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스필드 파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6
제인 오스틴 지음, 김영희 옮김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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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찾은 제인 오스틴. 이제 <이성과 감성>만 읽으면 대충 알려진 오스틴은 다 읽는 셈이구나. 그건 까치밥처럼 좀 내버려 둬야겠다. 한 작가의 작품을 싹 읽어버리면 섭섭하다. 비록 오스틴이 잉글랜드 국가대표 소설가 4인방으로, 조지 엘리엇, 조지프 콘래드, 헨리 제임스와 함께 제일 맏언니/누나로 꼽히는 인물이지만 나와는 좀 맞지 않는 구석이 있다. 그냥 착하고 예쁜, 절대로 빼어나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수수한 수준은 확실하게 넘는 예쁘고 젊은 아가씨의 연애 성공담이, 그것도 19세기 초를 무대로 하는 구식 연애 이야기가 21세기 독자한테 그리 화끈하게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근데 확실한 건, 19세기 독자들이 읽었다면 정말 재미있고 흥미진진했을 거라는 점. 모르긴 하지만 당시 수준으로 치자면 막장 드라마였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의 재미있음. 이건 인정하지 못하겠다. 달리 잉글랜드 국가대표 소설가라고 하겠느냐고. 특히 선역이건 악역이건 간에 등장인물의 심리묘사 같은 건 확실히 돋보인다. 이 책도 마찬가지. 주인공 패니 프라이스 양이 바람둥이인줄 뻔히 아는 헨리 크로퍼드 씨가 청혼할 때, 처음엔 당연히 거세게 거절했지만 점차 혹시 저이가 정말로 마음을 착하게 먹기로 결심을 한 건 아닐까, 마음이 왔다 갔다 망설이는 수준까지 진전되는 과정이 거 참, 그럴 듯하다는 말이지.

  변죽 울리지 말고 드라마 이야기로 곧장 넘어가자.


  옛날, 옛날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 저 유라시아 대륙 서쪽 끝의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아직 바스티유 감옥이 멀쩡하던 1780년대 초반에, 바다 건너 그리 크지 않은 잉글랜드라고 하는 섬나라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헌팅던이라는 마을 워드 첨지댁엔 저절로 아우라가 펼쳐지는 것처럼 아름다운 세 자매가 살았으니 첫째는 맏이라 그냥 워드 양이라 부르고, 둘째가 물론 눈썹 하나 정도의 차이지만 제일 예쁜 마리아 양이었으며, 막내가 둘째와 비교해도 아쉬울 것 없는 미모의 프랜시스 양이었다. 근데 이 나라에서 혼인이라는 경사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상대 집안이 동산, 부동산이 얼마나 많은 가문이며, 혼인 상대자가 남자라면 얼마나 많은 재산과 만일 작위 같은 것이 있다면 그걸 물려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제일 중요했고, 여자일 경우에도 외모의 아름다움보다 친정에서 가져올 수 있는 소위 지참금이라고 일컫는 현금이 얼마나 많은지 여부였다. 워드 첨지 댁이 제일 아름다운 둘째 딸 마리아에게 줄 수 있는 재산이 7천 파운드 정도였는데, 그만하면 아주 상급 부르주아라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시골 향사, 소위 젠트리 계급에서는 웬만큼 방귀 좀 뀐다, 하는 수준이었겠다?

  지나던 길에 우연히 마리아 양을 한 번 보고 넋이 나가버린 노샘프턴 카운티에 있는 맨스필드 파크의 젊은 주인장인 토머스 버트럼 경이 그만 오금이 저려와 단박에 청혼을 해버리고 말았다. 토마스 경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근사한 저택과 대단한 수입으로, 비록 정식 귀족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준남작에 하원의원이었지만, 워드 가문 입장에서는 쉽게 넘겨다볼 수 없는 높으신 양반이었던 것. 혼인만 했다하면 마리아 양은 단박에 남작부인 반열에 올라 평생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건 당연하고, 물 한 방울이 뭐야, 손끝 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집안일까지 착착 알아서 돌아갈 정도라, 감히 청혼을 거절할 계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마리아 양이 빼어난 미모를 가지기는 했지만 천성이 태평하고 게으르기 짝이 없으며 세상에 오직 자기 하나만 아는 인간이었는데, 혼인을 통해 팔자가 펴자마자 천성이 저절로 발전, 진화해, 하는 일 없이 그냥 자식만 넷을 쑥쑥 뽑아냈다. 맏이가 아빠 이름을 물려 받은 톰. 엄마처럼 무사태평에 낭비벽이 심해 일찌감치 속을 썩였지만 그래도 책에서는 남녀상열지사에 관한 한 어지럽지는 않았다. 둘째가 에드먼드인데 이 아들이 부처님 가운데 토막. 이튼을 거쳐 옥스포드를 졸업하고 둘째아들 답게 군인이나 성직, 적과 흑 가운데 성직을 택해 성공회 목사가 될 예정. 셋째와 막내가 딸 마리아와 줄리아. 둘 다 굉장히 이기적이고 자기 마음먹은 대로 하지 못하면 잔뜩 골을 부리는 철딱서니들. 짐작하시겠지?


  워드 집안의 다른 딸로 말할 것 같으면, 맏이 워드 양은 둘째 마리아가 버트럼 부인이 되고 6년이 지나 돈 한 푼 없는 노리스 목사와 오직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로 혼인을 감행했다. 이를 불쌍하게 여긴 마리아의 남편 토머스 경은 맨스필드 교구의 성직록(이거 설명하자면 복잡하니 그런 게 있구나 하는 수준에서 넘어가자)으로 노리스 부부에게 연 1천파운드의 수입을 보장해주어 아주 넉넉하지는 못해도 그냥저냥 당시 잉글랜드 향사 수준에서 남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었으나, 아쉽게도 무자식상팔자의 즐거움까지 누리게 됐다. 혹시 모르지. 슬하가 비어서 그나마 괜찮은 복지를 누리며 살 수 있었는지도. 그러나 이런 자잘한 행복도 잠시. 노리스 목사가 덜컥 병이 들어 몇 년 지나지 않아 과부가 됐으며, 여태 살던 목사 사택에서도 계속 살 수 없어 동생 집 가까운 곳 자그마한 집을 얻어 그곳에 머물며 1년 365일, 하루에 적어도 열 두어 시간 동안 맨스필드 파크에서 노닥거리며 밥도 먹고, 동생 옷도 얻어 입고, 석탄도 조금씩 꿍치면서 무진장 빈대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원래 강퍅한 성질도 있었지만 생활의 손톱에 할퀴어 점점 성격이 모질어진 늙은이로 변해갔으니 이이도 불쌍한 인간…이라고? 웃기는 이야기. 세상에 생활의 손톱이 노리스 여사한테만 할퀴고 지나가는 거야? 원래 성질 머리가 못된 사람이지.

  막내 프랜시스 양은 맏언니 노리스 부인보다 훨씬 못한 남자를 만나 혼인해 해군 정박지가 있는 포츠머스 부근으로 이사했다. 이때 토머스 경은 노리스 목사한테 베풀었듯이 해병대 소속 프라이스 대위한테도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생활에 도움이 될 정도의 지원을 하려고 했으나, 준남작 경과 해병대 대위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서 관련자에게 경의 신분으로 한낱 대위의 복지를 부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느냐 하면, 준남작 경 입장에서 자신의 지위, 도리, 자존심상 체면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런데 프랜시스 양, 이젠 프라이스 부인이 열을 받겠어, 안 받겠어? 포츠머스로 이사한 프라이스 부인은 이후 두 언니하고는 딱 연을 끊어버리고 어영부영 11년을 살았다. 프라이스 부부가 금슬이 좋아서 그랬는지, 썩어도 준치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상을 당해 현역 복무 불가능 판정을 받아 제대해 거의 알코올 중독자 수준이 되었건만 그래도 해병대 출신이라 체질이 더할 나위 없이 건강체질이라서 그랬는지 프라이스 부인의 배에 아홉 번째 아이가 자리를 잡고 얼마 안 있어 막 밀고 나올 거 같았을 때,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던 프라이스 부인 프랜시스는 두 언니한테 절절한 편지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두 언니가 편지를 읽어보니 그동안 자기들 한테 한 행실은 괘씸하지만 글자 한 자, 한 자가 어쩌면 그렇게 눈물이 앞을 가리게 썼는지 화해를 해줄 수밖에 없었고, 이제 나올 아이의 후원자가 돼 달라는 프랜시스의 간청 대신 둘째 아이이자 맏딸인 작품의 주인공 패니를 데려와 보살피겠노라 일렀다.

  이런 제안은 노리스 부인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사실 패니를 데려와 레이디 버트럼의 말벗 또는 몸종 비슷한 용도로 데리고 있으려는 것이었다. 이제 누가 패니를 돌볼 것인가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이때는 아직 노리스 부인이 과부가 되기 전이었는데, 원래부터 떠들고 일을 꾸미는 한에서는 자애롭고 후하게 베풀며 지시하는 데 능하지만, 누구보다 돈을 좋아하고 친지들의 돈을 쓰는 법과 자기 돈을 아끼는 법을 잘 아는 부인인지라, 자신은 남편의 통풍 치료 때문에 아이를 맡을 능력이 없다고 한 마디로 패니를 맨스필드 파크에 떠넘겨버리고 만다. 아니, 마는 건 아니고 시시때때로, 주야장천 맨스필드에 머물면서 눈에 패니가 들어올 때마다 타박하고, 구박하고, 잔소리하고, 하여간 때리는 것만 빼놓고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을 다 해대는 못된 중년이었다가 못된 늙은이로 변해간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주인공 패니 프라이스 양이 갓 열 살이 되어 저 거친 해군들의 천국이자 해군 함정의 집합소였던 병영도시 포츠머스에서 꼬박 1박 2일 동안 마차를 타고 맨스필드 파크에 도착하게 되니 모두 3부 48장 가운데 이제 1부 1장과, 2장 초입까지 끝났을 뿐이다.

  패니 프라이스 양을 소개하자면, “사람을 사로잡을 수는 없어도 크게 거스르는 점도 없는 소녀.” 그냥 평범하게 착한 아이라는 뜻이겠지. 나이에 비해 작은 편이고 빼어나게 예쁜 구석도 없다지만, 아직 덜 자라 앞으로 어떻게 변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을 눈치 빠른 독자는 벌써 알아챈다. 무엇보다 해병대 대위 출신 퇴역자 집안의 아홉 아이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행동거지가 어색하기는 해도 상스럽지 않고, 목소리도 곱고 말하는 표정이 귀여웠단다. 간단하게 말해 꿔다 놓은 작은 보릿자루. 그러나 아이를 맞는 버틀럼 가족들은, 속셈이야 어떻건 간에 겉으로 보면 잘 생기고, 용모 빼어나고, 잘 먹고 운동 많이 하고 잘 자니 심신 발달 상태 훌륭하고 사람 응대하는 솜씨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 이때 셋째이자 맏딸 마리아가 12세, 막내 줄리아가 11세. 맏이 톰과 둘째 에드먼드는 각각 17세와 16세. 근데 에드먼드가 성격이 참하다는 거지? 패니하고 여섯 살 차이네? 흠. 오스틴 좀 읽은 독자는 첫눈에 알아본다. 결국 에드먼드와 패니의 연애가 이야기의 줄기가 되겠군 그래. 설마. 그렇게 뻔한 스토리일 리가 없지. 그래도 제인 오스틴인데. 그랴? 정말? 뭐 첫 느낌이 그랬다는 거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지긋지긋한 건, 첫째가 돈 타령. 누가 누구를 어떻게 사랑해서 결혼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남자 또는 상속받은 남자가 내 남편이 될 수 있는지, 내 아내가 될 여자는 얼마나 많은 지참금을 가져올 수 있는지에 제일 커다란 방점을 찍는 거. 그걸 읽는 일이었으며, 둘째가 3부 앞 장면의 가장 큰 스토리로, 징글징글하게 싫어도 청혼을 단칼에 거절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상대가 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지도 말하지 못하는 고구마 백 개였다. 이 두가지 빼면 나머지는 19세기 초엽에 쓴 작품이라 넘길 수 있을 정도. 하긴 내가 고른 두 가지도 당시 작품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수 있지만, 고구마 정도가 하도 심해 굳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게 된 건지 모르겠다.

  제인 오스틴, 하여튼 재미있다. 이번 달엔 어떻게 마음에 드는 작품을 별로 읽지 못해 괜히 시간만 버린 거 같은 생각이 들던 차에 제인 오스틴의 옛 노래 한 곡조 들으니 속이 다 뻥 뚫리는 느낌. 그래. 언제나는 아니지만 클래식이 좋기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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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6-08-14 0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저 요즘 「이성과 감성」읽고 있는데, 폴스타프님이 안 읽으셨다니 놀랐네요. 😅 아주 예전에 민음사 판으로 읽었는데 엘리에서 나온 걸로 다시 읽어 보고 싶어서 읽고 있답니다. 이 책도 돈 얘기 많이 나오고 역시 고구마 100개입니다.ㅋㅋ 특히 별 매력도 없는, 남주3인방이 속을 터지게 하네요 ㅋㅋㅋ

Falstaff 2026-08-14 07:42   좋아요 1 | URL
이 양반 책이 재미있기는 한데, 너무 로맨스 이야기만 하는 바람에 확 읽어버리게 되지는 않더구먼요. 아이구... <이성과 감성>도 그렇다는 말씀이지요? ㅋㅋㅋ

건수하 2026-08-14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스필드 파크>가 두꺼우면서 제일 재미가 없었던 기억입니다. 그러고보니 제인 오스틴을 많이 읽어서 제가 <불필요한 여자> 읽으면서 돈 생각했던 것 같아요... - -; 생활은 현실이죠 암...

Falstaff 2026-08-14 19:38   좋아요 0 | URL
앗, 이 책이 제일 재미없는 오스틴이었습니까? ㅎㅎㅎ 저도 본문에 썼다시피 돈하고 고구마 때문에 애 좀 먹었는데, 전 <노생거 사원>이 도무지 적응하기 힘들더라고요.
<불필요...>가 여기서 등장할 줄은 미처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그럴 듯합니다. 맞지요, 생활이 삶의 대빵입니닷!

건수하 2026-08-15 00:56   좋아요 0 | URL
<노생거 사원>은 좀 실험적인 느낌이라 (그때 그런 장르 소설들이 유행했다고 해요) 그런가보다 했는데 <맨스필드 파크>는 그것도 아니면서 두껍고 두께에 비해 재미가 없었어요. 역시 재미는 <오만과 편견>이 최고였고 의외로 <엠마>도 꽤 재미있었습니다 :)

다락방 2026-08-26 11:59   좋아요 0 | URL
전 제인 오스틴은 <설득>이 1등, <에마>가 꼴등입니다!

아직 맨스필드 파크 안읽었지만요.. 흠흠.
 
도롱뇽의 49재 - 2024 제17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아사히나 아키 지음, 최고은 옮김 / 시공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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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은 계기. 일본 현대 소설은 참 안 읽는다는 생각이 팍 들었음. 그러면 우리 현대 소설은 좀 읽니? 안 읽는 편은 아니다. 중국 현대 소설은 제법 읽는다. 유독 일본 작품에 인색한데, 다 이유가 있다. 도서관 서가에 꽂힌 일본의 소설책은 어떻게 고를 때마다 좀 이상하다. 수사, 폭력, 추리, 엽색 아니면 좌절의 극치 같은 거라 읽다가 그냥 덮은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장르 소설이 아니더라도 나하고 유난히 맞지 않는 책이 많다. 분명히 일본의 요즘 작가 중에도 괜찮은 사람이 꽤 있을 텐데 어째 눈에 띄지 않는 거다. 그래서 잔머리 굴리기를, 일본에서도 권위 있다고 하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작품이라면 현대 일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안고 처음 빌린 책이 <헌치 백>. 읽고 아직 한 달도 안 됐건만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조건 삼세판. 이번에도 아쿠타카와 수상작을 골랐으니 바로 <도롱뇽의 49재>, 눈물겹지?

  아사히나 아키. 朝比奈秋. 성이 朝比奈. 이름은 가을秋. 1981년 일본 교토에서 출생한 의사. 전공은 소화기. 불 끄는 소화기 말고, 식도부터 저 아래 항문까지 인간과 우주가 직통하는 유일한 관을 다 고치려고 하는 의사다. 지금은 전업의사로 일하면서 짬이 나면 소설도 쓴다. 근데 아마 의사보다 소설가로 더 유명할 걸?

  이이는 자기 나이와 의사라는 거, 소설 써서 상 받았다는 거 빼고 전부 비공개다. 심지어 인터넷의 어느 자료를 보면 “그녀는”이라고 해서 윽, 가을秋가 여자 이름이야? 하고 사진을 유심히 보면, 여자인 것도 같고, 남자인 것도 같아 막 헷갈리다가 수상 내역을 읽어보니, 일본 역사상 순수문학 신인상 트리플 크라운을 이룬 최초의 남자 작가란다. 그럼 남자 맞겠지 뭐.

  작가의 젠더가 이 책에서는 은근히 궁금하다. 책 읽을 때는 그랬는데 검색해보고 현직 의사라는 걸 알고 나니 허탈. 그럼 젠더를 알 필요도 없었네. 왜냐하면, 의학적으로 매우 드문 케이스의 일란성 쌍둥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 전, 하마기시 집안의 며느리 쓰와코가 아이를 낳았다. 첫 아들. 경사났다. 시절이 시절이었으니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자. 건강하고 통통한 보통 체격의 사내 아이 가쓰히코(남자 아이 이름이 ‘코子’로 끝나? 거 참). 하여간 첫 아이 덕에 하마기시 부부는 보통의 신혼가정처럼 행복했다. 그러나 이것도 불과 몇 주. 몇 달이 지나면서 아기의 팔 다리가 점점 여위고 눈도 움푹 패인 것이 영 조짐이 좋지 않았다. 아이를 들쳐 업고 병원에 가서 조사를 해봤더니 생후 6개월 아이가 완연한 영양실조 증상을 보이는 거다. 골밀도까지 감소해 입원조치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거 같아서 일단 입원을 시키고, 혹시 위장에 문제가 있을지 모르니까 위 내시경 검사도 했다. 다 큰 어른도 힘들어 하는 내시경을 6개월 아이가 하려니 얼마나 고생이 심했을까. 근데 별 이상이 없다. 여기서 반전.

  아이의 위에서 내시경 관을 꺼내지 않고 그냥 관찰을 계속하던 의사가 오른쪽 위벽이 조금 부풀어 오른 것을 발견했다. 저게 뭐지? 여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현상이다. 의사는 즉각 X선 검사를 지시했고, 검사 결과 그건 위장 오른쪽 빈 복강에 낯 익은 작은 뼈들이었다. 마치 열빙어처럼 생긴 뼈들. 일식 집에 가면 안주로 내주는 시샤모. 그것처럼 생긴 작은 뼈를 자세히 보면 등뼈도 있고, 둥근 두개골도 있고, 골반 비슷하게 생긴 것도 있다. 아오. 아이 몸 안에 다른 태아가 자리잡고 들어 있는 거였다. 이를 ‘태아 내 태아’라고 하며, 나도 이런 현상이 아주아주 드물게 일란성 쌍둥이 여아에게 있는 줄 알았는데 남아 일란성 쌍둥이 몸 속에 들어 있는 거다. 이 태아 속 태아는 벌써 세상 구경을 한 형제의 몸 속에서 형제의 몸에 있는 산소와 영양분을 빼앗아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니 가쓰히코는 날이 갈수록 비쩍 말라갈 수밖에. 의사는 당장은 곤란하고 조금 더 자라게 내버려둔 다음에 태아 속 태아가 바깥 세상에서도 생존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후에 외과수술로 적출해 인큐베이터에서 더 성장시킨 후 퇴원,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조치했다. 그 아이 이름은 와카히코.

  그런데 당시 가쓰히코 몸 안에, 정확하게 말하면 이번엔 왼쪽 옆구리에도 다른 낭포가 존재했었다. 그러나 척추, 손가락뼈, 안구, 머리카락, 이만 남기고 나머지는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거나, 가쓰히코에게 흡수당했을 거라고 의사들은 추측했다. 그걸 몸에서 뺐는지 그냥 내버려두었는지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태아를 품고 있던 태아 가쓰히코는 자기가 품었던 와카히코 때문인지 평생을 빌빌거리며 살았다. 물론 신체 건강의 측면에서 보면 그랬다는 말이다. 유아기 때 치명적 영양손실이 평생을 갔을까? 하여간 5년에 한 번씩은 대학병원에 장기 입원하는 사이클을 갖고 살면서도 대학의 철학 교수까지 역임하다가 책 중간 조금 지나 명이 다해 간다. 반면 와카히코는 엄마 배 속에서 열 달, 형 배 속에서 열두 달, 인큐베이터 속에서 또 몇 달을 지내서 그런지 만사가 여유만만하고 태평인 심성을 가져 덩달아 몸도 아주 건강하다. 가쓰히코와 달리 머리 쓰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지 회사택시를 운전한다.

  두번째 일은 와카히코 부부한테 벌어진다. 이들은 정상적으로 혼인하고 임신해서 딸을 낳았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딸들을 낳았던 거였다. 두 딸은 가쓰히코와 와카히코처럼 한 명 속에서 다른 한 명이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샴 쌍둥이처럼 몸이 붙은 상태였다. 붙기는 붙었으나 거의 정확하게 결합해 각각 신체의 반을 소유하는 형태. 작가는 이를 “완전 결합 쌍생아”라고 표현했다. 야누스. 일본만화 <마징가 Z>의 악당 주인공 아수라 백작 비슷하다. 겉으로 보면 한 몸이지만 왼쪽과 오른쪽에 각기 다른 인격이 들어 있다. 뇌도 당연히 다르고 시각, 시력도 다르다. 일란성 쌍둥이지만 임신 상태에서 합체하는 과정에서 비틀렸는지 어깨를 봐도 오른쪽은 굽어 있고 왼쪽은 솟아 있다. 두 몸이 하나로 합친 것이니 골격이 일반 사람보다 크고, 두툼한 몸을 가지고 있다.

  자세하게는 묘사하지 않았지만 두개가 있는 장기도 있고, 하나이지만 상대적으로 엄청 큰 장기도 있다. 심장은 하나, 폐는 둘. 자궁은 큰 하나이지만 분리된 상태로 질을 공유한다. 그러면 섹스와 임신은 가능하겠지? 천만의 말씀. 두 여자가 한 남자를 공유 또는 공동으로 사랑하기 전에는 어림도 없다. 자궁이 커서 생리 때마다 박리되는 표면적이 커 유난히 심한 생리통을 겪는다.

  이들의 이름. 오른쪽은 슌, 왼쪽은 안.

  처음에 독자는 이들이 결합 쌍생아인 줄 모르고, 화자 ‘나’가 있고 자매 슌이 등장하는 줄 안다. 그러다가 점점 이상해진다. 결국 이들이 결합 쌍생아, 완전한 형태의 샴 쌍둥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경악을 겪게 되는데, 그래서 나처럼 경악을 경험하시라고 모른 척하려 했으나, 출판사 책 광고에 다 나오는 걸 내가 굳이 숨길 필요가 없을 거 같아서 밝히는 거다.


  이 이후에는 자매들이 세상을 사는 것, 큰아버지 가쓰히코의 죽음과 장례, 화장 과정. 그리고 이들처럼 완전한 결합 쌍생아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

  음양도라는 것이 있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만든 태극 모양의 그림. 태극은 태극인데 흰색 태극의 중앙에 검은 점이 있고, 검은 태극의 중앙에 흰 점이 있는 거, 보셨으리라 믿는다. 그걸 각각 양중음, 음중양이라고 한단다.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되고,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이 되는 것. 이런 대극, 커다란 극이 결국 하나의 원을 이룬다는 건데 서로 물려 있는 태극이 도롱뇽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그러면 49재는 뭘까? 제사? 아니다. 불교에서 재를 올린다, 할 때의 재齋. 이제 윤회의 끈을 풀어 영원히 생로병사의 환을 그리지 말라는 축원이다. 가쓰히코/와카히코 그리고 슌과 안의 음중양, 양중음의 회전을 그만 두자는 것일까? 그건 독자 마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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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ㅣ 입장들 3
정지돈 지음 / 워크룸프레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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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편이 실린 소설집. 출판사 워크룸프레스의 ‘입장들’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 앞 번호에는 1번 이상우, <warp>와 2번 정영문,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가 있다. 이상우의 <warp>는 어디서 한 번 읽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그렇다.

  이상우, 정영문에 이어 정지돈이라면 이 시리즈 읽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정영문이 끼었다? 좀 터울이 있을 텐데. 하긴 예술 하는 사람들끼리 그깟 터울이 대수랴. 잘 어울려 한 판 잘 때려 놀면 그걸로 장땡이지.

  내가 읽은 정지돈은 꼴랑 세 권 밖에 안 되지만 모두 2020년 이후에 출간한 책이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는 2019년. 이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내가 정지돈을 계속 읽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을까? 반 이하의 확률로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반 이상의 확률로는 이 책이 마지막 정지돈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고.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memex. 나는 이 단어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지 모르겠다. 사전을 뒤져봐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아 일단 읽기 시작했는데 저 뒤에 가니까 memory와 index를 합해서 만든 조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일부 소설가들이 사용한다고 하는 메모철을 일컫는 건가? 뭐 비슷한 거겠지. 꼰대식 어법으로 하면 일종의 카드. 작가 특히 장편 작가들이 유용하게 사용한다는 카드. 이 정도면 될 거 같다.

  이 다음 문제는 그럼 메모리 인덱스를 나열하면 그걸로 소설이 될 수 있을까?

  독자는 조심해야 하리. 특히 창작작업과 관련 없이 오직 독서를 즐기는 아마추어 독자의 경우에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는 코피를 쏟거나 놀림을 받기 십상인 것이 눈에 훤하니 입조심이 필수이다. 될 수 있는 대로 이렇게 말하라. 당연히 소설이 될 수 있고, 이 책도 분명히 소설이라고.


  그러나 작가와 독자인 나 사이에, 관심의 공집합이 거의 없는 게 문제였다. 말 그대로 시, 공, 장르를 넘나드는 메타 픽션인데, 어떻게 그것들이 하나도 내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는지 그것도 놀라울 정도. 나는 작가의 memex를 보는 것보다 작가의 memex들이 적절하게 이합집산, 내부 투쟁을 거쳐 이 책 보다는 순한 읽을 거리로 등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 소양으로는 이게 잘 쓴 소설인지, 아닌지 그걸 구분하는 것부터 기대 난망이다. 하여간 정지돈, 글 쓰느라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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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8-12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느라 애쓰셨습니다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8-12 12:51   좋아요 1 | URL
ㅋㅋㅋ 졌습니다. 1 대 빵. ㅋㅋ

yamoo 2026-08-12 1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별3개를 주시는 뽈님!^^;;

Falstaff 2026-08-12 21:33   좋아요 0 | URL
이게 말입죠, 요즘 정서로 말씀드립자면, 1별은 소위 별점 테러. 줄 생각을 말아야 하거든요. 오히려 테러 당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결국 별점을 줄 수 있는 게 3, 4, 5. 별점은 전혀 변별력이 없다, 이겁니다. ㅋㅋㅋㅋ
 
라 스토리아 1 ㅣ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엘사 모란테 지음, 나윤덕 옮김 / 마르코폴로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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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사 모란테. 1912년 8월에 출생한 이탈리아의 소설가, 시인, 역자, 소년도서 작가. 출생이 좀 헛갈린다. 위키피디아에는 엘사의 어머니가 어떤 가계에서 출생했는지가 먼저 나온다. 교사 일을 하던 아르마와 아우구수토 모란테의 딸이란다. 그런데 어머니 아르마가 이탈리아 북부 도시 모데나의 유대인이다. 그럼 엘사 모란테 입장에서 보면 외할머니가 유대인이고 어머니는 반 유대인. 아버지는 엘사 모란테가 10대 소녀가 되었을 때 알게 되었는데, 동네 이웃 프란체스코 로 모나코 아저씨였단다. 그래서 엄마의 성 모란테를 갖게 된 모양이다. 이런 특별한 출생 비화는 <라 스토리아> 우리말로 역사, 이야기, 사연이라는 제목의 소설 속에서 중요한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의 내력과 비슷하다.

  아버지인 이웃 아저씨가 엘사 모란테를 제대로 지원해 줄 수는 없었겠지. 옆집 아줌마 보는 눈도 있었을 터이니. 그리하여 거의 독학 비슷하게 공부를 해서 1930년대 중반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 66번으로 나온 <아서의 섬>을 발표해 스트레가 상을 받는 성공하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이탈리아에서는 알아주는 작품인 <라 스토리아>를 출간한다.

  1941년에는 동료 소설가이자 영화 평론가인 알베르토 모라비아와 결혼하는데, 1941년. 아무래도 좀 불안한 것이 이탈리아 파시스트 당의 일 두체, 두령님 무소리니가 히틀러의 유대인 박멸작업을 돕지 않을 수 없었던 시기. 반의 반 유대인인 엘사 모란테 입장에서는 검거되어 죽음의 수송열차를 타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을 테고, 그리하여 로마 외곽의 허름한 피난 창고 건물에서 일정 기간 머무는데, 이것 역시 책 속 한 장면으로 들어 있다. 근데 이이의 남편이 알베르토 모라비아였구나. 음. <경멸>을 읽고 고구마 백개 먹은 듯한 답답함에 질려버린 작가. 그리하여 정작 대표작인 <순응주의자>를 도서관 관심도서 목록에 올려만 놓고 수 년째 곁눈질도 하지 않은 작가. 핑계김에 조만간 읽긴 읽어봐야겠다.


  <라 스토리아>는 1941년부터 1947년까지 7년간 이탈리아 로마와 로마 부근의 피난처에서 살던 이다 만쿠소 부인 주변의 이야기이며 이이의 시각에서 직접 경험한 로마의 2차세계대전의 역사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1941년 1월. 다하우가 고향인 독일 병사 군터가 등장한다. 몇 년 후 다하우는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생체실험 및 대량 학살로 크게 이름을 떨칠 생체실험실이 있던 장소로 기억되겠지만, 사실 군터가 고향을 떠나올 때까지는 5~6천 명의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치료하는 이상적인 의료기관이어서 오히려 고향 사람들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하여간 금발의 훤칠한 키와 절도있는 몸가짐을 한 앳된 외모의 독일군인은 절망적인 눈빛을 한 185cm의 늘씬한 몸에 맞지 않는, 독일군치고는 우스꽝스런 복장을 하고 있었다. 소매가 깡충하고 바지 기장도 많이 모자란 군복을 입을 건 뭐람? 그건 입대 후에 키가 자랐기 때문이다. 로마에 온 건 아프리카로 파병하기 위하여 잠시 대기하는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시골 출신 군터 입장에서 아프리카라니, 그건 마치 지구를 벗어나 은하계에 접어드는 듯한 기분을 갖게 했다. 놀라운 흥분감.

  군터는 독일 사창가에서 딱지를 떼 적이 있다. 로마에서도 사창가를 찾아 나서서 골목을 배회하다가 들어간 곳이 반지하 선술집. 이때 이탈리아 사람들이 독일군인에게 좋은 감정을 갖지 않았나 보다. 선술집 남자들이 혐오스러운 눈길로 자신을 째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 군터는 그래서 더 호기롭게 포도주를 시켜 벌컥벌컥 마셨고, 한 잔 더 시켜 다시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그래도 남자들의 눈매가 기분 나빠 추가로석 잔의 포도주를 연달아 들이켰더니 이젠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던 거다. 그렇다고 쪽팔리게 총독의 병사가 토해버릴 수 없으니까 일단 술집에서 나와, 한 건물 계단 옆에 쭈구리고 앉아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났다. 마침 이 건물에 사는 초등학교 교사 이다 라문도가 군터와 마주쳤다. 남편의 성씨는 만쿠소. 서른 일곱 살. 과부. 외모로 보면 빈약한 상체와 투실한 하체가 균형이 맞지 않는 중년여성. 당시에 30대 중반이면 충분히 중년이었다. 그래도 아직 내면은 어린 아이 수준이다.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 빼고 세상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1903년생 염소자리. 산업, 예술, 예언, 광기, 어리석음의 별을 타고 났지만 별로부터 받은 건 조금의 광기과 어리석음 뿐이었다.

  아버지는 공산주의자. 엄마는 유대인. 원래 이름을 ‘아이다’라고 지으려 했지만 행정절차 중에 알파멧 A가 빠지는 바람에 아이다에서 이다가 되었다. 1919년인가 20년에 교사시험에 합격하고, 마지막 여름방학 때 지참금 없이 약혼한 남자 알피오 만쿠소와 혼인했다. 시칠리아 메시나 출신 1898년생 남자로 방문 외판원이어서 돈을 잘 벌어오는 건 아니었지만 사이에 씩씩한 말썽꾸러기 아들 안토니오, 애칭으로 니노, 닌누추, 또는 닌나리에두를 낳았다.

  계단참에 쓰러져 침을 흘리며 잠을 자던 독일군 군터의 눈에 들어온 중년 여인. 자기 동정을 가지고 간 매춘부도 형편없이 나이든 여인이었다. 그러니 술이 깨지 않은 군터가 보잘것없는 상체와 풍만한 하체를 가진 이다를 직업 여성으로 여길 수도 있었겠지. 그리하여 군터는 독일의 히틀러 군대 군인의 위압감으로 이다의 허리를 두른 채 이다의 집으로 억지로 몰고 가서, 물론 이 과정에 이다의 만만치 않은 저항이 있긴 했지만 하여간, 했다. 일을 마친 후 가지고 있던 장식용 칼을 나이 많은 아주머니에게 선물인 셈쳐서 건네 주고 그냥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갔다. 이게 독일군 군터의 마지막 장면이다. 딱 한 장면에서만 나온다. 삼일 후에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 전선으로 날아가다 폭격을 맞아 죽을 운명이었다. 낙하산을 타고 탈출하는 대신 엉뚱하게 이다의 자궁에 자기 DNA가 절반 들어간 수정란 하나를 착상시켜놓은 건 당연히 몰랐다. 이날부터 아홉 달 후에 이다의 둘째 아들이 태어난다. 아이의 이름은 할아버지와 같이 주세페라고 짓는다. 아이가 옹알이할 때 주세페 대신 우세페라고 해서, 기록자 역시 아이를 우세페라고 쓴다. 우세페의 씨 다른 형 니노 역시 우세페라고 하고, 세상에 둘도 없는 우의를 갖는다. 기특하게도.


  주인공 엄마 이다는 어릴 때 많이 긴장하거나 위급한 순간이 닥치면 갑자기 과호흡을 동반한 강박 상태에 돌입하는 이상 상황을 벌였다. 당시 의과학으로는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해서 그냥 기질이 있는 것으로 치부했다. 이런 기질을 아빠 이름도 모르는 늦둥이 주세페가 물려 받았다. 물려 받기만 하면 괜찮은데 이를 더 발전시켜 규모를 확장해버렸으니 문제다. 그건 나중에 계속 나올 터. 여기에 좀 유별나달까, 특별하기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질도 있고, 어릴 때부터 전시 상황에 살면서 죽음에 처하거나 죽어가거나 하는 모습에 많이 노출된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작품 중의 소아 정신과 의사 누구도 정확하게 진단, 처방하지 못하지만 21세기라면 치유가 가능했을 것 같다. 하여간 이런 일종의 정신 질환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아이는 세젤예 소년이며, 가장 명랑하고 사람 잘 사귀는 귀여움 덩어리. 어려서부터 말썽꾸러기이지만 누구보다 자신한테 친절한 형 니노, 그가 데려온 개와 친숙하게 자라 동물의 심정에 밝은 아이로 성장한다.

  하지만 엄마 이다는 자신의 반 유대인 혈통에 관하여 점점 더 큰 불안에 휩쓸리고, 니노는 일찍이 일 두체에 대한 충성으로 자원입대하기로 결정을 하고 집 나간 문제아. 때를 맞춰 로마 공습으로 집이 폭삭 무너지자 로마 시내 외곽 습지의 텅 빈 피난처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리고 빠질 수 없지만, 이젠 좀 식상한 홀로코스트. 파시스트에서 공산주의 혁명가로 변신한 후 이탈리아 내 반 독일 레지스탕스로 변모한 니노. 이렇게 엘사 모란테는 자기 주변에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었던 2차세계대전의 모습을 차곡차곡 작품 속에 담았다.


  그게 다다. 다는 아니다. 여기에 이다 가족사도 포함해야 하니까.

  이탈리아 예술 장르에 ‘베리즈모’라고 있다. 주로 치정살인극을 말한다. <라 스토리아>에는 치정은 없다. 그러나 참 많이 죽어 나간다. 군인과 유대인은 군인과 유대인이라서 죽어 나가지만, 전쟁의 주변에 있다가 폭격을 맞지 않더라도 참 잘, 다양하게 죽는다.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작 내가 이 책을 지겹디 지겹게 읽게 만든 것은 작품 속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에피소드를 왜 그렇게 길고 자세하게 묘사하느라 지면을 사용했을까, 하는 것. 이 에피소드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무정부주의자 유대 청년이 탄압을 피해 집을 나왔어. 그러다가 잡혀서 고문을 받은 후에 이동 중 탈출했어. 이후에 이다 가족과 잠깐 어울렸다가 오랜만에 들른 이다의 아들 니노를 따라 혁명 파르티잔 집단으로 들어가, 아직 덜 죽은 독일군을 징 박은 발뒤꿈치로 얼굴을 자근자근 밟아 죽였어. 부모 형제가 다 수용소에서 죽었거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부르주아 아버지한테 받은 재산을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삼촌에게 다 주고 로마로 와서 모르핀 중독자로 살며 죽음이 어서 오기만을 기다려. 근데 왜 독자가 이 남자, 카를로 비발디의 생을 자세하게 알아야 하는 건데? 이런 불만.

  읽다가 읽다가 지루할 때쯤, 마침내 나는 책갈피 한 장을 붙였다.

  2권 274페이지. 앞에서 말한 카를로 비발디의 유대 본명이 다비데. 다비데와 함께 라디오를 듣고 있던 동료 가운데 한 명이 쏘아붙였다. 또 허무한 무정부주의를 일갈했던 모양이다.

  “너한테 부르주아는 좇이란 거잖아!”

  두 권짜리 장편소설에 딱 한 장 붙인 메모. 나는 거기에 이렇게 썼다.

  “좇? 책 읽다, 읽다 이걸 오타 내는 건 또 처음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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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6-08-11 2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ㅋㅋㅋㅋ 정말 황당한 오타네요 ㅋㅋㅋㅋㅋ 😂

Falstaff 2026-08-12 04:26   좋아요 1 | URL
ㅎㅎㅎ 살다보니 별 일이 다 많습니다.
 
여러 개의 북을 두드리며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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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가 토카르추크. 노벨 문학상을 탄 후로 이이의 픽션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말로 나온 픽션은 다 읽은 거 같다. 이번에도 토카르추크의 신간이 나왔다는 걸 알자마자 곧바로 희망도서 신청해서 도서관 ‘첫빠따’로 읽었다. 도서관 새 책을 읽는 기분이 꽤 근사하다는 건 다들 아실 터. 흐뭇하다. 본문만 554쪽에 이르지만 하루 반나절 만에 후딱 읽었다. 팍팍 읽힌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토카르추크가 어떤 식으로 픽션을 쓰는지 선 경험이 있는 분들은 “팍팍 읽힌다”가 어떤 의미인 줄 훨씬 짐작하기 쉬우실 듯하다.

  《여러 개의 북을 두드리며》는 2018년에 폴란드에서 최초 출판한 《기묘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17년 전인 2001년에 발표한 책이다. 그러니까 훨씬 언니-책이다. 토카르추크는 이 때부터 “기묘한 이야기”를 썼다. 특히 앞 부분에 실은 작품들이 그러하다.


  책을 선도하는 작품 <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로 말하자면, 작가와 주인공과 독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래 ‘실험적인 작품’은 대개 기묘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세계근대문학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실험적이라서 기묘한 이야기는 카프카가 쓴 풍뎅이, 잠자 이야기 아닐까? 이 작품도 그런 의미에서 기묘하다.

  주인공은 틀림없이 추리소설 애호가 C. 사무직 직장 여성이고, 딸과 아들을 키우며 아직도 나이든 남편과 놀랍게도 이혼하지 않고 살고 있다. 지지고 볶는 가정사 이야기는 제쳐두자. 더 중요한 건, C가 추리소설을 샀다는 것.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 산 건 아니고, 그저 서점에 들러 다른 건 그만두고 표지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말라붙은 핏자국을 연상케 하는 기묘한 빛깔의 어두운 배경, (중략) 귀퉁이를 직각으로 마감한 황금빛 서체”를 보니까 이 책이 자기가 선호하는 추리소설인 것이 틀림없다고 믿어서 비자 카드 긁었다. 이 책의 제목? 모른다. 독자는 그냥 추리소설이라는 것만 안다.

  추리소설의 주인공, 하여간 사건을 만드는 건 ’추리소설계의 여왕’이라 불리는 노 작가 울리카. 이 노 작가가 플랑드르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작은 고성을 가지고 있다. 수십권의 추리소설을 출간했고, 그게 다 베스트셀러라서 아무리 작더라도 아름다운 성을 상속받아 계속 소유할 수 있었다. 쉬운 일 아니다. 유럽의 성을 소유했던 옛 귀족의 후손들 대부분 성의 유지비와 세금이 무서워서 다 팔아버렸을 걸? 하지만 울리카는 아니었다. 이제 늙어 마른 나뭇가지처럼 바싹 마르고 왜소한 노파. 이이의 후손이 있는지 없는지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하여간 자신이 죽은 다음에 밤나무 숲을 포함해 이 성을 ‘추리소설 작가들을 위한 창작 센터’로 만들어달라고 유언을 해 놓은 상태. 벌써 집필실과 토론실 같은 부대시설도 다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드디어 토론을 위하여 유럽과 미국에서 추리소설 작가 몇 명이 도착한다.

  영국인 롱펠로. 매섭게 추운 날 오픈카를 직접 운전해 몰고 도착한 프랑스 여성 안마리 뒤라크. 왜소하고 비대칭적 외모의 프루흐트 씨,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온 흑인 청년 ‘루 어쩌고.’ 여기에 울리카까지 합해서 다섯 명이 며칠 동안 회합을 연다. 추리소설이니까 살인 또는 살인이 저질러진 상황이 나올 것이다. 이렇게 책을 산 독자 C는 믿고 있다.

  근데 아무도 안 죽는다. 이 당대의 추리 소설가들은 날마다 모여 ‘살인놀이’라는 게임만 하고 진짜로는 다른 사람한테 살인 목적으로 손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다. 부비트랩을 설치하지도 않고, 독약을 조제하거나 와인 잔에 바르지도 않는다.

  우리의 C는 바쁜 와중에도 언제 이들이 서로 죽이려 기를 쓰고, 언제 진짜로 죽는 장면이 나오는지 조바심을 바치지만 결코 죽지 않은 채 지루한 살인놀이만 하고 있다.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재미없는 게임. 그리하여 C는 열을 잔뜩 받아 직접 이들이 모임을 하고 있는 플랑드르의 아름답지만 작은 성에 찾아가 하나 하나씩 직접 살해하기 시작한다. 독자가? 책 안으로 들어가서?

  그렇다니까. 그리하여 이 작품은 추리소설이 아니라 환상문학이 되는 것이고, 토카르추크의 전편을 읽었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웃으면서 그것 참 재미나네. 할 수 있겠다. 이런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이 앞에서부터 네 편에 달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환상 소설 장르를 부담 없이 읽기는 하는데 좋아하는 수준은 아니다. 그냥 보통의 순소설을 더 선호한다. 이 책에서도 제일 마음에 든 것이 아홉번째 실린 <체 게바라>와 열번째 작품 <나이트>였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가 아니라 누군가의 별명. 시절은 1981년 12월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를 정부가 탄압해 그단스크뿐만 아니라 폴란드 전국 각지에서 동맹 총파업을 벌였던 시기. 화자 ‘나’는 바르샤바 대학에 (아마도)재학중이면서 자원봉사자였다. 재미있게도 자원봉사자도 파업에 동참했단다. 자원봉사자도 파업권이 있다? 자원봉사자가 노동자 자격을 갖추려면 반드시 임금노동을 해야 하는데 뭐 그랬던 모양이다.

  ‘나’는 대학 부속병원에서 세 명의 성인을 맡아 돌보았다. 여기서 성인이 어떤 성인을 가리키는 말인지 헛갈린다. 성인成人adult인지 성인聖人saint인지. 왜냐하면 ‘나’의 보스 M은 이들을 일컬어 “고객” 또는 “미치광이”나 “광인들”이라 부른다. 아다시피 러시아 문화권에서는 성스러운 바보, 조현병 환자들을 성인saint으로 여기는 경향이 조금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유로지비. 도스토옙스키가 쓴 <백치>의 주인공 미쉬킨 같은 사람이 대표적. 하여간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나’가 세 명의 성인과 만남을 갖는 이야기이다. 이 가운데 첫번째 만난 사람, 즉 환자가 체 게바라. ‘나’는 카페에서 담배를 피우며 체를 기다리고 있었고, 조금 있다가 드디어 체가 등장했는데, “허리에는 탄띠를 흉내 낸 띠를 두르고, 철제 군용 식기를 주렁주렁 매달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외투를 걸친 채” “Heil Hitler”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어서 “노동에 경이를 표하라, 동포들이여!”

  카페 손님들은 익숙하다. 그들은 체 게바라를 향해 비웃는 듯하면서도 너그러운, 혹은 약간의 다정함이 섞인 미소를 짓고, 가끔은 누군가가 “안녕, 체 게바라!”라고 받아준 다음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간다.

  이 늙은 조현병 환자는 자신의 기억을 1945년에 닫아 놓고 산다. 그래야 안전하다고 여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체 게바라를 바라보는 ‘나’는 불안하다. 언젠가 그에게 불행이 닥칠 것 같아서. 체 게바라 자신도 가끔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마 내가 진짜 미친놈인가 봐.”

  두번째, 세번째 성인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열번째 실린 작품 <나이트>의 나이트는 knight, 체스의 말 가운데 하나. 등장인물은 부부. 그리고 그들이 키우는 대형 암컷 개 레나타. 결혼하고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제 노년은 아니지만 부부는 서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서로 안다. 그리하여 이들은 결혼생활의 전환이라도 마련하고 싶었을까? 한 겨울에 폴란드의 바닷가, 그러니까 북해일 것이 틀림없는 몹시 추운 바닷가 펜션으로 2박3일 여행을 왔다. 하지만 더 이상 이들 사이에, 사실은 그만큼 산 많은 부부들이 늘 그러하다는 것을 모른 채, 서로가 서로에게 집중하지 않고, 더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고, 그저 서로 편한 일만 한다.

  그나마 이 부부에게 아직 남은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체스. 실력으로 말하자면 아내 쪽이 조금 더 윗길이다. 그래도 집중하지 않으면 쉽게 이길 수준은 아니라서 이들은 추위와 무지한 강설에 길이 막혀 일주일 동안 체스를 둔 적도 있다. 이 바닷가의 펜션에 도착해서도 이들은 결국 체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지금부터 TV를 볼 것임을 뻔히 알고, 아내가 2층 침실에 틀어박혀 잠도 자지 않으며 나오지 않을 것을 안다. 그런데 TV를 보는 꼴도, 자는 척하는 꼴도 보기 싫다. 그러니 남은 건 체스.

  체스를 두다가, 일단 게임을 멈추고 내일 다시 하자는 데 동의한다. 와인도 좀 마시고, 침실로 들어 서로의 몸을 더듬지만 이내 그것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들 사이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손길이 닿아올 때마다 느껴지던 짜릿한 전율, 우연한 스침, 애타는 갈망, 오랜 기다림 끝에 맞닿던 두 손, 향기에 취하는 설렘, 그 향기에 얼굴을 파묻을 때의 포근함, 눈빛 하나로 서로의 생각을 헤아리던 일, 같은 순간 같은 생각을 나누던 기적, 고요하고 흔들림 없는 친밀함, 귓불의 모양 만으로 황홀해하던 나날, 밤마다 식물처럼 서로의 몸을 기어오르며 상대의 몸을 마치 내 껍질인 듯 여기던 순간들, 불꽃놀이, 동화 속 마법,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이 모든 것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이제 둘 다 안다.

  다음날, 이들은 다시, 어쩌면 마지막으로 체스를 계속 두려 한다. 그러나 흰 나이트 말이 사라졌다. 레나타가 어디로 물고 가버린 모양이다. 결국 체스마저 이들 사이에서는 둘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이게 끝은 아니다.


  재미있게 읽었다.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주제, 그리고 폴란드와 바르샤바라는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람 사는 이야기. 어떻게 거기서도 사람 사는 일은 이다지도 비슷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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