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델타
마르코 미시롤리 지음, 김희정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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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코 미시롤라는 1981년 이탈리아의 리미니에서 출생했다. 리미니?

  잠깐 단테의 <신곡> 가운데 “지옥편” 5곡으로 가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를 인도하여 지옥 구경을 시켜주는데 제일 먼저 지옥의 유황불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프란체스카를 만난다. 프란체스카는 왜 지옥으로 떨어졌을까? 사랑 때문에. 

  인용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0, 단테 알레기에리, 《신곡 지옥편》 2007. 박상진 역.


  “사랑은 온화한 가슴에 이내 스며드니,

  지금은 내게서 없어진 아름다운 몸으로 이이를 

  사로잡았어요. 그 일은 아직도 나를 괴롭힙니다.


  사랑은 사랑받는 사람을 결코 놓아주지 않으니,

  이이에 대한 차오르는 기쁨으로 나를 사로잡았어요.

  보다시피, 이이는 내 곁을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어요.” (p.55)


  그러니까 프란체스카는 사랑 때문에, 드런 사랑 때문에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해 지옥으로 떨여졌다. 책의 다음 페이지에는 아마도 지옥편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선생님은 아시겠지만,

  비참할 때 행복했던 옛 시절을 떠올리는 일만큼

  괴로운 것은 없어요.’” (p.56)


  프란체스카는 리미니 공국의 공작이자 영주인 란체오토 말라테스타한테 시집온 아름다운 여성. 이이는 영주부인이 아니라 영주의 동생인 파올로의 짝이 될 줄 알았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모르지? 파올로는 젊고 무지하게 잘 생긴 미남자로 유명했거든. 근데 결혼식장에 입장해보니 신랑이 짐승 같은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주먹을 가진 란체오토 영주님이었던 거다. 게다가 드럽게 못생기기까지 했다. 어때, 다른 작품 생각나는 거 하나 있다.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돈 카를로스>.

  근데 프란체스카는 <돈 카를로스>의 엘리자베스하고 좀 다른 캐릭터이다. 엘리자베스는 어쨌든 혼인의 순결을 끝내 지켰다. 반면 프란체스카는 아니다. 이를 눈치챈 영주님. 프란체스카와 동생 파올로 사이가 아무래도 수상해서, 영주님이 전쟁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라고 광고했다. 그리고 정말로 군대를 소집해 적국을 향해 행진하는 동안 프란체스카는 친절한 시동생 파올로를 불러 뭘 했느냐 하면,


  “어느 날 우리는 한가롭게

  렌슬롯의 사랑 얘기를 읽었어요.

  우리뿐이었어요. 거리낄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요.” (p.57)


  렌슬롯의 사랑 이야기는 당시 기준으로 봐서 야설 수준은 아니더라도 되게 야한 책이었다. 그런 걸 파올로가 소리내서 읽다가 점점 손끝이 이게 영 이상한 동네로 이동하기 시작하는데, 뭐 다 그런 거지, 자동이거든. 그리하여 점점 달아오른 둘이 급기야 비단 모기장 드리운 기둥 침대 위로 홀라당 올라가 뜨거운 사이가 되었던 터, 딱 이 때 시간을 맞춰 갑자기 방문을 벌컥 열고 들이닥친 란체오토 말라테스타. 영주님은 관운장이 쓰던 청룡언월도를 휘둘러 훌렁 벗은 둘의 허리를 댕강, 잘라 죽여버리고, 두 연놈의 영혼은 사이좋게 손잡고 지옥으로 떨어졌던 것.

  이거 이 책에도 안 나오고, 민음사 《신곡 지옥편》에도 안 나온다. 《신곡 지옥편》을 감명 깊게 읽은 러시아의 극작가 모데스트 차이콥스키가 쓴 작품 <리미니의 프란체스카> 이야기이다. 모데스트는 우리가 아는 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프란체스카 이야기 어디 가서 들어보기 쉽지 않을 걸? 잘난 척하느라 그냥 써본 거다. 나는 잘난 척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 지 몰라!

  《신곡 지옥편》 5곡의 프란체스카와 파올로가 어디서 지옥으로 미끄러졌느냐 하면, 지금이야 이탈리아 땅이지만 당시엔 리미니 공국이었던 곳.

  그것 때문에 이렇게 길게 변죽을 울렸느냐? 설마. <페델타>의 지은이 마르코 미시롤리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리미니에서 살다가 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볼로냐 대학에 진학했는데, 작품 속에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리미니에 살다가 대학을 거쳐 대학원을 밀라노대학에 다니던 중 자기 지도교수와의 염문이 알려져 중도작파하고 다시 리미니로 돌아가 아버지가 하던 철물점을 물려받아 대를 이어 가업에 종사하는(윽, 스포일러군!) 여성, 소피아가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제목 페델타. Fedelta 마지막 철자 a 위에 점 하나를 찍어야 하는데 찾기 귀찮으니 그냥 이렇게만 쓰자. 이탈리아 말로 정절. 충성심이란 뜻도 있지만 책에서는 ‘정절’ 또는 ‘혼인의 순결’로 이해하면 되겠다. 근데 작품의 주제는 정절과 정 반대말 ‘배신’이다. 즉 불륜, 혼외정사 같은. 그래서 <리미니의 프란체스카> 이야기를 열라 떠들었다.

  카를로 펜테코스테 교수. 부르주아 집안의 1남1녀 중에서 장남. 밀라노 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고 특별하게 뭘 한 게 아니라, 집이 좀 사니까 가능했겠지만, 이것저것 설렁설렁, 카피라이터도 해보고, 여행지 소개문도 써보다가, 아버지 뒷배로 밀라노대학 대학원에서 창작과목 전임교수 비슷하게 하는 중이었다. 자기 반에 작은 얼굴과 잘록한 허리에 어리게 보이는 스물두 살 먹은 소피아가 있었는데 은근히 눈길이 자꾸 소피아한테 가더란 것.

  소피아 말고 다른 신입 여학생이 작품 초장에 하필이면 지저분하게 화장실에서 교수가 소피아 학생을 껴안고 목을 쓰다듬는 것과 비슷하다고 판단할 수준의 장면을 목격해 교실로 돌아와 입을 털었다. 이 일 이후에 펜테코스테 교수와 소피아가 의심스러운 성격의 접촉을 가졌다는 소문에 힘이 실렸다고 쓰여 있으니, 아마도 교수가 소피아를 편애했던 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사실이고말고!) 이 뒷담화가 학장의 귀에까지 들어가 바야흐로 문제가 되었을 때, 펜테코스테 교수는 동료 교수 몇 명과 학장을 데리고 현장에 가 직접 상황을 재연해 주었다. 이렇게: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을 보고, 공동구역으로 나와서 손과 얼굴을 씻은 후에 말리고 있을 때, 여자 화장실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문이 조금 열려 있어 (라기보다 덜 닫혀 있어) 들여다보니 자기 수업을 듣는 소피아 카사데이가 거의 정신을 잃고 넘어져 있는 거였다. 그래 문을 열어놓은 채 들어가 학생을 향해 몸을 기울인 상태에서 이름을 여러 번 불렀고, 앉았다 일어날 수 있게 도왔으며, 잠시 구석에 기대게 조치했다.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학생은 진정되어 얼굴을 씻을 수 있게 세면대로 데려갔는데, 상황이 긴박하지는 않았어도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신입생이 현장에 있었는지는 눈치도 채지 못했다.


  그럴 수 있겠다.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이 일 때문에 제일 기분이 언짢은 사람이 누구? 당연히 아내 마르게리타.

  오늘 아침 남편이 늘 복용하는 항히스타민제를 두고 와서 직접 가지고 학교까지 왔다. 구태여 문자나 전화로 알리지는 않았다. 마르게는 몰랐지. 한 10미터 정도 자기 앞을 걷던 여학생이 바로 소피아였던 것을. 소피아가 강의실에 들어가 카를로 펜테코스테 교수한테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 부인이 날 따라왔어요.”

  소설은 이 대사로 시작한다. 카를로가 창문 밖을 내다보니 아내가 담벼락에 걸터앉아 네미로프스키를 읽고 있다. 네미로프스키? 소설집 《무도회》를 쓴 작가? 맞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곧바로 도서관에 상호대차 신청해서 네미롭스키의 다른 책 한 권 읽기로 했다.

  근데 이상하지? 마르게는 심지어 아직까지 (나중엔 알게 되지만) 소피아라는 이름만 들었지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데 어떻게 따라오겠어? 소피아도 속으로 교수와 모종의 썸이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렇게 중인환시리에 일종의 염문이 살포된 상황에서 썸을 이어갈 수 없지. 당연하지. 여기서 한 발만 더 나가도 교수는 아예 이 바닥에서 매장될 터인데. 그래서 교수 스스로 현장검증을 신청하기 전에 극비리에 시내 모 카페로 소피아를 불러내 내가 이렇게 이야기할 테니 너는 저렇게 자세를 잡아라, 뭐 이 비슷한 시나리오를 짜고 그대로 진행한 거다. 똑부러지는 소피아는 몇 시간에 이르는 사전 미팅을 휴대폰에 전부 증거로 녹취했지만 그건 교수가 알 턱이 없다. 그래 잘 수습이 된 상태에서 교수가 다시 소피아를 만난다? 그건 곤란하고, 소피아도 마찬가지다. 소설가를 꿈꾸는 소피아는 소설도 잘 써지지 않아, 소설이고 뭐고 고향 리미니로 돌아가 아빠 하던 일을 이어서 하기로 결정해버렸다.

  근데 미련이 남잖아? 교수도, 소피아도. 소피아가 기차를 타는 날이 하필이면 교수의 친엄마 생일날이었는데, 핑계를 대고 소피아 집에 들러 마지막 짐을 역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자진해서 해준다. 집에 가서? 그렇다. 그럼 짐만 옮겨주었을까? 에잇, 확 말해버리자. 그렇다 짐만. 시도는 했지만 소피아가 싹 거절해버린다.


  문제가 또 있으니 교수의 아내 마르게리타.

  밀라노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부동산 중개업자. 자기관리에 철저한 비즈니스 우먼. 아직 애도 없다. 몸도 빵빵하다. 몸매를 위해 헬스에 다니는데 석달 전에 트레드밀을 겁나게 열심히 한 뒤 치골에서 무릎으로 이어지는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그래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중.

  물리치료를 받으면 꽉 막힌 좁은 치료실에 스물여섯 살 먹은 안드레아라는 건장하고 잘생긴 젊은 남자가, 물리치료를 받기 적절한 반바지와 속옷을 입은 마르게리타를 뉘어 놓고 치골 부근의 근육과 힘줄을 열 손가락 모두 사용하여 꾹꾹 눌러 근육의 결과 밀도, 그리고 탄력까지 모두 짚어본 후에 허벅지 안쪽 근육, 소위 햄스트링이란 곳까지 모두 꼼꼼하게 훑는다.

  30대 중반을 향해 돌진하는 여성의 농익은 몸은 안드레아의 손길이 금지된 곳에 더 가까이 접근하기를 속으로 바라지만 결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몇 년 전, 외국 여성이 우리나라 TV에 나와 이해할 수 없는 우리 속담 가운데 하나가 “홧김에 서방질한다.”라고 했던 걸 기억한다. 서양에서는 그런 말이 없단다. 뭐 그런가 보지. 그러나 2년 전 여름에 읽은 모드 방튀라의 <내 남편>에서도 그랬듯이 <페델타>에서도 우리의 마르게리타도 홧김인지, 아니면 아슬아슬한 리비도의 유혹에 넘어간 것인지, 자신이 결국 안드레아를 안다리후리기로 자빠뜨리는 데 성공한다. 이게 마르게리타가 딱 한 번 저지르는 불륜. 대단한 것이 안드레아가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였음에도.


이렇게 마르게리타와 카를로 펜테코스테 부부의 불륜. 불륜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진짜 사랑은 둘 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마구 치고 나가는 그냥 그런 애정 소설. 잘 쓰기는 하지만 별거 없다. 조르조 바사니의 <금테 안경>을 읽을 때는 안 그랬던 거 같은데, 역자 김희정의 우리말 문장도 거칠게 서걱거려 재미를 조금 떨어뜨리…는 거 같다.

  오늘 독후감, 분량이 많지만 리미니 이야기 빼면 그냥 늘 쓰던 대로다. 여기까지 읽어주시느라 고생 많으셨다. 쐬주만 안 마시면 소설도 한 편 쓸 기세라니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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