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 생일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623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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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우. 1970년생, 하다가! 70년 개띠가 벌써 쉰여섯 살이야? 아이쿠. 여태 나 혼자 늙어가는 줄 알았구나 싶었다. 김선우. 강릉에서 나 춘천에 있는 국립 강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지만 아마 교사 생활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어디선가 그렇다고 읽은 거 같다. 정확한 것도 아니고, 중요하지도 않다. 20대 시절에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해 여러 권의 시집과 산문집, 그리고 소설도 썼지 아마? 이이의 인터뷰를 보니 소설도 출간했단다. 시집 앞날개에 소설 출간을 경력으로 소개하지 않은 걸 보니까 만족스럽지는 못했나 보다.


  《축 생일》 초판이 2025년 9월에 나왔다. 쉰다섯 살의 시인. 나는 이 시집이 처음 읽는 김선우이다. 그래 전에는 어떤 시를 썼는지 전혀 모른다. 한 편이라도 읽어본 적이 있을까? 모르겠다. 요즘 인터넷 좀 돌아다니면 넘쳐나는 것이 시들이니 뭐 한 두 편은 읽어봤을 수도 있겠지. 시들을 제대로 옮긴 건지 아닌지는 다음으로 하자. 그래서 그렇게 읽은 걸 싹 무시하면, 이 시집이 처음으로 읽는 김선우다.

  처음에는 시들이 통통 튄다. 김선우가 사용하는 다른 말로 하면, 폴짝거린다. 폴짝거려?

  한 생명체가 도약하는 모습을 “폴짝이다”라고 쓰는 건 해당 생명체가 작은 몸집을 가지고 있을 때 어울린다. 기린, 코뿔소, 히말라야 야크, 코끼리가 폴짝거리는 모습은 여간해 상상하기 힘든다. 대신 쿵쿵거린다라고 할까? 시집에서 제일 앞에 배치한 시부터 폴짝인다.



  폴짝인입니까?



  나도요 폴짝! 우리는 반가워서 폴짝폴짝 뜁니다


  그쪽 우물은 얼마나 깊었나요? 하늘은 동그랬나요?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이었나요? 희미한 햇빛이 아주 잠깐 우물 바닥을 비추고 사라질 때나 뚝뚝 끊기는 바람이 어깨에 닿을락 말락 머물다 가버릴 때 당신도 두 손 꼭 맞잡고 우물하늘을 올려다보았나요? 우물 속에선 내내 하늘을 쳐다봤죠 햇빛과 바람이 거기서 들어오니까…… 당신도 우물이 모든 걸 보내준다고 믿었나요? 그랬죠 그럴 수밖에요 내가 우물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우물이 나를 사랑해서…… 충분하진 않지만 그래도 햇빛과 바람이……내게로 온다고…… 때로는 특별한 은총이라 느끼기도 했고요 우물하늘 바깥에 무엇이 있을까?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오른손으로 왼 손등을 찰싹찰싹 때렸죠 왼손으로 왼뺨을 철썩철썩 때렸죠 의심하는 자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음…… 글쎄요


  폴짝, 우리는 서로의 눈물을 닦아줍니다   (부분. p.9)



  시가 길다. 개구리 한 마리의 우물 탈출 서사. 우물을 사랑하고 우물도 나를 사랑했지만 그래도 우물 밖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한 나머지 바락바락 벽을 기어올라 “제기랄! 하늘이 이토록 드넓은 거였다니!” 눈알이 툭 튀어나온 채 햇빛과 나부끼는 바람 속에서 우물과 우물 사이를 뛰어다니며 폴짝폴짝 웃고 또 폴짝폴짝 울며, 이런 젠장! 경탄과 경악을 하는 우물 안 개구락지였던 한 생명체를 시인은 폴짝인人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시인이 말하는 “폴짝인의 서(序)를 소개하자면:

  『우물 안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 결국 우물에 포섭되고 만다네』

  포섭되지 않기 위하여 개구리는 우물벽을 바락바락 기어올라 우물이라는 구조에서 탈출해야 한다. 새롭지는 않다. 20세기 초부터, ‘헤르만 허세’의 <데미안>에 의하면, 새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하여 죽을 똥을 싸왔으니까. 어떻게 하면 우물에서 기어 나올 수 있을까? 서울국제작가축제가 있던 2016년, 지금부터 10년 전에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저는 여전히 책만큼 훌륭한 학교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가끔 중고등학생 독자들이 작가님이 우리 나이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거 같아요? 라고 물어오면 이렇게 대답해요. ‘보나마나 학교는 때려칠 거고, 도서관에서 죽치며 살겠지. 거기가 제일 근사한 학교니까.’”


  인터뷰 당시 김선우가 46세. 아직 완경기에 달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밝혔듯, 남편의 스케쥴, 아이들 대학입시, 아파트 평수, 승용차 차종 등에 겁나게 신경 쓰는 시절이며, 이미 시인으로 이름을 낸 입장에서 팍, 말해버린 것이겠지. 근데 이렇게 무책임한 말을 중고등학생 독자들한테 했다니. 왜, 자기 딸 아들 더러 먼저 학교 때려치우라 그러지 않고? 10년 전에는 몰랐겠지. 이런 멋진 말을 하면서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 거라는 걸. 물론 이미 시인이 된 자기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지만, 질문을 하는 어린 독자는 자기는 시인이 말하는 것을 왜 따라하지 못할까,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음을 깊이 숙고해봐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 인터뷰에서 이 이야기를 아예 꺼내지 말든지.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가도 다 좋을 수 없다는 건 시에 나오지 않는다. 우물 밖으로 기어 나오기를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는 황새, 너구리, 뱀이 우글우글거리는 것도 모른 채 개구리는 폴짝폴짝, 폴짝폴짝, 뜨겁게 서로를 응원하며, 폴짝폴짝, 폴짝폴짝 저마다 갈 길을 가는지, 시인이 그것도 봤대?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 걸?



  산골, 폴짝인들



  착취당하고 싶지 않아

  착취하고 싶지도 않아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착취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어요

  착취를 묵인하는 소비

  착취를 조장하는 소비를 하고 싶지도 않고요

  꺼림칙해요

  그뿐이에요


  그래서 폴짝, 도시로부터 폴짝폴짝, 산골로 폴짝!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지구에 해로운 건

  동물종 가운데 인간밖에 없다고요


  폴짝, 폴짝폴짝, 폴짝폴짝폴짝,


  사는 동안 있는 힘껏 내 삶을 책임지고 싶어요

  그래봤자 완전히 자유로워지긴 어렵지만

  최소한의 폭력

  네, 그 정도라도 되면 좋겠어요


  그래서 폴짝, 도시로부터 폴짝폴짝, 산골로 폴짝!   (전문. p.22~23)



  이것 참. 누군가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착취하고, 누군가로부터 착취당하는 삶. 착취를 묵인하고 심지어 착취를 조장하는 소비. 이것이 도시의 삶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고 딱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래 더 무섭다. 슬며시 세상살이를 이것과 저것으로 양분하는 행위.

  착취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시인은 도시인에게 폴짝, 개구락지 뜀박질을 권유한다. 시골로 가라! 자연으로!를 외친 루소 같아? TV에 나오는 자연인 같기도 하고. 산골로 가면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폭력, 참을 수 있는 수준만 행하고 견디면서 살 수 있다는데, 그것 참.

  김선우가 딸 여섯 조르륵 낳고 마지막으로 아들 하나 만든, 우스운 옛 습속의 딸부잣집 중 한 명이어서 그런지, 아마도 지긋지긋했을 것 같은 게마인샤프트에서 벗어나는 로망이 있는 것 같다. 우물을 탈출하는 개구리, 착취 행위의 최소화를 지향하는 산골행. 지금 김선우는 어디서, 어느 산골에서 살아? 하긴 그건 문제가 아니다. 자기도 산골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시로 쓴 것일 수 있으니.

  산골 생활 우습게 알지 마시라. 이 시는 산골로 폴짝, 한 마디를 위해 사용 수식한 단어들이 너무 컸다. 착취, 조장, 소비, 지구, 인간종, 폭력. 산골에서는 이런 단어들을 그래도 견딜만한 수준이 될 거라고? 정말? 독자들은 조심하시라. 산골. 다른 말로 하면 정글이다. 단어가 아닌 진짜 폭력, 자연에 의한 심각한 폭력이 눈을 크게 뜬 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걸.


  내가 말을 험하게 해서 그렇지 김선우가 진심으로 바라는 건 시에서 읽히는 첫인상, 선한 탈출과 선한 산골행일 것이다. 나도 알면서 일부러 부정적 측면을 강조한 건 아니고, 폴짝 뛰쳐나가는 행위, 자유에는 반드시 조건이 따라붙는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폴짝, 뛰쳐나가면 좋지. 그래서 성공하기만 하면. 학교를 때려치우고 교실 대신 도서관에 가서 진짜 스승이 빼곡 들어찬 책 속을 유영할 수 있으면 더 큰 시인이 될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자기 생각을 새파란 고등학생 독자한테 얘기해줄 수도 있지. 도시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빠진 청년 제위께 산골로! 마치 도시 속 브나로드 운동처럼 외칠 수도 있고.

  좋다. 폴짝 뛰어 도약에 성공해 우물탈출을 했다 하자. 그럼 만날 수 있는 건 평평. 한자어로 쓰면 平平. 21세기 김선우 식 평등이다. 그것을 노래한다.



  평평으로



  平

  어떤 것을 올리든 고르게

  고르게 하려는 의지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다른 쪽에 무게를 더하려는 의지


  平平

  고르게

  고르게 될 때까지

  작고 가벼운 쪽으로

  희미한 반짝임 쪽으로

  선한 눈물의 방향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도 없는 쪽으로

  끊임없이 중심축을

  이동하려는 의지


  平平平

  마침내 저울이 지렛대가 되는 의지


  平平平平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하려는 의지를

  지켜내려는 의지


  그때 비로소

  자유는 자유   (전문. p.29~30)



  폴짝 뛰어서 만든 평평한 세상. 미륵이 도솔천을 건너 환생했다. 이렇게 오해하지 마시라. 김선우가 노래하는 건 세상이 고르게 평평평평, 이런 상태가 된 미래 또는 약속이 아니다. 마음 속에서 세상을 평평평평 고르고 고르며 고르게 하고자 하는 “의지”, 즉 마음만 그렇게 먹으면 자유로워진다는 선언이다. 행동은 완전하게 별개다. 시인은 왜 행동까지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행동, 즉 운동과 운동에 이른 성취까지 해야 혁명이 이루어질 터인데 말이지. 그걸 내가 어찌 알겠노? 뭐 사정이 있겠지.

  폴짝폴짝 뜀박질도 그렇고 땅만 열나게 갈고 갈아, 다지고 다져 평평하고 평평하며 평평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시인. 시인의 동지, 동무들이 함빡 모였던 저 어둠의 시절에 이런 시 읊었으면 정말 조리돌림 당했을 텐데. 말과 생각만 혁명이고 그것을 위해서 무얼 해야 하는지는 전혀 발언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기소장을 받기 딱 좋았을 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건 그저 립 서비스잖아?

  노래하기는 좋지만, 평평한 세상을 “어떻게” 만들자는 발언은 잃어버린 식어버린 운동시. 앙꼬 없는 찐빵. 오아시스 없는 사막. 불알 빠진 껍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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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6-05-23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소 전혀 시를 읽지 않기에 가끔 폴스타프님이 올려주신 시는 꼭 읽으려고 해요. 이번 리뷰도 재밌게 읽었는데 착취를 조장하는 도시는 나쁘고 산골생활은 착취로부터 자유롭다는 이분법적 시선은 저도 맘에 안드네요. 시골 출신 친구가 도시보다 시골이 더 폭력적이고 무섭다고 한 말도 갑자기 떠오르고요. ㅎㅎㅎ (시골 출신이신 분들 혹시 기분나쁘실까요?)

근데 중간에 ‘헤르만 허세‘ 는 오타신가요? 아님...ㅋ

Falstaff 2026-05-24 21:55   좋아요 1 | URL
헤르만 허세가 오타일 턱이 있습니까, ㅋㅋㅋㅋ 눈 밝은 몇 분들만 보실 수 있는데 쿨캣님이 보셨군요!
이 양반 시는 위험해요. 여차하면 현혹당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말입죠. 그저 공상 속에서 살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는, 신기루 시편들... 쩝쩝...
 
우주만화 ㅣ 이탈로 칼비노 전집 6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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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년 만에 다시 읽었다. 전에 읽은 책은 열린책들 Mr. Know 시리즈였는데, 말 그대로 읽느라고 죽을 똥을 쌌다. 얼마나 경악했는지 “지루하고 지루했던 불후의 명작 Top 10” 가운데 한 권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나도 참, 심술이지 이 정도면. 그냥 읽느라고 고생했다 치고 슬쩍 넘어가야지 좀스럽게 그게 뭐야? 이때 Top 10의 거미줄에 걸린 책을 슬슬 읽어본다. 놀랍게도 잉에보르크 바흐만이 쓴 <말리나>도 며칠 전에 읽었다는 거 아냐? 그것도 읽혔다. 아무래도 내가 열반할 때가 된 모양이다. 며칠 전에는 독후감에 후덜덜 단테 알레기에리의 <신곡 지옥편>도 인용했다. 심각하다. 안 하던 짓 자꾸 한다. <말리나>도 그렇고 《우주만화》도 그런데, 십년 전에 워낙 고생을 심하게 해서 오직 책 읽는 일에 집중하느라 독후감을 위한 메모를 전혀 하지 않았다. 애초에 독후감 쓸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읽은 거다.

  구접스럽게 이런 얘기를 뭐하러 하느냐면, 그냥 간단하게 읽은 소감만 올린다는 말이지 뭐. 쉬운 말로 해서 핑계를 대는 중이다.


  민음사에서 낸 “이탈로 칼비노 전집” 6번 《우주만화》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구판으로 1965년에 소설집 형식으로 출간한 책. 신판은 같은 6번을 달고 나왔지만 신판은 《모든 우주만화》라고 간판을 살짝 바꾸면서 《티 제로》, 《다른 우주만화 이야기》, 《변형된 우주만화》를 포함해 구판보다 갑절 이상의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11년 전에 읽은 열린책들 판은 민음사 신판의 순서를 바꾸어 유사한 주제로 구분해 놓은 책이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좀 골치 아픈 책이다 싶지?

  이번에는 어떻게 읽었느냐 하면, 제목이 《우주만화》이니까 정말로 만화책 보는 기분으로, 칼비노가 써내려간 대로, 어떤 주장을 펼치고 싶은 지 괜히 작가의 복장 속에 들어갈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은 채 그저 글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읽었다. 크. 그랬더니 읽히더라는 것.

  칼비노는 누가 뭐래도 환상 소설 작가이다. 그걸 독자가 해골 써가면서 이게 어떤 의미일까, 무슨 현상을 은유하는 것일까 파봤자 이분 얘기하는 거하고 저놈 생각하는 게, 같으면 오히려 이상할 터. 그러느니 차라리 보이는 대로 보고, 읽히는 대로 읽는 편이 좋다. 이번에 확실하게 깨달은 점은, 내가 생각보다 환상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


  제일 앞에 놓인 작품이 <달과의 거리>이다. 아주 오래 전에는 달과 지구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단다. 아예 붙어 있는 수준이었다고. 달이 가까이 있으니까 달의 중력이 상당히 강해서 조수 간만의 차이가 어마어마했을 터. 사리 때 높은 파도가 치면 배 위에서 키 큰 사람이 손을 쭉 뻗으면 달을 만질 수 있을 정도였다니, 칼비노 구라도 이 정도면 예술 수준이다. 하긴 예술가 맞지.

  지구 사람 가운데 아마 틀림없이 이탈리아 어부들일 텐데, 사리 때만 되면 어김없이 돛대 꼭대기에 올라가 훌쩍 달에 뛰어오르는 어부들이 있었다. 놀러? 천만의 말씀. 일당 받고 배 타는 사람이 달에 놀러가면 선장이 그걸 내버려 두나? 달의 중력에 이끌려 지구에서 식물 수액, 개구리 알, 역청, 제비콩, 벌꿀, 전분 결정체, 철갑상어 알, 곰팡이, 꽃가루, 젤라틴 물질, 벌레, 송진, 후추, 천연 소금, 산화물질 같은 것들이 빨려 올라가 서로 작용해서 달 우유, 문 밀크로 변질되는데, 이게 별미였다. 이게 리코타 치즈처럼 진득하니 그랬다나? 그걸 긁어서 커다란 숟가락 같은 걸로 마치 투석기를 쏘듯 하늘을 향해, 사실은 지구 바다에 떠 있는 배를 향해 팡, 던지면 그걸 제대로 받든지, 바다에 빠져 둥둥 떠 있는 걸 건지든지 그랬단다. 이 일로 돈 좀 만졌다고.

  그러다가 달과의 거리가 조금씩, 아주 세밀하게 조금씩 멀어진 게 아니라, 아마도 눈에 보이게 훌쩍 멀어져 내 사랑, 다이아몬드 같이 빛나는 눈을 가진 브흐드 브흐드 부인은 결국 달에서 탈출을 하지 못하고 지구를 떠났다는 이야기.


  이것만 있는 게 아니고 정말 만화 같은 이야기들이 촘촘히 들어 있다. 빅뱅이 일어났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 아니지, 사람은 무슨. 하여간 생명체들. 만화 주인공들이 빅뱅도 구경하고, 태양이 처음 생길 때 퍼버벙 10의 n제곱 만큼의 수소폭탄이 터질 때도 있었다. 지구가 처음엔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죽상 상태에서 굳어갈 무렵, 한 여성이 땅 속 깊숙하게 들어가 스스로 지구의 핵이 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셨나?

  물론 아닌 것도 있다. 우주의 무한성. 10만 세기 전이라면 10만 곱하기 100, 1억년. 근데 10만 세기가 아니라 몇 십만 세기 전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칼비노. 이 와중에서도 작가라는 직업이 참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예전에 저질렀던 과오나 실수, 돌이켜 생각해보니 창피하기 그지없는 일들. 이런 거 그냥 말로 “지금 떠올려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한 문장이면 끝날 텐데 그걸 몇십억년, 몇 백억년 전의 우주 공간에서 있었던 일로 만들어 하려면, 하루 세끼 먹고 해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여간 나는 《우주만화》를 드디어 읽었다. 11년 만에. <말리나>도 읽었다. 다음에는 뭐? <몽유병자들>? 아니, 아니. 그건 아직도 자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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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5-20 11: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드디어 열반의 경지에 이르셨군요🙏 저는 이탈로 칼비노 ˝나무위의 남작˝만 읽었는데 오래전이지만 꽤나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근데 원래 이 작가 책이 잘 읽어지지 않나 봅니다 폴스타프님이 죽을 똥을 싸셨으면 전 아예 시작도 못 할듯🤣

잠자냥 2026-05-20 14:19   좋아요 2 | URL
망고는 그냥 똥 싸면서 읽어라~!!

망고 2026-05-20 14:56   좋아요 2 | URL
화장실에서 읽겠습니다🙄

Falstaff 2026-05-20 15:36   좋아요 2 | URL
경지는요 뭘 ㅎㅎㅎ 칼비노는 읽을 때마다 뼈다구가 노골노골해지기는 하는데 그래도 보이면 일단 읽고 보는 하여간 그런 게 있더라고요.
 
거품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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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 12월 도쿄에서 태어난 개띠 남자 마쓰이에 마사시.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들어가 연년세세 높은 고과를 받은 모양이다. 해외문학 시리즈를 론칭하고, 계간지 창간에 힘을 보탰으며 여기저기 편집장을 역임하다가 2010년 퇴직했다. 그의 편집 실력을 알아본 게이오 대학은 2009년부터 몇 년 간 초빙교수로 강단에 세우기도 했다. 마쓰이에는 그러나 퇴직과 더불어 창작을 시작해 2012년에 자신이 오래 몸담았던 신쵸샤에서 출간하는 잡지 “신초”에 장편소설을 발표했고, 이듬해인 2013년 이 작품으로 일본 최대의 우익 신문 요미우리가 주최하는 요미우리 문학상을 받았다. 54세에 소설쓰기를 시작했으니 시작은 비록 늦었지만 이후 열심히 작품을 쓰고, 쓰는 것마다 일정부수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인기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등극했단다.

  <거품>을 2021년에 발표했으니 마쓰이에가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서 62세. 뭐 물론 글을 쓰기 전에 편집 일을 열라 했다니까 글의 흐름, 그러니까 세월에 따른 문법의 변화에 따라갈 수 있기는 했겠지. 그런데 글, 특히 픽션이란 것이 자신이 잡지 또는 작품을 편집할 때와 직접 쓸 때, 이 두 가지 경우는 거의 완벽하게 다른 일일 걸? <거품>이 이이의 다섯번째 장편소설인데, 나는 책을 다 읽기 전에 이이의 나이, 출생지, 가방끈 같은 거 하나도 몰랐으니 지금 전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팍, 느낀 것만 이야기하는 바로서, 작품 곳곳에서 저 오래 전부터 유독 일본 작품 속에서 두드러지게 보인 사소설의 경향성이 문득문득 찾아냈다는 거다. 그러면서, 2021년 작품이면 요즘 작가일 터, 거 독특하네. 이렇게 쑤석거렸다는 거 아냐? 58년 개띠 작가한테 말이지. 70년 개띠도 아니고 원조 개띠.


  막이 올라가면 가정집 목욕탕. 욕조에 몸을 담은 사람은 십오세 청소년 가오루. 남자 아이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욕실만이 안심할 수 있는 곳으로 인식하는 가오루. 소년은 도쿄에서 나고 자라 지금 고등학교에 재학중이다. 재학. 학교에 적을 두긴 했어도 1학기 초부터 등교를 하지 않고 있다. 가오루가 다니는, 아니지, 적을 둔 학교가 유별나게 수컷들의 세상인 밀림, 일찍이 모리스 샌닥이 이야기한 <괴물들이 사는 나라>라서 그런 건 아니다. 군복 같이 흰 플라스틱 칼라를 목에 댄 검정색 교복에 흰 플라스틱 칼라를 달고, 똑 같은 모자를 쓴 채, 딱 몇 시까지 등교해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유도와 검도를 필수과목으로 배워야 하는 대학진학 기계들이 모인 곳. 검정 사각형 같이 딱 규격화된 인간들이 규격화된 다음 세대를 길러내기 위하여 규격화된 방법으로 애들을 조지는 곳. 이게 너무 싫은 거다.

  이것도 스트레스. 가오루는 습관적으로 공기를 많이 흡수한다. 흡수한 공기가 모두 폐로 들어가면 형관 내 산소농도가 높아져 더 건강하게 될 텐데, 그러지 못해서 소화기관으로 넘어간다. 공기는 위장과 소장을 거쳐 대장에 집중했다가, 가뜩이나 대장에 모인 섬유질 소화물과 유산균이 발효하여 생긴 가스와 함께 다량의 방귀를 생산한다. 정말 이런 이상 기질/병질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세상 인구 70억 명가운데 뭐 있기는 하겠지. 하여간 가오루는 욕조에 몸을 구부리고 앉아 배에 힘을 빡, 주면 물 속에서 거품이 뽀그르르 올라온다. 꽤 큰 거품. 그게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폭, 터져 대기의 흐름을 타고 사라질 때까지 가오루의 몸을 형성하는 일부였다니 기분이 새롭겠지? 웃기게도 책에서 가스 거품이 터질 때 폴폴 풍기는 냄새는 1도 묘사하지 않았다.


  가오루의 부모 두 양반 다 학교 교사. 가오루가 집에 가서 나 학교 안 다니고 싶어, 라고 딱 꺠놓고 이야기했다. 잘했다. 확실하게 말을 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게다가 특히 아빠가 좀 깬 인간이라. 좋아,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래?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하는 거 아냐? 대학은 안 가더라도. 그리하여 여름방학 끝날 때까지 친척 가운데 도쿄에서 가장 멀리 사는 사람한테 보내기도 부자간에 합의했다. 엄마의 반대가 좀 있었지만 대가리 다 큰 자식한테 이기는 엄마 봤어?

  아빠가 자신의 막냇삼촌한테 전화를 해 승낙 받았다. 도쿄에서 기차를 타고 7백km 이상 떨어진 태평양 연안의 마을, 사리하마. 그러니 가오루의 막내 종조부가 사는데 거기서 재즈 카페를 열고 있다.

  가오루의 할아버지가 아홉 남매 가운데 맏아들이다. 다 합해 아들 여섯, 딸 셋. 가네사다가 막내. 가네사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당연히 육군에 징집되어 만주 괴뢰국에 주둔했다가 패전과 동시에 소련군의 포로로 잡혀 있었다. 불쌍하게 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일 불쌍한 처지로 떨어졌던 인종은 소련에 전쟁포로로 잡혔던 패잔병들이었다. 독일군 포로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시베리아 혹은 중앙아시아 벌판에 그냥 떨궈놓고 강제노동을 시켰다. 이 포로들이 몇 년이 지나 거의 해골바가지 수준이 되어 어떻게 독일에 있는 집으로 갔는지 아시나? 걸어갔다. 일본 패잔병들은 이 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가네사다의 경우에 바이칼 호수 근처로 데려가 벌목 작업을 시켰다고. 소련 병사가 하는 이야기가 기막히다. “너네 나라에서 너네들을 돌려보내라는 말을 하지 않아.” 패전 일본은 자기들 살 방도를 찾기에도 바빠 쉼 없이 눈알을 굴렸을 뿐 아직 살아있는 병사들의 안위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미국군에 잡힌 병사들은 그나마 괜찮은데, 소련군에 잡힌 병사들은, 일본 정부에서 생각하기를, 포로 생활을 하면서 이들이 일본으로 복귀하면 일본 적화의 분자로 활동하게 만들기 위해 철저한 빨갱이 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돌아와도, 만일 돌아온다고 해도 나라의 정책을 입안하거나 시행하는 직위에는 절대로 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세상은 냉정시대였거든.

  1950년대 초에 귀국한 가오루의 막내 종조부 가네사다가 이런 포로 출신이었다. 어디서도 가네사다를 고용하지 않았다. 큰형 구와타로를 비롯해 남매들도 가엽게 생각하지만 색안경을 끼고 막둥이를 바라봤다. 이러니 어디 사람이 살 수 있나. 성격은 살면서 여러 번 바뀐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거. 고쳐 쓰지도 못하는 인간을 위하여 예수가 십자가에서 못 박힌 거는 아니잖아?) 가네사다는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싶었다. 그리하여 선택한 곳이 저 남쪽의 해안도시 사리하마.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동네에 가서 선뜻 지원한 곳이 보험회사 외판원. 자기도 말주변이 이렇게 좋았는지 몰랐는데 작은 도시에서 거의 탑 급으로 실적을 올렸다. 기본급 외 성과수당으로 상당한 돈을 벌어, 벌어봤자 외판원 수입이니 큰 돈은 아니었어도 처자식 없이 살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한 가네사다는 번 돈을 계속 모아 50대 초에 원래 우유판매점이었던 건물을 사 거기다 재즈 카페 ‘오부브’를 열었다.

  그렇다고 도쿄의 사나이 가문, 사나이가 “진짜 사나이” 그런 게 아니라 일본의 가문 이름이 그렇다, 사나이 가문에 완전히 돌아선 건 아니고 중요한 관혼상제 때는 참석하려 애썼다. 그렇게 살았다.


  ‘구두 くつ’의 러시아 말인 ‘오부브’를 혼자 운영해온 가네사다. 여름에는 해수욕객이 많아 손이 좀 달린다. 말이 재즈 카페이지 점식에 간단한 식사와 커피, 저녁에도 간단한 식사와 주류 같은 걸 파는데 큰 돈을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먹고 살기만 하면 된다. 죽는 비용, 즉 병원비와 숨 넘어갈 때까지의 간병비만 있으면 된다. 그래 세상 살면서 이젠 아무 바라는 거 없이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며 여유작작하게 사는 데, 우울한 표정을 한 30대 정도의 남자가 카페에 들어왔다. 세번째 주인공 오카다.

  오카다는 불쑥 나타난 것처럼 어느 날 불쑥 사라질 수도 있는 사람. 그게 5년 전이었다. 5년이 흘렀지만 아직 떠나지 않았다. 물론 소설이니까 가능하겠지만 마치 카페에 최적으로 맞춤한 솜씨와 부지런함을 갖춘 인물이다. 게다가 잘 생겼다.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니까. 일 하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가네사다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오카다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이거 뭐야? 독자로 하여금 오카다의 정체가 사람 죽이는 일과 관련이 있다는 거야? 아니면 살인범 또는 살인범에 가까운 범죄자인데 지금 몸을 숨기고 있다는 암시야? 끝날 때까지 작가는 이이의 정체를 말해주지 않는다. 카페를 떠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결국 가네사다는 자기가 죽으면 카페와 모든 재산을 오카다에게 물려줄 생각도 한다.

  이때 가오루가 막내 종조부에게 몇 달만 신세를 지겠다고 연락을 했고, 기차타고 해변에 도착해 세 남자의 자잘한 살림을 시작한다. 가오루는 당연히 짬짬이 구두 카페에 나가 서빙도 하고, 잔심부름도 하고, 조금씩 오카다에게 음식 만드는 법도 배운다. 15세 사춘기면 이제 이성에 관한 호기심도 지극할 때. 한 여성에 대한 환상도 생길 만하다. 물론 아직 대장에 가득 고인 가스 때문에 방귀가 뿡뿡 나오기는 하지만. 이렇게 한 소년은 성장하고, 종조부는 늙어가고, 오카다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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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베이징 ㅣ 묘보설림 7
쉬쩌천 지음, 양성희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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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쩌천은 1978년에 장쑤성 둥하이현에서 태어난 중국 소설가, 단편 작가, 에세이스트이다. 출판사 글항아리의 책 앞날개와 위키피디아에서 이이의 가방끈에 대한 디테일이 조금 다른데 썩 중요한 건 아니다. 하여튼 위키에 의하면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장쑤성 성도에 있는 회음사범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다 졸업은 난징사대에서 했다. 이후 베이징대학 대학원에 들어가 역시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소설쓰기에 전념해 오늘에 이르렀다. 아, 중국어도 할 줄 아느냐 묻지 마시라. 구글번역 돌려봤더니 그렇다는 말이다. 난징사범대의 동문목록에 이이의 이름이 올라 있으니 이게 맞는 듯.

  쉬쩌천은 다작 성향의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이이의 작품 목록을 감안하면 우리말로 번역해 나온 단행본이 이 책 딱 한 권인 것이 의아스러울 정도이니까. 그렇게 많이 썼는데 번역 단행본이 단 한 권?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정말 그렇다는 건 아니고, 작품 목록에 우리나라 독자의 구미에 맞는 게 별로 없어 보여서 출판사에서 번역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궁리를 좀 하게 된다는 말이다. 책이 재미없어서라는 말은 아니다. 혁명 전 몰락한 봉건 지주 가문의 불행을 그린 <고대의 황혼>과 문화혁명 당시 죄 없이 조리돌림을 당한 타지 출신 학교 교장 선생 이야기인 <굵은 목소리>는 이이가 쓰지 않더라도 이미 50년대와 60년대 초에 출생한 선배 작가들이 충분히, 그리고 다양하게 설레발을 푼 것들이며, 다른 작품들도 내 눈에는 그리 삼빡하지 않다는 것. 이미 누군가가 광장에 서서 크게 외쳐버려 이젠 읽는 중간에 벌써 기시감을 느끼는 정도가 되었으니 단순히 인구 비례로 따져 얼마나 많은 비슷비슷한, 고만고만한 작품 속에 반짝일 수 있겠느냐고. 하여간 빛을 내려면 반짝거려야 한다니까.


  책의 제목이 《아, 베이징》이라 해서 베이징을 무대로 하는 작품이 다수가 아니다. 오히려 작가의 고향인 장쑤성, 장강 하류 지역의 시골을 무대로 하는 작품이 더 많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베이징으로 상경해 베이징 대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후에 계획을 바꿔 군대에 입대한 화자가 친척 할머니가 세상을 떠 장사지내러 고향에서 가니, 베이징 생활, 인민군 장교 출신이라는 권위를 누구나 다 우러른다는 <귀향 이야기>의 무대처럼 마을에서 아주 조금 떨어진 곳에 장강의 지류가 흐르고 동, 서로 거리가 있는 마을을 중심인 소설도 몇 편 있다. 살아있는 개를 산 채로 물이 펄펄 끓는 커다란 가마솥에 빠뜨린 다음 솥뚜껑을 깔고 앉아 푹푹 삶아 특제 소스를 첨가한 별미의 개고기를 요리해내는 개백정이 홍등가 화제花街의 한 윤락여성한테 삶은 개를 화대 비슷하게 제공하다가 매춘부의 청부로 돈 많은 뱃사람을 칼로 난자해 죽이는 <우뢰비>도 <귀향 이야기>와 <굵은 목소리>와 같은 공간에서의 일이다.

  그런데 열두어살 먹은 소년을 괴롭히기 위해 같은 반 악동들이 스무살 먹은 소년의 이웃집 지체장애 여성을 윤간하고 소년의 집에서 키우는 암캐의 코를 철사로 뚫어 괴롭히는 장면(굵은 목소리), 베이징에서 아가씨와 연애를 하지만 차마 시골의 아내한테 이혼을 하자는 말을 못하는 남자가, 자신이 동행한 동업자의 착한 아내와 대낮에 소파 위에서 교접하는 장면을 본 순간 꼭지가 돌아 시퍼런 칼로 평소에 동생이라 부르던 동업자의 두 개의 손가락에서 한 마디씩 잘라버리는 씬(오, 베이징)은, 이제 마음이 쫄보가 되어 영 읽기가 거시기하더라는 것. 전에 위화나 쑤퉁의 소설에서 여러 번 봤잖아, 이런 중국제 잔인, 잔혹한 장면은.


  나는 제일 마지막에 실린 <지난 몇 년 나는 늘 길 위에 있었다>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빌리고 시간이 별로 없어서 짧은 축에 드는 이걸 제일 먼저 읽어서 또 한 명의 마음에 드는 중국 작가를 발견했다고 자잘하게 좋아했는데, 집에 와서 더 읽어보니까 꼭 그렇지만은 아니더라는 것.

  기차 침대칸에서 자다가 기침이 멈추지 않고 발작적으로 쏟아져 다른 승객한테 영 면목이 없던 차, 여기저기서 막 불평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급기야 욕설이 터지기 일보직전, 맞은편 칸 한 여성이 핸드백 속에서 물약을 건네주어 기침을 멈추게 도와준다. 아침이 되어 주인공 ‘그’는 여자한테 고마움의 표시로 식당칸에 가서 아침을 사겠다고 제안해 그렇게 한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차량 사이의 연결부로 가 함께 담배를 나누어 피우기도 한다. 그러다 혹시 여자 사는 근방을 지나갈 일이 있으면 다시 한번 “뵙고 싶으니”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고 번호를 얻어낸다. 여자는 산이 많은 도시에서 내린다.

  날들이 가고 정말 이 이혼남 ‘그’가 여자가 사는 근처로 지나갈 일이 있어 기차에서 내렸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그때 들었던 걸 기억해 직접 일하는 곳으로 찾아가 만난다. ‘그’는 정말로 그때의 고마움이라는 인연으로 한 번 보고 싶었던 것. 시간이 이미 오후 해질녘이라 둘은 자연스럽게 저녁을 먹고, 술도 마시고 객점에 들어 남자의 방에 함께 든다. 처음 만났을 때는 공무원 남편이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갇혀 있던 때였는데 이후 무죄가 드러나 오히려 직장에서 승진 발령되어 아내도 자기 힘으로 더 좋은 보직으로 발령시켰지만, 착했던 남편은 그 일이 있은 이후 사람이 바뀌어 일단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 위주로 살기 시작했다. 만날 외박했다는 뜻이지 뭐.

  여자는 그래서 홧김의 서방질이라도 염두에 두었던 듯하지만, 주인공 ‘그’는 둘이 함께 객점에 들었건만 오직 당시의 고마움으로 전에 말했듯 한 번 보기 위함이라고 강조한다.

  이게 끝인 건조한 사는 이야기. 이게 제일 좋았는데 그만 어이구, 산 개를 산 채로 끓는 물에 던져 넣지를 않나, 청부살인에다가, 개 코에 코뚜레를 하고, 나름대로 형수한테 이혼을 설득하다가 몸으로 말하게 된 순간을 들켜 손가락이 날아가니, 이거 원 살벌해서 말씀이야. 근데 내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고 이런 건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을 분이 틀림없이 있을 터, 그분들은 재미나게 읽을 작품. 내 판단을 별점으로 말하자면 3.5? 세 개는 너무 짜다. 넷은 조금 과하지만 너그럽게 봐줄 수준. 그러니까 여태 말은 이렇게 했어도 괜찮다는 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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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델타
마르코 미시롤리 지음, 김희정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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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코 미시롤라는 1981년 이탈리아의 리미니에서 출생했다. 리미니?

  잠깐 단테의 <신곡> 가운데 “지옥편” 5곡으로 가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를 인도하여 지옥 구경을 시켜주는데 제일 먼저 지옥의 유황불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프란체스카를 만난다. 프란체스카는 왜 지옥으로 떨어졌을까? 사랑 때문에. 

  인용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0, 단테 알레기에리, 《신곡 지옥편》 2007. 박상진 역.


  “사랑은 온화한 가슴에 이내 스며드니,

  지금은 내게서 없어진 아름다운 몸으로 이이를 

  사로잡았어요. 그 일은 아직도 나를 괴롭힙니다.


  사랑은 사랑받는 사람을 결코 놓아주지 않으니,

  이이에 대한 차오르는 기쁨으로 나를 사로잡았어요.

  보다시피, 이이는 내 곁을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어요.” (p.55)


  그러니까 프란체스카는 사랑 때문에, 드런 사랑 때문에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해 지옥으로 떨여졌다. 책의 다음 페이지에는 아마도 지옥편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선생님은 아시겠지만,

  비참할 때 행복했던 옛 시절을 떠올리는 일만큼

  괴로운 것은 없어요.’” (p.56)


  프란체스카는 리미니 공국의 공작이자 영주인 란체오토 말라테스타한테 시집온 아름다운 여성. 이이는 영주부인이 아니라 영주의 동생인 파올로의 짝이 될 줄 알았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모르지? 파올로는 젊고 무지하게 잘 생긴 미남자로 유명했거든. 근데 결혼식장에 입장해보니 신랑이 짐승 같은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주먹을 가진 란체오토 영주님이었던 거다. 게다가 드럽게 못생기기까지 했다. 어때, 다른 작품 생각나는 거 하나 있다.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돈 카를로스>.

  근데 프란체스카는 <돈 카를로스>의 엘리자베스하고 좀 다른 캐릭터이다. 엘리자베스는 어쨌든 혼인의 순결을 끝내 지켰다. 반면 프란체스카는 아니다. 이를 눈치챈 영주님. 프란체스카와 동생 파올로 사이가 아무래도 수상해서, 영주님이 전쟁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라고 광고했다. 그리고 정말로 군대를 소집해 적국을 향해 행진하는 동안 프란체스카는 친절한 시동생 파올로를 불러 뭘 했느냐 하면,


  “어느 날 우리는 한가롭게

  렌슬롯의 사랑 얘기를 읽었어요.

  우리뿐이었어요. 거리낄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요.” (p.57)


  렌슬롯의 사랑 이야기는 당시 기준으로 봐서 야설 수준은 아니더라도 되게 야한 책이었다. 그런 걸 파올로가 소리내서 읽다가 점점 손끝이 이게 영 이상한 동네로 이동하기 시작하는데, 뭐 다 그런 거지, 자동이거든. 그리하여 점점 달아오른 둘이 급기야 비단 모기장 드리운 기둥 침대 위로 홀라당 올라가 뜨거운 사이가 되었던 터, 딱 이 때 시간을 맞춰 갑자기 방문을 벌컥 열고 들이닥친 란체오토 말라테스타. 영주님은 관운장이 쓰던 청룡언월도를 휘둘러 훌렁 벗은 둘의 허리를 댕강, 잘라 죽여버리고, 두 연놈의 영혼은 사이좋게 손잡고 지옥으로 떨어졌던 것.

  이거 이 책에도 안 나오고, 민음사 《신곡 지옥편》에도 안 나온다. 《신곡 지옥편》을 감명 깊게 읽은 러시아의 극작가 모데스트 차이콥스키가 쓴 작품 <리미니의 프란체스카> 이야기이다. 모데스트는 우리가 아는 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프란체스카 이야기 어디 가서 들어보기 쉽지 않을 걸? 잘난 척하느라 그냥 써본 거다. 나는 잘난 척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 지 몰라!

  《신곡 지옥편》 5곡의 프란체스카와 파올로가 어디서 지옥으로 미끄러졌느냐 하면, 지금이야 이탈리아 땅이지만 당시엔 리미니 공국이었던 곳.

  그것 때문에 이렇게 길게 변죽을 울렸느냐? 설마. <페델타>의 지은이 마르코 미시롤리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리미니에서 살다가 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볼로냐 대학에 진학했는데, 작품 속에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리미니에 살다가 대학을 거쳐 대학원을 밀라노대학에 다니던 중 자기 지도교수와의 염문이 알려져 중도작파하고 다시 리미니로 돌아가 아버지가 하던 철물점을 물려받아 대를 이어 가업에 종사하는(윽, 스포일러군!) 여성, 소피아가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제목 페델타. Fedelta 마지막 철자 a 위에 점 하나를 찍어야 하는데 찾기 귀찮으니 그냥 이렇게만 쓰자. 이탈리아 말로 정절. 충성심이란 뜻도 있지만 책에서는 ‘정절’ 또는 ‘혼인의 순결’로 이해하면 되겠다. 근데 작품의 주제는 정절과 정 반대말 ‘배신’이다. 즉 불륜, 혼외정사 같은. 그래서 <리미니의 프란체스카> 이야기를 열라 떠들었다.

  카를로 펜테코스테 교수. 부르주아 집안의 1남1녀 중에서 장남. 밀라노 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고 특별하게 뭘 한 게 아니라, 집이 좀 사니까 가능했겠지만, 이것저것 설렁설렁, 카피라이터도 해보고, 여행지 소개문도 써보다가, 아버지 뒷배로 밀라노대학 대학원에서 창작과목 전임교수 비슷하게 하는 중이었다. 자기 반에 작은 얼굴과 잘록한 허리에 어리게 보이는 스물두 살 먹은 소피아가 있었는데 은근히 눈길이 자꾸 소피아한테 가더란 것.

  소피아 말고 다른 신입 여학생이 작품 초장에 하필이면 지저분하게 화장실에서 교수가 소피아 학생을 껴안고 목을 쓰다듬는 것과 비슷하다고 판단할 수준의 장면을 목격해 교실로 돌아와 입을 털었다. 이 일 이후에 펜테코스테 교수와 소피아가 의심스러운 성격의 접촉을 가졌다는 소문에 힘이 실렸다고 쓰여 있으니, 아마도 교수가 소피아를 편애했던 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사실이고말고!) 이 뒷담화가 학장의 귀에까지 들어가 바야흐로 문제가 되었을 때, 펜테코스테 교수는 동료 교수 몇 명과 학장을 데리고 현장에 가 직접 상황을 재연해 주었다. 이렇게: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을 보고, 공동구역으로 나와서 손과 얼굴을 씻은 후에 말리고 있을 때, 여자 화장실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문이 조금 열려 있어 (라기보다 덜 닫혀 있어) 들여다보니 자기 수업을 듣는 소피아 카사데이가 거의 정신을 잃고 넘어져 있는 거였다. 그래 문을 열어놓은 채 들어가 학생을 향해 몸을 기울인 상태에서 이름을 여러 번 불렀고, 앉았다 일어날 수 있게 도왔으며, 잠시 구석에 기대게 조치했다.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학생은 진정되어 얼굴을 씻을 수 있게 세면대로 데려갔는데, 상황이 긴박하지는 않았어도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신입생이 현장에 있었는지는 눈치도 채지 못했다.


  그럴 수 있겠다.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이 일 때문에 제일 기분이 언짢은 사람이 누구? 당연히 아내 마르게리타.

  오늘 아침 남편이 늘 복용하는 항히스타민제를 두고 와서 직접 가지고 학교까지 왔다. 구태여 문자나 전화로 알리지는 않았다. 마르게는 몰랐지. 한 10미터 정도 자기 앞을 걷던 여학생이 바로 소피아였던 것을. 소피아가 강의실에 들어가 카를로 펜테코스테 교수한테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 부인이 날 따라왔어요.”

  소설은 이 대사로 시작한다. 카를로가 창문 밖을 내다보니 아내가 담벼락에 걸터앉아 네미로프스키를 읽고 있다. 네미로프스키? 소설집 《무도회》를 쓴 작가? 맞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곧바로 도서관에 상호대차 신청해서 네미롭스키의 다른 책 한 권 읽기로 했다.

  근데 이상하지? 마르게는 심지어 아직까지 (나중엔 알게 되지만) 소피아라는 이름만 들었지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데 어떻게 따라오겠어? 소피아도 속으로 교수와 모종의 썸이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렇게 중인환시리에 일종의 염문이 살포된 상황에서 썸을 이어갈 수 없지. 당연하지. 여기서 한 발만 더 나가도 교수는 아예 이 바닥에서 매장될 터인데. 그래서 교수 스스로 현장검증을 신청하기 전에 극비리에 시내 모 카페로 소피아를 불러내 내가 이렇게 이야기할 테니 너는 저렇게 자세를 잡아라, 뭐 이 비슷한 시나리오를 짜고 그대로 진행한 거다. 똑부러지는 소피아는 몇 시간에 이르는 사전 미팅을 휴대폰에 전부 증거로 녹취했지만 그건 교수가 알 턱이 없다. 그래 잘 수습이 된 상태에서 교수가 다시 소피아를 만난다? 그건 곤란하고, 소피아도 마찬가지다. 소설가를 꿈꾸는 소피아는 소설도 잘 써지지 않아, 소설이고 뭐고 고향 리미니로 돌아가 아빠 하던 일을 이어서 하기로 결정해버렸다.

  근데 미련이 남잖아? 교수도, 소피아도. 소피아가 기차를 타는 날이 하필이면 교수의 친엄마 생일날이었는데, 핑계를 대고 소피아 집에 들러 마지막 짐을 역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자진해서 해준다. 집에 가서? 그렇다. 그럼 짐만 옮겨주었을까? 에잇, 확 말해버리자. 그렇다 짐만. 시도는 했지만 소피아가 싹 거절해버린다.


  문제가 또 있으니 교수의 아내 마르게리타.

  밀라노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부동산 중개업자. 자기관리에 철저한 비즈니스 우먼. 아직 애도 없다. 몸도 빵빵하다. 몸매를 위해 헬스에 다니는데 석달 전에 트레드밀을 겁나게 열심히 한 뒤 치골에서 무릎으로 이어지는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그래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중.

  물리치료를 받으면 꽉 막힌 좁은 치료실에 스물여섯 살 먹은 안드레아라는 건장하고 잘생긴 젊은 남자가, 물리치료를 받기 적절한 반바지와 속옷을 입은 마르게리타를 뉘어 놓고 치골 부근의 근육과 힘줄을 열 손가락 모두 사용하여 꾹꾹 눌러 근육의 결과 밀도, 그리고 탄력까지 모두 짚어본 후에 허벅지 안쪽 근육, 소위 햄스트링이란 곳까지 모두 꼼꼼하게 훑는다.

  30대 중반을 향해 돌진하는 여성의 농익은 몸은 안드레아의 손길이 금지된 곳에 더 가까이 접근하기를 속으로 바라지만 결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몇 년 전, 외국 여성이 우리나라 TV에 나와 이해할 수 없는 우리 속담 가운데 하나가 “홧김에 서방질한다.”라고 했던 걸 기억한다. 서양에서는 그런 말이 없단다. 뭐 그런가 보지. 그러나 2년 전 여름에 읽은 모드 방튀라의 <내 남편>에서도 그랬듯이 <페델타>에서도 우리의 마르게리타도 홧김인지, 아니면 아슬아슬한 리비도의 유혹에 넘어간 것인지, 자신이 결국 안드레아를 안다리후리기로 자빠뜨리는 데 성공한다. 이게 마르게리타가 딱 한 번 저지르는 불륜. 대단한 것이 안드레아가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였음에도.


이렇게 마르게리타와 카를로 펜테코스테 부부의 불륜. 불륜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진짜 사랑은 둘 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마구 치고 나가는 그냥 그런 애정 소설. 잘 쓰기는 하지만 별거 없다. 조르조 바사니의 <금테 안경>을 읽을 때는 안 그랬던 거 같은데, 역자 김희정의 우리말 문장도 거칠게 서걱거려 재미를 조금 떨어뜨리…는 거 같다.

  오늘 독후감, 분량이 많지만 리미니 이야기 빼면 그냥 늘 쓰던 대로다. 여기까지 읽어주시느라 고생 많으셨다. 쐬주만 안 마시면 소설도 한 편 쓸 기세라니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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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5-17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도 한 편 써주세요!

Falstaff 2026-05-17 21:42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안 쓸 겁니다. 남 보여주기 창피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