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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진중권 지음 / 푸른숲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한 철학자가 있다. 그 철학자는 <폭력과 상스러움>이란 책 속에 사는데 익살맞게 웃고 있다. 얼굴의 이그러진 정도와 만화주인공을 닮은 눈빛의 각도를 추측해볼 때, 누굴 심하게 비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그의 입에선 끝없이 그 '누굴' 향해서 독설을 내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 이제 보니, 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점잖은 철학이 아닌 통 속에서 굴러다니며 똥과 오줌과 정액의 퍼포먼스를 펼쳐내는 디오게네스의 얼굴을 닮았다. 아하! 그러니까 그의 철학은 '광대의 철학'이군! 이제 그는 이렇게 점잖게 말하기 시작한다. '엑스 리브리스.' ∼라는 책에서? 어, 어? 또 말하네? '엑스 리브리스.' 이번에 그가 한 말의 의미가 책 속을 빠져 나온다. 책 밖의 세계로 튀어나온 그 의미들은 날선 칼이 된다. 칼은 춤을 춘다. 그 춤의 이름은 코믹살상댄스. 그리고 그 춤바람에 쓰러지는 무수한 헛바람들...
그런데 우리의 인문학은 다분히 자폐증에 걸려 현실로 나가지 못하고 폐쇄회로 안을 공전하고 있다. 그 결과 학술적 담론은 공허해지고, 대중들 사이를 떠도는 세론은 무지막지한 맹목으로 치닫는다. 담론과 세론은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야 세론이 이데올로기의 중금속에 오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엑스 리브리스', 이는 잿빛 인문학의 문장들을 뽀얗게 먼지가 앉은 낡은 책 밖으로, 상아탑이라는 도서관 밖으로 끄집어내 생동하는 삶과 맞물리려는 시도이다.
ㅡ 머리말 「엑스 리브리스」에서
이 책의 이름마저도 패러디이다. 이지메를 다룬 첫 번째 글, 「마이너스 1의 평화」에서 이렇게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비폭력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화해의 희생양을 하나 뺀 모든 사람의 일치다.' 르네 지라르 <폭력과 성스러움>. 즉 르네 지라르의 책 이름을 바꿔서 붙인 제목인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의 글들은 이런 식으로 인문학 저술의 인용과 현실 세계의 인용, 그리고 그(집단주의, 국가주의, 극우와 파시즘, 남성우월, 동성애 차별, 기득권과 지식인 등등)에 대한 신랄하고 유쾌한 비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중권의 이름을 언제부터 기억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확실히 기억이 나는 것은 그가 독일에서 귀국한 직후 가진 딴지일보와의 인터뷰 때였다. '딴지'일보'는 사기다. 매일 안 나오니까.' ㅡ_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