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을 위한 변명 한마당 글집 1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조영훈 옮김 / 한마당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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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이란 무엇인가? 그걸 정의 내릴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없다. 다만, 야금야금 책읽기를 시작할 때 처음 만난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들과 그 외의 저서들을 통해서, 지식인이란 비판적이며 자기 성찰을 할 줄 아는 지성인으로 생각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비판적, 성찰적 지식인과 그 반대편에 선 이들로 구분해왔다. 비판을 할 줄 모르는 지식인은 지식인이 아니라는 게,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내 생각이다. 강준만적인 생각은 그의 저서를 많이 읽지 않고 있는 요즘에도 완전히 의식의 기저에 깔려 작동하고 있는 모양이다.

최소한, 한국 사회라는 기괴한 현실 속에서 지식인의 성찰과 비판은 배부른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그건 지식인들의 지식인이라 일컬어지는 강준만이 퍼뜨린 '지식인론'의 파장이기도 했지만, 함석헌, 김재준, 안병무, 리영희로부터 홍세화, 진중권, 박노자, 그리고 숱한 인터넷 논객들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정말 그렇다'라는 강한 긍정일 수밖에 없다.

1965년 9월과 10월에 걸쳐 사르트르가 일본에서 행한 세 차례 동안의 강연을 수록한 이 책은, 물론 한국 사회와 한국의 지식인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지식인론은 사르트르 당대의 사회 현실과 그에 따른 사르트르의 비판적 사고과 선택을 떠나서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점이 너무도 많다.

'지배 계급은 그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인 '이익'에 준하여 실용적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의 수를 결정한다. 지배 계급은 동시에, 산업 발전의 정도에 따라, 또 경제 상황과 새로이 등장한 필요에 맞춰, 잉여가치분의 얼마를 그들 전문가의 봉급으로 내줄 것인지를 결정한다. 오늘날, 사태는 명약관화하다. 기업은 대학으로 하여금, 낡아 퇴색한 인문주의(人文主義)를 포기하고, 그 대신 기업진단가나 중간관리자, 전문가 등을 공급해 줄 전문화된 학습을 시행하도록 하기 위해 손을 뻗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30쪽)

놀라지 마시라.(강준만의 말투로!) 이건 한국의 어느 비판적 논객이 게시판에 올려놓은 언사가 아니다. 아마 사르트르가 당대의 프랑스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도 사르트르의 말에는 아직 불씨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실상, 이 강연들은 사르트르의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을 엄살 섞인 목소리로 담아낸 것일 게다. 즉, 나는 많이 아는 놈이다. 나는 부르주아도 아니고 프롤레타리아도 아니다. 괴롭다. 으아! 아, 그래. '자기가 사는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단하나, 가장 혜택받지 못한 계층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다.'(72쪽) 십자가를 져라, 이 먹물들아!

자기 분석을 통해서 자기 결단에 이르는 사르트르의 고뇌와 사유, 그리고 삶의 선택의 치열함은 이 책의 두께를 착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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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창비시선 194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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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의 시들을 독자와 평단 모두 반기는 모양이다. 김선우의 시어들은 관능적일 정도이고, 시적 상상력은 자궁과 꽃잎들과 대지와 바다에 닿아 있다. 첫 시집임에도 불구하고 관념어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범한 시어들도 아닌 독특한 언어들로 시적 상상세계를 이루어내고 있다. 그래서 가끔 낯선 시어들은 '평범한 혀'를 가지고 있고 그 혀를 입 속에 가두어 두고 있는 독자를 부끄럽게 만든다.

더욱이 그녀의 상상세계의 뼈대를 이루는 시적 사유들은 거칠게 말해서 몸, 여성, 생태, 윤회 등. 이런 새로운 상상력들은, 문학을 철학이나 사상으로 바꿔 이야기하고 싶은 먹물들의 혀를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하게 한다. 영혼이 아닌 몸, 남성이 아닌 여성, 기계와 도시가 아닌 생태, 직선적인 생이 아닌 윤회는 얼마나 떠벌리기 좋은, 새 이야깃거리인가. 아마도, 김선우 시들로 인해서 많은 혀들이 움직일 것이다.

시집 뒤 표지에 김정환, 나희덕 시인의 몇 마디가 각각 쓰여 있는데, 재미있는 건, 김정환 의 말은 하나마나 한 딴소리이고 나희덕의 것은 들을 만한 것. 왜 그랬을까. 혹시 김정환이 자궁을 직접 말하기가 '거시기'했던 것은 아닐까.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한때 나는 자궁에 집착했었다. 자궁이 없는 수컷이었으므로 처음에 그것은 상당히 관념적인 집착인 셈이었다. 자궁에는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쌍둥이처럼 들어있다. 자궁에서 生의 시작되고, 자궁을 닮은 무덤에서 生은 끝난다. 살고 싶어 미칠 때 나는 자궁 안의 태아가 되었고, '죽고 싶어, 정말!'이라고 내뱉을 때 자궁 안의 주검이 되었다. 자꾸만 자궁 안으로 기어 들어가고 싶었고, 또 자궁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빌어먹을 세상과 삶이 피곤하단 걸 자주 느낀 나는, 두꺼운 이불을 둘러쓰고 자궁 안의 태아처럼 움츠려서 게으른 잠을 청했다. 자궁 속으로 도피했다. 그런 엄마 뱃속의 환상(또는 아주 오래된 기억)을 느끼는 순간에는 정말 그대로 죽어 버리고 싶은 쾌락이 전신을 뒤흔들고 놔두질 않았다. 그리고 다시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다시 태어나는 아이가 되곤 했다. 읽는 문학마다 자궁의 이미지가 웅웅거리며 앞으로 튀어나와 보이곤 했다. … 김선우의 시들은 그때와는 다른 자궁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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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 문학 단평 모음 김현 문학전집 15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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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서가를 거닐다 누가 소리 지르는 걸 듣는다. 소리난 데로 서둘러 가본다. 거기 김현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행복한 책읽기/문학 단평 모음>은 김현 전집 중 15번째 것으로 죽기 직전에 쓴 그의 유고 (독서)일기와 문학 단평들의 집합이다. 급히 말하자면, <행복한 책읽기> 덕분에 이 책은 아주 재미있게 읽힌다. 그러나 문학 단평들은 김현이 생전에 원했던 바대로 책으로 묶여지지 않았어도 무방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김현을 사숙하는 문학도나 그를 연구하는 학자에게는 이 역시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지만.

<행복한 책읽기>는 독서 일기 특유의 재미가 있다. 커다란 독서가가 숨겨 놓은 정신의 속살을 훔쳐보는 느낌이랄까. 일기 특유의 관음의 매력과 짤막한 독서평 특유의 신랄한 맛, 그리고 독특한 사유들…. 거기에 더해서 쓰러져 가는 거인의 지친 숨소리가 여기에 짙게 깔린다.

나갈 길이 없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워 있을 수도 없다
결사적으로 소리지른다 겨우 깨난다
아, 살아있다.

마지막 일기의 다급한 비명은 거친 단문의 속도감 때문에도 절박하게 느껴지지만, 그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예민한 감수성으로 기록해 나가는 장면들을 앞에서 몇 번씩이나 읽었기에 더욱 쓰라리게 다가온다.

또 한 가지. 김현을 포함한 평론가들의 신경질적인 독설이나 씨니컬은 비판을 수행하는 그들의 프로페셔널리즘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직업적 책읽기의 압박에서도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월평 행위를 두고 김현은 '병아리 감별사' 노릇이라고 자조적으로 생각했다. 병아리의 노란 날개와 작은 부리를 사랑스럽게 바라다보는 어린 아이의 눈빛과 양계장의 일꾼이 바라다보는 짜증 섞인 눈빛. 아이는 사실 그가 병아리와 함께 있는지 독수리 새끼와 함께 있는지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행복하다. 양계장 일꾼은 병아리를 누구보다도 잘 구별해내지만, 종종 지치게 마련. 진정으로 사랑하는 문학과 기꺼이 결혼한 김현. 그러나 그런 결혼은 때때로 피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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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전집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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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대신 먹을, 라면을 끓이는 동안, 기형도의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소리내어 읽던 기괴하고 게으른 독자가 다시 한 번 그를 욕보였다. 아, 나는 이번에는 볶은 번데기들을 씹어 먹으면서 그의 전집을 읽게 되었다. 내가 먹은 라면과 번데기 사이에 그의 시가 놓인다는 건, 그에게 어떤 느낌일까. 그가 쓰러진 극장에서는 '뽕2'의 필름이 돌아가고 있었다…는 루머를,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실로 믿고 있으며, 그런 이상한 신앙에 대해 스스로 여러 번 생각한 적이 있는 황당한 독자를, 그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러나 그는 이런 나를, 슬퍼하지 않을 것 같다. 生을 온통 슬픔으로 살았고 슬픔으로 시를 쓰던 시인이 더 이상 슬퍼해서 뭐하랴. 요절 시인은 요절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청년 시기로 고정시킬 수 있었다. <기형도 전집>은 그렇게, 미라가 된 어느 청년 시인의 문학세계와 삶을 담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시, 소설, 산문, 자료로 이루어진 이 박물관에는 역시나, 청년들이 웅성대고 있다. 그 관객들처럼 나도 그 미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안개에 질식할 것만 같다. 그 안개는 벌써 내 '입 속의 검은 잎'을 사막처럼 마르게 하고, 다시 그 갈증은 폐부 깊숙한 곳까지 고통을 전달한다. '아아, 목구멍 가득히 안개가 들어찬 느낌이다.'(환상일지, 247쪽)

…일부러 장난스레 글을 시작하려 했으나, 마지막까지 그렇게 버틸 힘이 도저히 없다. 이 모두가 기형도가 부린 안개의 흑마술 때문이리라. 아, 이제는, 그만 사라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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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매체 이론과 사상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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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대중매체 개론서. 강의용 교재를 목표로 낸 책이지만, 여전히 '강준만스럽다'. 대중매체 교양 개론으로서의 욕심도 부리고 있고, 그가 평소하고 싶던 말도 여전히 양보하고 있지 않으며, 그가 존경하는 선배 '지식인'들을 간단히 소개하는 일도 멈추고 있지 않다. 내가 점수 매긴 성적표에 따르면, 그의 욕심들은 성공적인 듯 싶다.

1) 언론학 수업에서 자주 다루고 있는 이론과 개념들을 충실히 다루었다. (고백하자면, 나도 새내기 시절의 어느 교양 강좌의 수업 시간에 언론학 교수로부터 추천 받은 이 책을 기억해서 읽은 것이다. 강준만은 얄밉게도 성공해버렸다.)

2) 강준만표 안티조선일보의 교리 전도에도 성실하다. 강준만은, 다른 학자들 얘기를 하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성실한 (독서 및) 인용과 그 인용에 대한 의견 피력이라는 강준만식 글쓰기는, 언론학 저술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3) 그리고 강준만의 중요 관심사인 지식인론. 리영희와 촘스키는 강준만의 스승으로 보인다. 내게 강준만이 스승이었던 것처럼. …리영희는 스스로 '60% 저널리스트, 40% 아카데미션'이라고 하는데 그건 실상, 강준만의 고백으로 들린다. 리영희가 노신을 인용하며 말한 바, 진실을 아는 것은 괴로운 일인데(아, 식자우환이여!), 독자와 후학들에게 그 괴로움(진실)을 준 자신은 다시 한번 괴롭다는 것. …그런데 강 선생은 알까, 자신 때문에 괴로워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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