 그것과 너무 달라 이를 나란히 견줄 수 없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인문학자들이 더러 경멸의 눈길을 건네는 경영학은 어떤가? 경영학의 인사관리론이야말로 인간 정신세계에 대한 섬세한 탐색의 결실이다.

인문학은 경영학 같은 응용학문이 아니라 기초학문이라고? 그 경우에, 인문학자들은 제 영역을 사회과학과 명확히 구분해야 하는 난제에 부딪친다. 이를테면 심리학처럼 인간 존재에 밀착된 기초과학은 인문학인가 사회과학인가? 하나마나한 대답이 있다. 심리학과가 문과대학(인문대학)에 속해 있으면 인문학이고 사회과학대학에 속해 있으면 사회과학이라는.

이 모든 난점을 해결해도, '교배'와 '해체'의 문제가 남는다. 18세기 한국 경제 연구는 인문학(역사학)의 일감인가 아니면 사회과학(경제학)의 일감인가? 역사학자가 연구하면 인문학이고 경제학자가 연구하면 사회과학인가? 대뜸, 접근 방법이 다르다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이를테면, 월러스틴을 빌려와, 경제학자의 18세기 경제 연구는 '법칙정립적' 사회과학이고, 역사학자의 18세기 경제 연구는 '개성기술적' 역사학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 둘은 실천 수준에서 늘 뚜렷이 구분되는가? 사학과 교수 김용섭의 '조선후기농업사연구'는 '개성기술적'이고, 경제학과 교수 이영훈의 '수량경제사로 본 조선후기'는 '법칙정립적'인가?

그렇게 또렷이 구분된다는 것 자체가 믿기 어렵지만, 그것이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지금 거론되는 인문학 위기는 인문대학의 위기, 인문대학 교수의 위기를 에둘러 말하는 것 같다.

한국 인문학 수준이 날로 쇠퇴해간다는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법과대학의 법철학자, 의과대학의 의사학자(醫史學者), 언론학과의 기호학자들은 '인문학 위기'를 거론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인문학 위기는 인문대학 지망생들의 감소에 따른 인문대학 교수들의 존재론적 위기인 것이다.

그런데 인문학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은 서로 모순되는 논거를 동시에 취한다. 학문이 시장원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돈벌이와 관련된 학문만 해서는 안 된다는) 명제와, 인문학이야말로 시장 친화적이라는(인문학이 제대로 돼야 돈이 벌린다는) 명제다. 최근에도 이런 모순되는 말이 한 인문학 교수 입에서 나오는 걸 듣고는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논리학은 인문학이 아닌 모양이다.

● 인문학ㆍ대학은 시장을 '넘어' 가라

시장이 인문학에, 정확히는 문과대학에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그런데 한국의 문과대학은 시장보다 나은가?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에서라면 마땅히 해체됐을 내부의 온갖 봉건적 권력관계와 연줄 문화에 포박돼 있지 않은가? 문과대학을 포함해 한국 대학은 대체로 시장 이전에 있다.

다시 말해 시장에 미달한다. 대학이 시장 너머로 나가려면 우선 시장을 통과해야 한다. 시장은 적어도 자신의 존립 근거인 '합리성'으로 대학을 지금보다는 민주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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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kje0525 > 근대라는 형식의 수용과 번역어
번역어 성립 사정
야나부 아키라 지음, 서혜영 옮김 / 일빛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한자문명권을 형성하고 있던 동아시아 삼국(한중일)은 조화로운 정치 역학을 유지하면서 중세를 보냈다. 그러나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서구와의 충돌을 경험하면서 이 조화는 깨어지고 동아시아의 삼국도 분열을 겪게 된다. 서구 문명과의 접촉에 있어 조선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너무 준비가 없었고 그 결과는 그 이후 전개된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의 번역어란 기본적으로 개화된 문명의 언어를 반개 또는 미개의 언어 체계 속으로 불러들이는 구조적 체계의 전이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카세트(보석함) 효과', 즉 내용을 알지 못하면서도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신비감, 그것이 일본 번역어의 성립 사정이라는 것이다. 도입된 언어에 1:1로 대응하는 언어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럴 경우 대안으로서 모색되는 것이 신조어와 전래어의 대입이다. 신조어의 경우는 해당 번역어에 합당한 의미 내용을 가진다고 하기 보다는 모호한 의미 내용으로 뭔가 있을 것 같은 카세트 효과를 발휘하게 한다.

전래어의 경우는 전래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의미 내용과 번역 대상어의 의미 내용이 길항하면서 새로운 제 3의 의미를 만들어 냄으로써 앞의 신조어와 마찬가지의 카세트 효과를 만들어 낸다. 번역어란 이처럼 그 의미 내용의 모호성을 특징으로 함으로써 역으로 어떤 새로운 기능을 의도한다. 예컨데 번역어는 창조하고자 하는 근대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로써 활용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사회', '개인', '근대', '미', '연애', '존재', '자연', '권리', '자유', '그/그녀'라는 어휘들의 번역어 성립과정을 탐색함으로써 번역어 성립의 사정과 그 내적인 성격을 밝히고 있다. 서구 근대를 받아들이는 태도라든가, 그 받아들임의 과정의 혼란을 번역어의 성립과정을 통해 확인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번역어란 것이 결국은 일본의 그것에 다름아니라는 사실, 그것을 알면서도 국어 정화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본식 한자조어의 폐기만을 부르짖는 열혈 민족주의자들의 비합리적 행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과거를 무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를 철저히 함으로써 현재의 우리 삶의 풍요로움을 이끌어 낼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식민지 시대 언어의 흔적은 말소되어야 할 부끄러운 무엇이 아니라 성찰해야 할 과거의 기억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런 성찰이 재미를 앞서는 이번 독서의 참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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