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를 선택하게 된 데에는...>

1. 움베르토 에코라는 거장의 책을 한 번이라도 접해보고 싶은 맘이 있었다. 그것은 거장들이 뱉어낸 책을 읽어, 그들의 지적 수준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어설픈 지적 허영심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들의 '깊이'를 만나고 내 것으로 만들려는 긍정적인 지적 호기심도 있다. 물론, 나에게도 그 두 가지 모두 해당이 된다. (에코의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상당히 난해함을 벗어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만큼은 결코 그렇지만도 않았다. 왜 일까? -_-;)

2. 이 책을 읽으려 했을 때의 나는 그다지 밝게 웃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마냥, 단지, 웃고 싶었다. 그것이 가식이라고 할 지라도. 그래서 기억난 것이 이 책의 독특하고도 끌리는 제목이었다. 이 책은 내게 웃음을 줄 수 있을까.

패러디는 즐겁다. 그러나 패러디는 결코 가볍지 않다. 움베르토 에코가 말하는 이 패러디라는 놈에게는 '사명'이 있다.

패러디의 사명은 그런 것이다. 패러디는 과장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웃거나 낯을 붉히지 않고 태연하고 단호하고 진지하게 행할 것을 미리 보여 줄 뿐이다. (13쪽)

이렇게 에코는 본격적인 '웃으며 화내는 방법'들을 보여주기에 앞서 세상의 바보들에게' 핑계거리를 잘도 마련해뒀다. 참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뻔뻔해지자. 뻔뻔한 자만이 웃을 수 있다.

우리는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을까? 악의나 잔혹함에 분개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없지만, 어리석음에 분노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 데카르트가 말했던 것과는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가장 공평하게 나눠 가진 것은 양식(良識)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있는 어리석음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것에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 아주 까다로운 사람들조차도 자기 안의 어리석음을 없애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17쪽)

나는 화를 잘 낸다. 화내는 것은 그다지 좋은 모습과 성격은 아닐 게다. 물론,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은 없겠지만, 본래 화내는 이유의 심각함에 따라서 차분하게(!) 화를 내는 정도를 절제하기란 아주 어려운 법이다. 따라서,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란 정말 매력적이다. 더욱이 때에 따라 웃음을 띤 분노란 더욱 파괴적이기도 하다. 오히려 그것이 더 무섭고 잔인하게 느껴지며 좀더 신랄하게, 좀더 날카롭게 보인다. 딴지일보에서의, 혹은 진중권의 글들을 보라. 실제로 그것을 볼 수 있지 않은가. 능글 거리는 웃음은 무섭다. 그래서 사람들은 분노할 상황에서 분노하지 않고 웃는 자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들은 분노할 것에 대해 웃을 수 있는 대단한 절제력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절제란 것도 분노의 좀더 고차원적인 표현이라는 것이기에.

이 책은 에코의 해박함과 놀라운 지식을 제쳐두고도 재기 발랄함과 엉뚱함, 그리고 엄청난 상상력, 뻔뻔함 등을 볼 수 있다. 이 책을 좀더 재미있게 즐기려면 특히 '뻔뻔함'에 주목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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