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의 긴 여행 ㅣ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유디트 헤르만 지음, 우영주 옮김 / 마르코폴로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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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디트 헤르만, 신간이 나온 걸 알아챈 순간 곧바로 책을 사거나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하는 작가들 가운데 한 명. 헤르만의 작품 가운데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하는 장편소설일 듯하다. 이이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이 감각적인 문장이 가득한데, 비록 한여름을 이야기하더라도 어딘가 섬뜩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듯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서늘함이 도사리는 글들.


  지금부터 거의 30년 전. 그러니까 30년은 채 되지 않은 때,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는 화자 ‘나’가 현재 마흔일곱 살이니 스무 살도 되지 않았을 무렵 중소도시의 신축건물 원룸 꼭대기 층에 살며 담배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말하는 것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나’는 담배공장 생산 라인에서 담배를 일정 길이로 절단하는 기계 앞에서 불순물을 거르는 장치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공정에 서서 일한다. 자동장치라 알아서 처리를 하지만 혹시 불순물이 끼어 있을 경우 ‘나’가 제거하는데, 독자는 칼날이 위에서 아래로 철커덕 내리치는 공정에서 맨 손으로 제거하는 장면을 떠올려야 한다.

  공장에서 유일하게 귀마개를 하고 일을 하는 직원. 함께 일하는 동료한테 전혀 관심이 없고, 자신에 대해서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없는 ‘나’. ‘나’의 즐거움은 5층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며 주유소가 바라보이는 전경을 내려다보는 일. 여름엔 주유소에 달려 있는 작은 가게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일도 일과 가운데 하나였다.

  바로 이 작은 가게에서 일이 벌어진다.

  어느 날 아이스크림을 사서 계산을 하려는 순간, 문을 열고 깔끔한 검은 양복을 입은 백발의 중년 신사가 등장한다. 167cm, 절대로 작지 않은 키의 ‘나’를 보더니 “적당히 작은 키군요. 딱 좋은 키네요.” 꿍꿍이가 없는 어투로 말한다. 적당히 작다는 건 자신의 트릭을 기준으로 충분히 작고 알맞다는 말이란다. 그의 직업은 마술사. 자기 상자에 젊은 여자를 넣고 상자의 중간을 톱으로 썰어버리는 통 마술. 너무 자주 공연하여 이제는 조금 뻔한 마술이지만 현장에서 보면 여전히 섬뜩하고 작은 비명을 멈출 수 없는 모양이다. 마술사는 아내와 함께 크루즈 선 오로라호를 타고 3개월간 싱가포르를 왕복할 예정이다. 오로라호 전담 마술사이며 일주일에 세 번 공연을 한다. 통 마술에서 자신을 보조했던 여성이 그만 두어 ‘나’를 채용하고 싶어한다. 그는 ‘나’에게 주소를 가르쳐 주고, ‘나’는 그가 아내와 사는 외딴 방갈로에 방문한다.

  침대 외에는 거의 가구도 없고, 치장도 없어서 빈 집 같은 방갈로. 언제나 새로운 여행을 떠나야 하는 떠돌이, 방랑자일 터이니 집을 꾸밀 필요가 없다. 집도 굳이 자기집일 이유가 없다. 마술사와 그의 아내는 보조 여성이 해야 하는 일을 설명하고 곧바로 통 마술을 연습해본다. ‘나’는 작은 통에 들어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누워 전에 누군가가 누워 있던 자리에 같은 자세를 하고 있다. 통 속이 답답하지만 생각보다 편하다. 그런데 이 순간, 마술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정말로 톱을 가지고 자신의 몸을 두 토막 내려는 건 아닐까?

  그건 아니었고, 연습이 끝나자 마술사는 일주일 후에 출발할 테니 월요일 낮 12시에 중앙역에서 만나기로 한다. 거기서 기차 타고 항구로 가서 같은 날 저녁에 떠나는 배 오로라호에 승선할 예정. ‘나’는 선실 하나, 즉 독방을 사용하게 되며, 선창을 통해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의 시간이 남았다. ‘나’의 주변을 다 정리하고, 즉 육지에서 ‘나’의 흔적을 모두 없앤 후에 바다 위의 크루즈 선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몸이 잘려야 하는 여자가 된다.

  ‘나’는 담배공장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그만 두었다. 생각보다 많은 짐을 정리하고 트렁크 하나에 담을 수 있을 만큼만 추려서, 비가 철철 오는 여름 대낮에 ‘나’의 집을 나섰다. 결론적으로 ‘나’는 싱가포르에 가지 않았고, 대신 오티스를 만나 결혼했고, 딸 앤이 생겼다. 앤이 성장해 열네 살에 첫 문신을 하고, 열여덟이 되자 집을 나서 긴 여행을 시작했고, ‘나’는 오티스와 이혼해 버렸으나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문자도 주고받으며, 가끔 전화도 한다. 마술사는, 이렇게 초반에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영원히.

  그러나 적어도 두 장면은 남는다. 5층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우며 바라보던 주유소가 있는 도로 장면과 톱으로 썰기를 기다리는 통 속에 들어가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 그러나 실제로는, 톱질 당하는 여자 이야기를 까맣게 잊고 지냈다. 30년쯤 지난 후에야 그 여자가 기억이 나서, 작품 또는 최근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소설은 시작한다.


  30년. 기억을 충분히 왜곡시킬 수 있는 시간.

  ‘나’는 거의 1년 동안 오빠가 살고 있는 동해안에서 살았다. 오빠 사샤는 젊은 시절에 활동적이었던 사람이지만 나이가 들어 이젠 허풍 심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걸로 호가 났다. 주로 동네 점잖은 사람들이 모이는 조용한 술집에서 출입금지 처분을 당했을 정도로만 여기면 된다. 비록 그 술집에서 일하는 스물한 살의 여성 종업원과 새로이 연애를 시작한 50대 후반의 남자이기는 하지만.

  스물한 살의 니케가 등장하면서 다시 통 이야기가 나온다. 니케는 어렸을 때부터 상자에 갇혀 지내는 날들이 많았다. 어머니가 니케를 상자에 가두어 놓고 한 시간씩, 때로는 며칠 동안 어머니의 상황에 따라, 어디에 가야 하거나, 손님이 오거나,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 자기 멋대로 가두어 두었다, 라고 주장한다. 그 안에서 니케는 울었을 수도 있고, 원하는 것을 위해 반항 비슷한 것을 했을 수도 있지만, 이 가둠을 당하는 일은 제법 많은 나이까지 지속되었다. 아이였을 때부터 당한 일이라 10대가 되어도 쉽게 반항하거나 뛰쳐나올 수 없었을 지 모른다.

  ‘나’의 옆집에 사는 유일한 이웃, 미미. 미미는 젊은 시절에 잠깐 동안 오빠의 연인이기도 했다. 미미의 집에서 미미의 어머니 암케가 침대까지 가져다 준 아침을 먹은 날부터 시작한 돼지 농장일을 사샤는 견디지 못해 도망쳤던 일이 있다. 이후 미미는 조각과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지냈다.

  미미. 동쪽 해변가 간척지에서 가릴 것이 없는 여자. 추운 초여름에 나신으로 수영을 하고, 커튼을 달지 않은 집 안에서는 전혀 거칠 것 없이 생활하는 이. 미미가 먼저 ‘나’에게 접근해 친해지고, 오빠와의 짧은 연애 이야기도 들려주기도 했으며, 함께 잔뜩 술을 마시기도 한다. 둘이 자전거를 타고 907마리의 돼지를 키우는 동생 아릴드의 집으로 쳐들어가 밤새 술을 마시는 통에 ‘나’를 아릴드의 침대에 오르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아릴드 역시 ‘나’의 침대로 올라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새벽 네 시만 되면 자기 휴대폰에서 울리는 모닝콜에 득달같이 일어나 돼지를 치러 가는 남자.

  ‘나’는 넓은 오빠네 집에서 살아도 되지만 해안 간척지에 있는 단독주택을 얻는다. 2층은 혹시 앤이라도 오면 지내라고 침대 하나를 놓았을 뿐 비어 있고, ‘나’의 생활은 전적으로 1층에만 국한한다. 이 동해안 간척지에서 집을 얻은 것이 1월 초. 매섭게 추운 날이 지속되었고, 2월이 되자 그때까지 몰랐던 동풍이 몰아쳐, 잠을 자는 새 분명히 닫은 현관이 열려 찬 기운이 방에까지 들이닥쳤으며, ‘누가 열었을까? 저절로 열렸을까?’ 무섭게 서늘한 생각이 들어 호신용 스프레이, 재크나이프, 전남편 오티스가 준 호신용 공포탄 권총 한 자루를 침대 밑에 두기 시작했다. 공포탄이라 해도 그걸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하면 맞은 사람은 현장에서 즉사할 수도 있다. 그런 줄도 모르니까 아릴드는 편하게 침대에 오를 수 있었겠지. 궁금하지? 권총이 소설에 등장하면 언젠가는 발사할 수밖에 없다고? 안 알려드린다.

  게다가 갑자기 천장 한 모퉁이부터 저쪽 모퉁이까지 작은 짐승이 화다닥 달려가는 소리. 뭔가가 천장에 있다. ‘뭔가’가 무슨 동물인 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데, ‘나’가 도움을 요청한 돼지농장 주인이자 이혼남, 이라기보다 아내가 도망친 남자의 의견에 의하면 담비란다. 아릴드는 담비 덫을 적당한 장소에 설치하고 성호르몬을 묻힌 돼지 비계를 달아 담비를 유혹하건만 색깔이 찬란한 고양이가 한 번, 검정색의 새 한 마리가 한 번 걸릴 뿐이다.

  이렇게 거의 완전히 고립된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황량한 벌판과 물, 간척지, 바다가 널려있는 풍경. 쓸쓸하고 고립되었으며 무언가 불행한 일이 곧 생겨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한 분위기의 연속. 이게 헤르만을 읽는 즐거움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이의 벌판은 단편 쪽에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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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6-09-29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간 나온 걸 기억하는데, 폴스타프 님 4별이라 궁금하네요.
근데 품절이라니 사두기만 하는 저를 위해서는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요 ㅎㅎㅎ

Falstaff 2026-09-29 16:26   좋아요 0 | URL
지금 보니까 품절이네요? 왜 그랬을까 궁금합니다. 계약에 문제가 있었나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200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차지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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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리츠카야가 예순세 살 때 발표한 2006년 작품. 이 양반 책은 빠짐없이 다 읽었는데도 몇 권 되지 않는다. 아직 번역해 나오지 않은 작품/책도 많다. 그런 것들도 나오기만 해봐라, 당장 읽어버릴 태세. 이 정도면 나, 울리츠카야 팬 맞지?

  이번에 읽은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하는 대산세계문학총서의 기념비적인 “200호”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 이이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득달같이, 정말로 1분도 되지 않아 곧바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방금 전에 다 읽었다. 내가 사는 도시의 도서관 여러 곳 가운데 나 다니는 도서관에 이 책 딱 한 권 있다. 근데 아직 예약한 이용객도 한 명 없다. 흠. 울리츠카야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그리 인기가 없는 모양이군. 어쩌면 본문만 730쪽에 달하는 분량 때문일 것도 같다. 은행나무에서 출간한 <커다란 초록 천막>은 두 권, 천 쪽을 넘어가는데. 지금 보니 그것도 많이 팔리지 않았다.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유대인. 소련의 바시키르 자치 공화국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대학까지 마친 러시아 사람이었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하도 열을 받아 독일로 이사해 버렸다. 나는 소비에트 연방, 중화인민민주주의공화국, 쿠바, 북한, 동구권의 수다한 나라들을 공산주의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핑계로 1인 장기집권만 도모했던/하는 좌익 파시스트 경찰 집단일 뿐이지 공산주의는 무슨 공산주의.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무리가 울리츠카야와 또래의 구 소련 여성 작가들이다. 이들은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작품을 쓰지 않았거나 쓰더라도 마음이 비슷한 소수의 자기들끼리 돌려 읽는 정도로만 국한했다. 울리츠카야 역시 지하출판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그게 발각나자마자 유전학연구소의 연구원 자리에서 해고당해 버렸다. 그리하여 들어간 곳이 유대인 극단. 거기서 희곡 또는 연극 대본도 쓰고, 시나리오도 썼다가, 70년 만에 볼셰비키가 역사 너머로 사라지자마자 소설을 쓰기(또는 출간하기) 시작하여 대박을 친다. 사실 내가 정말 기대했던 40년대생 소련 여성 작가는 이이보다 빅토리아 토카레바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작품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여간 어처구니없다. 자본주의보다 훨씬 민주적이어야 하는 공산주의 체제 안에서 소련 작가들은 오히려 더욱 숨도 쉬기 어려워했으니, 이건 생각 자체를 국가 또는 정권에서 원하는 프레임에 가두어 두었다는 뜻이다. 공산주의를 주창했던 마르크스가 자기의 믿음이 이런 결과를 초래할 것을 알았다면 런던의 하이게이트 무덤에서 벌떡 일어섰거나, 후세 누구보다 더 맹렬하게, 자기가 주장한 공산주의를 철회하겠다고 고집하고 나섰을 터.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 때,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를 소개하는 글에서는 “일년의 반은 모스크바에서, 나머지 절반은 이스라엘에서” 지낸다고 했었다. 유대인이 형제자매, 또는 친척, 아니더라도 사돈의 팔촌은 틀림없이 살고 있을 이스라엘을 자주 방문하고, 간 김에 좀 오래 체류하는 일이 그리 어색하지 않아 그러려니 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까, 이이는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을 쓰기 위하여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을 옆집 드나들듯이 했던 것 같다. 집필 기간만 해도 근 10년에 육박했다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눈치 채셨지? 주인공 ‘다니엘 슈타인’ 역시 이름에서 떡 알아차릴 수 있는 유대인. 그리고 활동 무대가 이스라엘?


  다니엘 슈타인은 1922년 정도에 남부 폴란드에서 난 유대인이다. 한 눈에 탁 봐도 당시에 폴란드에서 살던 유대인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팔자 하나는 참 기구하게 태어났다. 기본이 처형 또는 피살 또는 학살 대상자이고 최하로 쳐도 중상 수준. 폴란드에서 자랐으니까 폴란드어는 기본이고, 소련 말도 모국어 수준으로 잘 했을 터인데, 여기다가 천부적으로 어학에 재질을 보여 독일어, 그리스어, 유대인이니까 이디시어와 히브리어까지 줄줄 꿰고 살았다. 게다가 놀랍게도 ‘디터’라는 독일식 이름도 가지고 있어서 평상시에 사용하는 바람에 기구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해보자.

  전쟁이 터지자 다니엘은 피난을 떠나야 했다. 1차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 군인으로 참전했던 전력을 가진 아버지는 그냥 독일 치하에 남고 싶었지만 몸이 아픈 엄마의 고집을 꺾지 못해 부모와 두 아들이 엄마를 마차에 태워 길을 떠났으니 도무지 속도를 낼 수 없었다. 3주 동안 기다렸다가 억지로 얻어 탄 기차가 폭격을 맞아 다시 걸어가야 했는데 당연히 그동안 독일군이 이들을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가뜩이나 집 떠나면 개고생이건만 하물며 전쟁중이었으니 말도 못했겠지. 부모는 상의 끝에 형제에게 은수저 네 벌과 가진 돈을 모두 주며 어떻게 해서라도 팔레스타인에 도착하라고 당부했다. 당신들은 그냥 그곳에 머물겠다면서. 그때가 1939년 11월. 다니엘은 열일곱, 동생 아비그도르는 열여섯. 당연히 부모를 마지막으로 보는 순간이었다.

  형제는 갖은 고생을 하며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도착했는데, 이렇게 독후감 쓰다가는 날 샐 거 같아서 딱 잘라 말하면, 형제는 어찌어찌 헤어져 아비그도르는 무사히 팔레스타인에 도착해 멸절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럽출신 유대 여성한테 장가들어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던 반면에, 형 다니엘은 방랑의 와중에 벨라루스의 작은 마을 엠스크에서 독일군한테 잡히는 신세로 떨어진다. 근데 다니엘, 아니, 디터는 검은 머리카락 등 생긴 건 어째 유대인인 것 같건만 이름도 독일제고, 독일 말을 진짜 독일 사람보다 훨씬 더 잘하는 데다가 소련말, 폴란드말, 게다가 그리스, 프랑스말,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영어까지 능숙해 놀랍게도 독일 경찰에 스카우트되어버린다. 독일 경찰? 전시에 무슨. 쉽게 말해 게슈타포의 통역관이 되는 것. 하늘이 다니엘을 도와 또 이 게슈타포의 지역 사령관이 상당한 인류애를 가지고 있는 독일군이기까지 해, 결국 독일 장교가 눈치껏 다니엘의 목숨을 살려주는 천운을 만난다.

  통역사가 무슨 죽을 죄를 지었느냐 하면, 엠스크의 게토에 모여 사는 유대인을 탈출시켰다. 늘 통역사를 비서 겸해서 옆에 두고 일을 하던 사령관이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그리하여 작전 수행 날짜를 통보 받았는데, 다니엘이 그걸 알아차렸다. 게토 안의 유대인을 전부 총살하라는 명령. 자신도 유대인이지만 이 정보를 곱게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다니엘도 게슈타포 정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저게 지금 거짓 정보를 주고 탈출을 시도하면 그걸 핑계로 우릴 죽이려 드는 거야,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독일인이 악질이라도 게토에 사는 5백명이 넘는 유대인 전부를 총살시키지는 않을 터이니까. 7백쪽이 넘는 장편소설의 주인공을 맡을 정도로 대단히 머리가 좋은 다니엘은 결국 정보를 넘겨주는 데 성공하고, 게토 안의 건강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3백명이 처형 이틀 전에 밤을 도와 탈출해버렸다. 이들은 유럽의 ‘검은숲’에 들어가 파르티잔 활동을 시작하고.

  이게 죽어 마땅한 죄 1번.


  게토 안에 남아있던, 주로 늙은이들과 어린아이들은 작전대로 몽땅 총살당했다. 그러니 숲에 든 유대인들이 열을 안 받아? 하지만 아무리 파르티잔을 한다 해도 먹을 것과 무기가 있어야 뭘 해도 할 터인데 빈손 신세. 다니엘은 먹을 건 대책이 없어도 무기는 공급해줄 수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주로 소련군이었던 적군의 총기를 어디에 보관하는 줄 알았다. 그곳을 기웃거려보니 작은 몸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었고, 아직 살이 붙기 전인 다니엘을 그곳에서 무기를 꺼내 유대 파르티잔에게 건넨다.

  이게 죽어 마땅한 죄 2번.

  세상의 진리 가운데 하나. 비밀은 없다. 다니엘도 두 사실이 발각됐다. 배신자가 있었다. 유대 역사상, 하긴 유대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인종이 다 그렇지만, 베드로 이후 배신의 아이콘이었던 유대인종 답게 한 명이 사령관에게 다니엘을 고발했다. 그리하여 다 죽게 된 그는 앞에서 말했듯 사령관의 아량으로 눈치껏 목숨을 부지하는 데 성공한다.

  게슈타포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탈출한 다니엘은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동유럽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 남고, 와중에 아련한 플라토닉 첫사랑도 경험하는데, 특히 수녀원의 수녀들이 내가 봐도 목숨을 걸고 보호해주는 수준이었다. 하여간 전쟁이 끝나고, 놀랍게도 동유럽의 포그롬에서 생존한 다니엘은 전쟁이 끝난 후에 곧바로 폴란드로 돌아간다. 확률은 전혀 없지만 혹시라도 부모가 살아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아니었고, 다니엘은 시나고그 대신 맨발의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승이 되었다가, 신부의 신분으로 이스라엘에 몇 달 예정으로 파견되는데, 사람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 이후 몇 십년, 죽을 때까지 이스라엘의 하이파에 있는 ‘샘의 엘리야 교회’에서 일한다.


  아시다시피 나는 종교 이야기가 질색이다. 근데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의 7할이 종교에 관한 내용.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기독교도 로마 가톨릭, 그리스/러시아 정교, 개신교. 이렇게 한 신을 섬기는 다양한 종교가 서로 대가리 터지게 싸움만 일삼아서 되겠느냐는 일갈인데, 아, 씨, 나는 관심이 없는 걸 우짜냐고?

  다니엘의 직업 부터가 쇼킹이다. 유대인 출신의 가톨릭 사제. 심지어 훗날 교황이 되는 요한 바오로 2세와 동기.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 출신이다. 다니엘 슈타인보다 두 살 더 많다. 본명은 카롤 요제프 보이티와. 작품 속에서 (과장해서 말하자면)이단 행위로 고발당한 다니엘이 맨발의 카르멜 교단과 예루살렘 총대주교청을 거쳐 바티칸의 신앙교리성 장관과의 면담까지 한 다음에, 당시 교황인 보이티와, 요한 바오로 2세와 오리지널 폴란드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

  나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열라 재미있게 읽었다가, 난데없이 수도원에 들어가고 이스라엘에 파견된 다음부터 길고 긴 종교 이야기에 팍 질려버렸다. 심지어 내가 이걸 끝까지 다 읽었다는 것 자체가 오병이어만큼이나 기적같다. 그러니 종교 이야기는 그만하고 가톨릭 신자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니, 한 수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미사. 이건 내가 알기로 예수와 열두 제자의 마지막 만찬을 기념하기 위한 일종의 제사라고 알고 있다. 신부는 이 미사를 집전執典하는 책임을 진 사람. 내 주위의 친척, 친구, 술친구 가운데도 유난히 가톨릭 신자가 많은데, 이들은 하나같이 “미사를 본다.”라고 말한다. 근데 왜 미사를 “본다”라고 말할까? 예식하는 장면을 보는 건가? 이 책에서도 미사를 본다고 하는 표현이 제일 많았고, 딱 한 번 “미사를 드리다.”라고 쓴다. 비슷하게 “미사를 바치다.”라고도 쓸 수 있을 듯. “미사를 모시다.”나 “미사를 지내다.”라는 말도 괜찮을 거 같은데, 이 전례에 완전히 무식해서 뭐라 말을 보태고 싶지는 않다. 내 물음은 왜 “보다”라는 동사를 미사에 적용하는가, 하는 거다. 새삼스레 사전에서 “보다”를 검색해봤는데, 미사하고 연결되는 동사를 발견할 수 없었다. 내가 궁금한 게 좀 많다. 타박하지 마시고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것이니 알려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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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9-28 05: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니까 러시아의 침공에 반대해 독일로 이사가 버린 작가.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해 지도자를 살해한 다음에는 무슨 생각을 쳐 했을까? 이스라엘 만세다, 했을 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이이가 어떤 견해를 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심하게 유감이다.

coolcat329 2026-09-29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전쟁 배경 소설 좋아해서 이 책 샀는데 중간에 종교 이야기라니... 괜히 샀나 싶네요. ㅠㅠ

Falstaff 2026-09-29 04:52   좋아요 1 | URL
전쟁 이야기까지는 재미있었는데요. 그래도 울리츠카야니까 걍 읽어보세요.

잠자냥 2026-09-29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자꾸 현재의 이스라엘이 하는 짓이랑 겹쳐져서.... 심적으로 삐딱하게 되더라고요. 흠... (다니엘도 미워 보임 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9-29 16:27   좋아요 1 | URL
막 신경질까지 나던 걸요. ㅋㅋㅋ

천학비재 2026-10-15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냉담자인 저도 미사를 본다는 말은 잘 모르겠고,미사를 드린다는 보통 가족 중에 돌아 가신 분의 기일에 기념 미사를 성당에 신청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Falstaff 2026-10-15 18:20   좋아요 0 | URL
제가 얻어 듣기에도 우리나라 천주교회에는 미사 본다는 말을 굉장히 언짢아 한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천주교가 처음 중국을 통해 들어올 당시 중국말로 첨례瞻禮라고 했는데, 이때 첨瞻이 볼(watch) 첨 자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잠으로 바뀌며 미사를 본다, 라고 했던 거 아닌가, 하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더군요.
제 주변의 가톨릭 열성분자들은 거의 다 ˝미사를 본다˝라고 하더군요. 친절한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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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잘 쇠셨기 바란다.

시간이 남는다. 여유로워 좋다. 오늘은 새로 버린 책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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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많다. 망설였던 것이 이기영의 <민촌>과 이기서의 <강릉 선교장>. 이기영은 뭐 말 할 필요 없는 작가의 명품 리얼리즘 작품. 강릉의 선교장은 나 어렸을 적에 직접 그 집에서 자본 적이 있어 남다른 추억이 있는 곳이라 더욱 그랬다. 연못 정자 앞에서 찍은 가족 사진 속 이주사, 정여사의 젊은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굳이 옛 앨범을 들춰보기는 싫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앨리 스미스의 <호텔 월드>, 르 클레지오가 쓴 <허기의 간주곡>, 그리고 우리말 제목을 워낙 후지게 달아서 오히려 진가를 가려버린 푸엔테스 작 <미국은 섹스를 한다> 외에도 홀링허스트, 사라마구, 셀린느, 매컬러스, 새라 워터스, 심지어 루슈디와 브레드버리, 요사, 드릴로, 커포티 등등 싹 버렸다. 마음이 편했을 수는 없었겠지?



이번에는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버려? 남겨둬? 이거 하고 에코의 두 작품, 그리고 한 때 책 좀 읽는 사람들 입끝에 올랐던 장왕록 번역의 포크너 <압살롬, 압살롬>이 문제였다. 포크너는 당시에 나더러 책을 줄 수 없겠느냐고 하는 분도 있었는데 싹 안 된다고 거절했던 거다. 사람이 이러면 안 된다. 결국 버릴 책을 하잘것없는 욕심 때문에 여태 이고 지고 있다가 결국 이꼴이 뭐냐고.

독일까지 가 무질을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딴 안병률 사장이 직접 번역한 <특성없는 남자>도 다시 읽을 거 같지 않아서 던졌다. 돈이 아깝지만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다. 민음사 모던클래식 시리즈의 애트우드는 <도둑신부>말고 <고양이 눈>을 남기기로 했다. 우엘벡도 버리고 존 파울즈도 버리고, 파울즈는 결국 <마법사> 한 작품만 남길 생각이지만 하여간, 쿤데라도 목록에 나왔다. 게다가 이제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하는 대산세계문학총서, 즉 현재 발간중인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도 눈에 들어왔다.



이 목록에서는 좋은 작품은 아니지만 하인리히 만이 쓴 <앙리4세>를 제일 고민했다. 백낙청의 기념비적 평론집 <민족문학과 세계문학>도 이제는 꼴 보기 싫어서 던져버렸다. 드디어 화이트헤드, 백대가리 선생의 <관념의 모험>, 한길사가 야심차게 펴낸 그레이트북 시리즈 1번에 빛나는 책을 서슴없이 던졌다.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철학이라는 학문이 누구나 알 수 있는 말을 어떻게 하면 어렵게 설명하느냐를 공부하는 학문이라는 걸 배운 것으로 만족한다.

무엇보다, 내가 생각보다 볼라뇨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야만스러운 탐정들> 한 편으로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라고 여겨서 다른 작품은 싸그리 버렸거나 버릴 예정이다. 이거 딱 한 번 읽고 버리는 책들이라 당근에 내놔도 돈 좀 받을 수 있겠는데, 귀찮다. 걍 버렸다.

오정희는 나이를 먹으면서 확연히 총기가 떨어져갔다. 내가 이이의 책을 버리는 날이 올 줄은 나도 몰랐다.

르메트르의 삼부작도 남아나지 못했다. 재미 있는 건 확실하지만 오래 보관할 만하지 않잖아? 두 번 펴보지 않을 듯한 책들. 이런 면에서 아까운 작가가 모옌이다. 좋아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시간이 나면 또 들춰볼 만하건만 사실 시간이 나면 그 시간에 다른 책을 찾을 듯해서 아쉬워도 그냥 보냈다.

그리고 초판본 한강의 <여수의 사랑>. 아무리 우리나라가 배출한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 해도 안 맞는 걸 억지로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장한몽>은 아깝고 아깝다. 근데 내가 읽지 않으면 가족 가운데 아무도 읽지 않을 듯. 예전에 나온 금속활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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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위에 쌓은 제3세대 한국문학전집. 198X년 처음 취직해서 봉급받아 처음으로 산 책. 학교 다닐 때 읽고 이런 전집은 꼭 한 질 갖고 싶어하다가 내 돈 벌어 산 책. 그래서 정이 남다르다. 웃긴 것이, 그렇게 갖고 싶었지만, 학창시절에 이미 다 읽은 책인데다가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을 만큼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라 반도 못 읽고 처분하게 됐다는 거. 40년이 지나서 말이지. 뭐 이게 다 사는 일이기는 하지만. 초봉이 25만원 할 시절이었으니 저 전집 사려고 죽을 똥을 쌌다는 건 짐작 하시겠지?

그리고 꼭 해야 할 말. 포드 메독스 포드의 네 권짜리 대표작 <퍼레이즈 엔드>와 조지 엘리엇의 네 권짜리 <다니엘 데론다>. 이 두 작품은 한국문화사라는 개떡같은 출판사에서 찍었다. 책값 할인도 전혀 안 해주는 배짱 좋은 회사인데 둘 다 교정 교열이 개판무인지경이다. 그래서 그걸 지적하면 댓글을 달아 생 지랄을 해 그게 드러워서 독후감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 책들 말고 페터 바이스의 책도 마찬가지였다. 하여간 얼마 남지 않은 독서생활 동안 절대로 피해야 할 출판사다. 이건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절대로 동의하지도 마시고, 참고도 하지 마시라. 괜히 다 늙어 고소당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나, 포드 매독스 포드와 조지 엘리엇 만한 영어 소설가가 몇이나 있다고 그걸 그 지랄로 책을 만드냐는 말이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피해가지 못했다. 앞으로 <전쟁과 평화>를 또 읽고 싶으면 도서관을 이용하려고. 다른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책 표지가 하도 구려서. 뭐 내 마음이니까.

홍성원의 <남과 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쟁문학이라는 데는 백퍼 동의한다. 근데 또 읽을 거 같지 않아서. 비슷한 논조의 작품이 <남과 북>이후에 이미 많이 나왔다.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의 <라일라>도 버리느냐고? 그렇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감명깊게 읽었지만 <라일라>는 내 수준에 과하게 철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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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9-26 2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석 연휴에 책 정리하셨군요.
저도 요즘 책을 많이 정리하고 있어요.
집착이란 것이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Falstaff 2026-09-27 05:51   좋아요 1 | URL
지금은 요즘 알라딘 분들이 읽기 붐이 인 것 같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김창석 번역을 버릴까 말까 하는 겁니다. 이걸 버려야 수십년 끈 책 정리에 진짜 의미가 생길 것도 같고, 이렇게 생각하는 게 오만인 것도 같고, 하이고,,, 거 참 생각이 많습니다.

자목련 2026-09-27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제가 모르는 책들이 정말 많네요. 버리는 것도 일인데, 몇 번을 왔다 갔다 하셨겠네요. 이제 소장할 책 목록 올라오는 건가요?

Falstaff 2026-09-27 19:53   좋아요 0 | URL
버리는 것도 정말 일이더라고요. ㅎㅎㅎ
갖고 있을 책은 뭐... 그거 참.... ^^;;

망고 2026-09-27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왜 우리동네에 안 사시는 거죠? 싹 다 주워오고 싶어요ㅠㅠ

Falstaff 2026-09-27 19:54   좋아요 1 | URL
에휴, 별 거 없습니다. 방에 책이 별로 없으니까 깔끔하니 아주 좋은 걸요. ㅎㅎ

살리에르 2026-09-27 2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정리에 망설이는 저에게 상콤한 충격을 주는 글이네요^^ 진짜 방이 안 읽은 책으로 가득차서 늘 한숨만 쉬고 있습니다. 진짜 좀 정리해야 하는데 책도 안 읽으면서 늘어나기만 하니 스트레스에요 ㅎㅎ

Falstaff 2026-09-28 04:58   좋아요 0 | URL
책을 정말 버리려고 하면 어느 순간의 자극과 포기하는 용기가 필요하더라고요.
저는 한 순간, 과연 이것들 가운데 다시 읽을 책이 몇 권이나 될까, 이런 생각이 들었고, 제일 중요한 건 넘치는 책장이 한 순간에 꼴 보기 싫어졌습니다. ㅎㅎㅎ

잠자냥 2026-09-28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위험한 책> 읽고 있다더니 이 냥반이... 책을 다 버리네! ㅋㅋㅋ

<퍼레이즈 엔드> 살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너무 비싸서 안 샀지만...) 안 사길 잘했군요....
저한테 저기서 딱 한 권만 가져가라면... <압살롬, 압살롬> 고를 거 같은데!
그걸 버리시네!

Falstaff 2026-09-28 18:57   좋아요 0 | URL
<위험한 책> 생각보다 괜찮더군요. 게다가 무척 짧기도 하고 말입죠.
장왕록 <압살롬, 압살롬>은 금속활자 본에 글씨 크기가 작습니다. 21세기 사람이 읽으려면 쉽지 않을 듯합니다.

잠자냥 2026-09-29 10:25   좋아요 0 | URL
<위험한 책>... ㅋㅋㅋ 책에 관한 집착을 내려놓게 하는 데 일조하는 책입죠....
근데 이걸 오래전에 읽어서 다 까먹고는 제가 여전히 책에 집착하고 있는가 봅니다.
 
맨 끝줄 소년
후안 마요르가 지음, 김재선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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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안 마요르가는 5년 전에 두 편이 실린 희곡집 《비평가 / 눈송이의 유언》으로 처음 만났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설마 우리말로 인사했을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미 정치적으로 웬만큼 민주화되고, 옛 시절의 악연마저 어느 정도 수습을 한 상태에서 등장한 스페인 86세대는 우리나라와 달리 다양한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구나. 거 참 부럽네. 프랑코 개자식들로부터 그들의 파시즘을 전수받지 않을 수 있었으니 지금 권력을 잡았을 스페인 86세대들은 마드리드에 있는 대통령 궁에서 여전히 죽창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느라 목에 핏대를 세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아니 부러운가.

  마요르카는 이제 달랑 두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좋다. 이제 도서관에서 POD 책은 사 주지 않겠다고 하니, 악마같이 비싸게 책값을 책정하는 지만지드라마의 희곡을 사 읽을 수도 없고, 도서관에다 사달라고 할 수도 없어 앞으로 마요르가의 다른 작품을 읽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아쉽지만, 세상에 아쉬운 일이 하도 쌔고 쌔서 뭐 그런가보다 하고 살아야지 별 수 있간디?


  책을 열면 제일 먼저 작가가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글이 들어 있다.

  자신은 한 번도 한국의 교실과 가정에 가보지 않았다는 것으로 시작해, 전제가 한국의 교실과 가정이 아마도 스페인과 다르면서도 비슷하리라, 만남과 헤어짐, 화합과 갈등이 벌어지는 공간이라고 추측한다. 근데 이거 조금 아니지 않은가?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생활해본지 하도 오래라서 라떼와도 다르겠지만 여전히 지금의 한국 교실과 서유럽의 교실은 거의 딴 판으로 다르지 않을까 싶다. 근데 한 편으로는 조금 안 좋은 쪽으로 교실 역시 세계화되어 거기가 거기일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래도 스페인의 고등학교 교실 분위기가 오직 대학입시에 초점이 모이는 우리나라 교실하고는 많이 다를 것 같은, 아니면 말고.

  후안 마요르가는 스페인 국립연구원, 파리와 베를린의 뮌스턴 대학, 국립원격교육대학 등을 거쳐 긴 가방끈을 가졌지만 중고등학교 교사 생활도 제법 하는 바람에 당시 한 학생과의 작문에 얽힌 기억으로 <맨 끝줄 아이>를 썼다고 한다. 수학 교사였는데, 시험 볼 때, 한 학생이 답안지에 이렇게 썼다나?

  “선생님, 저는 공부를 하지 않아서 문제를 전혀 풀 수가 없어요. 하지만 최근에 저는 테니스를 아주 잘 쳐서 일요일에는 마르카 스포츠 신문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나갔어요. 등등.”

  이때 마요르카가 얻은 힌트. 학생이 시험시간의 시험지/답안지를 통해 자기 이야기를 교사한테 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


  <맨 끝줄 소년>은 말 그대로 학급의 제일 끝줄에 앉은 클라우디오라는 이름의 가난한 학생을 말한다. 수학과 과학 실력이 돋보이는 반면 철학과목에서는 비실비실하다. 같은 반에 라파라는 애칭의 부잣집 아들이 있었는데 얘는 또 철학 점수는 좋지만 수학은 거의 까막눈 신세다. 그래서 클라우디오는 라파는 서로 모자란 과목을 보충해주면서 함께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합의한다. 공부할 장소는 물론 훨씬 잘 사는 라파의 집이 되겠지.

  이 두 아이를 가르치는 작문 또는 국어 교사가 헤르만. 헤르만은 요즘 학생들의 작문 실력에 거의 절망을 하고 있던 터. 주말 이틀 동안 있었던 일을 써보라는 콩트를 냈는데 거의 다 이런 식이다.

  “토요일에 나는 테레비를 봤다. 일요일에는 피곤해서 아무것도 안 했다.”

  딱 두 문장. 30분 동안에 메꾼 답안지. 이런 답지도 있다.

  “난 일욜이 실타. 토욜은 좋다. 하지만 이번 토욜에는 아버지가 나가지 못하게 하고 핸드폰을 빼섰다.”

  교사라는 직장인으로 헤르만은 절망할 수밖에. 그런데 갑자기 눈앞이 훤하게 밝아지는 답안지가 있었으니 바로 클라우디오 가르시아가 쓴 작문이다.


  “토요일에 난 라파엘 아르톨로 집에 공부하러 갔다. 그 아이디어는 내 머리에서 나왔다. 왜냐하면 오래 전부터 난 그집에 들어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략) 라파에게 돌아가려고 할 때 어떤 향기가 내 주의를 끌었다.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자의 향기다. 그 향기에 이끌려 난 거실까지 가게 되었다. 거기서, 소파에 앉아 인테리어 잡지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이 집 여주인을 발견했다. (후략)”

  상당한 글솜씨의 고등학생. 헤르만은 속으로 ‘아주 만족!’을 외치고 있었을 터. 그는 진짜 오랜만에 기쁨이 터져 마침 옆에 앉아 있는 아내 후아나한테 답지를 건네고 읽어보라 권한다.

  후아나는 불편하다. 남편한테 말한다.

  “나라면 이 글을 교장한테 가져가겠어.”

  친구의 엄마를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인의 향기”라고 하는 등 글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을 비웃고 있다면서. “얘는 도대체 자기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왜, 교실에서 큰 소리로 읽히고 라파가 그 친구 뺨을 한 대 갈기는지 보지 그래?”

  이젠 더 열을 받았는지 작문 교사인 남편 헤르만까지 볶는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남자 아이 열일곱 살. 내가 여자였던 적이 없어서 열일곱 살 먹은 여자 아이는 모르겠고, 남자애 열일곱이면 이게 말이 청소년이지 거의 완전한 성인이다. 백년 전만 해도 전쟁 터지면 제일 먼저 지원해 참전했다가 죽거나 평생 불구가 되어 돌아올 아이들. 열일곱 살이면 친구의 엄마일지언정, 그녀에게 욕정만 품지 않는다면, 사실 나이 든 엄마뻘 여성에게 욕정을 품는 소년은 내 평생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드물지만, 하여간 그렇기만 하면 친구 엄마 가까이에서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인의 향기” 운운한 게 뭐가 문제인지, 나는 모르겠다.

  게다가 클라우디오는 겁나게 가난한 집의 아이로, 집안에서는 식용유 찌든 냄새, 고기의 비계 냄새, 뭔가 희미한 부패 향기와, 빼놓을 수 없는 곰팡이 냄새에 익숙할 터, 새롭게 환한 비누와 세제와 분과 비싼 데오도란트 향기가 넘실거리면 얼마든지 그렇게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여간 나는 헤르만의 아내 후아나의 발언을 통해 이이의 전작 가운데 한 편인 <비평가>가 저절로 떠오르더라니까.

  그런데 후안 마요르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이런 비평 또는 검열 한 가지가 아니었다. 작품을 읽어가다보면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는 걸 알 수 있다. 헤르만은, 보통의 남편들이 그렇듯이, 아내의 의견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내한테 비슷한 의견이 나오지 않을 쪽으로 아이를 지도하게 되고, 아이 클라우디오는 이런 선생 헤르만에게 반발하기 시작한다.

  근데 여기까지는 후안 마요르카가 “한국의 독자에게”에서 밝힌 두 가지 공간 가운데 교사-학생의 관계만 이야기한 것이다. 하나가 더 남았다. 가정 속 이야기. 라파와 라파의 부모로 이루어진 공통체와 클라우디오의 갈등. 헤르만은 클라우디오가 라파와 계속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위하여 절대 하면 안 될 부정한 짓을 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뭔지는 알려드리지 않겠지만, 넷플릭스 TV 드라마 교권수호국인가 뭔가에서 나온다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커넥션, 비슷하기는 하지만 절대 대가 없는 커넥션도 등장한다.

  내 경우에는 많은 문제 제기 가운데 헤르만이 아니라 교사 사모인 후아나가 벌이는 작문에 대한 검열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당신은 어떤 이슈를 재미있게 읽을 지 모르겠다. 후안 마요르카, 이 65년 뱀띠 아저씨, 거 참 재미있게 쓰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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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라, 모세여 ㅣ 서커스 세계문학 시리즈
윌리엄 포크너 지음, 조호근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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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포크너의 중단편 <곰>은 두세 번? 서너 번? 읽은 거 같다. 그럼에도 <곰>이 윌리엄 포크너 스스로 연작 장편이라고 주장하는 《내려가라 모세여》의 일곱 중단편 가운데 다섯 번째 작품이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이제 새롭게 《내려가라 모세여》를 읽으니 <곰>이 1863년 1월 1일, 미국의 노예해방 이전, 그러니까 아무리 늦어도 1862년 이전부터 20세기 1940년대까지 아우르는 한 일가의 대하 가운데 한 편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읽힌다.

  작품의 중심지는 당연히 요크나파토파 지역과 제퍼슨 시.

  이 연작 장편을 읽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떠올렸다. 포크너가 없었으면 마르케스가 마콘도라는 가상의 지역 또는 마음의 고향을 만들 수 있었겠으며, 백년이 넘는 가계도를 이루는 <백년의 고독>을 생산해낼 수 있었을까? 있었겠지. 있었겠다고 믿기는 하지만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태까지 백범 작이라고 알았는데 사실은 서산대사 휴정이라는 중이 지은(지었다고 하는) 오언절구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今日我行跡 須作後人程“ 오늘 내 행적이 뒤에 올 사람의 발길이 되리라, 하듯, 포크너의 요크나파토파와 제퍼슨 시가 없었더라면 마르케스가 마콘도를 만들기도, <백년의 고독>을 쓰기도 쉽지 않았으리라 여길 수밖에 없다.

  아니, 어딜. 세상에 마르케스밖에 없나? 아마도 20세기 중후반부터 소설작업을 해 온 무수한 소설가 가운데 한 발짝 앞에 나서서, “나는 윌리엄 포크너의 그늘 덕을 조금도 받지 않았소!”라고 주장할 수 있는 작가가 몇 퍼센트나 될까? 서양 작가만 국한해 묻는 것도 아니다. 동양, 더 쉽게 한, 일, 중 세 나라의 잘 나가는 작가들도 포함해서. 오에 겐자부로? 모옌? 당연히 뛰어나고, 내가 존경하는 작가들이지만 이들 역시 포크너의 서늘한 그늘 덕을 전혀 보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걸 근거로 이렇게 얘기하는지 더 따지지 마시라. 방금 오에와 모옌한테 전화 걸고 이야기하는 중이니까.


  작지 않은 대하는 루시어스 퀸터스 캐러더스 매캐슬린이라는 남자로부터 시작한다. 제일 선대 사람. 그래서 ‘늙은 캐스’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작품 속에 살아있는 등장인물로는 나오지 않는다. 이이가 요크나파토파 소재 농장의 농장주. 생몰이 1772~1837. 평생 흑인 노예를 소유하고 살았던 전형적인 백인 농장주이지만, 숱한 작품에서 늘 보던 악랄한 백인 지주와는 비슷하지도 않았다. 나름대로 선한 인간형이랄 수 있는 농장주. 이이는 결혼해 아들 둘, 딸 하나를 두었으니, 쌍둥이 형제 시어필러스(애칭 벅)과 애머디어스(애칭 버디), 그리고 이름을 밝히지 않는 딸이었다. 이 가운데 벅이 다 늙어 낳은 아들 아이작 매캐슬린, 애칭 ‘아이크 삼촌’이 연작 장편의 가장 중심적인 축을 만드는 인물.

  늙은 캐스는 사랑 또한 넘치는 인물이라 아내 말고도 자기가 소유한 노예 여인 유니스 사이에 딸 토마시나를 만들었다. 토마시나 역시 당연히 노예였으며, 자기 딸인 줄 알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훗날 토마시나하고도 관계를 맺어 아들 터렐, 속칭 ‘토미네 털’을 두었다. 이 관계를 지금 21세기 시점으로 보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쇼킹이겠지만 미국 노예시대에 이런 일은 그저 있을 수 있는 경우에 불과했다. 물론 거꾸로, 즉 흑인 남자 노예와 백인 농장주의 부인과의 사이에 생식이 벌어졌으면 죽고 사는 참극이 수반되었겠지만 하여간 그때는 그랬다는 거.

  그래서 늙은 캐스의 아들이기도 하고 손자이기도 한 노예 토미네 털이 첫 작품 <옛 일>의 중요한 등장인물이 된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토미네 털은 쌍둥이 형제 벅과 버디 삼촌네 노예. 근데 족보로 보면 배 다른 형제이자 조카. 형제라고 하면 나이 차이가 무려 서른네 살. 늙은 캐스는 벌써 주님의 안식을 찾아 떠난 시절이고, 토미네 털은 바야흐로 청춘시기를 맞아 불타오르는 심정으로 또다시 농장에서 탈출을 해버렸다. 근데 이게 습관적 탈출. 쉬운 얘기로 자유를 찾기 위한 도망이 아니라 DNA의 명령에 따라 세상에 둘도 없는 짝을 찾아 이웃한 농장의 노예 아가씨 테니 비첨의 방향芳香, 일종의 페로몬을 찾아 가는 거였다. 벅과 버디 삼촌도 토미네 털이 어디로 간 줄 다 아니까 별로 서둘지도 않고 털을 찾아 나서는데 이번에는 연작 장편의 첫 작품이 되려니까 이 수순이 결코 호락호락 넘어갈 수는 없겠지? 그리하여 노예 아가씨 테니의 주인과 벅, 벅이 쫄리니까 나중엔 버디 삼촌까지 나서서 크게 한 판 도박을 벌이는데, 이게 영 재미있더라는 말이지.


  물론 재미로 치면 첫 작품 <엣일>보다 두번째 작품 <불씨와 화덕>이 한 수 윗길이다. 즉, 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보면, 이거 뭐 읽을수록 점입가경, 점점 더 흥미의 수준이 높아가니 그저 즐거울 수밖에.

  제목이 <불씨와 화덕>인 것은, 흑인 노예들이 시집 장가가서 거의 관습적으로 해야 했던 것이 화덕에 불씨를 붙이면 죽음이 갈라놓아 둘의 혼인상태가 해체될 때까지 화덕에서 불씨를 꺼뜨리지 않아야 했던 것을 빗댄 거다. 뭐 굳이 미국의 흑인 노예들만 그랬을까. 우리나라에서도 여성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아궁이의 불씨를 보존하는 거였다고 최명희의 미완성 명작 <혼불>에서 나온다. 나 어려서도 외숙모가 연탄불 꺼트리면 외갓집 특히 여성 구성원들의 뒷담화가 찬란무비했던 기억이 난다. 그건 그거고. 사실 그건 그게 아니라 결국 화덕에서 불씨를 꺼트리는 일까지 몽땅 나오기는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다.

  앞의 작품 <옛일>에서 중요한 조연이었던 토미네 털이, 벅과 버디 삼촌의 맹활약 덕분에 테니 비첨을 아내로 얻고, 심지어 매캐슬린 농장의 노예로 데려올 수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나 이 노예 부부 사이에 아들-딸-아들이 생겼으니 막둥이 루카스 퀸터스 캐러더스 매캐슬린 비첨이 <불씨와 화덕>에서 찬란한 주인공이자 설레발꾼이자 포복절도의 사기꾼, 아니, 똘똘이 스머프로 등장한다.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똘똘이 스머프.

  루카스의 아내 이름은 몰리. 둘 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노예제도는 사라진 시절이었다. 어엿한 자유인. 그러나 흑백 차별의 유구한 전통이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던 시절. 아다시피 루카스는 저 꼭대기 할아버지 캐러더스 매캐슬린, 캐스 노인과 노예 여성 사이에서 이룬 가계이다. 백인 아내로 이어진 가계 가운데 남자 항렬, 쉽게 말해 매캐슬린 가계는 벅과 버디 삼촌에 이어 벅의 아들 아이작 매캐슬린에서 끊기고, 이름도 나오지 않은 딸 하나가 에드먼즈 가문으로 시집가 손자 재커리를 낳았는데 이이가 주인공 루카스와 동갑내기였다. 1898년에 재커리 애드먼즈가 아들을 얻었지만 난산 끝에 아내가 죽어, 루카스의 아내 몰리, 그리고 몰리가 낳은 루카스의 아들을 집에 데려와 젖어미 역할을 하면서 두번째 명품 익살극을 시작한다.


  루카스 입장에서 아무리 흑백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거 너무한 거 아냐? 애먼 마누라가 백인 아들을 돌본다는 핑계로 젊은 농장주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 살고 있으니 눈이 돌아가는 건 당연하다. 루카스가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물론 매캐슬린 가문의 훈훈한 가풍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노예 해방과 동시에 선대 매캐슬린은 흑인 피가 흐르는 후손들에게도 결코 적지 않은 재산을 남겨 주어 제퍼슨 시내에 있는 은행에 만만하지 않은 현금을 보관중이건만 절대 있는 척을 하지 않는다. 아, 이건 나중 일이긴 하다. 거기까지는 이야기하지 못할 거 같으니 그냥 그런 줄 아시면 되겠다.

  루카스가 열을 받아 백인 조카(뻘)에게 달려가 아내 몰리를 데려왔는데, 이때 젖먹이 홀로 홀아비한테 맡겨 둘 수 없어 함께 데려왔으니, 얘 이름이 로스인데, 아이가 점점 커짐에 따라 이집 저 집을 다니며 함께 자기도 하고, 먹는 건 물론이고, 장난도 치고, 뭐 그렇게 컸겠지? 커가면서 사달이 없을 수 없었을 테니까 점점 흑인 아저씨, 사실은 할아버지 항렬 댁에는 점점 뜸해졌을 것이고, 아버지가 죽어 이제 자기가 후대 농장주가 되었으니 아무래도 루카스하고는 좀 멀어지기는 했을 터. 그래도 자기를 키워준 몰리 할머니와의 정리 때문에 매사 야박할 수도 없었을 건 안 봐도 뻔하다.

  루카스도 나이를 먹어 이제 벌써 육십대 중후반에 이르러, 막내딸 넷을 시집보내야 할 처지. 넷이 벌써 1923년생, 그간 세월도 무척 많이 갔다. 하지만 나이로는 자식 뻘, 족보로 보면 증손 또는 손자 뻘인 로스 에드먼즈가 여전히 루카스더러 ‘자네’라고 부를 정도의 시절임을 감안하자. 그렇다고 로스가 악당? 천만의 말씀. 당시 시선으로 (내가)보면 세상에 그런 백인도 별로 없었을 듯. 더군다나 KKK가 난무했던 1930년대 미국 남부에서. 넷이 다 커서 시집을 가야 할 거 아녀? 그리하여 조지 윌킨스라고 하는 흑인 남자를 골랐는데, 당연히 여기서 문제가 터진다. 1930년대 금주령 시절. 조지가 완전히 질 낮은 옥수수 위스키를 만들어 팔려고 시도하는 것. 여태까지 루카스가 지역에서 독점하고 있던 사업인데 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는 사위짜리를 혼내기 위하여 자기 증류기를 땅에 숨기고 신고를 하려 마음을 먹어, 캄캄한 밤에 진흙 땅을 파다가 뭔가가 손에 잡혀 이게 뭘꼬, 쳐다보니까 글쎄 금화였던 거다. 분명히 누군가가 이 근처에 금화가 잔뜩 든 자루 또는 궤짝을 땅 속에 묻어 두었다고 여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그걸 찾아야 하고, 제일 빨리 파내기 위해서는 최첨단 금속 탐지기가 필요할 터.

  3백 달러에 이르는 금속 탐지기를 손에 얻는 스토리를 읽으면서 얼마나 웃었든지, 윌리엄 포크너가 이렇게 희극적으로 재미있어도 되는 거야?

  그런데 사실 이런 희극 또는 익살극은 이 두 편이 전부이고, 포크너 특유의 스토리 텔링은 새롭게 시작하니 특별히 당신이 인상깊게 읽었을 명작 <곰>을 기억하면서 연작 장편을 읽으면 첫 작품 <옛일>부터 전작을 관통하는 대하를 짐작하실 수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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