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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스위지 : 역사와 정면대결한 거목의 위대한 패배   
 
 
홍기빈

폴 스위지(Paul Malor Sweezy)가 지난 2월 27일 영면했다. 향년 93세.
스위지가 경제학자로서, 진보적 사회사상가로서 또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20세기의 미국과 세계에 미친 영향은 대공황, 파시즘, 2차 대전, 냉전과 탈냉전을 거친 그의 인생 여정만큼이나 길게 드리워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영국의 진보매체인 『르몽드』『가디언』 정도를 빼면 이 괄목할 만한 인물의 서거를 추모하는 글이 아직 별로 나오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의 지식인들, 특히 1980년대에 한국의 사회현실에 대한 이론적 고민을 시도했던 이들이라면 의식하든 못하든 스위지에게 상당한 ‘정신적 빚’을 지고 있다.

하버드의 마르크스주의자

스위지의 부친은 시티뱅크의 전신인 뉴욕내셔널 뱅크의 고위 임원이었다. 그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뜻이다. 덕분에 스위지는 뉴잉글랜드의 상류층 기숙학교를 거쳐 하버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처럼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준수한 용모(대학 동창 폴 사무엘슨에 따르면 젊은 시절의 스위지는 대단한 미남이었다고 한다)와 최고의 학력을 갖추었던 전도유망한 청년이 이후 미국 마르크스주의의 ‘괴수’로서 험난한 삶을 살게 된 계기는 1931년의 영국 유학이었다.

당시 경제대공황은 이미 영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계속 예언했던 바인 ‘자본주의의 최후’로 인식되고 있었다. 특히 스위지가 유학했던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는 오스카 랑게나 해롤드 라스키 같은 열정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자신의 표현대로 “열정적이지만 무지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 미국으로 돌아온 스위지는 “마르크스주의를 미국의 지적 담론에서 존경받는 전통으로 확립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그렇게 시작한 하버드대에서의 경제학 박사과정에서 스위지는 보수주의자 조셉 슘페터 교수와 치열하게 논쟁하면서 나름대로의 마르크스주의 경제이론을 발전시켜 간다.

졸업 후 하버드대 경제학과의 조교수로 일하면서 스위지는 대공황의 늪에서 허덕이는 미국 경제의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현실에 개입했다. 당시 그는 「미국 민주주의를 위한 경제적 강령」에 저자와 서명인으로 참여하는데, 이 문서는 뉴딜 정책(‘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을 핵심으로 하는)을 케인즈주의적 관점에서 합리화하는데 결정적으로 공헌한 바 있다. 특히 스위지가 「미국 경제의 구조(1939)」(‘미국의 소유집중과 독젼에 대한 유명한 보고서)에 게재한 논문 「미국의 이익 집단」은 주요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미시경제학이나 경제원론 책에서 과점시장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등장하는 ‘굴절 수요 곡선’은 스위지가 당시의 작업 속에서 이뤄낸 성과의 일부이다.

이렇게 실천적으로, 학문적으로 순탄했던 스위지의 이력은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정치?사회가 냉전에 휘말리면서 커다란 변동을 겪게 된다. 스위지는 자신의 정치?사상적 신념 때문에 하버드대에서 조만간 축출될 것을 감지하고 조교수직을 사임한다. 그리고 반동화에 맞서 1947년 미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당 월레스 후보의 지지운동에 참여하지만, 결과는 아주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루스벨트 사후 미국사회는 그가 대표하던 진보적 뉴딜 노선의 개혁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월스트리트의 금융세력과 강경 군사세력의 주도하에 보수적 사회 질서로 회귀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었다. 하지만 당시 압도적인 반공주의 열풍에 질린 진보당과 월레스는 그 갈림길에서 진보적 방향으로의 대안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말을 얼버무렸는데, 스위지는 이를 진정한 패인이라고 봤다. 그의 생각은 미국사회의 진보적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뚜렷이 내걸지 못한다면 미국의 양심세력은 수동적인 비판세력으로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카시즘의 광풍이 한창 몰아치던 1949년, ‘소련에 독립적인 사회주의 잡지’를 표방하는 저널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를 리오 휴버맨과 함께 창간한다.

지금까지 수십 년째 유유히 출간되고 있는 이 잡지는 냉전으로 얼어붙은 세계에서 사회주의적 가치야말로 인류의 곤경을 풀어나갈 대안이라고 믿었던 세계적 지식인들(아인슈타인, 러셀, 사르트르, 말콤 엑스 등)이 자신의 신념을 천명하는, 신앙고백의 장인 동시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평등과 착취의 현장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짧은 글들로 넘쳐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1950년대의 미국에서 이토록 ‘간이 부은’ 대담한 반란자들은 그만한 대가를 종종 치러야 했다. 스위지 자신부터 1955년 뉴 햄프셔 법원으로부터 대학 강연 내용을 보고하라는 명령을 받고 이를 단호히 거부하는 바람에 투옥을 포함해 몇 년 간 다양한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미국의 냉전적 사회구조도 1960년대 들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진보적 사회변혁을 향한 움직임이 다시 시작된다. 이 같은 사회 변동의 결과물인 동시에 이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기폭제로 기능했던 책이 바로 스위지와 폴 바란이 함께 저술한 「독점자본」이다.

신고전학파를 기사회생시킨 케인즈의 맹점

「독점 자본」이야말로 경제학자로서 스위지의 업적을 집약하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스위지는 이른바 주류 경제학은 물론 정통파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도 ‘이단’으로 비난할만한 논리를 전개한다. 그러나 이 「독점 자본」은 경제이론 및 사회운동의 역사에서 결코 무시될 수 없는, 이정표임이 분명하다. 왜 그런지 살펴보기로 하자.

1930년대 대공황이 발생한 상황에서, ‘자유롭게 내버려두면 완전경쟁이 이뤄지는 시장경제는 총수요와 총공급의 일반 균형을 자연스럽게 가져온다’는 신고전파 경제 이론은 두 방향에서 비판을 받고 있었다.

첫째, 영국의 챔벌린이나 조안 로빈슨 등은 완전경쟁시장이 전혀 터무니없는 비현실적 가정이라고 주장한다. 실제의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독점 혹은 과점 기업들이기 때문에 완전경쟁은 공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둘째, 총수요와 총공급이 결국 일치한다는 신고전파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현실세계에서는 수요의 부족, 투자 부족, 그로 인한 불완전 고용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첫 번째 관점에서의 이론적 발전은 이후 경제학설사에서 거의 무시되었다. 이른바 케인즈혁명은 이 두 번째 비판에서 뻗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케인즈혁명은 개별 시장의 구조가 독점 및 과점이라는 현실을 지적한 첫 번째 비판의 문제의식을 거의 무시해 버렸기 때문에 시장경제의 구조에 대한 신고전파의 이론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 결과 폴 사무엘슨 같은 ‘사생아 케인즈주의자’들은 케인즈 경제학을 ‘거시 경제학’으로 한정, 퇴출되어야 마땅했던 신고전파 이론을 ‘미시경제학’으로 기사회생시키고 만다. 그 대가는 값비싼 것이었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의 경제학계에서 전세가 역전되면서 ‘미시적 이론적 기초가 없는’ 케인즈주의는 거의 축출되고 신고전파가 득세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문제의식을 하나의 체계로 결합시켜 ‘미시적 기초를 갖춘 거시경제학 이론’을 구성하는 작업은 케인즈파가 아닌 다른 이론적 흐름에서 구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칼레츠키, 슈타인들에서 스위지와 바란으로 이어지는 ‘독점 자본’ 학파의 흐름이다. 칼레츠키는 이미 1930년대 초(케인즈의 「일반 이론」은 1936년에 출판된다) 폴란드어로 쓴 그의 저작에서 케인즈의 주요 논지를 포괄하는 이론을 독자적으로 구성한 바 있다. 칼레츠키와 그이 지적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슈타인들이 일관되게 해명하려 했던 것은 다음과 같다.

‘독점도(degree of monopoly)로 표현되는 독점자본의 사회?경제적 지배력이 어떻게 생산 설비에 대한 투자를 낮추고 실업을 증대시키는가,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나는 국민소득 분배의 왜곡은 어떻게 장기적인 과소 소비로 이어지는가.’

독점자본은 경제위기를, 경제위기는 전쟁을

스위지도 1942년에 출판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이론서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에서 비슷한 방향의 작업을 시도했다. 자본주의 공황에 대한 정통파 마르크스주의 이론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대신 장기적인 차원에서의 과소 소비로 인한 ‘(가치)실현 공황’ 이론을 제시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저서에서 모호한 채로 남아있었던 독점과 장기 공황의 관계에 대한 스위지와 바란의 견해는 칼레츠키와 슈타인들의 작업에서 큰 영감을 얻어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맞는다. 동료 폴 바란은 1957년에 나온 「성장의 정치경제학」에서 ‘잠재적 경제 잉여’라는 개념을 창안하고 이에 근거하여 제 3세계의 부가 어떻게 선진국으로 착취되는지 해명한다. 그리고 스위지, 바란 두 사람은 1966년 드디어 「독점 자본」을 출간, 이 같은 전통의 주요한 한 매듭을 짓게 된다.「독점 자본」의 주요 논지는 아주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현대의 기업은 폭발적인 기술적 생산력을 기반으로 하여 엄청난 규모의 거대 기업으로 되어가고 있다. 이 거대 기업은 금융이나 시장의 완전경쟁 법칙 따위로 통제할 수 없는, 그야말로 독점 자본이다.

둘째, 이 상황에서는 독점 자본의 압도적 생산성과 대중들의 상대적 빈곤으로 인해, 경제잉여는 계속 증가하는 한편 총 수요는 계속 제약 당한다. 그 결과 만성적인 ‘과잉 생산, 과소 소비’ 상태가 나타난다.

셋째, 이 과잉 생산을 ‘생산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면 다시 과잉 생산이 나타나는 악순환의 고리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과잉 생산을 해결하는 방법은 완전히 비생산적인 물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 완전히 비생산적인 물품엔 물론 광고 산업 따위가 포함되겠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는 군수 산업의 확장이다.

넷째, 독점 자본주의의 장기적 추세는 따라서 누적되는 과소 소비로 인한 대중들의 빈곤, 독점 자본의 팽창, 국가의 군국주의화와 끊임없는 침략 전쟁 등이다.

이 저작은 출판 당시 주류 경제학계로부터는 냉소와 무시, 정통파 마르크스주의로부터는 비판과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이 저작의 존재는 무시할 수 없는 것임이 서서히 판명되었다. 당시 세계 자본주의의 장기 불황, 소위 스태그플레이션은 신고전파의 경기변동론이나 케인즈주의적 총수요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실업과 빈곤이 증가하지만 소수 독점 자본의 이윤은 오히려 팽창되는 가운데 전 세계가 끝없는 전쟁과 불안정으로 빠져 들어가는 당시의 상황은 실로 스위지와 바란의 진단과 적확히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독점 자본」과 미국 신좌파의 부흥

이 저작의 정치-사상적 텍스트로서의 의미는 경제학 저작으로서의 의미를 넘어섰다. 그 정치적 메시지 또한 경제학 이론 이상으로 명쾌하고 날카로운 것이었다. 즉,
‘사회 전체가 도달 가능한 생산력(잠재적 경제 잉여)은 소수 독점 자본의 이윤과 독점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제약당하고, 공장 가동률은 도처에서 50% 에도 못 미치고 있다. 실업과 저소득으로 인해 대중의 빈곤은 늘어만 간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비생산적이기 짝이 없는 무슨 광고 따위의 불필요한 서비스 산업만 팽창해간다. 게다가 군수 자본은 끝도 없이 팽창하면서 전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이 모든 비합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독점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해야만 한다.’

1960년대의 미국 젊은이들이 목도했던 미국의 현실을 너무나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이론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베트남 전쟁의 엄청난 군사적 물량 공세가 그랬고, 사회 전체에 넘쳐나는 광고와 소비주의가 그랬다. 분명히 1960년대까지 선진국의 고용이나 소득 수준은 일정 수준 이상이었다. 그러나 바란과 스위지는 이에 대해서도 무서운 이야기를 한다.

즉, 선진국 노동자들은 제 3세계를 착취한 잉여로 사육되고 무마되고 있으며, 그래서 제 3 세계에서의 빈곤과 참상은 늘어만 가는 반면 선진국 노동자들은 혁명성을 상실한 대중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1960년대에 줄을 잇던 탈식민 지역의 민족해방운동은 이러한 주장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1970년대 공황이 도래하면서 그 빈곤의 물결은 드디어 선진국까지 덮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정치적 메시지가 제기된다.

‘제 3세계의 인민들과 미국의 양심적인 세력은 힘을 하나로 뭉쳐 독점자본에 맞선 공동 전선을 펼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 세계적인 고통과 파국(당시의 미소 핵 경쟁을 상기하라)은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1960년대 미국 신좌파 운동의 가장 강력한 지적 원천의 하나가 이 「독점 자본」이었다는 것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스위지와 그가 창간한 『먼슬리 리뷰』는 신좌파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첫째, 첫째, 미국 ‘급진파 정치경제학 연합’ 등 진보적 학문 그룹의 태동이다. 이 진보적 학자들은 성?인종 차별 등 미국사회에 만연한 각종 모순과 부조리를 자본축적의 흐름에 연결시키며 좀 더 정의롭고 인간적인 정치?경제 체제를 요구하는 집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둘째, 종속이론이나 세계 체제론 같은 주변부 정치경제학의 태동이다. 선구적 이론가였던 프랑크를 필두로 종속이론 진영의 이론가들이 『먼슬리 리뷰』 진영과 맺은 긴밀한 관계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냉전의 그늘 아래에서 미국 사회의 절벽까지 떠밀렸던 스위지는 이제 학문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그 누구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로 되살아났다. 스위지와 바란을 그토록 경멸하고 무시하던 주류 경제학계 조차 이렇게 돌변한 사회 상황 속에서 그들에게 일정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스위지는 1970년대 들어 미국 경제학회의 운영진으로 활동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1971년엔 영국 캠브리지 경제학과의 유서 깊은 마샬 강의도 맡은 바 있다. 스위지가 영국의 경제사 학자 모리스 돕(Maurice Dobb)과 벌였던 자본주의 이행 논쟁은 경제사 연구에서의 고전적인 성과이다. 나아가, 그는 1970년대 이후, 공산주의 국가 내부의 계급 모순을 적나라하게 분석하는 한편 환경 문제에 새롭게 천착하는 등 지적인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해 왔다.

한 때 무슨 빨갱이 삐라 같이 불온 선전물 취급을 당하던 『먼슬리 리뷰』(1950년대에 우편으로 배달할 때에는 꼭 안 보이는 봉투로 싸야했다고 한다)는 이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지적 담론장에서 가장 중요한 저널의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모든 대학 도서관에서 마땅히 구독해야 할 자료가 되었다. 스위지는 그를 박해했던 미국 사회의 틀을 넘어 유럽은 물론 제 3세계 지식인들 사이에서 깊게 존경받는 존재가 되었다. 1981년 인도의 네루 대학은 그에게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한다.

21세기 : 스위지의 패배?

1980년대 이후의 세상은 스위지와 『먼슬리 리뷰』가 쌓은 성과를 철저하게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는 또 다시 패배한 것일까.
스위지의 일생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평가될 필요가 있다. 첫째, 경제학자로서 둘째 사회사상가 및 운동가로서 셋째, ‘독립적’ 지식인의 한 전형으로서…. 그러나 이 세 가지 측면 모두를 그가 잠든 2004년의 시점에서 볼 때 스위지는 철저하게 실패한 것 같다.

첫째, 자본주의의 성격과 발전 방향은 그가 예측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인수합병 붐과 함께 터져 나온 세계적인 금융자본주의는 「독점 자본」의 분석과 주장의 상당 부분을 정면으로 논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점은 그가 1991년 12월호 『먼슬리 리뷰』에 기고한 ‘「독점 자본」 : 25년 후의 회고’에서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그는 자본의 성격과 축적의 논리를 파악함에 있어서 자신이 근거했던 마르크스주의적인 방법이 근본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실토한다. 자본에 대한 분석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스위지 자신은 ‘실물’ 부문의 역동성에 치우치는 바람에 ‘화폐와 금융’ 부문의 중요성을 놓쳤다는 회고였다. 그로서는 대단히 고통스러운 고백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이론을 수립하려면 가장 핵심적인 개념인 ‘자본’을 다시 정의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는데 스위지 자신은 이미 팔순의 노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둘째, 스위지와 종속이론가들이 내걸었던 주장과 예측 즉 주변부 지역에서 혁명운동의 고조와 자본에 맞선 지구적 연대는 거의 정반대의 상황으로 되어 가고 있다. 선진국의 자본을 착취와 종속의 덫으로 거부하는 흐름은 이제 완전히 옛말이 되었고, 오대양 육대주의 모든 나라들, 심지어 미국 등의 선진국마저 ‘더 많은 자본의 유입만이 살길’이라며 국제자본의 흐름 앞에 거의 모든 것을 내줄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민족해방운동이나 반제국주의 운동은 이미 서구의 ‘좌파’들로부터도 ‘구닥다리’로 취급받고 있다. 급진파들은 이제 ‘사회주의적 세계’ 같은 ‘역사의 구체적인 방향성’이 아니라 기껏해야 ‘억압적 담론구조의 해체’나 가지고 노는, 머리 큰 포스트 모더니즘의 흐름에 휩쓸려 버리고 말았다.

셋째, 스위지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독립적인 지식인’이라는 실천 형태는 현재 세계의 시류 속에서는 실로 우스꽝스러울 정도의 퇴물이 되고 말았다. 이념이 대립하던 ‘극단의 시대’인 20세기가 저물어버린 지금, 세계는 어쩌면 ‘광고의 시대’라고 불러 마땅할 것이다. 이 시대에 최후의 승자로 군림하고 있는 것은 ‘매체’이다. 그리고 그 매체의 힘을 대중적 명성을 얻는 데 이용하려고 하는, 아주 저급한 차원의 ‘인정 투쟁’이 세계 어디에서나 거의 유일한 지식인들의 존재형태가 되고 말았다. 반지구화 운동가도, 해체주의 철학자도, 시민운동가도, 내로라하는 좌파정당 지도자도, 일단 매체에 이름을 내고 얼굴을 내야만 자신의 메시지가 의미 있게 사회적으로 실현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TV 드라마의 카메오 제의에 열심히 줄을 서기도 하고, 유행을 잘 타는 영화감독이 알쏭달쏭한 기법의 카메라를 들이대면 아주 기쁘게 자기 얼굴을 피사체로 바치기도 한다.

이 경박한 광고의 시대, 매체의 시대, 이미지의 시대에, 이제 그 어떤 지식인이 스위지와 같은 존재 형태를 기꺼이 받아들일까.사회 전체에 의해 반사회 분자로 찍히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친구들에게 버림받고, 걸핏하면 법원으로 불려 다니면서, 기약도 없이 아득하기만 한 그 ‘미러라는 것만을 붙들고 냉전으로 얼어붙은 미국 사회와 ‘맞장’을 뜰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초기의 『먼슬리 리뷰』를 보면 그 초라한 모습에 실로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이다. 필자들은 원고 청탁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가 버리고, 배달할 때에는 무슨 불온문서마냥 안 보이는 봉투에 꼭꼭 싸서 보내야 했던 그 『먼슬리 리뷰』. 이 같은 상황에서 가녀린 목소리나마 빠지지 않고 사회로 내보내기 위해, 매달 거르지 않고 힘든 격무를 해나가는 식의 ‘독립적’ 지식인의 존재 형태가 이제 가능할까. 스위지가 그토록 지키려했던 지식인의 ‘독립성’이 이젠 그 누구도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으며, 부담스럽기조차 한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근본적 비판의 전통 살려야

스위지의 이 ‘세 가지 패배’를 종합해보면 현재 세계의 뚜렷한 흐름이 나온다. 그것은 사회에 대한 비판적 담론의 장에서 언젠가부터 ‘자본’과 이에 종속된 정치-경제 체제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원천적으로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대신 ‘참신함’ ‘개혁성’ ‘도덕성’ ‘진보’ ‘정의’ 같은 알쏭달쏭하지만 누구나 옳다고 할 수밖에 없는, 김빠진 동어반복이 비판적 담론의 자리를 차지했다.

모두 다 착하고 모두 다 지적이다. 하지만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숨 막히는 경제적-군사적-정치적 폭력 앞에 거꾸러지고 있는데도, 미친 듯이 질주하는 이 지구화의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시원하게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 위에서 지구적 자본과 전쟁 세력은 “본업은 이제부터”라며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폴 스위지라는 존재는 1980년대 이후 역사의 흐름에 의해 또 다시 ‘또라이 바보’로 되돌아간 채로 생을 마감한 것일까. 한 때 스위지에게 거의 꼬리가 잡히는 듯 보였던, 자본주의의 역사라는 악동은 이런 식으로 보복을 하는 것일까. 하지만 시시한 소인배들이 아닌 역사와 맞붙어 처절하게 논박 당해본 자는 그리 흔하지 않다.

야곱은 신의 천사와 밤새 씨름한 덕에 ‘신과 싸운 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폴 스위지라는 거인의 주검 위에 섣불리 발을 딛고 ‘자본주의의 승리’를 선언하며 조롱을 퍼부으려는 인간들은 뒤로 물러서야 할 것이다. 노신의 말처럼, “쓰러졌어도 영웅은 영웅이요, 아무리 팔팔하게 왱왱거려도 파리 떼는 파리 떼”이기 때문이다.

거목은 이제 편히 몸을 누일 때가 되었다. 젊은 나무들은 힘차게 위로 뻗어 그가 쉴 수 있는 울창한 그늘을 만들어줄 몫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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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자전거 여행에세이-10>
바람과 향기, 숲은 ‘숨’이다

풍경의 안쪽 - 광릉 숲에서


나는 모국어의 여러 글자들 중에서 ‘숲’을 편애한다. ‘수풀’도 좋지만 ‘숲’만은 못하다. ‘숲’이라는 글자의 생김새는 숲과 똑같다. ‘숲’의 어감은 깊고 서늘한데, 이 서늘함 속에는 향기와 습기가 번져있다. ‘숲’의 어감 속에는 말라서 바스락거리는 건조감이 들어있고 젖어서 편안한 습기가 느껴진다. ‘숲’은 마른 글자인가 젖은 글자인가. 이 글자 속에서는 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가 들리고, 골짜기를 휩쓸며 치솟는 눈보라 소리가 들리고 떡갈나무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린다.

깊은 숲 속에서는 숨 또한 깊어져서 들숨은 몸속의 먼 오지에까지 스며드는데, 숲이 숨 속으로 빨려 들어올 때 나는 숲과 숨은 같은 어원을 가진 글자라는 행복한 몽상을 방치해둔다. 내 몽상 속에서 숲은 대지 위로 펼쳐놓은 숨의 바다이고 숨이 닿는 자리마다 숲은 일어선다. ‘숲’의 피읖받침은 외향성이고 ‘숨’의 미음받침은 내향성이다. 그래서 숲은 우거져서 펼쳐지고 숨은 몸 안으로 스미는데 숨이 숲을 빨아 당길 때 나무의 숨과 사람의 숨은 포개지고, 몸속이 숲이고 숲이 숨인 것이어서 ‘숲’과 ‘숨’은 동일한 발생근거를 갖는다는 나의 몽상은 어학적으로는 어떨는지 몰라도 인체생리학적으로는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몸이 입증하는 것들을 논리의 이름으로 부정할 수 있을 만큼 명석하지 못하다.

밥벌이에 지친 날에는 숲 속의 나무들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먹이를 몸 밖에서 구하지 않고, 몸 밖의 먹이를 입으로 씹어서 몸 안으로 밀어 넣지 않고, 제 몸 속에서 햇빛과 물과 공기를 비벼서 스스로를 부양하는 저 푸르고 우뚝한 것들은 얼마나 복 받은 존재들인가. 중생의 맨 밑바닥에서, 나무는 중생의 탈을 벗고 있다. 밥벌이에 지친 저녁에 이경준교수가 지은 ‘수목생리학’이나 파브르의 ‘식물기’를 꺼내놓고 광합성, 수목의 생장, 햇빛과 엽록소의 관계 같은 페이지들을 읽는 일은 쓸쓸하다. 이 쓸쓸함은 식물의 자족(自足)앞에서 느끼는 동물의 슬픔이다. 무기물을 유기물로 전환시키는 작용이 나무의 생명현상이다.

그 전환의 생화학적 과정을 모두 분석하고 분석의 파편들을 다시 종합해도 어째서 생명이 아닌 것들로부터 생명인 것이 빚어지는 것인지를 나는 알 수가 없다. 어째서 이 전환은 초록계통의 세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숲은 왜 초록색인지, 숲을 초록으로 인지하는 나의 지각과 언어는 정당한 것인지를 나는 결국 알지 못한다. 나의 무지에도 불구하고 광합성을 기술하는 수목생리학의 페이지들은 아름답고, 바람에 흔들리는 광릉의 여름 숲은 자유가 깃들만큼 서늘하고 깊어서, 숲 속에서 나는 세계의 궁극으로 다가가는 식물학자가 되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숲 속의 모든 나무는 먹이 없이 스스로 살아가는 독립기관이다. 나무는 뿌리에서부터 우듬지 꼭대기의 잎에까지 물을 이동시키는데, ‘수목생리학’에 따르면 이 물은 분자들 간의 상호응집작용으로 이동하는 것이어서 나무는 양분을 만들기 위해서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물은 저절로 이동한다. 나무는 서두르거나 늑장을 부리지 않는다. 기다렸다가 때가 이르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나무는 개화나 결실에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나무는 생명이 아닌 것을 생명으로 바꾸는 전환의 과정으로 저 자신의 생명을 완성한다. 그래서 나무는 오래오래 땅 위에 살아있는 것인데 500년이 된 느티나무조차도 젊어있어서 땅 위에 늙은 나무란 없다.

여름의 광릉 숲은 나무들마다 제 모습으로 무성해져서, 나무의 개별성은 주저없이 발현되어 있다. 참나무 큰 잎은 늘 바람에 서걱거린다.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의 그늘도 마찬가지다. 잎 사이마다 빛이 꺾이면서 스며들어 참나무 숲 속은 어슴푸레하고 그림자가 없다. 넓은 잎들이 물기를 내품어 참나무 숲에서는 콧구멍 속이 편안해진다.

소나무나 전나무 숲의 바닥은 가는 잎 사이로 스며들어온, 자잘한 빛들이 바글거린다. 전나무는 키가 커서 전나무 숲 바닥의 빛들은 멀어 보이고 소나무 숲 바닥의 빛은 가까워 보인다. 소나무 숲의 향기는 말라있고 참나무 숲의 향기는 젖어있다. 숲 속의 나무들 중에서 느티나무는 가장 완강한 착지성(着地性)을 보인다. 느티나무의 밑동은 중심이 되는 기둥을 구별할 수 없다.

느티나무 밑동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또 들러붙어서 튼튼한 저변의 근거를 확보한다. 느티나무는 화사하지 않고 꽃도 볼품없지만, 느티나무는 강력하고 장대하다. 산전수전의 신령성이 서린 그 밑동은 오래 사는 자가 이기는 자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마을 어귀의 정자나무나 당나무는 대부분이 느티나무다. 느티나무가 들어선 숲에서 다른 나무들은 이 신령한 나무 곁에 범접하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있다. 참나무, 소나무, 느릅나무는 굴곡진 껍질로 외벽을 치지만, 백일홍, 물푸레나무, 자작나무는 기름기 흐르는 껍질 위에 꽃사슴의 무늬를 그려낸다.

여름의 광릉 숲에서, 숲의 전체성은 이 모든 나무들의 개별성을 품고 있었고, 몸 밖에서 벌어먹어야하는 자의 먹이의 운명만이 그 전체성에서 제외되어 있었는데, 숲 속에서는 그 제외된 운명이 선명히 드러남으로써 오히려 견딜 만했다.

문화일보 200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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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여행자 2004-06-21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이란 단어를 좋아한다고, 그 글자의 모양이 숲을 닮았다고, 나 역시 며칠 전에 쓴 적이 있다. 숲에 들어설 때 느끼는 그 기분좋은 서늘함에 대해서도... 숲길에서의 산책, 그리고 무엇보다 숲그늘에서의 독서는 나를 미칠듯한 행복으로 몰아간다.
 
남자, 여행길에 바람나다 - Never Ending Travel 2, 풍경의 덫에 걸린 외톨박이 시인의 연애편지 33장
박성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이파리 무성한 등나무 아래로
초록 애벌레가 떨어지네
사각사각사각,
제가 걸어야 할 길까지 갉아먹어서
초록길을 뱃속에 넣고 걸어가네

초록 애벌레가 맨땅을 걷는 동안

뱃속으로 들어간 초록길이 출렁출렁,
길을 따라가네
먹힌 길이 길을 헤매네
등나무로 오르는 길은 멀기만 하네

길을 버린 사내가 길 위에 앉아 있네



- 박성우, 「길」



박성우의 시, 「길」은 아름답다. 내가 좋아하는 ‘초록’이라는 밝은 울림의 말이 여러 번 박혀 있어서인지, 사각사각사각, 출렁출렁… 이렇게 가벼이 흔들리며 귓속으로 경쾌하게 걸어 들어가는 소리들이 살아있어서인지, “제가 걸어야 할 길까지 갉아먹어서 / 초록길을 뱃속에 넣고 걸어가네”라는 시적 발견이 그 안에 녹아있어서인지. 어쨌든, 박성우의 첫 시집 <거미>에 들어있던「길」은 아름다웠다.


박성우 시인의 여행‘길’은 어떨지… 물음표가 책을 읽는다.


그리고 물음표는 답한다. 이 여행기록에 실망했다고. 여행에 관한 책이라면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고 친절하게 제공하거나, 그 여행지로 독자를 유혹할 만한 사진이나 문장들로 잔뜩 채워져 있다, 혹은 그래야 한다는, 내 생각은 이 여행기록에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책은 그야말로 짤막한 ‘여행기록’들의 모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사적인 여행기록이라면, 필자의 문학적 감수성이 넘치는 글들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시인의 시집을 읽은 나는 이 책보다 시집 <거미>의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내 물음표는 가혹하지만은 않다. 이 여행기록들을 통해서 배운 것이 많으니까. 박성우 시인의 여행은 사실, 대단하지 않다. 그가 살고 있는 전라도 정읍에서 멀지 않은 곳들을 떠돌고 보고 느낀 것들을 쓴 거니까. 처음엔 솔직히 말해서 이걸 ‘여행산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이라는 걸 내가 그동안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다시 한번 되새김질해봤다. 어렵사리 휴가를 얻고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그냥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는 ‘이곳’을 벗어나기? 돈을 최대한 모아 최대한 버리러 가기? 남들 다 가는 이름난 곳 찾아다니기? 우리가 막연히 ‘떠나고 싶다고 느끼는 그 여행’, 그것만큼 우스운 것도 없다.


시인이 유년시절 다니던 초등학교에 들러서 과거를 추억하는 장면. 그 페이지에 이르러 나는 내 유년의 추억과 시인의 추억을 겹쳐 읽었고, 지난 겨울, 그처럼 나도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들렀던 일을 꺼내어 우물우물 머리 안에서 되새김했다. 아직도 남아있는 이순신 동상과 이승복 어린이 동상, 그리고 책 읽는 어린이 동상을 마음에 담고, 얼어붙은 운동장 옆 연못에는 그때 그 시절처럼 큼직한 잉어들이 차거운 물 속에서 잘 자고 있는지 궁금했고, 이제는 ‘추억’의 도움이 아니라면 별로 즐겁지도 않을 놀이터에서 아이처럼 놀다온 일. 큼직한 미루나무 아래서 친구놈들과 구슬치기 하고, 지금도 깜빡깜빡하는 구구단 그때도 잘 못 외워서 쩔쩔매던 기억을 다시 살려서 가져온 일. 나는 그걸 왜 ‘여행’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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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물고기 2004-06-10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인 셈이 된 건가요? 소소한 정겨움을 찾아내신 듯 해서, 바보.. 란 말에 슬쩍 웃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전경린을 좋아하는데, 그의 여행기는 이스트 과다증으로 잔뜩 부푼 빵같은 느낌이어서 꽤 실망했었습니다. 저에 비하면 대어(?)를 낚으신 듯.

도서관여행자 2004-06-1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소한 정겨움'... 멋진 말이네요. 여행에서 일상에서보다 더 강한 자극을 찾는 일도 좋겠지만요. (전경린의 여행기는 읽기를 피해야겠군요;)
 
 전출처 : 간달프 > 순수하지 못한 사고의 융성(2,144:MA)

[...] 예술이란 아무리 호의적으로 보아도 긴장을 풀며 진행되는 퇴화이며, 성실함과 실질적인 것을 강조해야만 하는 의무로부터의 일시적 해방이다. 예술 속에서 우리는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 그러면 순식간에 옛날의 감정들이 되살아나고 이미 오래전에 잊었던 박자로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2, 142)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너무 많이 뒤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자주 일시적인 삶의 부담을 덜어주는 상태 요구하다 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를 실제적으로 개선하는 을 게을리하게 된다. (2,143) 

[...] 니체는 당시의 예술적 욕구에 대해서 아주 날카로운 사회학적인 분석을 한다. 누가 예술을 요구하고, 그들은 예술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우선 지식인들이 예술을 요구한다. 그들은 제단의 향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종교적 위로를 완전히 무시할 만큼 자유롭지는 않으며, 그들이 예술을 찾는 이유는 예술 속에서 사라져가는 종교를 느끼기 때문이다. 예술을 찾는 또 다른 사람들은 우유부단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른 삶을 원한다. 하지만 그럴 만한 힘이 없으며, 그래서 그들은 예술에서 '다른 상태'를 찾는다. 다음에는 공상하는 삶들이 예술을 원한다. 그들은 헌신적인 노동을 피하려 하며 예술은 그들에게 빈둥거리며 쉬는 침대다. 영리하지만 할 일이 없는 명문가의 여자들이 예술을 원한다. 그들이 예술을 원하는 이유는 단지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의사나 상인, 그리고 공무원 등이 예술을 원한다. 이들은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가슴속에 있어서 고상해 보이는 것을 곁눈질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예술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술은 그들에게 잠시 동안 불쾌함, 지루함, 양심의 가책을 잊게 만들며, 그들은 또한 예술을 통해서 자신의 삶과 성격의 결점을 세계 운명의 결점으로 거창하게 포장한다. (2,447:MA) 여기에는 안락함과 건강이 넘치지 않는다. 대신에 결핍의 경험이 예술로 그들을 몰아간다. 이러한 예술 옹호자들은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니체는 오늘날 사람들이 예술을 요구하는 것은 자기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자기 불만(2,447)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뤼디거 자프란스키, 니체-그의 생애와 사상의 전기, 오윤희 역 (문예출판사,2003) p.30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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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상 30 - 탄핵받는 '탄핵' 그 이후
고종석 외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인물과 사상 30권의 특집은 <탄핵>과 <불순함을 옹호함>이다. 5월 25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끝난 마당에 ‘특집’으로 읽히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두 번째 특집은 정말 특집인가? <불순함을 옹호함>이라니! 고종석이 특집 기획을 맡았다는 것을 서지사항에 박아 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고종석스러운 주제다. 나는 가끔 쓰레기 하나 없는 거리를 걷게 되면 고종석의 칼럼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깨끗하게 정돈된 거리에서 모종의 반발심을 느끼는 고종석의 생각에 지지할 수밖에 없다. 깨끗한 거리를 누군들 바라지 않겠냐마는, 아무런 수식어도 달지 않는 그저 그런 ‘거리’가 ‘깨끗한’ 거리가 되기 위해선, 시민들의 자발적인 선의의 행동보다는 무언가 억압적인 외부의 강요가 필요할 것이란 비관적인 시각이 작용하는지, 그 ‘외부’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깨끗한 거리보다는 강요 없는 자유로운 거리가 나는 좋다.

단일민족의 신화, 순수한 언어에 대한 무비판적 동조에 대한 시비걸기가 두 번째 특집의 목적이다. 홍세화는 <우리는 모두 이주노동자다>라는 글에서 “자기 성숙을 위해 내면과 대화하지 않는 사람에게 스스로 우월하다고 믿게 해주는 것은 그가 속한 집단이다. 사회문화적 소양을 높이기 위한 긴장이나 자기성찰이 없는 사람일수록 귀속집단에 집착하기 마련이다.”(131쪽)라고 말한다. 홍세화의 이 말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학연, 지연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복거일의 <혼혈인 : 살빛이 다른 한국인들>에서는 그가 요즘 심취해있는 것으로 보이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근거로 해서, 민족주의는 직관에 완전히 부합하는 밈(유전자의 개념에 빗댄 문화 복제자)이며 유전자들의 이기심에 바탕을 두었지만 본질적으로 잘못된 적응이라고 말한다. 복거일이 받아들인 <이기적 유전자>의 유전자의 관점이나 문화적 복제자인 ‘밈’의 관점을 통해서 인간 사회를 해석하는 일은 새롭고 흥미로운 작업이다. 얼마 전 복거일이 쓴 ‘밈'에 관한 글을 우연히 읽고 내 지적인 미각은 새롭게 갱신되는 느낌이었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보고나서도 ’밈‘이란 단어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최소한 사이보그들에게는 육체보다는 ’밈‘이 중요할테니.(그리고 지적인 작업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몸도 그런 의미에서 유전자의 수레보다는 밈의 수레에 가깝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그의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에는 여전히 동일하게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서 사회를 해석하고 있었지만, 매우 놀랍게도(!) 탄핵 반대는 직관적이고 상식적인 밈이며 탄핵 찬성은 복잡하고 이해되기 어려운 밈이라고 쓰고 있다. 물론 쉽게 이해되고 누구나 찬성하는 다수 의견이라고 해서 반드시 논리적이거나 옳지는 않다, 그렇다 해서 소수 의견이라고 해서 반드시 논리적이거나 옳지 않은 것도 당연한 것 아닌가. 논리의 정당성과 논리를 지지하는 이들의 숫자와는 관계가 없을 터.


고종석의 <섞임과 스밈>의 부제는 ‘언어순수주의에 거는 딴죽’이다. 우선 고종석은 ‘한글’(한국어 문자 표기체계)과 ‘한국어’의 쓰임새의 혼동에 대해서 바로잡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외국어나 채팅 언어가 한국어에 섞이고 스미는 것을 불순함으로 보는 언어순수주의를 거부한다. 더불어 한겨레 신문의 ‘궂긴소식’이란 꼭지 이름에 딴지를 건다, 어려워서 반민중적이라고. 사전에서 찾아봐야할 정도의 순우리말을 자주 섞어 쓰는 손석춘 씨가 이 글을 읽으면 할 말이 많겠다고 생각했지만, 고종석의 말은 타당한 점이 있다. 그러나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 고종석의 말이 100% 옳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한겨레 신문 지면에서는 ‘궂긴소식’, ‘벌칙차기’라는 다소 낯설은 우리말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리영희의 말마따나 거의 모든 영자를 한글로 풀어쓰려는 괜한 오바를 하기는 하지만, 나는 그것을 강압적인 운동 차원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물론 고종석이 그 <하나의 예>를 한겨레 신문의 ‘궂긴소식’이 아닌 자신의 책에서의 ‘우수리’에서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한겨레 신문은 그의 개인적인 저술보다는 독자층이 많고 그래서 더 큰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다고 그는 반론할 수도 있고, ‘우수리’는 ‘궂긴소식’보다 쉬운 우리말이라고 내 무지를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니까. 물론 나는, “되도록 언어를 자유롭게 내버려두기”라는 주장에는 고종석에 찬성한다.


고종석은 획일화된, 그래서 새로운 사유의 틈을 주지 않는 강압적인 태도를 반대한다. 이것은 고종석의 스승인 복거일도 유사하다. 그러나 이들도 전복적인 사유를 지나치게 끌고 나가려는 태도를 가질 때도 있다. 저항적인 담론, 반담론의 매력과 한계! 이제 깨끗한 거리를 보면 나와는 다른, 자발적 손길을 가지고 있는 선량한 눈빛들도 떠올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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