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베이징 묘보설림 7
쉬쩌천 지음, 양성희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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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쩌천은 1978년에 장쑤성 둥하이현에서 태어난 중국 소설가, 단편 작가, 에세이스트이다. 출판사 글항아리의 책 앞날개와 위키피디아에서 이이의 가방끈에 대한 디테일이 조금 다른데 썩 중요한 건 아니다. 하여튼 위키에 의하면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장쑤성 성도에 있는 회음사범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다 졸업은 난징사대에서 했다. 이후 베이징대학 대학원에 들어가 역시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소설쓰기에 전념해 오늘에 이르렀다. 아, 중국어도 할 줄 아느냐 묻지 마시라. 구글번역 돌려봤더니 그렇다는 말이다. 난징사범대의 동문목록에 이이의 이름이 올라 있으니 이게 맞는 듯.

  쉬쩌천은 다작 성향의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이이의 작품 목록을 감안하면 우리말로 번역해 나온 단행본이 이 책 딱 한 권인 것이 의아스러울 정도이니까. 그렇게 많이 썼는데 번역 단행본이 단 한 권?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정말 그렇다는 건 아니고, 작품 목록에 우리나라 독자의 구미에 맞는 게 별로 없어 보여서 출판사에서 번역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궁리를 좀 하게 된다는 말이다. 책이 재미없어서라는 말은 아니다. 혁명 전 몰락한 봉건 지주 가문의 불행을 그린 <고대의 황혼>과 문화혁명 당시 죄 없이 조리돌림을 당한 타지 출신 학교 교장 선생 이야기인 <굵은 목소리>는 이이가 쓰지 않더라도 이미 50년대와 60년대 초에 출생한 선배 작가들이 충분히, 그리고 다양하게 설레발을 푼 것들이며, 다른 작품들도 내 눈에는 그리 삼빡하지 않다는 것. 이미 누군가가 광장에 서서 크게 외쳐버려 이젠 읽는 중간에 벌써 기시감을 느끼는 정도가 되었으니 단순히 인구 비례로 따져 얼마나 많은 비슷비슷한, 고만고만한 작품 속에 반짝일 수 있겠느냐고. 하여간 빛을 내려면 반짝거려야 한다니까.


  책의 제목이 《아, 베이징》이라 해서 베이징을 무대로 하는 작품이 다수가 아니다. 오히려 작가의 고향인 장쑤성, 장강 하류 지역의 시골을 무대로 하는 작품이 더 많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베이징으로 상경해 베이징 대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후에 계획을 바꿔 군대에 입대한 화자가 친척 할머니가 세상을 떠 장사지내러 고향에서 가니, 베이징 생활, 인민군 장교 출신이라는 권위를 누구나 다 우러른다는 <귀향 이야기>의 무대처럼 마을에서 아주 조금 떨어진 곳에 장강의 지류가 흐르고 동, 서로 거리가 있는 마을을 중심인 소설도 몇 편 있다. 살아있는 개를 산 채로 물이 펄펄 끓는 커다란 가마솥에 빠뜨린 다음 솥뚜껑을 깔고 앉아 푹푹 삶아 특제 소스를 첨가한 별미의 개고기를 요리해내는 개백정이 홍등가 화제花街의 한 윤락여성한테 삶은 개를 화대 비슷하게 제공하다가 매춘부의 청부로 돈 많은 뱃사람을 칼로 난자해 죽이는 <우뢰비>도 <귀향 이야기>와 <굵은 목소리>와 같은 공간에서의 일이다.

  그런데 열두어살 먹은 소년을 괴롭히기 위해 같은 반 악동들이 스무살 먹은 소년의 이웃집 지체장애 여성을 윤간하고 소년의 집에서 키우는 암캐의 코를 철사로 뚫어 괴롭히는 장면(굵은 목소리), 베이징에서 아가씨와 연애를 하지만 차마 시골의 아내한테 이혼을 하자는 말을 못하는 남자가, 자신이 동행한 동업자의 착한 아내와 대낮에 소파 위에서 교접하는 장면을 본 순간 꼭지가 돌아 시퍼런 칼로 평소에 동생이라 부르던 동업자의 두 개의 손가락에서 한 마디씩 잘라버리는 씬(오, 베이징)은, 이제 마음이 쫄보가 되어 영 읽기가 거시기하더라는 것. 전에 위화나 쑤퉁의 소설에서 여러 번 봤잖아, 이런 중국제 잔인, 잔혹한 장면은.


  나는 제일 마지막에 실린 <지난 몇 년 나는 늘 길 위에 있었다>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빌리고 시간이 별로 없어서 짧은 축에 드는 이걸 제일 먼저 읽어서 또 한 명의 마음에 드는 중국 작가를 발견했다고 자잘하게 좋아했는데, 집에 와서 더 읽어보니까 꼭 그렇지만은 아니더라는 것.

  기차 침대칸에서 자다가 기침이 멈추지 않고 발작적으로 쏟아져 다른 승객한테 영 면목이 없던 차, 여기저기서 막 불평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급기야 욕설이 터지기 일보직전, 맞은편 칸 한 여성이 핸드백 속에서 물약을 건네주어 기침을 멈추게 도와준다. 아침이 되어 주인공 ‘그’는 여자한테 고마움의 표시로 식당칸에 가서 아침을 사겠다고 제안해 그렇게 한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차량 사이의 연결부로 가 함께 담배를 나누어 피우기도 한다. 그러다 혹시 여자 사는 근방을 지나갈 일이 있으면 다시 한번 “뵙고 싶으니”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고 번호를 얻어낸다. 여자는 산이 많은 도시에서 내린다.

  날들이 가고 정말 이 이혼남 ‘그’가 여자가 사는 근처로 지나갈 일이 있어 기차에서 내렸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그때 들었던 걸 기억해 직접 일하는 곳으로 찾아가 만난다. ‘그’는 정말로 그때의 고마움이라는 인연으로 한 번 보고 싶었던 것. 시간이 이미 오후 해질녘이라 둘은 자연스럽게 저녁을 먹고, 술도 마시고 객점에 들어 남자의 방에 함께 든다. 처음 만났을 때는 공무원 남편이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갇혀 있던 때였는데 이후 무죄가 드러나 오히려 직장에서 승진 발령되어 아내도 자기 힘으로 더 좋은 보직으로 발령시켰지만, 착했던 남편은 그 일이 있은 이후 사람이 바뀌어 일단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 위주로 살기 시작했다. 만날 외박했다는 뜻이지 뭐.

  여자는 그래서 홧김의 서방질이라도 염두에 두었던 듯하지만, 주인공 ‘그’는 둘이 함께 객점에 들었건만 오직 당시의 고마움으로 전에 말했듯 한 번 보기 위함이라고 강조한다.

  이게 끝인 건조한 사는 이야기. 이게 제일 좋았는데 그만 어이구, 산 개를 산 채로 끓는 물에 던져 넣지를 않나, 청부살인에다가, 개 코에 코뚜레를 하고, 나름대로 형수한테 이혼을 설득하다가 몸으로 말하게 된 순간을 들켜 손가락이 날아가니, 이거 원 살벌해서 말씀이야. 근데 내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고 이런 건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을 분이 틀림없이 있을 터, 그분들은 재미나게 읽을 작품. 내 판단을 별점으로 말하자면 3.5? 세 개는 너무 짜다. 넷은 조금 과하지만 너그럽게 봐줄 수준. 그러니까 여태 말은 이렇게 했어도 괜찮다는 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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