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높고 쓸쓸한 - 안도현 시집 문학동네 시집 99
안도현 / 문학동네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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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 시집은 짧고 굵은 울림을 주는 시, [너에게 묻는다]로 시작한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여기서 이미지는 자기 자신을 버리고 다 태워서 남을 위해서 헌신하는 그런 이미지입니다. 연탄이란 존재는 자기 몸에 불을 붙여서 방구들도 데워주고, 라면도 끓여주고, 재가 되어서는 미끄러운 골목길에 으깨져서 길을 미끄럽지 않게 해주는 존재입니다.'(「헛것을 돌아볼 줄 아는 시」, 『나의 문학 이야기』, 299쪽)라고 한다. 첫 번째 시에 연이어 나오는 시 [연탄 한 장], [반쯤 깨진 연탄]을 읽고 나서면 이 시집에서 드러나는 정서가 어떤 것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단 삼행으로 이루어진 첫 번째 시가 두 시들보다도 훨씬 효과적으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가 지닌 함축성의 힘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이 시집에는 '연탄'과 함께 '증기기관차'라는 시어도 자주 등장한다. 자기를 희생해서 남과 세상에 뜨거움을 주고 끝끝내 부서져 버리는 열정의 삶, 그것이 바로 연탄과 증기기관차의 이미지이다. 많은 시들이 안도현의 해직교사 시절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의 가난한 생활의 설움과 자조, 그리고 의지까지 삶의 꽉 찬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신경림이 안도현이 시를 너무 모범적으로만 쓴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밋밋하고 싱거운 듯한 느낌이다. 강렬한 긴장이나 전율을 느끼게 하는 시를 기대하기란 힘들었다. 실제로 안도현은 자신이 학생시절에는 영악하게 손끝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그 후로 대학 입학 이후 선배들의 충고에 따라 가슴으로 쓰여지는 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은 변증법적으로 그 둘을 종합하기에 이르렀다고 고백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안도현의 시에는 추운 겨울날의 뜨끈한 밥과 국물로 다가온다. 그의 시에는 따뜻한 숭늉이나 우유를 홀짝홀짝 마시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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