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만화 이탈로 칼비노 전집 6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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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년 만에 다시 읽었다. 전에 읽은 책은 열린책들 Mr. Know 시리즈였는데, 말 그대로 읽느라고 죽을 똥을 쌌다. 얼마나 경악했는지 “지루하고 지루했던 불후의 명작 Top 10” 가운데 한 권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나도 참, 심술이지 이 정도면. 그냥 읽느라고 고생했다 치고 슬쩍 넘어가야지 좀스럽게 그게 뭐야? 이때 Top 10의 거미줄에 걸린 책을 슬슬 읽어본다. 놀랍게도 잉에보르크 바흐만이 쓴 <말리나>도 며칠 전에 읽었다는 거 아냐? 그것도 읽혔다. 아무래도 내가 열반할 때가 된 모양이다. 며칠 전에는 독후감에 후덜덜 단테 알레기에리의 <신곡 지옥편>도 인용했다. 심각하다. 안 하던 짓 자꾸 한다. <말리나>도 그렇고 《우주만화》도 그런데, 십년 전에 워낙 고생을 심하게 해서 오직 책 읽는 일에 집중하느라 독후감을 위한 메모를 전혀 하지 않았다. 애초에 독후감 쓸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읽은 거다.

  구접스럽게 이런 얘기를 뭐하러 하느냐면, 그냥 간단하게 읽은 소감만 올린다는 말이지 뭐. 쉬운 말로 해서 핑계를 대는 중이다.


  민음사에서 낸 “이탈로 칼비노 전집” 6번 《우주만화》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구판으로 1965년에 소설집 형식으로 출간한 책. 신판은 같은 6번을 달고 나왔지만 신판은 《모든 우주만화》라고 간판을 살짝 바꾸면서 《티 제로》, 《다른 우주만화 이야기》, 《변형된 우주만화》를 포함해 구판보다 갑절 이상의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11년 전에 읽은 열린책들 판은 민음사 신판의 순서를 바꾸어 유사한 주제로 구분해 놓은 책이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좀 골치 아픈 책이다 싶지?

  이번에는 어떻게 읽었느냐 하면, 제목이 《우주만화》이니까 정말로 만화책 보는 기분으로, 칼비노가 써내려간 대로, 어떤 주장을 펼치고 싶은 지 괜히 작가의 복장 속에 들어갈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은 채 그저 글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읽었다. 크. 그랬더니 읽히더라는 것.

  칼비노는 누가 뭐래도 환상 소설 작가이다. 그걸 독자가 해골 써가면서 이게 어떤 의미일까, 무슨 현상을 은유하는 것일까 파봤자 이분 얘기하는 거하고 저놈 생각하는 게, 같으면 오히려 이상할 터. 그러느니 차라리 보이는 대로 보고, 읽히는 대로 읽는 편이 좋다. 이번에 확실하게 깨달은 점은, 내가 생각보다 환상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


  제일 앞에 놓인 작품이 <달과의 거리>이다. 아주 오래 전에는 달과 지구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단다. 아예 붙어 있는 수준이었다고. 달이 가까이 있으니까 달의 중력이 상당히 강해서 조수 간만의 차이가 어마어마했을 터. 사리 때 높은 파도가 치면 배 위에서 키 큰 사람이 손을 쭉 뻗으면 달을 만질 수 있을 정도였다니, 칼비노 구라도 이 정도면 예술 수준이다. 하긴 예술가 맞지.

  지구 사람 가운데 아마 틀림없이 이탈리아 어부들일 텐데, 사리 때만 되면 어김없이 돛대 꼭대기에 올라가 훌쩍 달에 뛰어오르는 어부들이 있었다. 놀러? 천만의 말씀. 일당 받고 배 타는 사람이 달에 놀러가면 선장이 그걸 내버려 두나? 달의 중력에 이끌려 지구에서 식물 수액, 개구리 알, 역청, 제비콩, 벌꿀, 전분 결정체, 철갑상어 알, 곰팡이, 꽃가루, 젤라틴 물질, 벌레, 송진, 후추, 천연 소금, 산화물질 같은 것들이 빨려 올라가 서로 작용해서 달 우유, 문 밀크로 변질되는데, 이게 별미였다. 이게 리코타 치즈처럼 진득하니 그랬다나? 그걸 긁어서 커다란 숟가락 같은 걸로 마치 투석기를 쏘듯 하늘을 향해, 사실은 지구 바다에 떠 있는 배를 향해 팡, 던지면 그걸 제대로 받든지, 바다에 빠져 둥둥 떠 있는 걸 건지든지 그랬단다. 이 일로 돈 좀 만졌다고.

  그러다가 달과의 거리가 조금씩, 아주 세밀하게 조금씩 멀어진 게 아니라, 아마도 눈에 보이게 훌쩍 멀어져 내 사랑, 다이아몬드 같이 빛나는 눈을 가진 브흐드 브흐드 부인은 결국 달에서 탈출을 하지 못하고 지구를 떠났다는 이야기.


  이것만 있는 게 아니고 정말 만화 같은 이야기들이 촘촘히 들어 있다. 빅뱅이 일어났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 아니지, 사람은 무슨. 하여간 생명체들. 만화 주인공들이 빅뱅도 구경하고, 태양이 처음 생길 때 퍼버벙 10의 n제곱 만큼의 수소폭탄이 터질 때도 있었다. 지구가 처음엔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죽상 상태에서 굳어갈 무렵, 한 여성이 땅 속 깊숙하게 들어가 스스로 지구의 핵이 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셨나?

  물론 아닌 것도 있다. 우주의 무한성. 10만 세기 전이라면 10만 곱하기 100, 1억년. 근데 10만 세기가 아니라 몇 십만 세기 전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칼비노. 이 와중에서도 작가라는 직업이 참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예전에 저질렀던 과오나 실수, 돌이켜 생각해보니 창피하기 그지없는 일들. 이런 거 그냥 말로 “지금 떠올려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한 문장이면 끝날 텐데 그걸 몇십억년, 몇 백억년 전의 우주 공간에서 있었던 일로 만들어 하려면, 하루 세끼 먹고 해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여간 나는 《우주만화》를 드디어 읽었다. 11년 만에. <말리나>도 읽었다. 다음에는 뭐? <몽유병자들>? 아니, 아니. 그건 아직도 자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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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5-20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드디어 열반의 경지에 이르셨군요🙏 저는 이탈로 칼비노 ˝나무위의 남작˝만 읽었는데 오래전이지만 꽤나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근데 원래 이 작가 책이 잘 읽어지지 않나 봅니다 폴스타프님이 죽을 똥을 싸셨으면 전 아예 시작도 못 할듯🤣

잠자냥 2026-05-20 14:19   좋아요 0 | URL
망고는 그냥 똥 싸면서 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