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겉과 속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대중문화의 변화 속도는 섬뜩할 정도로 빠르다. 핸드폰 같은 기계들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쫓기가 무섭고 새로워지고, 고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대학교에서도 기성세대가 모를 문화들이 현란하다고 할 정도로 복잡, 다양해지고 있다. 뿐인가. 인터넷에서는 종잡을 수 없는 유형의 폐인들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컴퓨터 밖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그것이 다시 컴퓨터 속에 영향을 끼친다. “숨이 가쁘다”는 강준만의 말은 괜한 과장이 아니다.

이런 사정을 안다면 ‘대중문화’를 책으로써 읽는다는 것이 무의미해 보인다. 책을 쓰고, 찍는 과정을 거쳐 그것이 독자의 손에 오기까지, 그 사이에 또 얼마나 많은 변화들이 있을 것인가! 과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바로 그것이 책으로 읽어야 할 이유가 된다. 강준만의 말처럼, 그 변화들은 너무 빠른지라 성찰의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에 기록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문화의 겉과 속 3>의 요지는 분명해 보인다. 현상을 쫓는 것으로 대중문화를 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심도 깊게 파고들어 제목처럼 대중문화의 ‘겉’과 ‘속’을 파고들겠다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기대감을 갖고 책의 첫 페이지를 펼쳐본다.

<대중문화의 겉과 속 3>의 목록을 보자. ‘방송문화’, ‘영화, 연예 문화’, ‘인터넷 문화’, ‘디지털 기술, 산업’, ‘휴대전화 문화’, ‘생활, 소비, 일상 문화’ 등 총 6장으로 구성돼 있다. 책이 선정한 주제들은 적절해 보인다. 그럼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첫 주제는 ‘내 이름은 김삼순’인데 강준만은 사람들이 왜 이 드라마에 열광했는지를 돌아보고 있다.

시청률 50%를 넘는 드라마이기에 ‘김삼순’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분석은 꽤나 심도 깊게 진행됐었다. 강준만은 사회에서 논의됐던 것들, 적나라한 일상이나 건강한 모계 사회 등 드라마가 인기 있었던 일련의 분석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뒤 끝자락에 가서 심각한 질문거리를 던지고 있다. 그것은 외모지상주의를 타파했으며 ‘평범한 여자임에도 당당했다’는 김삼순이라는 캐릭터를 넘어 김선아라는 인물이 ‘위장 몸꽝’이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위장 몸꽝이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다. 김삼순은 몸꽝이었지만 넉넉한 시간과 고비용을 요구하는 체중 감량 시스템을 통해 김선아는 몸짱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시 그것을 부러워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일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평범한 캐릭터라고 좋아했었던 ‘평범한’ 사람들이 느낀 카타르시스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강준만은 모범답안은 없다고 말하며 드라마를 좋아한 이유를 각자 생각해보라고 말하지만 말 끝에 가려진 여운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한류 문제에 대한 지적도 여운이 깊기는 마찬가지다. 강준만은 한류 문제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정리하면서 성찰할 것들을 짚어주고 있다. 이중에서 눈에 띄는 지적은 언론이 한류를 다룰 때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정서가 배어있다는 것과 한류를 지나치게 경제주의와 문화주의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류를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오느냐에 관심을 두고 한류를 띄워주는 것에 대해 되레 그것이 한류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은 경청할 만한 분석이다.

이어서 2장에서는 연예보도 행태, 스타파워, 간접광고, 온라인 음악 등 현재 논란이 되고 있거나 앞으로 심각하게 부상할 잠정적인 문제들을 짚어준 뒤 3장에서는 인터넷 문화를 돌아보고 있다. 3장의 첫 번째 주제는 블로그다. 강준만은 블로그 이용자가 2,000만명을 넘어선 지금,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블로그의 속성이 ‘공개적으로 쓰는 일기’라면 왜 자신의 일기를 공개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사회적 소속감과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서? 한국 특유의 ‘쏠림 현상’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블로그를 만드는 때에 강준만이 지적한 것은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장에서 다루는 ‘포털 저널리즘’은 어떤가? 2003년 3월 ‘미디어다음’이 등장한 이후 다른 포털사이트들도 뉴스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뉴스 사이트에 접속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파장력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뉴스 서비스는 누리꾼들의 수고를 덜어준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문제가 있다. 또 하나의 언론권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사 기자들이 포탈사이트의 메인 면에 배치될 수 있도록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리고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포탈사이트 뉴스 서비스를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십분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여기서 주요하게 처리하는 기사들은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것이다.

일종의 ‘저급한 상업주의 행태’라고 지적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것을 막을 방법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도 포털 저널리즘은 인터넷 시대에 중앙집권화가 더 강화되는 역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도적인 문제에서 답을 찾을 수 있겠지만 결국 질문의 끝은 누리꾼들을 향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영상문화, 디지털문화, 일상문화로 압축될 수 있는 주제들을 다룬 <대중문화의 겉과 속 3>은 이런 방식으로 구성됐다. 강준만은 주요한 대중문화를 요약, 분석한 뒤 그것을 어떻게 바라봐야하는지를 물으며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때문에 정보습득 차원용으로 그것을 관찰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것에 손을 넣을 수 있게 만들어주고 그것은 비판의식을 한 단계 높여주는데 일조하고 있다.

대중문화의 속성이 그렇듯 <대중문화의 겉과 속 3>에서 다룬 문제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것들이다. 그것을 책으로 보면 무엇하나 싶겠지만 <대중문화의 겉과 속 3>은 몇 달이 지나도, 설사 연도가 넘어간 뒤 접하더라도 대중문화를 파고드는 ‘감각’이 녹슬지 않는 단단한 내구성을 지녔다. 그러니 기대치를 한껏 높여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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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장자의 일부분을 읽다가 무용지용(無用之用)이란 표현을 보았다.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

그 부분을 읽자 마자 떠오른 건, 김현의 문학론이었다. 
쓸데 없는 문학의 쓸모를 말하는 그의 문학론은 확실히 장자의 언어를 빌린 것이었다.

[행복한 책읽기]에서 인가 몇년간이나 김현이 집안에 들어박혀서 노장만 읽었다는 게 기억난다.
집안에 틀어박혀서 노장 따위나 읽는 짓, 무위지위...
그리고 무용지용.

확실히 쓸모 없음도 쓸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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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독서노트만드는법

자꾸 때리다 
::   독서 노트 만드는 법....
메뉴스크립트에서 강유원 님이 만드신 자습노트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촬영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정확히 어떠한 방식으로 노트를 구성하셨는지 알기 힘들더군요. 정리를 하며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는지라 처음 독서노트를 만드는데 매우 서툽니다. 독서노트 만드는 방법이나 노하우 등을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강유원 :: 풀로엮은집에서 이반 일리히의 <<학교없는 사회>>를 예로 들어 설명한 것을 수강생 중의 한 분이 정리했더군요. 그것을 옮겨 보겠습니다.
1. 목차 읽기
책을 읽을 때에는 '목차'를 먼저 읽는다. 목차를 읽으면서 대강의 내용을 예측해 본 후에 본문을 읽는다. 결코 저자에게 주눅들 필요가 없다. 내가 이반 일리히를 아는 것도 아니고, 이반 일리히가 나를 아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메모를 하며 읽는다. 그 메모들이 서평의 기본적인 자료가 된다. <학교 없는 사회>의 경우 학술서적이므로 논리적인 서술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목차를 통해 전반적인 내용을 예측할 수 있다. 책을 다 읽었는데 목차를 읽으면서 짐작한 바와 별 다르지 않은 내용이라면 문제가 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독자의 예상을 깨는 책일수록(독자의 배반감이 클수록) 괜찮은 책인 경우가 많다.
책을 사고 읽은 후 서평을 쓰기까지의 순서를 제시하겠다.
1) 우선, 장서표를 붙이고 첫 장에 그 책을 구입한 의도와 목적을 기록해 둔다.
2) 그리고 목차를 읽으면서 짐작되는 내용을 쓴다. 이것이 서평 쓰기의 출발점이 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처음의 의도와 그 내용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한다. 공부를 하려면 책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 또, 짐작가는 내용을 써 봐야 책을 선택하고 구입할 수 있게 된다. 남이 쓴 서평을 읽고 책을 살 수는 없다. 서평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3) 이제 책을 읽기 시작한다. 책을 읽을 때에는 내다 버릴 책이라 할지라도 충실히 읽어야 한다. 충실히 읽고 깔끔하게 재정리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난외에) 써야 한다. 다 읽은 후에는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읽으면서 노트에 정리한다. 그리고 나서는 노트만 읽으면서 관점을 잡아서 서평의 초고를 쓴다.
서평 자체는 어찌 보면 창작이라 할 수 있다. 서평은 저자도 발견하지 못한 어떤 것을 독자가 발견하고 저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이다. 저자가 책을 쓸 때에는 '독자가 여기까지는 읽어줬으면...'하고 생각(기대)하는 부분이 있다. 거기까지는 읽어봐야 한다. <책과 세계>를 읽고 '병든 자만이 책을 읽는다.'라는 구절에 현혹된 독자는 '하수'이다. 그런 구절이 저자가 깔아 놓은 부비트랩이다.
2. 서문 읽기
서문에 있는 내용은 세 가지면 충분하다. 그러므로 서문은 세 문단으로만 구성되면 된다.
1) 이 책을 쓰게 된 과정, 이유------------<동기>
2) 책에서 밝히고자 하는 핵심 주장-----<목적>
3) 핵심 주장을 논증하는 방법------------<방법>
그 이상 쓰는 것은 오버다. (출판사 사장, 가족에 대한 감사 따위)
예를 들어 서평집의 서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면 충분할 것이다.
1) 내(저자)가 생각하기에 책은 '이러이러한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책 중에서 몇몇 책을 골랐으므로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2) 서평집을 내게 된 경과
3) 내가 책을 해석interpretation한 방법
여기에 덧붙여 독자에 대한 당부 정도를 쓸 수 있겠다.
여기까지 정리가 되면 책의 3분의 1정도는 이해된 것이다. 본문을 읽기 전에 이면지(메모지나 아무 종이)에 처음의 의도(짐작한 내용), 목차와 서문을 읽고 이해한 내용을 정리한다. 정리한 종이를 '책갈피'로 사용한다. 읽는 중간중간 서문에서 제시한 목적과 방법이 본문 속에서 균형있게 서술되고 있는지 대조해 가면서 확인한다.
제1장 우리는 왜 학교를 폐지하여야 하는가
'학교폐지론'에 대한 내용으로 이 책의 핵심 주장을 담고 있는 부분이다. 상식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알 수 있다.
책을 읽을 때 효과적으로 -힘을 쓸 부분과 쓸 필요가 없는 부분을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각각의 챕터에 같은 시간을 배정할 필요가 없다. 바쁠 때는 필요한 부분만 읽고, 나중에 시간이 날 때, 읽고 싶을 때 더 읽으면 된다. 이 책의 경우, 1장을 치밀하게 읽고 '핵심주장'과 그것을 논증하는 데 사용한 '개념'을 분명히 해 두면 서평이 써진다. 처음에(1장에서) 기본 개념을 철저히 정리하고, 이해하고 넘어가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책의 끝까지 잘 읽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책은 1장의 첫번째 내지는 두번째 문장에서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논증한 부분은 잘 봐두어야 한다. 쉽게 appeal이 되고 잘 이해되기 때문이다. 거론된 사례에 강한 설득력이 있는 경우에는 서평을 쓸 때 인용해도 좋다.
주장이 확장되고 있는 부분에서는 '소제목'을 붙여 지표로 삼는다.
밑줄은 세 줄 이상 치면 의미가 없다.(주목성이 떨어진다.) 중요한 부분, 문단에는 '박스'를 친다.
논술은 결국 창의적인 사고와 토론인데, 일단 집에서 부모와 자연스럽게 대화(토론)을 해 본 아이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정형화된 정답을 강요하고, 할(하고 싶은) 말 하는 아이들에게 싸가지 운운하니 논술을 잘 할 수가 없다.
이반 일리히의 주장은 결국 누구나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에 대한 '자격'이 있는 사람만 교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격(에의 진입장벽)을 높일수록 경직된 사회가 되고, 교육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전락한다.
외국 저자의 책 서문에 인명이 등장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저자들이 출판사 사장과 가족들에게 감사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 책의 저술에 기여contribution한 이들을 기록해 둔 것이다. 그 이름들을 기억하고 책을 읽다가 다시 등장했을 때 중요한 사람인 줄 알면 된다. 그 인명들은 나중의 확장된 독서를 위한 저자 리스트가 될 수 있다. 특히 세 번 이상 등장하게 되면 관련 도서 목록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된다.
각주에 등장하는 책은 체크해 두고 번역본이 있는지 확인한다. 인용된 책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살피고, 사서 읽거나 도서 목록에 추가한다.
 
자꾸 때리다 :: 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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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글을 쓰는 에코에 탄복할 뿐입니다. 이 글도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으로도 대단히 유쾌한 발상으로 씌어있네요. 잘 읽어보시면 감탄하시리라 믿어요. ^^
 
글을 잘 쓰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
 
 

 

1. 두운(頭韻)을 피하라. 비록 올빼미들을 유혹할지라도.
(이탈리아 어로 allitterazione(두운), allettare(유혹하다), 그리고 allocco(올빼미)는 두운이 일치한다.
 
2. 접속사를 피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오히려 필요할 때는 쓰도록 한다.
 
3. 기성품 문장들을 피하라. 그건 <다시 데운 수프>와 같다.
 
4.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라. 자신을 살찌우게 하니까.
 
5. 상업적 기호 & 약자 etc.를 사용하지 마라.
 
6. 괄호는 (꼭 필요해 보일 때도) 담론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라.
 
7. 말없음표들의...... 소화 불량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라.
 
8. 가능한 한 따옴표를 적게 사용하라. 그것은 "목표"가 아니다.
 
9. 절대로 일반화하지 마라.
 
10. 외국어는 절대 엘리건트한 스타일을 만들지 않는다.
 
11. 인용을 줄여라. 에머슨이 올바르게 지적하였듯이 <나는 인용을 증오한다. 단지 네가 아는 것만 말해라>
 
12. 비유는 기성품 문장과 같다.
 
13. 과잉 설명을 하지 마라. 똑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지 마라. 반복한다는 것은 불필요하다(과잉이라는 말은 독자가 이미 이해한 내용을 불필요하게 다시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14. 단지 똥 같은 놈들이나 저속한 말을 사용한다.
 
15. 언제나 대충 구체적이도록 하라.
 
16. 단 하나의 단어로 문장을 만들지 마라. 없애라.
 
17. 지나치게 과감한 은유들을 조심하라. 그것은 뱀의 비늘 위에 돋은 깃털과 같다.
 
18. 쉼표는, 정확한 곳에, 넣도록 하라.
 
19. 콜론과 세미콜론을 구별하라 : 비록 쉽지 않을지라도.
 
20. 만약 적절한 이탈리아 어 표현을 찾지 못하더라도 절대로 사투리 표현에 의존하지 마라. <페소 엘 타콘 델 부소(베네치아의 사투리 속담으로, 병보다 오히려 치료가 더 나쁜 경우를 가리킨다)>
 
21. 어울리지 않는 은유를 사용하지 마라. 비록 <노래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마치 탈선한 백조 같다.
 
22. 정말로 수사학적 질문이 필요한가?
 
23. 간략하게 하라. 긴문장을 피하고, 가능한 한 적은 숫자의 단어 안에다 자신의 생각을 압축하도록 노력하고 - 또는 삽입구를 넣지 마라. 그것은 불가피하게 산만한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드니까 - 그리하여 담론이 분명히 매스 미디어의 권력에 지배되는 우리 시대의 비극들 중 하나를 이루는(특히 불필요하거나 필수 불가격하지 않은 자세한 정보들로 쓸모없게 채워졌을 경우) 정보의 오염에 기여하지 않도록 하라.
 
24. 과장하지 마라! 감탄 부호를 적게 써라!
 
25. 야만적 표현을 좋아하는 최악의 <팬들>이라도 외국어를 복수로 만들지 않는다.
 
26. 외국어 이름을 정확하게 써라. 가령 보둘레르, 루즈웰트, 니채 등처럼.
 
27. 언급하는 저자나 등장인물들을 완곡하게 표현하지 말고 직접 지명하도록 하라. 19세기 롬바르디아 출신의 최고 작가지아, <5월 5일>의 작가도 그렇게 했다.
 
28. 글의 첫머리에서 독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감사의 표시>를 하도록 하라(그런데 혹시 여러분이 너무나도 멍청해서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29. 철자를 자세하게 학인하라.
 
30. 반어법은 얼마나 지겨운 것인지 말할 필요도 없다.
 
31. 너무 자주 문단을 바꾸지 마라.
최소한 불필요 할 때는.
 
32. <위엄 있는> 1인칭 복수를 절대 쓰지 마라. 우리는 그것이 나쁜 인상을 준다고 확신한다.
 
33.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지 마라.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실수할 것이다.
 
34. 논리적으로 결론이 전제에서 도출되지 않는 글을 쓰지마라. 만약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전제가 결론에도 도출될 것이다.
 
35. 옛날 표현이나 <아팍스 레고메나(유일하게 단 한 번의 기록만 남아 있는 어구)>처럼 이례적인 어휘들. 리좀같은 <심층 구조>를 너무 많이 사용하지 마라.
그것들은 아무리 그라마톨로지적 <차연>의 현현(顯現)이나 해체론적 표류에의 권유처럼 보일지라도 -
만약 그것이 극도로 세심한 문헌 비평 의식과 함게 읽는 사람의 세밀한 검토에 의해 논박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더 나쁠 것이다 -어쨌든 수신자의 인지 역량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36. 완성된 문장이 되어야 하는데

 

1997 - 움베르토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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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RSS, 복잡한 웹을 요약해주다

RSS, 복잡한 웹을 요약해주다

노경윤 / 전 스키조 편집장
nohmad@sub-port.net


웹이 너무 복잡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통계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전체 웹 트래픽의 70% 이상이 사용자가 원하지 않은 컨텐츠에서 유발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확실히 지난 몇년 사이에 조금의 여백도 남기지 않고 화면을 빼곡 채우는 웹 디자인이 하나의 뚜렷한 ‘사조’로 자리잡은 것 같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회원가입, 로그인. 처음 가고자 했던 페이지에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패킷을 낭비해야 하는가. 로그인에 성공한 후에도 팝업, 플래쉬, 아바타 등 뜻하지 않은 복병들이 도처에서 정보의 흐름을 막아서고 현기증을 유발한다. 결과적으로 인터넷 초창기에 비해 컴퓨터 사양은 10배 이상 나아졌지만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은 조금도 줄어든 것 같지 않다.

RSS의 탄생

최근 블로그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확산일로에 있는 RSS가 이 어지러운 문제에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SS는 1999년 넷스케이프사가 My Netscape Network
(my.netscape.com)라는 개인화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주식현황, 스포츠 소식, 날씨, 별자리 정보 등 여러 채널의 정보를 수집해서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한 XML 형식의 파일이다. 당시에는 ‘RDF Site Summary’의 약자로 사용되었는데, RDF(Resource Definition Framework)란 사이트, 페이지, 저자 등과 같이 웹상에 존재하는 정보가 스스로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메타데이터를 기술하기 위해 W3C(World Wide Web Consortium)가 정의한 표준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후 블로그의 원조인 유저랜드(userland.com)가 자사의 블로그 발행 프로그램을 위해 원래 버전을 개량한 포맷을 공개하면서, 여러 소스에서 추출한 뉴스를 통합하고 배급한다는 아이디어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넷스케이프로부터 빠져 나와 RSS-DEV Working Group이 자체적으로 주도권을 가진 RDF Site Summary 1.0과 Userland사가 소유하고 있다가 표준화를 위해 최근 비영리기관인 하버드대의 버크먼인터넷센터로 저작권을 양도한 Really Simple Syndication 2.0이 따로 존재한다. 그러나 두 버전간에 큰 차이가 없고, 대부분의 경우 2가지를 모두 지원하고 있어 버전 문제로 고민할 일은 거의 없다.

푸쉬 모델의 장점

최초의 RSS는 이질적인 정보를 간추려 한 곳에 모아서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고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이제는 웹사이트를 구성하는 필수요소가 되어, What’s New에 해당하는, 최근 추가되거나 변경된 페이지들에 대한 헤드라인을 제공하는 식이다. 이 RSS 파일의 위치만 기억해두면, 나중에는 이 파일에 요약된 내용만 보고 대문을 거칠 필요 없이 직접 해당 페이지로 바로 접근할 수 있게 되어 방문자들의 수고가 크게 줄어든다. 이런 장점이 확산되면서 아예 RSS 파일만을 전문적으로 모아 카테고리별로 통합된 정보를 제공하는 신디케이션 사이트들(moreover.com, syndic8.com, newsisfree.com)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RSS가 방문자들의 수고를 덜어준다고 했는데, ‘구독-배급(subscription-syndication)’ 모델의 장점이 바로 그것이다. 개별 페이지에 대해 ‘요청-응답(request-response)’을 반복하는 모델하에서는 결국 사용자가 주소를 타이핑하거나 링크를 클릭하여 일일이 페이지를 찾아다녀야 한다(브라우저는 이와 같은 일을 쉽게 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RSS 역시 웹을 이용하는 이상 요청-응답 프로세스 위에 존재하지만, 시간에 따른 변경사항을 기록한 요약본을 통해 요청-응답을 통제하거나 주기적으로 자동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과거에 실패한 기획이었던 푸쉬 미디어를 떠올리게 만든다. 당시에는 성숙하지 못한 인터넷 여건과 제한된 컨텐츠, 컨텐츠 제공자의 열의 부족 등의 문제로 실패했지만, 사용자 중심의 부활은 그 전철을 그대로 밟지는 않을 것이다. RSS 전용 프로그램--Reader, Aggregator 따위의 이름을 가진--들을 사용하다보면 이 푸쉬가 주는 느낌을 더 잘 실감할 수 있다. 먼저 사용자 인터페이스 면에서 RSS 전용 프로그램들은 브라우저보다는 메일/뉴스그룹 프로그램에 가깝다. 뉴스그룹에 가입하거나 메일링리스트 구독을 신청하듯이, RSS를 구독할 위치만 명시하면 뉴스그룹/메일링리스트 이용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필터로 살아남기

‘골라리스’라는 프로젝트는 스포츠신문 연재만화의 이미지 URL만 추출해서 여러 사이트에 개별적으로 로그인할 필요 없이 한 사이트에서 모두 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였다. 그러나 과도한 방문자수로 인해 서비스 운영이 불가능해지자 서비스에 사용한 소스를 공개했고, 이 소스를 이용하여 여러 개인이 현재 게릴라식으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골라리스’ 이전에도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사이트들이 많이 있었으나 신문사 측의 요구로 모두 중단되었고, ‘골라리스’는 소스 공개를 통해 저작권자의 위협을 우회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 짧은 에피소드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웹에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허비하는 것이 많고, 그것을 줄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의 인기가 식지 않는 것도 그 심플함과 신뢰할만한 여과 능력 때문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웹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한 방법들이 계속 연구될 것이다. RSS는 좋은 출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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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real florist 2009-10-30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구독하게 해주는 시스템이군여, 글 잘 읽엇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