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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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의 <책과 세계> 강의노트의 맨 처음에 이런 말이 나온다 : “엄밀히 말해서 이 책은 고전 해설서가 아니라 이전에 쓴 《서양문명의 기반》(도서출판 미토, 2003)을 사상적 측면에서 압축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종의 간략한 서양 사상사 또는 지성사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것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구조를 가질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산해서 만들어진 책이다. 디자인에 관여할 수는 없었지만 그 이외의 부분은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고전 해설서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이 고전 해설서라고 생각하기에 좋게 엮여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실제로도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서양 고전들은, <길가메쉬 서사시>와 <모세 5경>에서부터 그리스 비극들과 플라톤의 <국가>를 거쳐 <군주론>, <국부론>, <종의 기원>에 이르른다. 그러나 이 책은 93쪽의 많지 않은 분량이므로, 몇 수십 권의 서양 고전들을 백과사전 식으로 요약하는 무리를 범하지는 않는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서양 고전 하나를 붙잡고 거기에 자세한 각주와 해설을 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 강유원의 저술 의도는 그것이 아닐 것이며, 독자 역시 이 책에서 그러한 것을 얻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의 미덕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내가 <책과 세계>를 읽고서 얻은 것은 고전 몇 종류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책을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었던 점이다. 텍스트는 텍스트를 산출해낸 컨텍스트, 즉 책이 쓰이던 시기의 사회 환경과 조건을 갖는다. 텍스트 읽기는 컨텍스트 읽기와 함께 이루어질 때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컨텍스트의 품안에서 잉태되어 저자의 손끝에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텍스트는 역으로 컨텍스트였던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고전’을 열심히 읽으려 들고 ‘지성사’의 흐름도 그려보려는 것이 아닌가.


강유원의 <책과 세계>는 가벼운 책이다. 서양 지성사를 산책하는 즐거움으로 이 책의 독서를 마쳐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단한 책이다. 간결한 문체와 짤막한 글들이 빈틈없이 엮였다.  다른 공부와 고전 읽기의 출발점으로 삼아도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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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 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 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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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섬을 떠난다,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바다, 툭툭 수평선이 끊어지고 있다. 돛배가 거쳐간 섬은 無人島, 떠날 사람 다 묶인 無人島, 그는 캄캄한 제 몸 속으로 기어들어가 모기 소리만 내놓고 아이를 불러들였다.

헤엄쳐 가 볼까?

저 배, 어디로 흘러가는 거죠? 아이는 아까부터 혼잣말을 하고 있다.

노을 속으로, ……노을은 차지할수록 남는 시간이지. 우리도 그 일부분이야, 사람들 각자 조금씩 차지하고 있으니까. 대개들 저 자신 노을이라 생각하지.

우리를 노을로 알고 오는 사람은 없을까요?


돛배는 가면서 짐을 내려 놓기만 한다, 어둠에 먹히도록 서로 멀어져 가는 사람들, 멀어져 가 섬의 한 끝식 되는 사람들.

돛배가 아주 꺼지기를 기다리다 아이는 잠 들고, 잠자리엔 은은히 노을이 비치고 있다. 피가 따뜻해진다. 그는 잠든 아이의 꿈속으로 아이를 들여 놓고, 그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를 단 한번 野生이게 하는

“우리를 노을로 알고 오는 사람은 없을까요?”

황홀하게 펴오르는 이 노을말도 꿈 속에 발갛게 비치어 넣고, 그는 몸 밖으로 기어나왔다. 맑다, 아무도 살지 않는 시간, 섬의 별이란 별은 전부 올라가 있는 시간, 그는 無人島 한복판으로 바람 부는 대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우뚝 서서 그를 인간이게 하는 겉껍질을 깎는다. 깎을수록 투명한 하나의 돛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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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연필 2004-09-29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제가 참 좋아하는 시집입니다
 
 전출처 : 릴케 현상 > 진단:한국의 김우창 인식론 문제있다

진단:한국의 김우창 인식론 문제있다
‘원론주의’가 비벼온 큰 언덕…학문학적 관점에서 재평가 필요

2004년 09월 14일   강성민 기자 이메일 보내기

편집자주 :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지성계에서 가장 장중한 아우라를 거느린 사상가로 평가받아 왔다. 그는 영문학자로서 국문학 작품들에 대한 비평적 활동을 통해 국문학계의 민족주의적 경향과 낭만주의적 경향을 뛰어넘는 지성적 문학담론을 창출했고, 문학과 철학을 오가는 독특한 학문스타일로 묵직한 인문학적 에세이들을 써왔다.
동시에 그는 ‘보편성’에 다가가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메를로 퐁티에게서 빌어온 ‘심미적 이성’으로 구체적인 정치와 생활의 세계를 일관되게 통찰왔다.김우창이 열어놓은 사유의 지평은 후학들에게 이론적 자양분을 제공하고 학문하는 방법론 차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해왔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사유와 방법이 수용되는 과정에서 현실을 압도하는 ‘논리의 성채’ 속에서 안주하는 나쁜 담론적 습관을 만들어오기도 했다. 또한 서구이론에 대한 김우창의 열린 태도와 자유로운 논평도, 후학들에게 온전히 수용되지 못한채 서구의존적 글쓰기에 면죄부를 씌어주는 상황을 빚기도 했다. 이제 김우창에 대한 한국의 찬사와 존경의 표현은더이상 그에 대한 올바른 학문적 배려가 아니며, 오늘날 학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냉철하게객관적 입장에서, 김우창이라는 텍스트를 살펴보고, 비판적으로 넘어설 필요가 있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의 정년퇴임을 맞아 대담집 ‘행동과 사유’, 논문모음집 ‘사유의 공간’(이상 생각의나무 刊) 등 2권의 책이 나왔다. 그러나 독특한 형식을 취했음에도 이 책은 김우창 교수와 그의 동료, 제자, 후학들의 깊은 상호신뢰 속에서 김 교수의 학문적 작업을 되씹어보는 회고의 기능에 그친 감이 있다.


차라리 김우창과 동년배 학자들이나, 그 동안 김우창에 대해 단발적으로 비판해온 강준만, 김진석 등의 학자를 초청해서 대화를 나눴다면 대담의 애초의 목적인 ‘김우창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이 훨씬 선명히 드러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든다.
논문모음집도 큰 열의는 없어 보인다. 예전에 발표됐던 글도 몇편 있고, 새로 쓴 글들도 김우창의 사상적 스펙트럼을 분담해서 분석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송무 경상대 교수(영문학), 황종연 동국대 교수(국문학)가 한국의 영문학과 국문학에서 김우창의 작업이 갖는 메타학문적, 비평사적 의미가 무엇인지 예리하게 분석했을 뿐 나머지 글들은 김우창을 잘 ‘細工’했다는 느낌이다.


김우창을 제대로 이해하고 소화하려는 시도들이 전혀 돌파구를 못 찾고 있다. 김우창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상당히 다양한 분야에서 접근이 시도됐지만, 국내의 인식론은 양극으로 나뉜다. 그 완벽한 사유의 논리에 대한 긍정과 실천성의 약화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우선 지나친 과대평가에서 파생된 문제들이 많다. 오래 전 김종철 영남대 교수가 “백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 학자”라고 평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수긍했다. 하지만 과찬들의 동어반복 현상이 빚어지면서 김우창이란 텍스트는 찬양고무하는 글들의 벽에 칭칭 감겨서 더욱 모호해졌다.


김우창에 대한 배척, 혹은 슬슬 피하는 학계의 분위기도 안타깝다. 주류 영문학계(?)에서는 김우창을 영문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김우창이 '한국에서 영문학하기'와 관련해 많은 글들을 써왔고, 그에 기반한 평론활동을 했음에도 영문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평가가 거의 없었다. 기타 인문학 및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김우창을 제대로 읽은 학자들이 거의 없다. 철학자의 70%, 사회과학자의 90%가 김우창을 읽지 않았다는 게 한 학자의 추정인데 "영어로 된 책 읽고 논문쓰기 바쁜데 다른 분야를 읽을 여력이 없다"는 게 이유다.

그렇다면 김우창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지성의 봉우리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문학평단과 인문학적 이성주의를 표방한 각 분과의 소수자들의 연대로 이뤄진 공공영역(계간지들)에서 지속적 관심이 돼왔고, 그 안에서만 김우창은 사상의 대부였던 셈이다. 이는 백낙청이 인문사회과학 전반에서 폭넓은 독서의 대상이 됐고, 현재에도 되고 있는 점과 비교된다. 이와 관련 권혁범 대전대 교수(정치학)는 “한국 사회과학이 철학적 깊이를 추구하지 않는 낮은 학문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현실을 통박한 바 있다. 하지만 '전공' 밖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 안에서도 국내학자 글은 잘 안 읽고, 깊이있는 학문에 대한 열망이 없다는 것만으로 김우창 외면현상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뭔가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철학과 문학비평, 그 비판적 대화’(책세상 刊)의 저자 김영건 계명대 교수(분석철학)는 “김우창의 세계관은 국내 어떤 철학자보다도 더 철학적이고 깊이가 있다”라고 서슴없이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김우창의 심미적 이성 개념이 철학적으로 볼 때 문제점이 많다”라고 생각한다. 다만 김우창이 철학적 개념을 툭툭 던지면서 그걸 활용해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기 때문에, 하나의 개념을 철학공식에 따라 풀어나가는 철학자들의 작업 방식을 통해서는 김우창에 대한 비판이 결코 쉽지 않다라는 게 김 교수의 입장이다. 큰 뜻은 알겠고, 그 특유의 논리도 있으나 개념의 엄밀한 사용에서는 허점과 빈틈이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엄밀성'을 김우창에게 요구할 수 없다는 걸 철학자들도 인정한다. 딜레마다. 

그러고 보면 김우창에 대한 활발한 논의는 많은 부분 김우창의 ‘논리적 헤게모니’ 속에서 이뤄져왔고, 이것은 김우창이라는 블랙홀 속으로 해석자가 빨려들어가는 현상을 낳아왔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김우창은 한국에서 질리지도 않는 모방과 반복, 리바이벌의 대상이었다. 그것은 '판단'과 '고증', '주장'이 아니라, '비평적 상상력'의 논리적 변환이라는 차원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단단한 비평담론의 양적확산이라는 차원에서 의미는 있었다.

하지만 이런 모방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김진석 인하대 교수(철학)는 “김우창의 글들이 시종일관 서구의 텍스트들을 합리적으로 논평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라고 비판한다. 이것은 '논평'의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주목해볼만한 지적이다. 논평이라는 것은 어떤 이론을 논리적으로 비평한다는 것인데, 그 비평의 결과물은 학적 주장의 근거로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주장과 연결되지 못하고 논평만으로 머물 때는 '논리게임'으로 비칠 수도 있다. 김우창 세대에서는 이런 논평이 서구지식을 수입하는 비평적 방식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자생적 학문'이 요구되는 요즘, 이런 담론의 순환을 그대로 이어받는 태도는 수용 불가능하다. 김진석 교수는 ‘대학개혁’과 ‘정치자의 덕목’에 대해 쓴 김우창의 글이 상당히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서 서양텍스트들을 한참동안 논의하고 난 뒤에 “시장원리로 대학을 재단할 수 없다”는 식으로 주장은 짧게 그친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이런 비판은 오히려 김우창 에피고넨에게로 향할 때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김우창에 대한 비판은 그런 ‘논리게임’과 '사유의 추상적 수준'이 갖는 역할에 대한 제대로된 인식을 세워나가는 일에서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담론공간은 그 동안 '내용'을 갖고 싸웠지, 이런 담론에 대한 메타코멘터리를 구성하지는 못했다. 사회과학에서는 외국이론을 적용하기에 바빴고, 인문과학에서는 원론적인 텍스트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으로 자족해왔다. 인문학의 이런 경향이 김우창 교수의 그늘 아래에서 비호받았던 측면은 지적될 필요가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세계의 문학’이 갈팡질팡 흔들렸던 모습, 요즘 폐간 위기에 처한 ‘비평’지가 뚜렷한 예각을 세우지 못했던 모습들, 평론가들이 잡지를 이끈 ‘문학동네’ 등이 이런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시비비를 따져가며 현실에 대해 용감히 발언하는 게 현재 한국의 지적 담론에 요구되는 절실한 변화라면, 김우창식 사유는 오히려 생산적인 글쓰기를 평가할 내부적 기준들을 마련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에 본의 아닌 ‘장애물’로 기능하는 것 같다.


또 하나 김우창을 둘러싼 시비는 ‘난해함’과 ‘명징함’ 사이에서 벌어진다. 사실 김우창 교수의 글은, 논리가 장대하게 전개되고 복합문이 많아서 그렇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난해'와 '명쾌'라는 이 두 개의 판단이 김우창 독자들의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김우창의 사상이 갖고 있는 ‘학제성'에서 발생한다. 사실 김우창의 난해성은 '센턴스' 단위가 아니라 '아티클' 단위에서 발생한다. 문장은 명쾌하지만, 글 전체로 나아갈 수록 학제적 입체성이 두드러지면서 약간 혼란스러워진다. 따라서 김우창의 난해성은 데리다, 들뢰즈와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매우 '한국적' 현상으로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김우창적 ‘학제성’의 성격과 의미를 먼저 규명하는 것이 순서가 돼야 하는데, 한국의 학자들은 김우창이 다방면에 걸쳐서 많은 지식을 습득했다는 양적인 차원에서 그를 조명해왔다. 이런 평면적인 인식에서 김우창의 입체성이 제대로 조명될 리가 없다. 따라서 김우창이 녹여내는 학문들의 종류에 대한 분류, 김우창의 사유체계가 하나의 도식으로 그려질 때 그 각각의 학문이 다이어그램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 그런 위치와 비중을 결정한 개인적, 사회문화적 배경, 개별학문의 자기한계성에 대한 김우창의 자각과 그 한계성의 경계를 넓혀나가려고 한 사유의 결절점들을 찾아나서야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중요한 ‘본질’을 점검하지 않은 상태에서 김우창에게 다가가는 것은 머리 없는 뚱뚱한 몸통이 되기 쉽다.

사실 김우창 말고도 한국의 근대학문의 이론적 틀을 닦은 여러 학자들이 있다. 장회익, 백낙청, 김용옥, 조동일, 최장집 등의 사상이 갖는 ‘학제성’의 문제도 중요하다. 김우창 연구서를 펴낸 문광훈 박사는 이런 지적에 대해 “학문학적 전통이 생겨날 필요가 있다”는 대답을 한다. 문 교수는 “학문학을 하려면 자신의 분과학문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즉 학문의 테두리에 대한 자기 한계의식이 필요한데 그런 자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 드물다”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학문의 발전과 세대교체를 위해서는 '학문학'이 절실히 요구된다.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는 “학계가 김우창 선생의 저작을 고립시켜놓고 보는 경향이 제대로 된 인식을 막아왔다”라고 지적한다. 같은 시대에 비슷한 활동을 한 백낙청, 김현 등의 학자와 비교해봄으로써 “과연 내실이 있었는가”라는 비판적 관점도 필요하다는 것. 너무 텍스트만 쳐다보지 말고 인간, 학자, 역사 속의 개인, 학문(담론)공동체 속의 지식인으로서 다양하게 김우창을 조명해보자는 취지로 들린다.


하지만 비판의 목적은 분명해야 한다. 김우창에 대한 한국의 왜곡된 인식을 문제삼는 것은 우리 학문의 이론적 토대를 닦은 1세대 학자들을 후학들이 객관화할 수 있는 학문적 저력을 갖추자는 취지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담집에서 보여준 윤평중 한신대 교수(철학)의 김우창에 대한 집요한 비판은 매우 유감스러운 풍경이다.

 그는 김우창이 전쟁통의 고통과 격리된 목가적 공간에서 성장했다는 점, 호남 출신이면서 호남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이유가 명문대 교수, 최고의 지식인이라는 위치 때문이라는 점, 차별적 현실 속에서 고고한 원론적 진단만 고집한다는 점, 로고스·파토스·에토스가 혼융되면서 상당한 혼란을 빚는다는 점, ‘심미적 이성’이 결과적으로 감성의 약화를 부른다는 점, 김우창의 이상적 정치이념이 폐쇄주의로 빠지지 않으면서 내면성 등을 구체화할 수 있는가 라는 점을 질문했다.

하지만 이러한 윤 교수의 질문들은 그 표현은 과격하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별로 예리하지 못하고, 결론이 나와있는 비판,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이런 엇나간 비판은 김우창 사상의 학제성 규명, 또한 동시대 학자들과의 역할비교 등을 통해, “김우창이 우리 인문학의 근대화가 보여주는 하나의 유형”으로 파악된 후라면 많이 해소될 것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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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오마르 카이얌 - 루바이야트(The Rubaiyat)

루바이야트(The Rubaiyat)

오마르 카이얌(Omar khayyam, 1040년경 ∼ ? . 페르시아 시인)

1
그대 잠을 깨라. 먼동이 트자 태양은
밤의 들판에서 별들을 패주(敗走)시키고
하늘에서 밤마저 몰아 낸 후
술탄*의 성탑(城塔)에 햇빛을 내리쬔다.
*회교국의 군주
2
아침의 허망한 빛이 사라지기 전
주막에서 들려 오는 저 목소리
"사원에 예배 준비가 끝났거늘
어찌하여 기도자는 밖에서 졸고만 있나."
3
꼬끼오, 닭이 울자 주막 앞에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 "문을 열어라.
우리들이 머물 시간은 짧디짧고
한 번 떠나면 돌아오지 못하는 길"
4
지금은 새해*, 옛 욕정이 되살아나고
생각에 잠긴 영혼 고독으로 돌아가니     
거긴 모세**의 하얀 손이 가지 위에 내밀고   
예수의 숨결***이 대지에서 꽃피는 곳
*페르시아의 새해는 절기상 춘분에 시작
** '모세'와 '예수'는 모두 봄에 피는 꽃이름  
*** 예수의 숨결 : 치유력을 지녔다는 페르시아 신앙에서 유래
5
장미꽃 만발하던 이람* 정원 사라지고
잠쉬드의 칠륜배(七輪杯)도 간 데 없지만   
루비가 불붙는 포도원은 예와 같고   
숱한 정원이 물가에서 꽃피우네.
* 이람 : 아라비아 사막에 매몰된 궁중의 정원
6                 
다윗의 입술 다물렸지만, 울리는 건 거룩한  
펠레비* 노래, "포도주를 다오, 붉은 포도주"   
핏기 없는 얼굴을 물들이고자
장미에게 애소(哀訴)하는 나이팅게일.
* 페르시아의 고어
7
오라, 와서 잔을 채워라, 봄의 열기 속에
회한(悔恨)의 겨울옷일랑 벗어 던져라
세월의 새는 멀리 날 수 없거늘
어느 새 두 날개를 펴고 있구나.


* 미국이 드디어 아프가니스탄에 지상군을 투입했다. 뉴욕 쌍둥이빌딩 비행기 폭탄테러가 있은지 두 달여 동안 우리는 오랫동안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던 파미르고원 인근의 한 약소국이 세계 최강대국의 시비에 휘말려 공습과 재난, 기아 속에 방치되는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아프가키스탄에 대한 외세 침략사는 당나라 시대 고구려 유민 출신 고선지 장군의 침공을 격퇴한 이래 소련의 침공을 격퇴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세계 곳곳에서 반전 시위가 벌어지고 수많은 시위대가 그 동안 이란과 이라크, 팔레스타인, 소말리아, 수단 등에서 자행된 민간인 희생에 대해 침묵했던 자신들을 반성하고, 자신들의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오랫동안 서구의 무관심 속에 버려져 있던 고립무원의 고원국가 아프카니스탄의 일에 대해 어째서 많은 국가의 시민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각자 생각해볼 몫이겠지만 어쨌든 오늘은 그와 관련해 중동지역 출신 시인의 시를 읽어보는 것으로 <망명소식>을 시작해볼까 한다.
오마르 카이얌이란 시인의 <루바이야트>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처럼 아랍권에서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전 시편이다. <루바이야트>는 11세기경 페르시아(지금의 이란 지역)에 살았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역사학자, 철학자였던 오마르 카이얌이라는 시인의 시를 19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번역가였던 에드워드 피츠제랄드라는 사람이 페르시아어를 영어로 번역하며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카이얌이라는 말은 '천막제조업자'를 뜻하는 페르시아어인데 오마르는 '카이얌'을 필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이슬람 문명권을 아랍이라고 통칭해서 무슬림을 말하지만 아랍은 지리적 호칭이고, 이슬람이나 무슬림은 종교적 호칭에 해당하는 것이다. 원래 아랍이란 말은 좁게는 아라비아 반도 일대만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아라비아 반도를 세력 기반으로 하여 일어난 마호메트의 지지자들에 의해 사상적, 정치적으로 포섭된 페르시아 지역까지 아랍이라고 통칭했던 것이 점점 그 의미가 확대되어 결국 이집트나 모로코 등 아프리카 지역으로부터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도네시아 등 이슬람 문명권에 들어가는 지역까지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인 양 쓰이고 있지만 틀린 호칭이다.

실제로 전세계 인구 60억 중 17억이 이슬람을 종교로 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아랍 지역에 거주하거나 아랍어를 사용하는 민족은 전체 인구의 1/6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시편들 <루바이야트>가 이슬람의 정서를 대변하는 시편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페르시아 지역 민족의 정서를 담았다고는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루바이야트가 쓰여질 무렵의 페르시아는 이미 이슬람 권역으로 편입되었다.

"루바이야트"('루바이'의 복수형. 루바이는 4행시라는 뜻)란 뜻으로 직역하자면 "4행시집"정도의 뜻이다. 우리의 시조처럼 율격이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형식상 자유시이지만, 4행이 한 연으로 이루어지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4행을 하나의 연으로 독립적인 시 한 수가 되며 그 시 한 수 한 수는 각기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작품 전체의 정서는 거의 한결같이 현세적인 풍요로움을 노래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머물고 있는 시간이 가장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긴 아랍의 정서라는 것이 우리처럼 연못에 우연히 도끼를 빠뜨렸다가 산신령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알라딘처럼 시장에서 우연히 물건을 구입하는 상업적인 마인드라고 한다면 그들의 시에서 현세적인 풍요로움을 갈구하는 것이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그들은 오랫동안 낙타를 타고 사막을 누빈 대상 무역자들이 아니었던가?

사막의 아침은 분명 보기 드물게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기에 르 클레지오는 그의 아내와 사막을 여행하고 사막을 예찬하는 사진집까지 출판하지 않았을까. 영화 <아라비라의 로렌스>의 한 장면을 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의 지평선 저 너머로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이 작품의 첫 시작은 그렇게 사막의 먼동이 트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늘 그대들에게 신은 태양을 다시 돌려보내 준 것이다. 물론 아랍을 상징하는 것이 밤의 초생달이기는 하지만 역시 생명의 원천은 태양이다. 먼동이 트는 데서 시작되는 첫 번째 시에서부터 오늘은 아름다운 것임을 강조하고 있고, 작품이 계속되면서 그런 태도는 더욱 강조된다.

'우리들이 머물 시간은 짧디 짧고 한번 떠나면 돌아오지 못하는 길'이란 말은 마치 페르시아 우화 중에서 "죽음을 피해 달아난 사내"라는 이야기가 연상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우화의 내용은 한 사내가 점장이에게 점을 쳤는데 점괘가 오늘밤 안으로 죽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내는 죽음의 사자를 피해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 시간에 죽음의 사자는 테헤란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그 사내를 찾고 있었다. 죽음의 사자는 말한다. "이 녀석이 오늘 안에 테헤란에 와서 죽기로 되어 있는데 아직도 도착을 안했네." 그때 사내는 말을 달려 테헤란 시내로 들어오고 있었다. 죽음의 사자는 그를 보고는 반갑게 달려가 그의 목숨을 빼앗았다. 뭐, 이 시가 반드시 그런 우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 누구에게나 언젠가 닥칠지 모르는 현실인 죽음을 척박한 사막에 사는 그들은 언제나 맞닥뜨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나머지 시편들 역시 시에서 드러내고 있는 이미지들은 화사하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이면엔 역시 현재의 삶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는 다소 교훈적이기조차 한 것들이다. 오늘은 마땅히 즐겨야하는 중요한 것이고,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포도주, 장미 등이 중심 이미지가 되고 있는 이 작품에서 현세주의적 태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아랍 지역의 현실 중심적인 문화와 오랫동안 대상 무역에 종사하거나 유목을 위해 사막을 횡단하며 체득한 삶의 양식과도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은 오랫동안 농경생활에 종사하며 체득한 우리 민족의 문학적 정서와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사시사철 농사를 위해 땅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삶과 죽음은 언제나 고정된 장소에서 익숙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사막의 유목민이나 대상들에게 있어서 삶과 죽음이란 언제나 낯선 땅에서 낯선 이들 틈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손님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를 담아 환대하는 여러 이유 중 한 가지는 나의 가족이 언젠가 모르는 이들에게서도 그런 대접을 받게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런 특색을 통하여 문학의 보편성과 함께 민족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편들 <루바이야트>를 오늘날에 이르러 대한민국의 대형서점 서가에 비치할 수 있도록 만든 이들은 누구인가? 그 사람은 에드워드 피츠제랄드라는 사람으로 1809년 빅토리아 왕조시대 영국 상류 계급 출신 작가이자 번역가였다. <바람구두가 선정한 20세기 세계 10대 사건> 중 가장 첫 번째로 꼽히는 사건은 "유럽중심의 세계통합과 그 유산들"이었다. 그 진두에 섰던 나라는 당연히 영국이었고, 그런 대영제국의 태양이 지지 않았던 시대가 바로 빅토리아 왕조였던 것이다.

그는 당시 영국의 유한 계급이 그러했듯이 특별히 자신의 노동 없이도 살 수 있는 계급에 속해 있었으므로 취미 삼아 번역에도 손을 댔다. 그는 자신의 고상한 취미를 자랑하기 위해 페르시아 시인인 오마르 카이얌의 시 75편을 번역해서 1859년 얄팍한 팸플릿으로 제작하여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나 이 시집을 오늘날처럼 전세계인들이 읽을 수 있도록 재발굴한 이는 시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Rossetti, Dante Gabriel)였다. 로세티는 자신의 친구이자 시인인 스윈번(Swinburne, agernon Charles )에게 이 책을 소개했고, 이 책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시인이자 공예가인 윌리엄 모리스(Morris, William), 비평가 존 러스킨(Ruskin, John) 등 당대의 유명한 지식인들에게 전해지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영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해서 읽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대목에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에드워드 피츠제랄드가 이 시를 오마르 카이얌의 원래 의도대로 번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초판의 성공에 고무된 피츠제랄드는 이후에 계속해서 그의 시를 추가로 번역해 덧붙였는데 그렇게 번역되어 완성본이 나온 것은 1879년, 모두 101편에 이른다. 그러나 그 중에서 오마르 카이얌의 원시에 충실한 것은 불과 49편에 불과하고 , 특히 8편 가량은 피츠제랄드가 오마르 카이얌의 루바이를 서로 덧대거나 생략하여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편집되고 잘린 시를 오마르 카이얌의 시라고 생각하고 읽어왔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이 시기의 영국 뿐 아니라 유럽은 허버트 스펜서(Spencer, Herbert )의 '사회진화론'이란 철학사상이 유행하고 있었다. 사회진화론이란 다아윈의 <종의 기원>에 영향을 받은 사상으로 '생존경쟁, 적자생존'이라는 자연계의 법칙을 인간세계에 고스란히 도입한 것이다.

인간세계에서도 약자는 도태될 수밖에 없으며 강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권리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우생학과 인종학으로 발전해 결국 파시즘과 나치즘으로까지 확장되는 단초가 된다.

영국과 영국민에 있어 빅토리아 왕조 시대는 제국의 영광이 전세계를 뒤덮는 자랑스러운 시대였다.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가 이끈 보수당(保守黨)과 윌리엄 E. 글래드스턴(William E. Gladstone)이 이끈 자유당(自由黨)의 양대정당이 번갈아 수상직을 맡으며 양당의회정치(兩黨議會政治)라는 영국식 의회 민주주의와 제국주의 정책에 의한 식민지 통치의 황금기를 구가하며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세계대제국(世界大帝國)을 건설했다. 그러나 빅토리아 왕조 시대의 이면은 제국주의 정책으로 인해 중국과 무역 마찰을 빚자 중국에 아편을 수출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고, 선거법 개정으로 선거자격이 확대되었으나 영국 지배 계급은 헤게모니를 더욱 공고히 하는 시기가 되었고, 아일랜드 자치법안은 부결되었으며, 노동조합법이 실행되었으나 다른 한 편으로 노동자 가정에서는 영아살해가 빈번히 일어나던 시기이기도 했다.

여기에도 사회진화론은 뿌리를 내리고 제국주의의 든든한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피츠제랄드는 오마르 카이얌의 시를 자신이 마음대로 고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오마르 카이얌이란 페르시아 촌구석의 무명시인에게 문명세계의 고상한 지식인 집단에게 읽힐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의기양양해했을 지도 모른다. 영국 빅토리아 왕조 시대의 그런 찬란함 뒤에는 노동자 계급의 한숨과 겉으로는 고상한 척, 유식한 척 하지만 뒤로는 퇴폐와 위선을 숨기고 있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이런 풍토가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볼 수 없다. 그 일례로 우리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30여년 전 프랑스 육전대 병사들에 의해 벌어진 외규장각 도서 약탈 사건으로 우리는 297권의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 당했고 그외에도 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현재까지 우리는 그중 어떤 것도 되돌려 받지 못했다. 같은 유럽 국가간의 문화재 반환이나 기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피해 배상, 사과 문제에는 민감한 그들이 아시아의 작은 약소국가에 대해서는 그들의 대통령이 약속한 일까지도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어기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그들의 변명 중 하나는 40년간 일본의 지배를 당했고, 전쟁 겪으며 멸실될 뻔한 우리의 문화재를 보전해줬다는 것이다. 기가 막힌 일이다.

오마르 카이얌의 시가 빅토리아 왕조 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이 시기의 문학적 경향은 통속적인 사실주의(寫實主義)가 크게 유행한 시기였으며, 동시에 그런 경향을 초월하는 실제적 인간성을 추구하였고, 위선과 허영에 대한 풍자적 비판이 하나의 특색을 이루고 있던 시기였다. <루바이야트>가 당시 영국 문단에서 환영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빅토리아 시대의 근엄한 표정과 엄숙한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당대의 지식인들은 다윈의 <종의 기원>과 더불어 현세의 삶을 예찬하는 <루바이야트>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읽는 에드워드 피츠제랄드 판의 <루바이야트>가 오마르 카이얌의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번역된 시집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까맣게 몰랐을 것이고,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마르 카이얌이 현세의 삶을 노래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덧없음을 노래했음에도 그들은 현재의 풍요와 쾌락, 제국의 번영을 구가하며 마치 달콤한 초콜릿을 입안에 넣어두고 살살 녹여먹듯 이 시를 즐겼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는 <루바이야트>는 민음사판 <세계시인선> 이외에도 몇 종이 더 있지만 그 모두 저자가 에드워드 피츠제랄드로 되어 있다. 이것은 마치 카프카처럼 독일어로 쓴 작품을 번역할 때 영역(英譯)본을 기본으로 삼았다해서 카프카의 작품을 번역한 영국 작가를 지은이로 삼는 것과 같다. 어쩌면 이 <루바이야트>가 오마르의 작품이라기보다는 피츠제랄드의 것에 가깝다는 그런 뜻일까? 그렇다면 해석이 가능하다. 마치 민음사판 삼국지를 우리가 '삼국지'라 하지 않고 '이문열의 삼국지'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 오역을 바로잡은 번역도 있으므로 다시 한 번 출간되길 희망해본다. 이처럼 장황하게 <루바이야트> 이야기를 한 까닭은 오마르 카이얌의 <루바이야트> 처럼 우리는 서구적(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적인) 시각으로 편집된 렌즈만으로 아랍과 이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참고로 이슬람교를 마호멧교로 부르는 것과 알라를 알라신으로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슬람교에 있어서 마호메트는 신의 위대한 사도이지만, 그 자체가 신으로 숭배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 경전인 꾸란(Quran)은 아랍어로만 되어 있다. 그러나 전체 무슬림 가운데 80% 이상은 아랍어를 사용하지 않는 비아랍인이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꾸란의 의미는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있고 또 번역되고 있다. 다만 최초의 계시 내용이 번역의 과정에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하나님으로부터 계시받은 인간의 지침서가 ‘편리함’ 하나만을 위해 번역에 번역을 거듭할 경우 그 변질과 손상, 왜곡의 폐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미를 번역하는 해설서에도 반드시 꾸란의 원문은 함께 병기하도록 하고 있다. 아랍어 이외의 언어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아랍어 이외의 언어로 번역된 꾸란은 반드시 아랍어와 병기하도록 한 이유는 피츠제랄드 같은 이가 자기 멋대로 번역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한다.

블룸 - 시의 정원 http://bloom.sio.net/rubaiyat/rubailist.htm
- 우리 말로 된 오마르 카이얌의 <루바이야트>를 읽어볼 수 있는 사이트이다.

아라비안나이트 사이트 - 루바이야트
http://www.arabiannights.org/rubaiyat/index2.html
- 아라비안나이트 사이트로 피츠제랄드판이 아닌 제대로 된 번역(물론 영문)의 루바이야트를 볼 수 있는 사이트이다.

'이슬람을 바르게 알리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
http://www.islaminkorea.org
- 말그대로 이슬람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편견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는 사이트이다.

<2001/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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