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신학의 미소 - 동시대인 총서 11
김진호 지음 / 삼인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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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라는 진보적인 지식인 혹은 목회자의 저서. 상당히 끌렸다. 더욱이 그 책 이름이 <반신학의 미소>라는 도발적인 것이라면.....

실제로 이 책의 표지에서 저자 김진호 목사는 웃는 듯 찡그린 듯한 모나리자의 미소를 짓고 있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걸로 봐서는 미소가 맞긴 한데 안경 뒤의 두 눈은 그다지 밝지 않아 보인 듯도 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반신학이란, '서양-백인-남성의 눈'에 준거하는 서구 주류 신학에 대한 해체의 꿈을 담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서구 신학적 해석학의 거점인 교회의 해체를 꿈꾸는 것이기도 하다. 교회와 신학이 역사 속에서 이웃을 향한 사회적 책임에 대해 자폐적인 태도를 취해 왔고, 자신의 이해 관철을 위해서는 공격적인 자세로 일관해 왔기에, 교회의 신학적·신앙적 도그마로부터의 해방된 '새로운 신학적·신앙적 실존 양식'을 찾기 위함이다. 그런 점에서 반신학은, '민중의 눈'을 새로운 해석학적 준거로 삼아 '대안적 신학을 모색하는' 민중 신학의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다. (표지에서)

표지에서 이렇게 민중 신학을 소개하고 있는데 참 책 내용은 '민중스럽지'만은 않다.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각주들과 사회과학 이론들이 평범한 독자인 내 골을 쥐어짜게 한다. 그러나 민중신학과 반신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로서 민중신학에 대한 첫만남으로, 충만한 독서를 했다는 고백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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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즐기기 - 한샘미네르바신서 4
정재윤 지음 / 한샘(주)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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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았다. 그래서 좋았다. 사실 영화 [에이아이] 혹은 [블레이드 러너]에 대해 감상문을 써야하는데 영화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영화 관련 책을 봤으면 했다. 그런데 많고도 많은 도서관 책들 중에서 이 책이 눈에 띠었다. 책이 얇았기 때문.

게다가 내용도 부담스런 이론들이 마구마구 나오는 그런 책은 아닌 듯 했다. 그리고 실제로 [감상을 위한 영화이론]이라는 부제처럼 감상을 위해서라면 영화이론마저도 때로는 방해가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철저히 영화 관람자의 눈에서 쓰여지도록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물론 영화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나는 일반적인 이론마저도 어려움과 따분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영화도 그 말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얇은 책을 읽고 나니 영화가 보고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하나. 영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두 번 보라는 것이다. 물론 두 번이 아니라 많이 볼수록 더 잘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볼 때마다 달라지는 느낌 때문인데, 그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소설, 시, 음악 등도 마찬가지일 게다. 나는 늘 같은 '나'가 아니잖은가. 저자는 우리나라 극장에서라면 쫓겨나지 않고 충분히 두 번을 즐길 수 있다며 이 방법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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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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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를 선택하게 된 데에는...>

1. 움베르토 에코라는 거장의 책을 한 번이라도 접해보고 싶은 맘이 있었다. 그것은 거장들이 뱉어낸 책을 읽어, 그들의 지적 수준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어설픈 지적 허영심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들의 '깊이'를 만나고 내 것으로 만들려는 긍정적인 지적 호기심도 있다. 물론, 나에게도 그 두 가지 모두 해당이 된다. (에코의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상당히 난해함을 벗어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만큼은 결코 그렇지만도 않았다. 왜 일까? -_-;)

2. 이 책을 읽으려 했을 때의 나는 그다지 밝게 웃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마냥, 단지, 웃고 싶었다. 그것이 가식이라고 할 지라도. 그래서 기억난 것이 이 책의 독특하고도 끌리는 제목이었다. 이 책은 내게 웃음을 줄 수 있을까.

패러디는 즐겁다. 그러나 패러디는 결코 가볍지 않다. 움베르토 에코가 말하는 이 패러디라는 놈에게는 '사명'이 있다.

패러디의 사명은 그런 것이다. 패러디는 과장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웃거나 낯을 붉히지 않고 태연하고 단호하고 진지하게 행할 것을 미리 보여 줄 뿐이다. (13쪽)

이렇게 에코는 본격적인 '웃으며 화내는 방법'들을 보여주기에 앞서 세상의 바보들에게' 핑계거리를 잘도 마련해뒀다. 참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뻔뻔해지자. 뻔뻔한 자만이 웃을 수 있다.

우리는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을까? 악의나 잔혹함에 분개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없지만, 어리석음에 분노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 데카르트가 말했던 것과는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가장 공평하게 나눠 가진 것은 양식(良識)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있는 어리석음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것에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 아주 까다로운 사람들조차도 자기 안의 어리석음을 없애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17쪽)

나는 화를 잘 낸다. 화내는 것은 그다지 좋은 모습과 성격은 아닐 게다. 물론,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은 없겠지만, 본래 화내는 이유의 심각함에 따라서 차분하게(!) 화를 내는 정도를 절제하기란 아주 어려운 법이다. 따라서,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란 정말 매력적이다. 더욱이 때에 따라 웃음을 띤 분노란 더욱 파괴적이기도 하다. 오히려 그것이 더 무섭고 잔인하게 느껴지며 좀더 신랄하게, 좀더 날카롭게 보인다. 딴지일보에서의, 혹은 진중권의 글들을 보라. 실제로 그것을 볼 수 있지 않은가. 능글 거리는 웃음은 무섭다. 그래서 사람들은 분노할 상황에서 분노하지 않고 웃는 자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들은 분노할 것에 대해 웃을 수 있는 대단한 절제력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절제란 것도 분노의 좀더 고차원적인 표현이라는 것이기에.

이 책은 에코의 해박함과 놀라운 지식을 제쳐두고도 재기 발랄함과 엉뚱함, 그리고 엄청난 상상력, 뻔뻔함 등을 볼 수 있다. 이 책을 좀더 재미있게 즐기려면 특히 '뻔뻔함'에 주목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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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에드워드 할렛 카 / 단우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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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는 문명과 역사 수업 시간의 주 교재로 나와있다. 그렇지만 수업의 초반에 이것을 다루었지, 이 책을 가지고 수업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이 역사학에서 갖는 의미는 작은 것이 아닌 듯 하다. 고등학교 국정교과서에서도 E. H. 카의 역사관으로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표현한 역사가가 있다.'라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이 정도로 이야기한 것이면 이것은 역사학계의 주된 이해라고 볼 수 있다. 본래 주된 역사관이 아니라고 해도 교과서의 힘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제가 첫 번째로 내놓을 대답은 이러한 것이 되겠습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에서 그침 없이 오가는 대화인 것입니다. (제1장. 역사가와 사실. 44쪽)

저는 첫 번째 강연에서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우선 역사가를 연구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 우선 그가 처해 있던 역사적, 사회적인 환경을 연구하십시오. (Study the history before you begin to study the facts. Before you study the historian, study his historical and social environment.) 역사가는 개인이면서 동시에 역사와 사회가 낳은 산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두 가지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눈썰미를 길러야만 합니다. (제2장. 사회와 개인. 65∼66쪽)

위대한 역사가란―아니 어쩌면 보다 폭넓게 말씀드리자면 위대한 사상가란―새로운 것들에 대해서 또 새로운 맥락들 속에서 '왜'라고 물음을 던지는 사람입니다. (제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132쪽)

역사에 관한 책들을 그리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이 책이 본래 훌륭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읽은 역사 관련 서적 중에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와 함께 베스트 리스트에 올려도 좋을 것만 같다.

그런데, 카는 역사학자라서 그런지 역사에 비해 문학과 신학을 낮은 자리로 본 듯 하다. 그러나 역사가의 가치관과 해석이 들어간 것이 역사라면 그것 또한 문학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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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죄악사 -상
조찬선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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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처럼 기독교의 수치스러운 죄악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또한 세계 평화와 인류 공존을 위해서는 종교다원화를 인정해야한다고 하는 등, 기존의 기독교 서적과는 상당히 다른 성격을 띤다. 나 또한 ''기독교만이 사랑과 행복과 윤리와 구원 등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종교가 아니라'라는 사실'(상권, p.84)을 선교 이전에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상당히 충격적이기도 했다. 저자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은퇴한 신학대학 교수이며 목회자이기도 했다. 다른 생각으로는, '혹시 이 책.. 위작이 아닐까'라는 의심까지 해봤다. 그러나 기독교인으로서, 목회자로서 이런 책을 낸다는 것은 하나의 자기고백이며,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진실 된 애정으로 보인다.

이 책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기독교의 죄악사를 썼다. 중요하게 다룬 것으로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 종교재판, 십자군 전쟁,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침략 등이다. 물론 세계사적으로 봐도 가장 큰 기독교의 죄악이므로 크게 다룰 필요가 있다. (너무나 크게 다루다 보니 계속 중복된 내용도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것들 이외의 국내의 기독교 죄악사는 그다지 넓고 깊게 다루지 못했다. 이것은 '한국인이자 목회자'인 저자의 한계일 수도 있다. 국내 기독교 역사가 그래도 아직은 십자군 전쟁과 같은 인류사에서 지울 수 없는 사악한 짓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뒷 표지의 (국내) 개신교의 죄악 3가지를 소개한 '1. 일제 때의 신사 참배 / 2. 유신 정권지지 / 3. 5·6공 정권에 대한 협조'가 상당히 궁금했는데, 왠지 속이 빈 중국 호빵을 먹은 기분. 국내 기독교 죄악에 관한 책도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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