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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의 북을 두드리며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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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토카르추크. 노벨 문학상을 탄 후로 이이의 픽션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말로 나온 픽션은 다 읽은 거 같다. 이번에도 토카르추크의 신간이 나왔다는 걸 알자마자 곧바로 희망도서 신청해서 도서관 ‘첫빠따’로 읽었다. 도서관 새 책을 읽는 기분이 꽤 근사하다는 건 다들 아실 터. 흐뭇하다. 본문만 554쪽에 이르지만 하루 반나절 만에 후딱 읽었다. 팍팍 읽힌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토카르추크가 어떤 식으로 픽션을 쓰는지 선 경험이 있는 분들은 “팍팍 읽힌다”가 어떤 의미인 줄 훨씬 짐작하기 쉬우실 듯하다.
《여러 개의 북을 두드리며》는 2018년에 폴란드에서 최초 출판한 《기묘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17년 전인 2001년에 발표한 책이다. 그러니까 훨씬 언니-책이다. 토카르추크는 이 때부터 “기묘한 이야기”를 썼다. 특히 앞 부분에 실은 작품들이 그러하다.
책을 선도하는 작품 <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로 말하자면, 작가와 주인공과 독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래 ‘실험적인 작품’은 대개 기묘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세계근대문학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실험적이라서 기묘한 이야기는 카프카가 쓴 풍뎅이, 잠자 이야기 아닐까? 이 작품도 그런 의미에서 기묘하다.
주인공은 틀림없이 추리소설 애호가 C. 사무직 직장 여성이고, 딸과 아들을 키우며 아직도 나이든 남편과 놀랍게도 이혼하지 않고 살고 있다. 지지고 볶는 가정사 이야기는 제쳐두자. 더 중요한 건, C가 추리소설을 샀다는 것.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 산 건 아니고, 그저 서점에 들러 다른 건 그만두고 표지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말라붙은 핏자국을 연상케 하는 기묘한 빛깔의 어두운 배경, (중략) 귀퉁이를 직각으로 마감한 황금빛 서체”를 보니까 이 책이 자기가 선호하는 추리소설인 것이 틀림없다고 믿어서 비자 카드 긁었다. 이 책의 제목? 모른다. 독자는 그냥 추리소설이라는 것만 안다.
추리소설의 주인공, 하여간 사건을 만드는 건 ’추리소설계의 여왕’이라 불리는 노 작가 울리카. 이 노 작가가 플랑드르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작은 고성을 가지고 있다. 수십권의 추리소설을 출간했고, 그게 다 베스트셀러라서 아무리 작더라도 아름다운 성을 상속받아 계속 소유할 수 있었다. 쉬운 일 아니다. 유럽의 성을 소유했던 옛 귀족의 후손들 대부분 성의 유지비와 세금이 무서워서 다 팔아버렸을 걸? 하지만 울리카는 아니었다. 이제 늙어 마른 나뭇가지처럼 바싹 마르고 왜소한 노파. 이이의 후손이 있는지 없는지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하여간 자신이 죽은 다음에 밤나무 숲을 포함해 이 성을 ‘추리소설 작가들을 위한 창작 센터’로 만들어달라고 유언을 해 놓은 상태. 벌써 집필실과 토론실 같은 부대시설도 다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드디어 토론을 위하여 유럽과 미국에서 추리소설 작가 몇 명이 도착한다.
영국인 롱펠로. 매섭게 추운 날 오픈카를 직접 운전해 몰고 도착한 프랑스 여성 안마리 뒤라크. 왜소하고 비대칭적 외모의 프루흐트 씨,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온 흑인 청년 ‘루 어쩌고.’ 여기에 울리카까지 합해서 다섯 명이 며칠 동안 회합을 연다. 추리소설이니까 살인 또는 살인이 저질러진 상황이 나올 것이다. 이렇게 책을 산 독자 C는 믿고 있다.
근데 아무도 안 죽는다. 이 당대의 추리 소설가들은 날마다 모여 ‘살인놀이’라는 게임만 하고 진짜로는 다른 사람한테 살인 목적으로 손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다. 부비트랩을 설치하지도 않고, 독약을 조제하거나 와인 잔에 바르지도 않는다.
우리의 C는 바쁜 와중에도 언제 이들이 서로 죽이려 기를 쓰고, 언제 진짜로 죽는 장면이 나오는지 조바심을 바치지만 결코 죽지 않은 채 지루한 살인놀이만 하고 있다.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재미없는 게임. 그리하여 C는 열을 잔뜩 받아 직접 이들이 모임을 하고 있는 플랑드르의 아름답지만 작은 성에 찾아가 하나 하나씩 직접 살해하기 시작한다. 독자가? 책 안으로 들어가서?
그렇다니까. 그리하여 이 작품은 추리소설이 아니라 환상문학이 되는 것이고, 토카르추크의 전편을 읽었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웃으면서 그것 참 재미나네. 할 수 있겠다. 이런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이 앞에서부터 네 편에 달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환상 소설 장르를 부담 없이 읽기는 하는데 좋아하는 수준은 아니다. 그냥 보통의 순소설을 더 선호한다. 이 책에서도 제일 마음에 든 것이 아홉번째 실린 <체 게바라>와 열번째 작품 <나이트>였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가 아니라 누군가의 별명. 시절은 1981년 12월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를 정부가 탄압해 그단스크뿐만 아니라 폴란드 전국 각지에서 동맹 총파업을 벌였던 시기. 화자 ‘나’는 바르샤바 대학에 (아마도)재학중이면서 자원봉사자였다. 재미있게도 자원봉사자도 파업에 동참했단다. 자원봉사자도 파업권이 있다? 자원봉사자가 노동자 자격을 갖추려면 반드시 임금노동을 해야 하는데 뭐 그랬던 모양이다.
‘나’는 대학 부속병원에서 세 명의 성인을 맡아 돌보았다. 여기서 성인이 어떤 성인을 가리키는 말인지 헛갈린다. 성인成人adult인지 성인聖人saint인지. 왜냐하면 ‘나’의 보스 M은 이들을 일컬어 “고객” 또는 “미치광이”나 “광인들”이라 부른다. 아다시피 러시아 문화권에서는 성스러운 바보, 조현병 환자들을 성인saint으로 여기는 경향이 조금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유로지비. 도스토옙스키가 쓴 <백치>의 주인공 미쉬킨 같은 사람이 대표적. 하여간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나’가 세 명의 성인과 만남을 갖는 이야기이다. 이 가운데 첫번째 만난 사람, 즉 환자가 체 게바라. ‘나’는 카페에서 담배를 피우며 체를 기다리고 있었고, 조금 있다가 드디어 체가 등장했는데, “허리에는 탄띠를 흉내 낸 띠를 두르고, 철제 군용 식기를 주렁주렁 매달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외투를 걸친 채” “Heil Hitler”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어서 “노동에 경이를 표하라, 동포들이여!”
카페 손님들은 익숙하다. 그들은 체 게바라를 향해 비웃는 듯하면서도 너그러운, 혹은 약간의 다정함이 섞인 미소를 짓고, 가끔은 누군가가 “안녕, 체 게바라!”라고 받아준 다음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간다.
이 늙은 조현병 환자는 자신의 기억을 1945년에 닫아 놓고 산다. 그래야 안전하다고 여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체 게바라를 바라보는 ‘나’는 불안하다. 언젠가 그에게 불행이 닥칠 것 같아서. 체 게바라 자신도 가끔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마 내가 진짜 미친놈인가 봐.”
두번째, 세번째 성인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열번째 실린 작품 <나이트>의 나이트는 knight, 체스의 말 가운데 하나. 등장인물은 부부. 그리고 그들이 키우는 대형 암컷 개 레나타. 결혼하고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제 노년은 아니지만 부부는 서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서로 안다. 그리하여 이들은 결혼생활의 전환이라도 마련하고 싶었을까? 한 겨울에 폴란드의 바닷가, 그러니까 북해일 것이 틀림없는 몹시 추운 바닷가 펜션으로 2박3일 여행을 왔다. 하지만 더 이상 이들 사이에, 사실은 그만큼 산 많은 부부들이 늘 그러하다는 것을 모른 채, 서로가 서로에게 집중하지 않고, 더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고, 그저 서로 편한 일만 한다.
그나마 이 부부에게 아직 남은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체스. 실력으로 말하자면 아내 쪽이 조금 더 윗길이다. 그래도 집중하지 않으면 쉽게 이길 수준은 아니라서 이들은 추위와 무지한 강설에 길이 막혀 일주일 동안 체스를 둔 적도 있다. 이 바닷가의 펜션에 도착해서도 이들은 결국 체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지금부터 TV를 볼 것임을 뻔히 알고, 아내가 2층 침실에 틀어박혀 잠도 자지 않으며 나오지 않을 것을 안다. 그런데 TV를 보는 꼴도, 자는 척하는 꼴도 보기 싫다. 그러니 남은 건 체스.
체스를 두다가, 일단 게임을 멈추고 내일 다시 하자는 데 동의한다. 와인도 좀 마시고, 침실로 들어 서로의 몸을 더듬지만 이내 그것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들 사이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손길이 닿아올 때마다 느껴지던 짜릿한 전율, 우연한 스침, 애타는 갈망, 오랜 기다림 끝에 맞닿던 두 손, 향기에 취하는 설렘, 그 향기에 얼굴을 파묻을 때의 포근함, 눈빛 하나로 서로의 생각을 헤아리던 일, 같은 순간 같은 생각을 나누던 기적, 고요하고 흔들림 없는 친밀함, 귓불의 모양 만으로 황홀해하던 나날, 밤마다 식물처럼 서로의 몸을 기어오르며 상대의 몸을 마치 내 껍질인 듯 여기던 순간들, 불꽃놀이, 동화 속 마법,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이 모든 것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이제 둘 다 안다.
다음날, 이들은 다시, 어쩌면 마지막으로 체스를 계속 두려 한다. 그러나 흰 나이트 말이 사라졌다. 레나타가 어디로 물고 가버린 모양이다. 결국 체스마저 이들 사이에서는 둘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이게 끝은 아니다.
재미있게 읽었다.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주제, 그리고 폴란드와 바르샤바라는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람 사는 이야기. 어떻게 거기서도 사람 사는 일은 이다지도 비슷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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